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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11호]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2) : 3
  • 조회 수: 10901, 2020-12-15 12:39:17(2020-09-10)
  •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2)

    역사의 경로를 중심으로와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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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국주의 전쟁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적 계급투쟁

     

    3-1. 제국주의 전쟁의 본질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ICT는 제국주의 시대의 지구적 전쟁을 자본주의의 모순을 잠시 해결하는 자본의 통제방식으로 규정하면서 단순히 약자에 대한 자본주의의 강력한 권력의 정책이 아니라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중심의 금융과 산업이 주변국으로부터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11)

     

    현시기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길고 거대한 구조적 위기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윤율 저하로 자본은 생산적 투자를 희생하면서 투기로 내몰고 주식시장을 거품, 이에 따른 금융위기, 그리고 국가, 기업 및 가계의 부채 증가는 모든 곳에서 직접, 간접 및 유예된 임금에 맞서는 지속적 공격으로 그 효과를 보고 있다. 이러한 경제 위기가 만드는 전쟁은 자본주의의 영원한 국면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전쟁은 자본의 가치 저하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집중으로 새로운 축적 주기를 여는 유일한 방법이다.(12)

     

    ICTICC와 달리 제국주의 전쟁인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인가의 문제는 역사적 의제에 놓여있고, 전쟁으로의 자본주의의 돌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노동조건에 대한 대대적 공격으로 표현된다고 규정한다.(13)

     

    제국주의 전쟁을 제국주의 국가들의 재무장 측면에서 살펴보자. 세계적인 지속적 긴급 상태가 경제와 금융뿐만 아니라 국가 사이의 무역, 외교 및 군사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현재의 힘의 균형과 전통적인 영향력 영역 사이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불편한 제국주의는 미국의 지배적 제국주의다.

     

    사회주의의 이름을 훼손한 소련의 몰락 이후 40년 미국은 더는 세계의 채권자가 아니라 최대의 채무국이며, 세계 생산의 21%인 중국 다음으로 15%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을 주적으로 보고 있다. 2019중거리 핵무력 협정(INF)으로부터 미국이 탈퇴한 이유는 반()중국 수단으로 태평양 영역에 미사일 설치를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며,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One belt, One road)2025년 중국 만들기를 미국 이해관계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보고 있고, 중국의 실크로드는 세계 제1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역사적 필요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14)

     

    20194월 말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자료에 의하면 세계 군사비는 세계 GDP2.1%에 해당하는 18220억 달러인데, 2018년보다 미국은 450억 달러 증가(7%)했고, 중국은 110억 달러 증가(5%)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정치, 경제, 군사 영역의 사건들을 보면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다가오고 있고 다른 주요 강대국은 주인을 믿고 복종하는 길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군사비의 지속적 증가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강대국과 제국주의 중소국 사이의 동맹의 갑작스럽고 잦은 변동은 새로운 군사 충돌의 위기이며, 영구적 위기의 자본주의가 새로운 세계적 프롤레타리아 학살로 새로운 젊은 세대를 몰아넣는 유일한 수단이므로 이러한 전망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국제코뮤니스트 혁명이다.(15)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에 대한 일반적 전망은 공통분모로 하지만, 미국과 이란의 경쟁 관계를 주목하는 견해도 있다. ICT는 최근 글 미국/이란 경쟁 : 전쟁은 아니지만, 계급전쟁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16)에서 미국과 이란이 세계적인가 지역적인가를 떠나 제국주의 국가임을 인식하고 평의회를 요구하는 이란 노동자에 대한 전적인 연대와 지지로 제국주의 쇠퇴기의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전쟁을 호소하고 있다.

     

    이 글은 전쟁이지만, 군대 사이가 아닌 사회경제적 구성체를 포함하는 전쟁, 어떠한 협상도 없이 죽음으로 내모는, 패자의 무조건적 항복만이 있는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보면서 중동에서의 미국과 이란 사이의 경쟁적 관계는 직접적인 공개 전쟁으로 나아가지 않겠지만, 항상 다른 편이 후퇴하게 되는본질을 지닌다고 분석한다.

