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12호] 민주노조운동을 넘어선 코뮤니스트 노동자운동을 위하여
  • 조회 수: 7788, 2021-01-27 13:12:59(2020-12-21)
  • [전태일 열사 5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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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조운동을 넘어선

    코뮤니스트 노동자운동을 위하여

     


    자본주의 쇠퇴기에 자본은 파괴적 본성을 지구 전체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 방울의 잉여가치라도 더 뽑아내려는 자본은 지구생태계마저 멸종의 위협에 빠뜨리고 있다. 이윤 착취를 위한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 파괴, 기후 위기, 바이러스 대유행을 자초하고 있다. 임노동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자본은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지속해서 공격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이용하여 노동자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K-방역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한국 사회의 노동 지표는 암울함 그 자체이다. ‘1,000만 비정규직 노동자, 100만 조직 노동자, OECD 최장 노동시간, 최대 산재 사망, 자살률 1, 교사·공무원 노동기본권 부정, 청년 실업 증가게다가 부르주아 정부는 ILO 핵심 협약 비준을 빌미로 자본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노동법 개악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최근 택배 노동자들의 연이은 과로사에서 보듯이 노동시간과 강도는 증가했지만, 이윤과 임금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실업 상태이거나 실업 단념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열사의 외침은 노동운동에서는 민주노조운동으로 이어진 계기가 되었다. 전노협, 연대회의, 업종회의, 현총련 등 그룹별 노조연합체, 조선노협 등 업종별 노조연합체 등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마침내 1995년 노동자들의 열망과 투쟁의 힘을 바탕으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출범했다. 197080년대에는 국가노조, 어용 집단인 대한노총, 한국노총을 넘어서지 않고는 평범한 노동조합 결성조차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서 민주노조운동의 태동은 기존 질서와 어용세력을 넘어서기 위한 싸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어용노조에 맞선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였다. 노동계급의 경제사회정치적 요구를 대변하며 자본과 어용세력에 맞서 싸우는 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내용을 집약하여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민주노조는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 대신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원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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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조(?), 계급투쟁 전망의 상실

     

    자주성, 민주성, 계급성을 원칙으로 해서 등장한 민주노총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위축되면서 아직도 위기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가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계급운동의 전망 상실에 따른 계급투쟁의 부재이다. 계급투쟁에 대한 전망 상실은 한편으로는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의 분할 통치 이데올로기에 쉽게 포섭되어 노동계급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합주의와 관료주의가 득세하며 노동자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다. 거기에 부르주아 선거 때는 노동자정치 세력화, 야권연대, 비판적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계급모순을 은폐하고 노동자 투쟁에 찬물을 끼얹으며 걸림돌 정도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한 축을 담당할 정도이다.

     

    자본의 분할 통치

     

    19961997년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 투쟁 당시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근로자 파견제나 변형시간 근로제를 내주는 대신에 정리해고제는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를 이루었다. 이는 정규직의 최대 관심사를 중심으로 사고한 결과였고, 계급투쟁의 전제인 노동계급 연대에 치명타가 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정규직이 양보하여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는 대자본 투쟁을 가로막는 장치로 기여, 지배계급의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자본과 대립을 정규직 비정규직 대립 등으로 치환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정착되었다.1)

     

    관료주의

     

    계급투쟁의 전망 상실은 민주노조운동을 관료주의, 조합주의로 전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민주노조운동은 퇴조를 거듭하면서 계급 연대와 계급 해방 전망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신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를 오용하며 자신들의 권익을 우선하는 어용세력이 민주노조 진영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자본주의 쇠퇴기에 자본의 공격은 갈수록 노동계급의 약점을 향해 공세적이고 치명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개량주의는 조그만 타협의 여지마저도 불가능하다. 그 결과 많은 경우 합의로 포장된 공간은 사실상 노동계급에 대한 학살에 협력한 대가로 소수 노조관료들의 지위와 특권을 보장해주는 밀실협상의 장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오히려 온갖 양보와 타협, 후퇴에 동원됐다. 그리고 어용세력은 다시 이를 통해 조직적체계적으로 든든한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이들은 노동조합 관료기구의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 규약 혹은 다수결에 의한 결정 등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심지어 이들은 노동조합 각급 단위에서 노동자 민주주의와 한참 동떨어진 결정을 하는 주체이기도 했다. 결국 노동조합 어용세력의 특권은 노동자 희생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유지와 노동조합

