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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10호] 계급투쟁 보고서 :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체성의 형성과 상실, 그리고 재획득 1
  • 계급투쟁 보고서 :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체성의 형성과 상실, 그리고 재획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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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퇴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온갖 다양한 정체성의 위기를 낳는다. 일반화된 상품 생산 시스템에 내재된 원자화는 새로운 단계에 이르는데, 이러한 원자화는 전반적인 사회적 삶과 이 시스템이 낳은 비참함과 억압이 증대되는 데에 맞서는 반응 모두에 적용된다. 한 편에서는 특정 억압으로 고통받는 단체와 개인들이 그 억압에 맞서 싸우도록 특정한 그룹 - 여성,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소수인종 집단 등 - 으로 동원되도록 격려되는데, 최근 트랜스젠더 활동가들과 페미니즘의 특정 분파가 대립한 것처럼, 이들은 드물지 않게 직접적으로 서로가 서로와 경쟁한다. 이러한 정체성 정치의 징후들은 동시에 부르주아 좌익에 의해서도 나타나는데, 이들은 가장 뛰어난 학자들과 가장 강력한 정치 집단들(미국의 민주당과 같은)까지 포함한다.

     

    그동안 부르주아 우익은 표면적으로는 정체성 정치의 등장을 매도하는 한편, 그들 자신만의 형식으로 정체성 탐색을 방어하기 위해 들고 일어선다 : 다양한 페미니즘에 의해 위협받는 진짜 남자, 외국인 무리에 의해 대체되는데 직면하는 백인의 영광에 대한 향수와 같은 것이 그런 것들이다.

     

    이러한 부분적이고, 때로는 완전히 거짓된 정체성과 공동체의 추구는 보편적인 인간의 공동체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종의 생존을 위해 필연적인 역사적 시대에 인류의 자기소외의 척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적 해체의 다른 징후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현상은 어떤 정체성을 상실한 산물이다. 이를 긍정함으로써 코뮤니즘(공산주의)으로도 알려진, 그러한 공동체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체성 :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정체성 말이다. 최근 프랑스의 노란 조끼운동은 이러한 계급 정체성의 상실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 삶의 수준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으로 정당하게 분노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이해관계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다른 계급의 요구와 행동 - 이 경우에는 소부르주아지와 부르주아지의 일부 - 뒤에 서 있었다. (1)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다.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는 자본주의라는 전체 체계의 주춧돌이다. 그것은 정체성 정치가 공개적으로든 비밀스럽게든 주장하는 바와 같은 많은 억압의 형태 중 하나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난 두 세기 동안의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여전히 지구를 지배하고 있으며, 1844년 칼 맑스가 쓴 그 유명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본질은 여전히 어느 때보다도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 계급의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은 이 사회가 야기한 모든 특정한 잘못들에 대한 해결책을 담고 있다.

     

    뿌리 깊은 굴레에 얽매여 있는 한 계급, 결코 시민 사회의 계급이 아닌 시민 사회의 계급, 모든 신분의 해체인 한 신분, 자신의 보편적 고통 때문에 보편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특수한 부당함이 아니라 부당함 그 자체가 그들에게 자행되기 때문에 어떤 특수한 권리도 요구하지 않는 한 영역, 더는 역사적 권원을 증거 삼을 수 없고 단지 인간적 권원만을 증거 삼을 수 있는 한 영역, 독일 국가 제도의 귀결과 일면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제들과 전면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한 영역, 마지막으로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그리하여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을 해방시키지 않고는 해방될 수 없는 한 영역,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완전한 상실이고 따라서 인간의 완전한 되찾음에 의해서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한 영역의 형성에 있다. 하나의 특수한 신분으로서의 사회의 이와 같은 해체는 프롤레타리아트이다.” (2)

     