     

    핵협정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을 이란이 승인했지만, 그들에게는 오바마 시절부터 남아 있던 경제적 제재가 가중되어 왔고, 트럼프가 이를 거부하는 미제국주의의 실질적 힘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여름 아사드가 시리아 대부분을 장악한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란제국주의는 다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소부르주아와 전문직 계층이 주도한 레바논의 민중 시위, 2018년 저임금에 저항하는 해프트타페(Haft Tapeh)에서의 이란 노동자의 파업, 21개 도시와 70개 지역에서의 저항운동의 확산으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란 정권은 파산의 끝에 와있다. 공식 통계로 실업률이 10%이지만, 이란 청년들은 27%에 달하고 대졸자들은 40%를 넘는다. 16백만 명이 빈곤 이하의 수준에 놓여 있다.


    이란을 포함하여 중동(시리아, 이라크, 이란, 쿠르디스탄, 리비아)을 수십 년간 제국주의 강대국의 전쟁터로 만든 자본주의의 전쟁으로의 추동에 대한 경제적 배경을 분석한 글은 에너지 원천일 뿐만 아니라 잉여가치의 기생적 착취의 효과적 도구인 원유와 셰일가스(shale gas)의 보고인 중동의 지정학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17) 미제국주의가 이란제국주의를 공격하는 목적은 이란과 가장 가까운 경제적, 상업적 동반자인 중국을 타격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결국, 이 글은 맑스주의와 국제주의를 거론하면서도 민족해방’, 인종, 종족, 종교 등에 기만당해 국제 부르주아지의 어느 한쪽을 편드는 오류를 지적하면서 혁명인가 야만인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에 초점을 맞춘다.

     

    이란과 미국의 절박한 충돌이 3차 세계대전으로 가는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는 앞의 분석과 비슷한 입장은 레바논, 이라크, 이란 등의 민중 저항운동이 착취와 억압 없는 사회에 대한 전망이 부족하고, 정부 관료, 선거제도 등의 변화에 대한 요구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저항운동이 이라크 민족주의나 이란의 민족주의 같은 잘못된 반()제국주의의 흐름으로 매몰되기 때문에 현실적인 가능성은 미국 블록과 중국-러시아 블록 사이의 3차 세계대전의 위험성에 있다고 분석한다.(18)

     

    따라서 3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과 자본주의의 경제 위기에 맞서 자신의 삶을 방어하려는 전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줄기차게 지속되는 계급전쟁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투쟁은 노동자/실업자, 공장과 산업, 언어, 신념, 젠더, 민족을 넘어 삶의 조건을 방어하는 투쟁의 통일성, 부르주아 당과 노동조합의 계급통일에 대한 방해에 맞서는 투쟁, 노동계급의 무장을 통해 착취와 억압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일을 위한 투쟁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점점 사람들이 이전 세대보다 덜 안전하고 풍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정부의 형식이 아니라 소수의 자본가에 의한 다수의 노동계급 착취에 기반을 둔 생산양식이라는 것이다. 2019년 칠레, 프랑스, 멕시코, 이란에서 우리는 노동계급의 집합적 투쟁을 강화시키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동자들을 보았고,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는 자본에 맞서는 계급전쟁의 산물로 결정되는 역사적 대안 선택임을 알았다.(19)

     

