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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10호] 계급투쟁 보고서 :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체성의 형성과 상실, 그리고 재획득 2
  • 조회 수: 6527, 2020-03-12 12:43:40(2020-03-12)
  • 계급투쟁 보고서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체성의 형성과 상실그리고 재획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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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퇴기, 가지지 못한 계급으로서의 정체성의 주()무대

     

      20184, 우리의 국제 중앙 조직이 채택한 계급 세력의 균형에 관한 문서는 신뢰와 연대에 관한 예비 교육 문서(8)를 인용하면서, 1848년 이후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두 단계로 윤곽을 잡는다. 그 초점은 노동계급의 자신감 성장과 상실에 맞춰져 있는데, 이 문제는 계급 정체성의 문제와 매우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존재와 이해관계에 대해 알 때만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첫째 단계 동안 자율적인 계급으로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1917-23년 혁명적 파도의 시기까지 확장해 나가면서 노동계급은 종종 피비린내 나는 패배로 고통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연속적으로 자신감과 정치적, 사회적 통일을 발전시켰다. 이 역량의 가장 중요한 징후는 노동자들의 투쟁 그 자체에 더해 사회주의적 비전, 이론적인 역량, 그리고 정치적 혁명 조직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이러한 몇십 년, 몇 세대의 축적 과정은 방해받았고, 심지어 반혁명으로 뒤집혔다. 오직 작은 혁명 소수만이 그 뒤의 몇십 년 동안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68, 반혁명을 끝내고 노동계급이 부활하면서 다시 한 번 이러한 경향을 뒤집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새롭고 패배의 경험이 없는 프롤레타리아트 세대의 자신감과 계급 연대에 대한 새로운 표현은 대부분 즉자적인 투쟁에 뿌리를 둔 채로 남아있었다. 그들은 반혁명 이전의, 사회주의적 비전과 정치적 형성, 계급 이론과 세대에 걸쳐 축적된 경험과 이론의 전수 등 그 정도의 기반이 없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인 자신감과 적극적인 단결, 집단적인 전투는 유기적인 연속성의 단절로부터 고통받아온 전투의 측면에 속했다. 똑같이, 그들은 생생한 정치적, 사회적 연속성에 다른 무엇보다 의존했던 것만큼, 그들은 재건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은 다시 계급과 혁명적 소수의 새로운 세대 고유의 취약점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 첫 번째 혁명적 물결의 패배로 엄청난 충격을 받기도 전에, 1914-18년의 세계대전은 그동안 노동조합과 정당을 건설하는 데 인고의 노력을 기울인 몇십 년의 상실을 의미했으며, 그 상실은 특히 노동계급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러한 배신에 반대했던 혁명가들 사이에서도, 오직 소수만이 계급이 이러한 조직을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스탈린주의의 등장과 함께, 이러한 이해의 어려움은 전망에 대한 보고서에서 언급했던 가짜 정체성 건설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과거로부터의 이러한 끔찍한 부담이 혁명적 물결의 진행에 재앙과도 같은 충격 - 특히 통일 전선에 대한 이론과 실천으로 표현된 - 을 주었으나, 이 시기는 또한 대중 파업, 노동자 평의회의 형성, 그리고 제3 인터내셔널의 등장에 내재된 새로운 형식의 계급 정체성에 빛을 비춘 때이기도 했다. 맑스가 이미 언급했듯이,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적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 다시 발견한 계급 정체성은 실제로는 새로운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란 무엇인가를 그저 명확히 한 것 이었다 : 전쟁과 혁명의 시대, 계급은 기존의 모든 제도 바깥에서 자신을 조직함으로써만이, 자본주의 사회에 안티테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이어지는 몇십 년 간의 반혁명은 탈취의 과정을 심화시켰다. 1930년대에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위기, 쇠퇴의 첫 번째 진정한 경제적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1914년 배신에 대한 반격을 위해 창설된 공산당은 어떤 나라에서는 그 악명높은 사회주의 이론을 지지하며 국제주의를 포기해버렸고, 인민전선을 통해 노동계급을 국가별로 해체시키고 전쟁을 준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심지어 스페인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삶을 간직하고 있던 아나키스트 조합조차도 이러한 새로운 배신에 굴복했다. 1939년 전쟁의 발발은 베르세시(Vercesi)가 주장하듯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적 실종”, 따라서 혁명을 위한 조직된 정치적 활동의 쓸모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본이 생존하는 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적 실종은 불가능하다. 또한 혁명적 소수는 계급 내의 영원한 필요에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의 공포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보다 교묘하게도 민주주의의 방어라는 기획에 통합시킴으로써 확실히 그 정치적 혼란에 새로운 단계를 의미했다. 그 과정은 트로츠키주의 반대파를 전쟁 준비로 빠르게 통합시키고, 그 좌익 분파를 해체시키는 것을 포함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특정 국가들 - 무엇보다도 1943년 이탈리아 - 에서 전쟁 말기 자신을 드러내긴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좌파(베르세시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기대와는 반대로, 이것은 반혁명 과정을 되돌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더욱 더한 전체주의적 형식을 띤 반혁명은 전후 번영 시기를 지배했고, 그동안 자본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했다. 이 시기는 사회학자들이 소비자주의의 확산과 복지 국가의 발달의 결과로 노동 계급의 부르주아화이론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실제로 1945년 이후 자본주의의 이러한 두 측면이 중요하게 남아있었기에 노동계급이 자신을 혁명적 세력으로 재건설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중요성을 더해 주었다. 소비자주의는 노동계급을 원자화시키고 모든 사람이 개별 사유권의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했다. 복지국가주의는 종종 좌파 정당에 의해 소개되고 노동계급의 성취로 표현되었으나 자본주의 통제의 더욱 중요한 도구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침식하고, 국가의 선의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대이주(大移住)의 단계에서도 국가에 의한 노동자 조직은 건강, 주택과 다른 혜택들의 문제가 노동계급 내부의 이민자들과 분리를 희생양으로 삼는 잠재적인 요인이 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9)