    같은 시기 작성된 신성 가족에서 맑스는 노동계급이 본질적으로 혁명적 계급이며, 스스로 이를 깨닫지 못할 때조차도 그러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회주의적 저술가들이 이와 같은 세계사적 역할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돌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비판적 비판이 그렇게 믿는다고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회주의적 저술가들이 프롤레타리아들을 신들로 간주하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모든 인간적인 것의 - 심지어는 인간적인 것의 가상까지도 - 사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완성에 의해 실천적으로 완료되기 때문에, 또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 조건들 속에는 오늘날의 사회적 모든 생활 조건들이 그 가장 비인간적인 극단을 이루며 집약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상실하였으나 동시에 이 상실의 이론적 자각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더는 피할 수도 없고, 더는 미화할 수도 없는 절대적으로 명령적인 빈궁 - 이것은 필연성의 실천적 표현이다 - 에 의해 이 비인간성에 대한 반란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고 또 해방시켜야 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기 자신의 생활 조건들을 지양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상태 속에 집약되어 있는 현 사회의 모든 비인간적 생활 조건들을 지양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의 생활 조건들을 지양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이라는 준엄한 단련의 학교를 헛되이 다니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 이러저러한 프롤레타리아가 또는 심지어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엇을 자기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란 무엇인가, 또 그들은 자기의 이러한 존재에 걸맞도록 역사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가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목적과 그 역사적 행동은 그들 자신의 생활 상태 속에 그리고 오늘날의 부르주아 사회의 조직 전체 속에 확연하게, 지울 수가 없게 그려져 있다." (3)

     

    따라서 계급 정체성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바뀌지 않은 채 남아있는 객관적인 기반이 있으나, “프롤레타리아트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관적인 의식은 프롤레타리아의 부정적인 삶의 측면들 - “인간은 프롤레타리아트 안에서 자신을 잃었다는 사실, 인간의 자기-소외의 모든 무게로부터 고통받는 계급이라는 사실 - 로 인해 오랫동안 보류되어 왔다. 맑스는 이후 그의 글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의 한 형태를 설명했다. 그것은 물상화과정으로도 알려진 것으로, 보편적인 상품 교환에 내재된 신비화의 장막이 억압받는 이들이 그들의 억압에 대한 진정한 본질과 억압하는 자들의 진실한 정체를 깨닫기 어렵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그 상실에 대한 이론적인 의식이 있어야 하고, 사회주의가 그 방법에서 과학적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 이론적 의식은, 어떤 의미로도 노동의 실제 조건과 자본주의 착취의 비인간성에 반대하는 저항과 분리될 수 없다.

     

    맑스가 노동 계급이 그 자기 삶의 조건을 철폐하지 않고는 해방될 수 없다고 썼을 때, 이른바 공유는 이 글이 의미하는 바가 계급 정체성에 대한 어떠한 긍정도 반동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정체성이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엇인가에 대한 찬양과 다름없는 데, 코뮤니스트혁명은 노동계급의 즉각적인 자기부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인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하며, 억압받는 계급인 동시에 혁명적 계급이라는 변증법적 실재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맑스와 마찬가지로 경제 투쟁과 사회 투쟁 모두의 수준에서 자신을 긍정함으로써만, 사회적 정치적 지도계급의 후보자로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든 계급의 진정한 해체와 인류의 재승리를 완성하는길을 닦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 보고서가 계급 정체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이다. 자본주의 상승기, 그 초기 발전에서부터 이어지는 상실, 그리고 미래의 재획득까지.

     

