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10호]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1
  •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 기억과 망각의 도시를 찾아 -


     

    지난 가을 우리는 아주 특별한 여행을 했다. 오랜 시간 함께 투쟁하고 연대했던 동지들과 코뮤니스트 활동가들이 처음으로 공동의 목적과 각자의 의미를 찾아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그중 하나는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유럽의 몇 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혁명가들의 삶과 시대를 느껴보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모두의 안전과 함께 계획한 일정(1~2주)을 무사히 마치는 것에 우선을 두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방문하는 도시의 일부분이 되어보고 싶었고, 찾고자 하는 시대의 어느 순간과 마주치고도 싶었다. 내가 도시와 역사의 일부분이 되었는지, 흔한 관광객이 되었는지는, 다음 여행을 기약했으니 그때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9월의 어느 날

     

    우리는 1차 일정으로 파리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를 돌며 코뮤니스트(맑스와 레닌 그리고...)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기로 했다. 방문할 도시의 이동 거리가 멀어 차량을 빌려서 움직였고, 중간에 파리 코뮨 등의 역사적 장소도 방문했다.

     

    첫째 날, 파리에 가장 먼저 도착한 나는, 우리를 초대하고 안내해주신 정선생님과 함께 렌터카를 인수했다.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인원이 늘어 14명이 7인승 두 대로 움직이기에는 자리가 좁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내가 인수한 차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고급사양의 9인승이었다.

     

    다음 일행을 기다리는 시간에, 마침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우리가 방문할 박물관이 있다고 하여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렌터카 회사의 차량 관리 소홀로 사소한 문제가 생겨 박물관 방문을 취소하고 근처의 대형쇼핑몰로 향했다. 쇼핑몰에서 차량 문제를 해결하고 공항으로 돌아가 일행을 픽업해 초대해주신 정선생님 댁에 도착했더니 늦은 저녁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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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겉과 속이 달랐던 차량


    9월의 어느 날 파리에서의 첫 운행은, 복잡한 공항 주변을 두 시간 넘게 돌며 낯선 차량 운전에 익숙해지고, 파리의 신호체계를 익히기도 전에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야간운전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파리에서 (대중교통 여행을 하기 전) 렌터카로 장거리를 이동한 첫 일주일간의 여행기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운행 일기와 여행 일기가 섞여 있기에 미리 알려둔다.

     

    파리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운전에만 집중했기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렌터카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손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편하게 앉아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일하는 모습, 기다리는 데 익숙해져서인지 급한 일에도 재촉하지 않고 그냥 기다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 느낌은 이번 여행에서 낯선 풍경에 적응하거나 착각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물론 파리에 50여 년 거주하신 정선생님은 내게 파리에서는 서두른다고 되는 일도 없고, 설득해서 안 되는 일도 없으니 느긋하게 대처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기억과 망각의 도시, 하나 : 롱쥬모(Longjumeau)에서 마리로즈(Marie-Rose)까지

     

    둘째 날, 가장 많은 일행이 도착하는 날이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해 동지들을 픽업했고, 엄청나게? 많은 짐을 풀기 위해 숙소로 먼저 향했다. 예상대로 공항 가는 길은 많이 막혔고, 다른 공항 터미널에서 찾아오는 일행도 길을 헤맸다. 하지만, 넓고 안락한 숙소에 도착하자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편한 느낌이었고, 매우 여유로운 여정이 되겠다는 착각에도 잠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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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 각자 가져온 식량,  가방의 절반을 풀기도 전에 식탁이 가득 찼다.


    숙소에서 짐 정리와 잠시 쉬고 나서 우리는 첫 방문지로 망명 시절 레닌과 볼셰비키 동지들이 머물렀던 파리 남부의 롱쥬모(Longjumeau)라는 작은 도시를 찾아갔다.


    1911년 롱쥬모에서는 망명 중인 볼셰비키들이 노동자들을 교육하는 당의 비합법 학습조직을 운영했고, 지노비에프 등이 가르쳤다고 한다. 이에 앞서 레닌은 파리에서 이네사를 만나고, 19107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 회의에 로자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등과 함께 이네사를 초대한다. 그 후 이네사는 롱쥬모에 학교를 만들어 볼셰비키와 함께하며 레닌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롱쥬모에 있는 볼셰비키의 활동(학습) 장소를 찾아갔다. 현지 주민들도 모를 정도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창고 같은 건물을 다행히도 찾아냈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학습하고 훈련하기에 적당한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침탈에 대비해 도피하기 좋은 구조였다. 이곳에서 학습하고 토론하고 혁명을 꿈꾸던 볼셰비키의 모습을 그려보니 기본적인 학습조차 게을리 하는 지금의 활동가들과 많이 비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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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3롱쥬모 볼셰비키 비밀 학교

     

