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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코뮨 150년] 혁명적 코뮨Ⅱ
  • 조회 수: 3666, 2021-04-28 19:31:48(2021-03-28)
  • [파리코뮨 150혁명적 코뮨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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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적 코뮨


    만일 파리 노동자의 혁명적 코뮨이 갖는 현실적 의미와 관련하여 후기 맑스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출발점으로서 현대 프롤레타리아의 조직 형태와 부르주아 계급투쟁 초기의 조직 형태 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맑스의 독창적인 구상을 이해해야 한다. 코뮨은 착취계급에 대항하는 생산계급의 투쟁으로부터 발생했으며, 혁명적 행동을 통해 지배적인 부르주아 국가 장치를 파괴했다. 맑스가 이 새로운 코뮨이 노동해방을 위해 마침내 발견된 형식이라고 칭송했을 때 그가 절대 바라지 않았던 것은, 이후 그의 추종자 일부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혁명적 코뮨이든 혁명적 평의회 체제어떤 확정된 형식의 정치 조직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에 독보적으로 적합한 잠재적 형식으로 지정되거나 지명되는 것이었다. 바로 앞 문장에서 그는 코뮨 및 코뮨 내에서 나타나는 이해관계의 다양성을 지속시키는 해석의 다양성에 대해 분명히 지적하고 있으며, 또한 그는 이미 수립된 이 새로운 정부 형식의 성격을 철저하게 발전 가능한 정치 형식이라고 표현했다. 파리코뮨 가담자들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창조해낸 새로운 형식의 정치권력이 지니는 바로 이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야말로 코뮨을 부르주아 정부의 고전적 발전”, 즉 현대 의회제 공화국의 중앙집권적 국가권력과 구별되도록 하는 것이다. 맑스의 근본적인 전제는 노동계급의 현실적 이익을 강력하게 추구할 때 이러한 형식이 결국 계급과 계급 지배, 국가라는 존재를 형성하는 경제적 토대를 전복시킬 지렛대로써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혁명적 코뮨 체제란 따라서 특정한 역사적 조건 하에 있는 발전 과정의 정치 형식이 된다. 좀 더 분명히 말하면 이는 혁명적 행동의 정치 형식으로서, 이때 그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목표는 더는 어떤 하나의 형식을 지닌 국가지배를 유지하거나 또는 심지어 보다 새롭고 보다 고차적인 국가유형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국가가 완전히 사라지도록하는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마지막 조건이 없이는 코뮨 체제는 불가능하며 환상에 불과하다고 맑스는 이 맥락에서 그가 할 수 있는 한 분명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순이 남아 있다. 맑스가 한편으로는 파리코뮨을 노동계급이 경제적·사회적 자기해방을 달성하기 위하여 마침내 발견한 정치 형식으로 특징지으면서도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파리코뮨이 이러한 목적에 적합한 이유가 주로 형식이 없다는 점, 즉 비규정적이며 다양한 해석에 대해 개방적이라는 점에 있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맑스의 입장이 완전히 명료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단 한 군데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그의 주장은 그동안 그가 부딪쳐 오면서 이 독창적인 정치적 구상에 통합해 낸 특정한 정치 이론들의 영향 아래 있었을 뿐, 적어도 파리코뮨이라는 엄청난 경험 자체의 실질적인 감동 속에서 제기된 것은 아니다. 1847~1848코뮤니스트 선언에서도, 1864년 인터내셔널 노동자 대회 개회사에서도 늘 그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장악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말해 오긴 했지만, 이제 파리코뮨이라는 경험은 그에게 노동계급은 이미 주어진 국가장치를 전용하여 그 자신의 그 목적을 위해 작동시킬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혁명적인 방식으로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 장치를 분쇄해야만 한다는 점을 입증해 주었던 것이다. 이후 이 문장은 특히 1917년 레닌이 국가에 대한 완전한 맑스의 이론을 이론적으로는 자신의 저작 국가와 혁명에서 부활시키고 또 실천적으로는 그 집행자로서 10월 혁명을 완수하여 현실화시킨 이래, 맑스주의 정치이론 전체의 본질적인 주요명제이자 핵심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단지 국가권력이 노동계급을 위해기존 부르주아 국가의 국가 장치를 전용하여“ ”노동계급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작동시키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러한 소극적 규정만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새로운 혁명적 최고 국가권력의 형식적 특성에 대하여 아직 그 어떤 것도 적극적으로 말해진 바 없음이 명백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만 한다. 왜 하필 특히 코뮨이라는 규정된 형식이 노동계급을 위해 마침내 발견된 정치형식이 되어야 하는가? 맑스프랑스 내전에서 그렇게 주장했으며, 또 왜 20년 후 엥겔스프랑스 내전3판 서문에서 다시 한번 매우 상세하게 코뮨의 특징을 서술했는가? 맑스와 엥겔스는, 그러니까 프랑스 대혁명으로 실현된 혁명적 부르주아의 중앙집권적 독재체제에 대한 저 열렬한 찬양자들은 도대체 왜, 정확히 코뮨이 부르주아 체제와 완전히 대립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만 한다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정치 형식으로서 간주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과학적 사회주의의 두 창립자인 맑스와 엥겔스가 제시한 바에 따르는 정치적 강령과 목표들을 좀 더 정확히 분석해 보면, 사실상 파리코뮨 반란 이전뿐 아니라 그 이후에서도 이 정치이론들과 1871년 파리코뮨으로 실현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형식이 어떤 특정한 의미에서 합치된다는 주장은 유지될 수가 없다. 실은 제1 인터내셔널에서 맑스의 강력한 반대자였던 미하일 바쿠닌은 이 점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역사적 진실을 알고 있었다. 맑스가 소급적으로 파리코뮨을 추가한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냉소적으로 말했던 것이다. “코뮨주의 반란의 영향은 매우 강력해서 맑스주의자들조차 자신들의 사상을 전부 잊어버리고 그에 경의를 표하도록 만들었다. 맑스주의자들은 그보다 더한 일도 했다. , 모든 논리나 자신의 가장 깊숙한 감정과는 반대로 이들은 코뮨 및 코뮨의 목표를 자신들의 강령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들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모두에게 거부당하거나 버려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혁명이 전 세계에 불러일으킨 열정은 그토록 강력했다.” (Cf. Brupbacher: Marx and Bakunin, pp.114-115.)