     

    아직도 노동운동 내 다수는 노동조합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민주노조운동은 급속도로 체제 안으로 통합되고 관료화되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변질하였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점진적 개량과 의회주의에 몰입된 노동운동 상층 관료는 노동자 대중의 계급의식을 왜곡하고 있다. 계급운동에 대한 전망과 투쟁은 더는 노동조합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투쟁에 대한 전망 상실은 급진적 노동운동 세력이 후퇴한 계급의식에 영합해 코뮤니즘에 대한 어떤 전망도 갖지 못하고 막연한 반()자본주의만 주장하게 했다. 노동조합은 더는 혁명적 기구가 아닌데도 노동조합 개선으로 혁명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시각은 노동운동에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이러한 시각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열기를 잠재우는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환상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고, (최근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올해 여름 논란이 되었던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가 여부, 노사정 협의 등으로도 나타났다. 이것은 진보 대 보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계급모순에 대한 진실을 감추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체제에 포섭된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타협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일부 노동조합과 관료들은 이제 자본주의 착취 경제를 합리화하고, 노동력 판매를 조정하며 착취를 강화하려는 자본주의 국가의 노력에 협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노동계급 내부에서 투쟁을 방해하고 계급투쟁이 자주적으로 발전하고 급진화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현재의 노동조합은 자신의 계급적 성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노동계급이 다시 장악할 수 없고, 혁명적인 소수가 혁명적인 활동을 할 영역을 제공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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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조합의 한계

     

    조합주의로 일어나는 최근 현상도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노동조합 형식은 자본주의 상승기인 19세기의 구조적 조건뿐만 아니라 국가-계급-노동조합 관계에서도 노동계급 투쟁의 실제 표현이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의 가치, 곧 조직된 투쟁 정신인 노동자 연대를 배우는 최초의 학교였다. 노동조합은 처음에 산업 자본주의가 최초로 발전한 영국에서 등장했다. 이것이 다른 나라로 널리 퍼진 후에, 자본주의 산업에 자연스럽게 경쟁자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노동조합은 그러한 형태의 특성을 상실했는데, 이러저러한 노동조합 지도자의 실수 혹은 배신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본질 때문에 제도화된 노동조합이 되었다.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것은 세계 분할을 위해 제국주의 강대국이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이다. 일부를 제외한 사회주의당, 사회민주주의자, 개량주의자 모두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전쟁에 끌어들이는 데 도움을 주면서 민족 부르주아지를 지원하기 위해 줄을 섰다. 사회민주당에 의해 지도되었던 노동조합은 자국의 민족 부르주아지를 지지했다. 이것은 민족국가 체제를 지키기 위한 상황에 있는 노동조합 최초의 분명한 사례였다. 노동조합은 부르주아 국가인 조국 방어자 역할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착취 구조 안에서 효과적인 부역자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은 계급투쟁의 학교, 사회주의 훈련소 역할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계급투쟁과 사회주의 운동에 해악적인 요소가 더 많아졌다. 극소수의 정파활동가나 초보 사회주의자를 양성하고 공급받을 수는 있겠으나, 대중행동의 자발성과 혁명의식과 대중이 직접 만나는 것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정치조직과 노조운동의 잘못된 결합, 즉 정치조직의 노조운동 지도-피지도 관계에서 나타난 대리주의 경향은 계급행동의 수동성과 상층부의 관료주의를 양산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조직 전반에서 노동자 민주주의를 계속 축소해왔다. 물론 노동조합의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그간 많은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모두 실패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 상층 관료세력은 자신들이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과 노동자 투쟁 방해를 반복하는 것이 불신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노동조합 지도부에 대한 이러한 불신을 노동자들로부터 너무 멀리 있다라거나 너무 개량주의적이라거나 너무 관료적인 것에 관한 관심으로 돌리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자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노동조합의 급진화라는 형태를 취할 수 있는데, 보다 좌익 지도부를 선출하고, 더 높은 임금 인상이나 정부 정책의 변화 등 급진적인 요구를 추진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비판적’, ‘()지도부또는 ()노동조합의 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 이들은 다양한 형식과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노동조합을 넘어선 급진적 계급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협에 충실한 기본적인 노동조합 형식(질서)을 방어하는 것이다. 그들은 노동조합 자기방어의 가장 해로운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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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스트 노동자 운동 전망