    다음은 레닌의 흔적이 예상치 못한 형태로 남아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은 예정에 없던 곳이었으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파리의 정선생님이 사전답사하면서 알게 된 곳이었다.) 이곳도 롱쥬모에서 레닌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이네사도, 지노비에프도, 다른 동지들도 자주 들렀을 곳이다. 지금은 케밥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반전은 레스토랑 주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레닌을 기억하고 가게 상호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레닌 간판이 사라지고, 메뉴판에 작게 적혀 있을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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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4> 롱쥬모 레닌의 숙소, 현재는 케밥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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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5레닌 케밥 레스토랑 메뉴판

     

    건물 내부를 보려고 들어가 보니, 볼셰비키의 비밀 학교와 같이 이 동네의 오래된 건물은 구조가 거의 같았다. 최근엔 이 작고 오래된 도시에도 우파의 집권으로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한가로운 골목길 담벼락에 신축주택 광고가 줄지어 붙어 있었다.

     

    이렇게 프랑스의 작은 도시를 한가롭게 거닐며 109년 전을 떠올릴 무렵 다음 여정이 우리를 파리로 이끌었다. 물론 우리는 그곳에서 레닌 이야기가 아닌 저녁에 먹을 음식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레닌과 그의 동지이자 아내였던 나데주다 크룹스카야, 이네사는 1911년 여름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 이들은 삼총사라 불릴 만큼 가까웠는데, 레닌 부부와 이네사는 파리, 폴란드, 스위스 등 망명지에서 가족처럼 지냈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파리로 향했다. 레닌은 19097월부터 19126월까지 파리 14구 마리로즈(Marie-Rose)가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처음 들렀던 롱쥬모는 파리 망명 생활의 일부분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레닌이 살던 마리로즈(Marie-Rose)4번지 아파트도 간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일부 매체와 특별한 방문객들의 여행 후기에서 이곳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지만, 롱쥬모와는 정반대의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프랑스 공산당에서 이 집을 레닌의 소형 박물관처럼 활용하다가 방문객이 줄어들고 재정난에 허덕이자 결국 처분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19097월부터 19126월까지 레닌 이곳에 살다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명패가 떨어져 나간 곳에 흔적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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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6레닌이 살던 마리로즈가 4번지 아파트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마지막 흔적마저 지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레닌은 이곳에서 밀려드는 망명자들을 만나고, 러시아의 상황을 전해 들으며, 미래의 혁명을 도모했다. 레닌은 자주 자전거를 타고 몽수리 공원(Parc Montsouris) 근처 도서관에서 공부했고, 몽파르나스(Montparnasse) 지역의 카페에서 동지들을 만나 술도 마셨다고 한다. 한번은 동지들이 망명 자금으로 어렵게 마련해준 자전거를 잃어버려 매우 상심했는데, 다시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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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7레닌이 자주 찾았다는 카페

     

    이외에도 레닌의 파리 망명 생활에 대한 다양한 일화와 장소에 대해 들었지만, 무겁게만 들려왔다. 기억하려는 사람과 망각하려는 도시 사이에서 나는 도시의 일부가 되려던 생각을 잠시 보류했다.

     

    숙소로 돌아오기 전, 우리는 장기간 먹고 사용해야 할 물품을 사기 위해 근처 대형마트를 찾았다. 한 시간 넘게 여러 명이 꼼꼼하게 장을 보고 계산을 하려는데, 계산대 앞의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잠시 후 알아보니 전산이 마비되어 계산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난리가 날 일이었지만, 누구도 항의하지 않고 더 기다리거나, 다른 방법으로 계산하거나, 그냥 돌아가는 것이었다. 우리도 허탈하지만, 그냥 빈손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파리에서는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으므로...”

     


    기억과 망각의 도시, : 바노(Vaneau)에서 아르장퇴이(Argenteuil)까지

     

    셋째 날, 어제의 레닌에 이어 오늘은 맑스의 발자취를 따라 파리 7구의 바노(Vaneau)가로 향했다. 1843년 초 예니와 결혼한 맑스는 184310월 말 신혼여행지로 파리를 택한다. 맑스와 예니는 파리 7구 바노(Vaneau)38번지 아파트에서 17개월간 머물렀고, 1844년에는 큰딸 예니 롱게가 태어난다. 맑스는 파리에서 시인 하이네와 알게 되고, 1789년의 프랑스혁명 연구에 몰두했으며, 영국 고전 경제학 저술도 읽었다. 물론 평생 동지 엥겔스와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맑스와 예니의 신혼집은 영화에도 나올 만큼 유명하지만, 레닌의 집과 마찬가지로 파리에서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우리는 첫 번째 신혼집(38번지)과 근처에 있는 두 번째 집(23번지)까지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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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8맑스와 예니의 신혼집바노가 38번지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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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9맑스와 예니의 두 번째 신혼집바노가 23번지 아파트

     

    이 집들은 젊은 맑스가 신혼 생활을 시작하고, 당대의 혁명가들을 만나고, 이론을 공부했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신혼 생활 이후 가난한 생활고로 세 아들을 모두 잃은 맑스·예니 부부의 비극적인 미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몇 년 전 프랑스 TV ‘문화프로그램에서 아르테(Arte)가 맑스의 가난에 대한 원인을 맑스나 그의 부인이 유복한 집안 출신이기 때문에 가정경제를 잘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암시한 것은 큰 왜곡이다. 실제로 맑스는 전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연대에 철저했으며, 정기적으로 그의 적은 수입을 혁명운동에 사용했다.)