     

    1871년 파리코뮨 가담자들의 혁명적 이념 중 일부는 바쿠닌프루동의 연방주의적 강령으로부터, 또 일부는 블랑키주의 및 아주 약간의 맑스주의가 남아 있는 혁명적 자코뱅파의 사상적 조류로부터 유래했다. 20년 후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주장에 따르면, 파리코뮨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던 블랑키주의자새로운 혁명정부 수중의 모든 권력을 엄격한 독재로 집중시킨다는 자신들의 강령 대신 그와 정반대되는 강령, 파리코뮨과 프랑스 모든 코뮨의 자유로운 연방이라는 강령을 선언했다는 사실의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바로 이 주제에 관해서 동일한 모순이 지금까지 확인된 맑스 및 엥겔스의 정치이론과 이들이 코뮨을 노동계급 정부의 마침내 발견된 정치형식으로 무조건 승인했다는 현재의 지배적인 이론 사이에 발생한다. 이 오류는 레닌이 1917년의 저작 국가와 혁명에서 맑스 국가이론의 전개에 대해 서술했을 때 생겨났다. 레닌은 마치 맑스가 1852년까지의 전환기에 이미 (1847~1848년에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제시했던 것처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과제에 대한 이론적 정식화를 계획했고, 그 취지는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가 기존 부르주아 국가의 최고권력을 파괴하고 전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는 듯이 서술했다. 이에 반해 레닌의 테제는 맑스와 엥겔스의 증언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모두, 바로 1871년 파리코뮨의 경험이 최초로 노동계급은 단순히 이미 주어진 국가 장치를 전용하여 이를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작동시킬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점을 효과적으로 입증했다고 반복적으로 밝혔다는 것이다. 즉 논리적 간극을 제공한 것은 레닌 자신이었다. 다른 곳에서 그는 국가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언급을 그렇게나 역사적으로 정확하고 철학적으로 정밀하게 재생산해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맑스주의 국가이론의 전개를 설명할 때는 이 지점에서 20년이라는 기간을 단숨에 건너뛰었던 것이다. 레닌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1852)에서 곧장 프랑스 내전(1871)으로 건너갔으며, 그러는 가운데 그가 간과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맑스가 <1 인터내셔널 개회사>에서 다음과 같은 정교한 한 문장으로 노동계급의 정치적 강령전체를 요약해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 노동계급의 중대한 과제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맑스가 파리코뮨의 경험에 근거하여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명백한 방식으로 부르주아 국가 장치의 분쇄 및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 건설의 불가피한 필연성을 주장하던 1871년 이후 시기에도 아직, 그는 혁명적 파리코뮨을 모델로 한 정부형식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치형식으로서 선전하는 일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역사적인 한순간 승리한 반동 세력에 맞선 코뮨의 영웅적 투사들 및 희생자들을 대표하여 맑스가 무조건 주저 없이 앞으로 나섰던 바로 그 순간 그가 이러한 입장을 지지했거나 또는 지지한 것처럼 보였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그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첫 번째 국제조직을 대표하여 피와 열정으로 써 내려 간, 프랑스 내전에 대한 인터내셔널 노동자대회 총평의회 연설에 주목하고자 한다. 파리코뮨의 혁명적 본질을 지키기 위하여, 맑스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실제로 역사에 출현한 이 특별한 형식을 이용했어야 한다는 비판을 내놓기를 자제했다. 