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10호] 백만 촛불 마이너
  • 조회 수: 6591, 2020-05-24 18:36:46(2020-05-24)
  • 백만 촛불 마이너 

    - 2017, 노동악법 철폐, 노동3 쟁취, 광화문 고공삭발단식농성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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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만이 결정적인 봄이다, 라고 안간힘으로 외쳐보지만 사람 추린다는 소리에 휴무도 없이 출근한 공장 담벼락 안엔 어떤 꽃소식도 없었다 툭하면 영구퇴출입에 달고 사는 하청업체 안전팀장 새끼 아가리를 박살내지도 못했다

     

    하청업체 안전팀장 새끼도 촛불을 들었고 박근혜 탄핵을 고대했지만 그는 여전히 내게 명령을 하고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어떤 것도 결정할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내게 촛불은 봉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떤 것도 계획할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내게 촛불은 혁명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청의 재하청인 내 삶은 하루하루가 폭력적이었다 자본주의가 요약되어 있었다

    ; 나는 외친다

    차별은 폭력이다 

    위계는 폭력이다 

    억압은 폭력이다 

    명령은 폭력이다 

    조합주의는 폭력이다 

    가부장제는 폭력이다 

    민족주의는 폭력이다 

    개량주의는 폭력이다 

    관료주의는 폭력이다 

    군대는 폭력이다 

    의회제는 폭력이다 

     

    촛불은 흐르고 흘러서 흐름 자체가 되는 것, 머물러 무대만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난 촛불의 흐름이 느려지기 시작하는 것이 위험해 보였다 촛불이 멈춘 곳, 화려한 조명의 대형스크린과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대형스피커로 꾸며진 무대가  눈엔 마치 명박산성 같았다 무대 앞에서 내 관심사였던 그대 표정을 결정적으로 잃어 버렸고 유독 주목하고 싶었던 그대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를 잃고 그대를 데울 국도 밥도 나오지 않는 무대를 오래도록 바라봐야 했다 고착 당했다

     

    물론 촛불은 하나의 구호가 아니고 여럿의 삶이었다 노빠도, 문빠도, 어용도, 노사협조주의자도, 조합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김일성주의자도, 가부장주의자도, 개량주의자도, 관료주의자도, 중도주의자도, 여성주의자도, 생태주의자도, 자율주의자도, 코뮤니스트도 함께 참여하고 함께 행진했다 촛불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 계급투쟁의 소용돌이었다  이질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정치적 경향들이 함께 지배질서를 잠시 정지시키는 압도적인 다수의 힘을 이뤄냈지만 국가 앞에서 갑자기 온순해졌다 국가에 대한 분노가 이토록 순종적 일 수도 있다니, 내겐 참 기형적으로 보였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나는 어떤 계획도,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사내로 죽도록 일만 하다 죽어갈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노사협조주의자는 죽어라고 자본가계급에게 협력만을 할 것이고 조합주의자는 지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계급을 배반할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성폭력 가해자들은 반성하지 않을 것이고 개량주의자들은 오늘도 투쟁 현장에 나타나서 선거가 다가오니 투쟁을 접자고 압력을 넣고 민주노총 깰 거냐고 협박하면서 계급화해의 정책들을 생산해낼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민족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을 파괴하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냥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관료주의자들은 모든 비판을 진압하며 자신의 명령을 완성할 것이다 또한 촛불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나와 그대는 표정을 잃고 목소리도 잃게  것이며 나를 대신   운명을 결정하는 자들의 목소리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것이다 


    거리로 내쫒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촛불이 됐고 가장 먼저 박근혜 퇴진투쟁을 외쳤지만 백만 촛불 내내 발언권조차 얻지 못했다 촛불, 그 한 뼘의 빛조차 서러웠지만 죽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조직했던 투명한 맨몸들은 자립적이었다 촛불은 민주주의를 위해 한사코 계급투쟁을 배제하려 했지만 자립적인 몸짓들은 선거를 넘어 (계급) 투쟁으로나아갔다 투명한 맨몸의 사람들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를 우선적으로 폐지했다 밀착되어 서로를 느끼고 그 몸의 언어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비우면서 그 곳에 배제하지 않는 힘, 평평하고 너른 마당을 키워내기 시작했다 스스로 결정하고 직접행동으로 비상했다 의회 없이도 운영되는 노동자민주주의였다 부재함으로 증명되는 삶은 끝났다 나와 그대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지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방법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였다 모든 폭력에 맞선 가장 뛰어난 무장이었다  


     

    詩 ㅣ 조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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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조성웅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시집 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 물으면서 전진한다, 식물성 투쟁의지 있다.

    박영근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국현장노동자글쓰기 모임, ‘해방글터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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