      계급 정체성의 형성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의대로 무산자 계급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원래 소작농이 땅을 잃거나 장인들의 생산 도구를 갖지 못하게 되고, 초기 산업 사회 병균이 가득한 슬럼가에 모이면서 형성되었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계급의 처지에서 수많은 프롤레타리아가 술주정뱅이가 되거나 범죄에 빠져드는, 서로 간의 가장 야만적인 경쟁에 종속되는 그 과정의 모든 결과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엥겔스는 그들의 조건에 대한 순수한 개인적인 반응들에 대해 도덕적인 비난을 하길 거부하고, 이미 모양을 갖춰가고 있는 대안을 지적했다. 노동조합, 교육과 문화 연합, 그리고 차티스트와 같은 정당을 형성함으로써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집단 투쟁이 그것인데, 이것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더 우월한 형태에 대한 꿈에 의해 고무된 것이었다. 도시와 공장에 노동자들이 물리적으로 모이게 된 것은 이러한 투쟁의 객관적인 전제였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던 장인 및 소작 노동을 극복한 노동의 연합의 한 차원이었다. 그러나 순수하게 사회학적인과정으로써, 초기 산업화의 기계는 너무 야만적이고 고통스러워서 무차별적으로 다수의 극빈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와 심지어 프롤레타이라트가 굶주림과 병으로 멸종할 정도였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초기 계급 정체성의 진정한 기반이 된 것은 부르주아지의 그것과는 반대되는, 계급 공통의 이해관계에 대한 인식이었다. 공산당 선언이 표현하였듯이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으로 형성하는 것은 따라서 계급의식과 조직 - 위 문구가 결과적으로 정당으로 형성된다로 이어지듯이 - 의 성장과는 분리될 수 없다. 노동계급은 연합한 계급, 객관적인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사회 조직의 보다 더 나은 형태의 전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적 조직은 자기 조직화와 착취에 맞선 투쟁 과정에서 계급으로 통일되는 이러한 주관적인 차원이 자본주의 사회 관계 내에서 나타나 자리 잡을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가지지 못한 계급으로 남아있고, 이는 자신의 방어를 위해 만들어낸 바로 그 도구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첫 번째 노동조합과 정당은, 한 수준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시민 사회의 한 계급이 아님을 이해하고,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는 책무에 의해 동기화되지만, 이들 역시 계급이 체제 내에서 상황을 개선할 필요성에 묶여 있다. 그리고 맑스주의의 설립자들의 초기 기대와는 반대로, 이 시스템은 여전히 쇠퇴기 마지막 위기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았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오랜 시간 동안 더 광범위하게 자본주의 사회의 껍질 내에서 자신의 조직을 연마해야 하는데, 그럴수록 이러한 조직들이 시민 사회의 일부 - 간단히 말해 제도화될 위험은 더 커진다. 1892년 엥겔스가 썼듯이, 특정한 시점, 노동조합은 지금까지 악마 자신의 발명품으로 간주되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정당한 기관으로 길들여지고 후원을 받고 있으며, 노동자들 사이에서 건강한 경제적 교의를 퍼뜨리는 유용한 수단이 되었다.”(4) 씁쓸한 역사적 경험 이후에서야 깨달았지만, 우리는 혁명으로 향하는 길이 체제 내에서 노동자들의 대중 조직을 점진적으로 쌓아나가는 길이 아님을 안다. 반대로, 쇠퇴의 시작과 함께 진정한 시험이 시작되었을 때, 이러한 조직들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지배적인 사회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타락하여 지배계급에 의해 제국주의 전쟁에서 싸우는 것을 돕고 혁명의 위협과 싸우도록 재탄생되었다.

     

    이것은 절대 선형적 과정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본질적으로 자신들이 위법적 계급 - 혁명을 위한 군대 - 임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방어에서 가장 기본적인 조합을 건설하기 위한 최초의 노력은 부르주아지에 의해 무참하게 억압되었는데, 이러한 억압이 노동자의 자주 조직이 부르주아지에 맞서도록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욱이, 19세기 중반 유럽의 정치적 조건으로 인해, 최소한 두 번의 중요한 역사적인 순간 - 1848년과 1871- 프롤레타리아트는 공개적으로 지배 계급에 대항하는 봉기 투쟁에 돌입할 수 있었다. 1789-93년의 경험 이후 혁명의 고향이 된 프랑스에서는 노동계급이 국가에 대항하여 무장했고, 특히 1871, 국가를 파괴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대체하는 문제를 명확하게 제기했다. 그러나 혁명적 미래를 가리킨 계급 운동은 프랑스에 한정되지 않는다. “점진적인 개혁의 나라 영국에서는 이후 시대 투쟁의 특징이 될 대중 파업의 윤곽을 1842년 파업 운동에서 이미 드러내었다. (5) 차티스트 운동 자체도 보편적인 참정권 요구가 노동 계급이 자신의 손에 정치적 권력을 쥐고자 하는 요구임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 방법은 부르주아지에 청원하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기존의 정권에 대항하여 무장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던 1839년 뉴포트 봉기와 같은 물리력또한 제기된 방법이었다. (6) 1864년 제1 인터내셔널의 형성은 방어적 투쟁의 국제적인 협력의 필요에서 비롯되었으나, 그 자체가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사회의 기반에 맞서고 있다는 지표였다 - 진정으로 스스로 깨달은 계급 정체성은 국가라는 틀 안에 갇힐 수 없다는 것이다.