     

    2020년 민주노총은 전태일 3법 청원운동 및 노동개악 저지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전태일 3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과, 특수고용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도 노동자로서 노동기본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노동법 2조 개정,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한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 운동이다. 민주노총은 기존 노동체제 속에서 일정한 보호기제를 갖춘 것으로 간주하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라는 틀을 넘어 가장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과 적극적인 연대에 나선 것을 의미한다.’라고 의의를 두고 있다. 하지만 전태일 3법의 입법화는 계급 분열의 핵심인 관료주의, 조합주의를 넘어서 계급의 단결과 투쟁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 그리고 전태일 3법을 입법화했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여전히 이윤 착취의 대상이다. 즉 코뮤니스트 혁명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없는 현재의 노동조합 운동은 전태일 3법을 입법화할 능력도 없지만,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를 근절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혁명적 노동조합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노동조합 지도부가 부패했고, 오늘날 노동자들의 전투 속에서 더는 차지할 자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주요한 경제법 개정 투쟁을 주장하는 노동조합주의가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에 비효과적이고,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노동운동 내부의 다수는 사회주의 투쟁에서 노동조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더는 혁명적 조직도 일상적인 노동조건도 방어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재편, 강화, 혁신 등은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전체 노동자의 90%가 노동조합의 밖에 존재한다. 노동조합만이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투쟁하며 계급성을 고양하는 기구라는 생각은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낡은 조합주의 운동의 쇄신이 아니라 그것과 철저하게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주체는 소수라도 현실에서 원칙을 지키며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의식을 갖고 실천하는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현재 자본주의 위기상황에서 분출하는 새로운 노동자 운동은 노동조합 수준에 갇혀서는 안 된다. 정치적으로도 운동 주체와 최종목표가 불분명한 반자본주의 운동이 아니라 노동계급 자기해방의 최종목표, 코뮤니스트 혁명의 목표를 분명히 밝히는 코뮤니스트 노동자운동이어야 한다. 그것은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노동조합주의와 전면적인 투쟁을 벌일 노동자 투사/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의 내부 투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동운동 내 계급적 소수파 투쟁은 계급투쟁을 부활시키고 새로운 주체를 형성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직접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의 항거가 민주노조운동으로 이어졌듯이, 계급적 소수파의 투쟁과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직접행동만이 민주노조운동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 맞설 코뮤니스트 노동자 운동, 당 건설의 기반이 될 것이다.

     

    20201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윤태상


    <주>

    1) ‘정규직이 먼저 양보를 해서 비정규직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에도 양보를 요구해서 사회공헌 기금의 형태로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해 나가자는 것이다. ... 비정규직과의 계급 내부의 연대를 끌어내고 나아가서는 전 사회적 연대로 발전해 나가는 길을 여는 것 같이 보이나, 실제로는 정규직은 자신의 몫을 빼앗길 것에 대해 반발하고 이러한 정규직을 비정규직은 비난하는 형태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이 생겨났다.’(배성인, ‘민주노총 25년 그 영욕의 세월과 역사’, <진보평론 85호>)



    <관련 기사 더 보기>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으로 나아가자.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292648


    노동조합과 노동자평의회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19755


    로자 룩셈부르크  「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6601


    노동조합주의 - 안톤 판네쿡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29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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