    여기서 우리는 계급전쟁에 대한 기본원칙을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기회주의 경향의 평화주의는 제국주의 전쟁이 계급사회의 소멸 없이 극복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카우츠키의 의회적 유토피아주의에 맞서 강력한 비판을 한 네덜란드 맑스주의자 안톤 판네쿡은 계급의식화된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의 유일한 진보 세력이라고 이해했고, 제국주의에 대한 해답은 의회의 정치가들이 아닌 조직된 노동계급으로부터 나온다고 보았다. 평화주의의 첫 번째 오류는 부르주아 의회의 정치가들이 자본주의의 군사주의와 의미 있게 싸울 능력이 있다는 관점이며, 두 번째 오류는 제국주의 전쟁의 원인보다 전쟁의 잔악성 분석에 초점을 맞추어 제국주의를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전쟁을 요구하고 전쟁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제국주의는 단순히 군사적 관계가 아니라 더 근본적 수준에서의 경제적 관계라는 사실을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과 혁명을 통해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평화공존이 있을 수 없고, 전쟁인가 위기인가의 선택만이 국제 부르주아지에 있으며, 국제 자본의 만족하지 못하는 욕구 때문에 제국주의 반대 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반대 투쟁이라는 점이다. ()제국주의와 민족자결을 기반으로 분파를 방어하는 입장은 또 다른 깃발로 제국주의를 불가피하게 지지하게 된다.(20)

     

    맑스주의자는 인본주의 때문에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이 국제노동계급을 서로에 맞서는 살육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최악의 징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에 맞서야 하며, 혁명적 패배주의를 통해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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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최근 세계의 계급투쟁과 그 의미

     

    제국주의 전쟁인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인가의 근본 문제에 대한 위의 논의를 전제로 하면서 우리는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진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세계 각국의 노동자 투쟁이나 민중 투쟁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른바 사회 반란 투쟁(Social Revolts)이 자본주의와 맞서는 계급투쟁인가 그리고 혁명을 향한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와 그렇지 않고 삶의 조건 개선이나 자본주의 체제 내의 개혁 투쟁에 머무는 소부르주아 운동에 머물 것인가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다.

     

    우선 프랑스에서의 연금개혁에 맞선 파업 투쟁은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의 주요 분석 대상이었다. 퇴직 시 빈곤해지는 젊은 노동자를 위협하는 새로운 연금체계를 내용으로 하는 프랑스의 연금 개혁에 대한 비공인파업에 대해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투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정부의 일시적 양보안에 대해 이른바 개혁주의 노조CFDTUNSA는 찬성한 반면, 좌파노조인 CGT, FO, SUD, FSU는 연합하여 정부안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IGCL은 이 투쟁에서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노조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노동자 스스로를 조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분석한다.(21)

     

    ICC도 프랑스 정부와 노동조합이 손잡고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특히, 철도노동자, 보건노동자 등이 연대하여 노동자의 삶의 조건에 대한 직접적 공격에 맞서고 있으며 우리는 존재한다.”, “우리는 여기 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계급의식 발전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22) ICT 역시 프랑스 파업을 국가와 노동조합에 맞서는 노동자로 규정하면서, 노동자를 분리 통제하려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 대중집회와 총회를 통한 효과적 투쟁으로 진전하고 있음을 분석하고 있다.(23)

     

    홍콩과 칠레, 그리고 미국과 인도에서의 투쟁을 다루는 기사를 논평한 A Free Retriever’s Digest(24)사회 반란과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아나코-코뮤니스트 그룹인 바바리아(Barbaria) 그룹의 홍콩과 칠레의 투쟁 기사와 보르디가주의 그룹인 국제코뮤니스트당(ICP)의 미국과 인도의 투쟁 기사를 평가하고 있다. 이 국제주의 매체의 평가 기준은 다음과 같다.

     

    투쟁은 우리 계급의 직접적인 인간 욕구로부터 뻗어 나오기 때문에 사회적 투쟁이다.

    최초의 물결을 일으킨 이유를 넘어서 각기 다른 직접적 요구는 일반화된다.