     

    1968년 이후 계급투쟁의 부활은 1980년 폴란드에서의 대중파업에서 절정에 이르렀는데,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에 통합되어 있다는 사상을 논박했고, 자신의 제도적 사슬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세력이라는 노동계급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일별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노동조합 바깥에서의 와일드캣 파업(비공인 파업), 대중 집회와 소환 가능한 파업 위원회, 투쟁의 확장을 향한 강력한 경향 - 대중파업의 태아이거나 실제 표현 -들은 노동자평의회의 전망을 새롭게 했다. 동시에 1950년 거의 멸종할 뻔했던 국제 코뮤니스트 운동 - 새로운 세계 당을 미래에 건설하기 위한 근본적인 전제조건 - 의 작지만 중요한 부활을 위한 토대를 제공했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신뢰와 연대에 대한 문서가 주장하듯이, 685월과 뒤이은 운동은 이론적 수준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문제는 제기하였으나, 전반적인 계급투쟁은 경제적 영역에 머물러 있었고, 자본주의와 정치적으로 대결하는 수준까지 성장할 수 없었다. 프롤레타리아트 부활의 한계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계급 정체성마저 다 같이 잃어버릴 수도 있는 해체의 새로운 단계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체의 시기에서의 계급 정체성

     

      1980년대 말 이후,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인식이 후퇴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서로 다른 차원들이 함께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각각의 차원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선, 자본주의 사회는 그 기반이 해체되기 시작했고, 노골적인 해체의 단계에 있으며, 몇십 년의 쇠퇴를 겪으며 더 이상의 진화가 가로막혀 있었는데, 이 자본주의 사회의 처음부터 주요한 특징이었던 사회적인 원자화가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 엥겔스가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서 지적하였듯,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든, 이 개인의 고립이라는 것, 이 좁은 자기 탐색이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원리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이것이 너무 부끄러움 없이 맨얼굴로 드러나 있어, 바로 여기 이 위대한 도시의 군중들처럼 그것을 자기-의식하고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인류가 각각 분리된 원칙과 분리된 목적을 갖고 있는 모나드로 산산이 해체되어 원자의 세계가 되는 과정이 바로 여기서 가장 극단적으로 수행되고 있다(10)

     

    이 사회의 마지막 단계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은 모든 수준에서 강화된다: 개인 간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에서부터 이런저런 주택 단지나 이웃 수준에서 활동하는 길거리 깡패들 간의 폭력적인 경쟁, 그리고 한정된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기업들 간의 광기어린 투쟁, 국제적 수준에서 국가와 준국가들 사이의 군비 경쟁 혼돈의 확장까지. 이러한 경향은 우리가 이전에 언급했던 제한된 정체성에 기반을 둔 공동체 탐색 - 원자화에 반대하는 반응이지만 또 다른 수준에서 원자화를 강화할 뿐이다 - 의 기반도 형성한다. 이 사회적 연대의 해체는 지속해서, 그리고 은밀하게 노동계급이 자신의 공통 이해로 단결할 가능성, 다른 말로,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체성의 재형성 가능성에 대해 반대되는 극단으로 작동한다.

