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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10호] 파시즘과 반파시즘(자유민주주의)
  • 조회 수: 5283, 2020-05-21 12:44:52(2020-05-21)
  • 파시즘과 반파시즘(자유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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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시즘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나타난 부르주아의 대응책 중 하나다. 반대로 계급 투쟁이 체제의 안전성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파시즘은 발생하지도 않고 발생하더라도 거의 성장하지 못했다. 파시즘은 급진화된 쁘띠부르주아의 전투적인 행동과 공격적인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의 혼합물인 기이한 선전으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얻었다. 대중의 모순은 세계가 변혁되기를 바라지만, 그 변혁이 착취와 억압처럼 갑자기 위에서 부여되기를 원했다는 데 있다. 파시즘은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분명치 않은 자유를 분명히 나타내는 민족적 자유의 환상으로 대체시키고 대중에게 책임을 강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중의 비합리성은 자유를 열망하면서도 자유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치즘은 모든 것이 위로부터 나오고 자신들이 체제를 변혁시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파시즘의 목적 중 하나는 프롤레타리아를 분쇄하고 전쟁에 동원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을 미리 방지함으로써, 반대하려는 모든 시도를 분쇄함으로써 그리고 사회의 모든 부분을 국가 지배하에 종속시킴으로써, 파시즘은 자본 독재의 권위주의적인 형태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리고 파시스트는 인종주의를 최극단으로 악화시켰다. 하지만 인종주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탄생과 더불어 노동계급의 연대를 분쇄시키는 역할을 해온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이다. 파시스트는 자본주의 관계의 바깥에 있지도 않고, 그것에 반대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본의 질서를 강화한다. 이러한 이유로, 코뮤니스트는 부르주아 지배의 다른 모든 형태와 같이 파시즘과 싸워야 한다.

     

      역사적으로 노동계급에게 자유민주주의의 방어를 위한 다양한 반()파시스트 동맹 및 캠페인은 대재앙이었다. 반파시즘의 핵심은 부르주아의 독재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자유민주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개의 정치이념이 자본주의 사회의 특정 발전단계에서 결합함으로써 성립되었다. 자유주의는 반봉건 부르주아 해방이데올로기로서 부르주아들이 쟁취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천부의 인권으로 선포하고, 국가권력 질서를 부르주아 권리 보장에 적합하도록 개편한 것이다. 이때 부르주아 권리의 핵심은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 질서 속에서 부르주아적 개인의 영리 추구 자유다. 그리고 법치국가란 부르주아적 권리를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호하는 국가체제로서, 오직 이러한 부르주아적 개인의 대표기구가 합법적으로 위임하는 바에 따라 국가 행위가 이루어지는 국가이다. 반봉건투쟁 속에서 부르주아가 수립하려한 정치질서란 모든 인간들의 자유와 평등, 사회 전체의 해방이 아니라 유산자들의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다.

     

      결국 반파시즘은 민주주의적 환상을 통해 노동계급을 부르주아적인 국가로 데려가기 위한 반동적인 선전일 뿐이다. 반파시즘의 논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포장된 자본주의 국가를 방어함으로써 파시즘에 저항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방어라는 개념은 계급 중립적 기구로서 국가라는 신화의 승인, 옹호, 그리고 결국 굴복에 이른다. 그것은 국가의 강화, 국가 권력에 대한 종속과 자발적 활동에 대한 모든 가능성의 박탈을 의미한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를 사슬로 국가에 붙들어 매고 부르주아 억압에 백기 투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반()파시즘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 계급투쟁은 실패를 거듭했다.

     

      반파시즘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의 완벽한 착취제도로써 노동계급의 귀와 눈을 멀게 하고 환청과 환상만 가져다 준다. 노동자에게 반파시즘 캠페인에서 말하는 민주주의가 대단히 위험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 노동자들이 공산주의, 독재, 야만, 혼란, 폭력, 무질서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주장하는 캠페인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괴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주의는 노동자에게 대안이 될 수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권력,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만약 반()파시스트의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혁명이 단념된다면, 국가를 혁명적 목적으로 변혁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재앙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국가를 미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그리고 혁명 포기의 실질적인 길로서, 반파시즘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는 만큼 파시즘일 수밖에 없다. 파시즘의 청산을 바라는 사람들은 반파시즘과 싸워야 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노동계급에게 파시스트의 출현과 그것의 공격에 대한 저항은 전적으로 불가피하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그러한 투쟁이 분명한 계급기반에 기초한다면 그 투쟁은 성공에 대한 전망이 될 수 있다. 파시즘에 대한 저항은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 지배를 격파하기 위한 포괄적인 자본주의 모순 투쟁의 일부이어야 한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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