    사회적 투쟁은 아직 코뮤니즘의 사회적 혁명과 거리가 멀지만, 역사적 전망을 열고 있다. 따라서 카탈루냐와 쿠르디스탄의 투쟁은 민족해방투쟁의 영역에 있음으로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일반적 역사적 맥락은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긴 후퇴를 끝내려는 계급사이의 격돌로 특징 지워진 우리는 획기적 변동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자본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자본주의는 소진되고 있고 사회혁명의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투쟁의 물결은 공통의 주장을 담고 있다. 혁명의 필요와 이해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음을.

    운동이 말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투쟁이 우리 계급의 직접적인 요구로부터 나오는 한 부르주아 정치영역으로 움직이는 민족주의적이거나 정치-선거 투쟁과는 매우 다른 투쟁이다.(25)

     

    홍콩 가두 투쟁의 계급 간 성격에 대해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들은 바바리아 그룹과 달리 매우 비판적이다. ICP는 홍콩 저항운동이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신호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있으며, ICC는 홍콩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발적 계급으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에는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ICT 역시 홍콩의 운동이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노동계급의 요소는 지역의 자본주의의 이해에 승복함으로써 국제 노동계급 연대의 잠재력과 국제 혁명적 정치조직으로 뻗어 나갈 가능성이 훼손되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칠레의 민중 투쟁이 위기와 참상으로 몰아가는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해답은 아니라고 비판하는 ICC에 대해 이 평가 글은 칠레, 이란, 인도의 투쟁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저개발’, 원시적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독점자본의 초과이윤을 즐기지 못한다고 폄하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부유한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위기에 몰린 자본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는 ICC의 생각은 코뮤니스트가 격렬하게 싸워야 할 환상이라고 규정한다.(26)

     

    이어서 이 글은 ICC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같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위험성과 코뮤니스트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선전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ICC의 글이 심술쟁이 노인의 부정적 논조를 띠고 있으며, 스스로 절망에 빠져 자본과 국가에 맞서는 사회투쟁을 자본주의 해체 시기의 룸펜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미국의 제너널 모터스(GM)의 파업을 다룬 ICP는 이 파업이 국가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 United Automobile Workers of America)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통일을 이루려는 파업노동자의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며, 국가노조에 맞서는 노동계급노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도의 혼다 마네사르(Honda Manesar)의 공장점거 투쟁을 다룬 기사에서는 작업장에서의 연좌 투쟁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27)

     

    사회 반란 투쟁에 대한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들은 분명히 그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으로 한 걸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입장에서부터 전혀 그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까지 편차가 있다. 노동계급 스스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혁명 세력과 혁명당의 과제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사회투쟁이 세계자본주의가 위기와 참상으로 돌진하는 것에 진정으로 맞서는 해법이 아니라는 ICC, IGCL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앞으로의 세계 각국의 노동자 투쟁을 포함한 사회투쟁의 과정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왜 그러한지 아니면 사회혁명으로의 진전할 가능성이 있는지 코뮤니스트는 따져보아야 한다.

     

    ICC는 자본주의가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끊임없는 희생에 맞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마당이 되었고, 칠레, 에콰도르, 타이티, 이라크, 이란, 알제리, 레바논 등에서의 대중운동이 폭력과 유혈적 억압을 수반하고 있지만, 이러한 민중 반란에 설사 노동자가 포함되더라도 그들은 자본에 대한 적대적 계급으로서가 아니라 국민안에 침몰되어 있고, ‘미래가 없다는 생각만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러한 운동은 부르주아지의 억압과 공작에 의해 무력화된다고 진단한다. 또한, 계급 간 상호주의는 민주적 요구와 맹목적 폭력만을 야기시켜 깨끗한 체제를 위한’, 민주적 요구를 통한 합법화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계급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부르주아지의 특권화 된 권력 형식으로 귀결될 뿐이라고 규정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물음 없이 민주적영역에 갇힌, 전망을 상실한 홍콩 투쟁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이러한 운동의 맹목적 폭력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프랑스의 노란 조끼운동은 이러한 민중 반란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눈으로부터 계급투쟁의 실질적 본질을 가리게 만든다고 결론짓는다.(28)