     

    부르주아지 또한 당연하게도 똑같은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부르주아지가 가진 정치적 기구들에 대한 통제역량에 대해, 국가 간 관계 수준에서 안정적인 동맹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이미 언급했다. 그러나 노동계급과는 달리 부르주아지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해체의 영향을 유리하게, 심지어 스스로를 강화하도록 뒤집을 수 있다. 보기를 들어 동유럽 블록의 몰락은 해체 - 심화되고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위기로 박차가 가해진 - 객관적인과정의 중요한 예시였다. 그러나 이 블록이 형성된 것과 관련된 특수한 역사적 조건 -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패배로 서유럽의 자본주의와는 명백하게 다른 체제가 등장하게 된 것 - 으로 인해,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적 모든 공격 - 1990년대 이후 계속 투쟁의 부침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한 계급의식에 대한 공격 - 을 할 수 있었다. 이미 68 투쟁의 물결 이후 저항의 관점을 개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노동계급에 대해 공산주의의 죽음선전은 계급의식의 본질적인 차원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고 그러한 미래를 지향할 수 있도록 하는 역량. 그러나 이러한 선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대안의 어떤 가능성도 끝났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계급투쟁과 노동계급 자체의 종말까지도 주장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위협에 대한 전투의 수단으로서 계급 정체성을 약화시킬 필요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해체의 시기에서의 계급 정체성 약화의 세 번째 차원은 이것이다: 이른바 노동계급이 위험에 처해 있고, 멸종위기종이라는 주장은, 지배계급이 체계의 경제적 위기에 대한 반응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변화 -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무엇보다도 낡아빠진 자본주의 중심지의 탈산업화의 과정의 잘못된 주장 아래 진행된 모든 것들 - 에 의해 강하게 지지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란 당연히 이윤이 나지 않는 산업을 포기할 필요, 그리고 같은 상품을 보다 싼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 지구의 다른 지역으로 자본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언제나 직접적으로 노동 계급에 반대하는 요인들이 있었다 - 보기를 들어, 영국의 노동자들을 고용했다가, 광산을 닫으면, 그것은 주요한 경제적 알바트로스를 없애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적 계급의 매우 전투적인 부분에 심각한 한 방을 날리는 것이 된다는 것을 부르주아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모든 산업을 극동 및 다른 지역으로 옮김으로써 부르주아지는 계급 전쟁에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부대를 만들게 되겠지만, 주요 자본주의의 중심에서의 산업 노동 계급은 거기에서 특별한 위험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동계급은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에 한정되지 않지만, 언제나 노동자 운동, 특히 과거의 대규모 혁명 투쟁의 바로 심장에 있었다 - 러시아 혁명에서의 푸틸로프 공장 노동자들, 독일 혁명에서 루르의 노동자들, 프랑스 68 대중파업에서 르노의 노동자들, 1980년 폴란드 조선노동자들이 이를 보여준다.

     

    수많은 오랜 산업들의 문을 닫는 것과 더불어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려 했다. 특히 영국과 같은 오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서비스 산업은 경제적 삶의 보다 중심 무대로 더더욱 나아갔다. 이 모델은 이른바 비정규직 경제(gig economy)’인데, 종업원들은 자신을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가 - 그들이 충분히 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자신의 연봉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과 개별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 로 여기도록 촉구한다. 또다시,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이윤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자신을 노동자, 착취 받는 계급의 일부로 볼 수 없도록 하는데 묶여있다.

     

    포퓰리즘과 반포퓰리즘

     

      우리의 지난 20174월 대회 이후 포퓰리스트의 급증은 계속되었다. 부르주아지의 가장 중심에 있는 분파들이 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마크롱을 당선시킨다든지, 미국의 민주당과 국가안보 서비스의 일부가 협력하여 트럼프에 반대하는 저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포퓰리즘의 확산을 막는 방어막으로서의 독일의 안정성은 AfD가 선거에서 득세함으로써, 그리고 켐니츠(Chemnitz)와 같은 장소에서의 집단학살주의자들의 거리 시위의 발전으로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 부르주아지의 분열과 거의 마비된 상태는 심해졌다. 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서고, 동유럽에서 포퓰리스트 정부가 반대를 주장하면서 EU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카탈루냐 세력과 다른 민족주의에 의해 위협이 된 스페인의 통일은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 브라질에서는 볼사나로(Bolsanaro)의 승리는 강한 지도자” - 자신의 지배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국가의 테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 가 득세하는 새로운 걸음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및 다른 지역에서의 노란 조끼현상은 포퓰리스트들이 선거 영역뿐만 아니라 거리 - 심지어 노동계급의 방법까지도 취하면서 몇몇 우려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규모 시위에 - 발을 들이미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이는 동시에 계급 정체성의 의미에 더한 혼란을 주는 효과가 있다.