     

    인터내셔널과 파리 코뮨이 부르주아지의 심장에서 일어났다는 공포, 뿐만 아니라 19세기 마지막 자본주의의 지구적 확장이라는 객관적인 조건은 대규모 노동자들의 조직이 부르주아 사회, 결국에는 국가 기관 그 자체에 통합되는 기반을 제공했다. 프롤레타리아 운동 그 자체 내부에서 제기된 혼란과 기회주의적 양보에 이러한 요인들이 더해졌는데, 특히 프롤레타리아트와 민족의 이해관계를 일치하는 데에서 그러했다. 연방이라는 구조와 민족 문제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제2 인터내셔널이 결국 극복할 수 없었던 그 문제 말이다. 그러나 조직된 노동 운동이 모든 계층의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방어와 정치적 활동을 위한 기관들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삶을 제공한 사회 민주주의의 오랜 동안 제기된 계급 정체성에 대한 이해는 자본주의 쇠퇴기의 개막과 함께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반대로, 프롤레타리아트에 적대적인 신비화로 변형되어, “살아있는 자들의 뇌를 짓누르는 악몽이 되거나, 특히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 정당들이 그들의 노동계급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계급 정체성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 사회에서 다른 계급임을, 부르주아지에 반대하고, 사회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계급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사회에서 혁명적 계급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세월 동안 계급 정체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괜찮은 삶의 수준을 열망하고, 인정과 사회적 가능성을 즐기는 계급이라는 관념에 머물러 있다.

     

    그러한 정체성은 반혁명과 노동조합과 스탈린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2 인터내셔널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는 특정한 약점에 기반을 둔 정체성이다: 생산직 노동자, 투사들 -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신경 쓰며 그로부터 인정받고, 대기업과 노동계급 이웃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자신의 노동 시민으로서의 조건을 자랑스러워하고, 위대한 노동자 가족의 우주 속에 둘러싸인 이들의 정체성인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은 특정한 시기와 매우 잘 연결되어 있다. 바로 자본주의의 절정기(1870-1914)이다. 그러나 쇠퇴기, 맑스가 선언한 것처럼 프롤레타리아트의 비전이 부르주아지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시기 이러한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가짜 정체성, 자본주의 사회에 통합되어 있다는 환상, 자본주의 사회와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정체성으로 이어지고, 진정한 계급 정체성과 계급의식을 파괴하는 데 이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능한 유일한 정체성은 사회에 배제된 계급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그 안에 코뮤니스트 전망을 품고 있는 계급이라는 정체성뿐이다(7)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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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노란 조끼운동: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계급 영역에 대한 자본의 공격에 대응해야만 한다!

     

    2.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 박종철출판사, 칼 맑스 프리드리히 저작선집

     

    3. 신성 가족, 4, 박종철출판사, 칼 맑스 프리드리히 저작선집

     

    4.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 영문판 서문

     

    5.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 2: 차티즘과 1842년 대중파업

     

    6. 이 운동 이전, 1831년에는 머시르(Merthyr) 봉기가 있었는데, 이 봉기는 비록 하나의 도시에서 짧은 기간 동안뿐이었지만 노동자들이 권력을 쟁취하였으며, 더 잘 조직되고 보다 성공적이었다고 주장된다. 이것은 또한 붉은 깃발 아래 노동자들이 행진한 첫 번째 순간으로 기록되어 있다.

     

    7. 계급투쟁의 관점에 대한 보고서에서, 201512

     


    출처  |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23차 대회 보고서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707/report-class-struggle-formation-loss-and-re-conquest-proletarian-class-identity

     

    번역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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