     

    IGCL2019년 여름부터 세계 모든 국가에서 벌어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전진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위기 심화와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추동에 대한 대대적인 세계적 계급투쟁의 시기가 열렸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29) IGCL은 이들 투쟁의 일부가 전형적인 소부르주아 요구에 머물러있지만, 일부는 노동계급의 요구에 기반을 두는 면모를 보임을 상기시키며 ICC의 세계 노동자 투쟁에 대한 입장이 그들의 해체이론에 근거한 패배주의자의 입장이며, 계급투쟁에 대한 소부르주아의 관념적 입장이라고 비판한다.(30)

     

    여기서 잠정적 결론을 내리기로 한다. 코뮤니스트11(이번호)에 실리는 코로나19’ 특집을 도입부로 하면서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대대적 공격으로 전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 물결이 파도치는 미래를 전망하면서, ‘전쟁이냐 혁명이냐역사적 경로에 대한 논쟁과 계급투쟁을 통한 코뮤니즘의 전망을 세계 코뮤니스트들과의 대화와 토론으로 이어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2020년 5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오세철


    <>


    11.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경향(ICT)의 강령」, 2020년, 4쪽, 8쪽

    http://www.leftcom.org/en/node/36775


    12. 윗글, 9쪽


    13. 윗글, 17쪽


    14. 「국가들의 세계적 재무장」, [COMMUNIST LEFT] 46호, International Communist Party, 2020년 3월 17일, 107~9쪽

    http://www.international-communist-party.org/CommLeft/CL46.htm#Ecocatastophim


    15. 윗글, 110~112쪽


    16. 「Aurora」 50호,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02-27/usiran-rivalry-what-no-war-but-the-class-war-really-means


    17. 「세계는 영원한 제국주의 전쟁에 의해 죄수로 잡혔다.」,  A Free Retriever’s Digest, 2020년 2월 22일


    18. 「3차 대전을 향한 이란-미국의 임박한 전쟁?」, A Free Retriever’s Digest, 2020년 1월 15일


    19. 「현재의 위기와 코뮤니스트의 과제」, [혁명적 전망] 15호,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19년 11월, 9쪽


    20. 「평화주의에 반대하며」, ICT, 2020년 1월 18일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01-18/against-pacifism


    21. 「연금파업에 대한 두 번째 성명」, IGCL, 2020년 1월 3일

    http://igcl.org/2nd-Communique-on-the-Strikes-in-544


    22. 「프랑스 파업 : 노동계급은 스스로 깨닫기 시작하다」, [세계혁명] 185호, ICC, 2020년 봄


    23. 「프랑스의 파업 : 국가와 노동조합에 맞서는 노동자」, [Aurora], CWO, 2020년 봄


    24. 이 매체(웹 사이트)는 코민테른의 퇴행에 맞서는 투쟁에서 코뮤니스트 좌파가 이해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방어하는 논평 글을 싣고 있다.


    25. 「사회 반란과 제국주의 전쟁(1/2)」, A Free Retriever’s Digest, 2020년 1월, 1~2쪽

    26. 윗글, 4~7쪽


    27. 「사회 반란과 제국주의 전쟁(2/2)」, A Free Retriever’s Digest, 2020년 1월, 2~3쪽


    28. 「민중 반란은 위기와 참상으로의 세계 자본주의의 돌진에 대한 해법이 아니다」, [국제평론] 163호, ICC, 2019년 겨울


    29. 「피할 수 없고 극적인 모순에 대한 자본주의의 ‘해법’에 맞서자. 대대적인 국제계급투쟁으로!」, IGCL, 2020년 2월 1일

    http://igcl.org/Against-Capitalism-s-Solution-to


    30. 「국제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 [혁명이냐 전쟁이냐] 14호, IGCL, 2020년 1월 30일



    <이전 글>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1)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8758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2) : 1~2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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