     

    민족주의적이고 외국인 혐오 가득한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증거와 과학적 연구에 대해 경멸하며, 음모 이론을 조작하고, 그리고 파시스트 깡패들의 노골적인 폭력과의 거의 가려지지 않은 연관성을 보이는 포퓰리즘은 의심할 바 없이 쇠퇴의 순수한 결과물이며, 자본주의 계급이, 심지어 그들 자신의 언어로도, 계급 간의 역사적 교착상태에 직면하여 후퇴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이 사회적 쇠퇴의 산물로서 등장하고, 부르주아지 자신의 전체 정치적 경제적 기관에 대한 통제를 침식시키는 경향이 있다 할지라도, 여기서 다시 지배계급은 계급의식에 반대하는 영원한 전쟁에서 포퓰리즘이 창조해 낸 문제를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그 위기의 효과에 반대하는 계급의 저항에 대한 관점이 없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부 분파의 경우, 포률리스트 정치에 바로 휩쓸려 가서, “바보들의 사회주의의 새로운 형태에 빠져버려 왔음은 명백하다. 여기서 바보들의 사회주의란, 그들의 비참한 상황이 기독교인, 백인, 또는 민족주의 문화를 공격할 목적을 가진 사악한 엘리트들의 특공대인 이민자들과 난민들의 높아지는 물결 때문이라는 사상이다. 이러한 망상은 포퓰리즘 정당들과 자신을 마치 진정한 민중의호민관인 것처럼, “()엘리트주의세력이라고 표방하는 선동가들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결합한다. 이러한 사상은 영향력 있는 소수가 대학살이나 테러를 저지르도록 할 수 있고, 그 영향력은 착취 받는 계급, 반민족적 음모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지구적 자본주의 위기의 무자비한 충격에 의해 버려진계급의 일부라는 이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을 명백하게 방해한다.

     

    그러나, 보르디가의 유명한 격언 파시즘의 최악의 결과물은 반파시즘이다를 상기해보면, 우리는 포퓰리즘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반대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독립적인, 그리고 좌우익을 포함한 모든 지배계급의 이해에 적대적인 자신의 계급 이해관계를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데올로기적 속임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한다.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독일을 침범했던 대학살의 분위기에 대한 유니우스 팸플릿의 시작 부분에서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키시네프의 공기는 ... 유일하게 남아있는 인간 존엄을 반영하듯, 경찰관을 궁지로 몰아넣고 떠났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말도 안 되는 발표와 관행들이 똑같은 상황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민주당, 자유주의 공화당, 대법원 판사들, 그리고 심지어 FBICIA가 선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영국에서는, 정치적 삶을 노골적으로 지배하는 소수의 브렉시트 극단주의자들(Brextremists)" 깡패들이 비자금과 심지어 러시아 제국주의의 음모와의 연결되자, 그것은 미디어 일부의 공개적인 격려와 함께 대규모 브렉시트 반대의 발전을 촉진시켰고 75만 명까지 런던 거리에 나와 두 번째 국민투표를 요구하도록 했다. 비록 종종 공손한 중간계급의 운동이라며 비웃음당하긴 하지만, 그러한 동원이 포퓰리스트들의 거짓말로 분노하지만 스스로 자유주의와 부르주아지의 좌익 분파로부터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교육받은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의 다수를 이끌어냈음은 의심할 바 없다.

     

    요약하자면, 정치적인 논쟁 전체는 친- 또는 반-트럼프, - 또는 반-브렉시트 등등으로 독점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논쟁은 애국적이고 민주적인 이데올로기의 경계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트럼프의 부르주아적 반대는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과 별다를 바 없는 진정한 미국임을 자처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적 규범들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현 행정부를 비판한다. 이와 비슷하게 영국에서는, 논쟁은 언제나 우리나라의 진정한 이해관계에 대한 것이며, 논쟁의 양측 모두 자신을 민주주의와 민중의 의지 편에 서 있다고 내세운다. 이 똑같은 양극화는 포퓰리즘의 등장으로 불타오른 문화 전쟁들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우리가 이전에 언급했듯이, 포퓰리즘은 그 자체로 정체성 정치의 형태인데, 이런저런 국가나 민족 그룹의 배타적인 이해관계의 방어자를 자처하며, 그것은 모든 다른 형태의 정체성 정치와 상호 강화하는 전투에 돌입한다 - 도시 게토에 갇힌 불만에 가득 찬 젊은 프롤레타리아트 특정 계층들의 분노를 잘못된 방향으로 돌리는데 기여한 이슬람 깡패들이 되었든 또는 급진적이고 젠더 이슈를 둘러싼 보다 왼쪽으로 기운 운동이든.... 이 양극화는 사회의 분해와 증대되는 분열의 진정한 표현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와 마주쳐서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자신의 전체주의적 특성을 보여주는데, 바로 이 양극화가 사회적 정치적 영역을 차지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영역에 대한 논쟁이나 행동이 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경향이 있는 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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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국제평론, 111, 2001.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신뢰와 연대에 대한 교육용 문서


    9. 계급투쟁에 대한 결의안, ICC 22차 대회


    10. ‘위대한 도시들이 제목인 장에서

     


    <출처>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23차 대회 보고서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707/report-class-struggle-formation-loss-and-re-conquest-proletarian-class-identity

     

    번역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이전 글>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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