     

    나는 맑스 가정사의 비극 대신, 18448 파리의 프랑스 극장 앞 광장 카페에서 엥겔스와의 역사적 만남을 가졌던 일을 떠올리며, “나의 역사적 만남은 언제쯤일까? 이미 평생의 혁명 동무를 만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며 다음 장소로 향했다.

     

    파리 북서부 아르장퇴이(Argenteuil)로 가는 길, 서울 주변의 도시와 다르게 한가로워서 길을 잘못 들어도 다시 돌아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맑스의 큰딸 예니 롱게의 집이 있고, 이곳에서 병든 맑스가 자신의 말년 일부를 딸의 가족과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파리와 다르게 맑스의 딸이 살았던 곳에는 칼 맑스 길()도 있고, 예니 롱게의 집에는 “1882년 맑스가 머물렀다는 명판도 붙어있다. 현재의 주소는 27 Boulevard Karl Marx, 95100 Argenteuil이다. 맑스와 레닌이 살았던 곳 주변에는 늘 혁명가뿐 아니라 예술가들이 머물렀는데, 예니 롱게의 옆집도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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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0예니 롱게의 집아르장퇴이 맑스가 27번지

     

    이곳에는 아직도 동유럽이나 아시아(중국, 베트남)의 관광객들이 종종 찾는다고 한다. 여기서 사진을 찍고 있던 우리와 마주친 이탈리아 방문객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코뮤니스트들이 이렇게 많이 방문한 것에 놀라면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 차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동네 주민들이 코뮤니스트’ ‘코뮤니스트하면서 엄지를 세워 보였다.

     

    이 도시는 어제 방문한 망각의 도시와 다르게 특별한 것까지 기억하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맑스와 그의 아픈 가족사를 제대로 기억하는지는 의문이었다. 예니 롱게의 집과 맑스 가족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우리를 안내해주신 분의 설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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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1아르장퇴이칼 맑스 거리


    아르장퇴이에서의 맑스는 파리 신혼집에서의 청년 맑스가 아니었고, 수많은 망명지와 영국에 정착한 혁명가 맑스도 아니었다. 늙고 병든 인간 맑스였을 뿐이다. 앞서 말한 생활고로 인한 비극적인 가족사를 간직한 채, 말년을 맞이한 맑스는 요양하면서 딸들에게 쓴 편지에서 애정 넘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여행12IP4A0218.jpg  <사진12> 클로드 모네가 살았던 집, 아르장퇴이 맑스가 25번지

     

     

    예니 롱게에게 보낸 우편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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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귀여운 아가,

    너로부터 편지를 받을 때는 언제나 행복하단다. 너의 올드 닉이 너에게서 몇 시간씩 잠을 훔쳐 가서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쾌청한 날씨 때문에 내 건강도 많이 회복되고 있다. 6월 초 칸느에 가서 한 일주일 머물다 올까 한다. 이 모든 계획은 의사의 소견과 초여름 날씨에 달려있다. (...)

    내 마음은 너와 네 아이들 곁에 있단다. 보고 싶구나. 아주 싫었던 일련의 의학적 경험을 치른 후 전혀 서두를 것이 없어졌다. 어쨌거나 곧 너희들 곁으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너의 올드 닉 (알제리에서의 편지, 칼 맑스 지음 / 정준성 옮김)

     

    *올드 닉(Old Nick)은 맑스가 딸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애칭으로 사용한 이름이다.


    맑스는 이 편지에서 한 약속처럼 예니 롱게의 집으로 갔다.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혁명가들이 잠시라도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현장인가? 가족인가? 동지의 곁인가?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장소인가? 돌아갈 곳이 있기는 한 것인가?

     

    나는 아직 답을 알지 못하기에,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 파리와 대서양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방어운전을 하다 차선을 잘 못 들어 한참을 서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혼자만의 여행이었으면, 어차피 잘못 들어선 김에 대서양까지 달렸을 것이다. 다행히 지름길로 가서 늦지 않았다. 그리고 시라크 장례식 전날이라 통제하는 구간이 많아 골목길로 돌다 보니, 어느새 세느강 가장 가까운 강변길을 천천히 구경하며 드라이브하는 호사를 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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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3> 강폭이 좁은 세느강


    20191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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