만일 그가 이를 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가 혁명적 코뮨 체제라는 정치형식을 곧장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마침내 발견된 형식으로서 축하했다면, 그 이유는 더는 단지 파리의 혁명적 노동자들과의 자연스러운 연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수한 부차적 목적에도 있게 된다. 인터내셔널 총평의회 연설을 쓰면서 파리코뮨 가담자들의 영예로운 전투 및 그 패배 직후 맑스는 코뮨의 맑스주의를 추가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맑스주의에 코뮨을 추가하고자 했다. 만일 우리가 이 주목할 만한 문건의 의미 및 중요성의 범위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한다면, 즉 이 문건을 그저 마치 영웅 서사시나 죽음의 애도처럼 보이는 고전적인 역사적 기록으로서만 이해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문건을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오히려 저 모든 것을 넘어서서 이 문건은, 당시 이미 시작되어 이후 곧 제1 인터내셔널의 붕괴로 이어지게 될 씁쓸한 투쟁 속에서 맑스가 그 가장 내부의 반대자들에 맞서 내놓은 단편적인 반론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단편적이고 부차적인 목적은 맑스가 1870년 리옹과 마르세유 코뮨의 반란으로 시작되어 1871년 파리 코뮨의 반란으로 절정에 달했던 프랑스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운동 간의 상호연관성을 역사적으로 정확하고 완전한 방식으로 평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는 맑스가 혁명적 코뮨 체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의 마침내 발견된 정치형식으로서, 또한 중앙집권적인 정부로서 환영받았다고 비록 이것이 그 실제 본질과는 반한다고 하더라도 설명하도록 만들었다.

     

    이미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스스로, 파리코뮨이 본질적으로 연방주의적 성격을 지녔다는 혐의를 레닌보다도 더 부정한 바 있다. 만일 맑스가 파리코뮨으로 생겨난 프랑스 모든 코뮨 체제의 역사를 짧게 서술하면서 그 명백히 연방주의적인 양상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여전히 목적 의식적으로 이러한 코뮨 체제를 통해 국민의 동맹은 깨어지지 않았으며 반대로 조직되었다(프루동이나 바쿠닌과 같은 연방주의자들이 당연히 거부하지 않았던) 바로 그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코뮨 체제 내에서 중앙 정부가 처리해야 할 것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작지만 중요한 기능들을 강조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코뮨의 계획에 따르면 이러한 기능들이 일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처럼 폐지될 수 없으며, 코뮨의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 시민 봉사자들에게 양도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를 기초로 이후 레닌은 코뮨의 사례에 대한 맑스의 저작에서 연방주의의 흔적은 발견될 수 없다, ”맑스는 중앙집권주의자이고, 여기 인용된 그의 설명에서는 중앙집권주의에서 벗어나는 어떠한 일탈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국가와 혁명) 이는 상당히 정확하지만, 그러나 레닌은 이 지점에서 파리코뮨에 대한 맑스의 해설이 파리코뮨 가담자들의 열망으로 그 첫 시작에 실현되었던 이 혁명적 코뮨 체제를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특징짓는 것만은 제외시켰다는 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빠트려 버렸다.

     

    파리코뮨의 연방적이고 반()중앙집권적 성격으로부터 가능한 한 벗어나기 위하여 맑스 엥겔스와 마찬가지로 레닌, 다른 무엇보다도 지배적인 부르주아 국가 장치의 파괴 등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부정적 양상을 강조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혁명가들 사이에 어떠한 논란도 없다.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이 정확하게 강조했던 것은, 파리코뮨에 의해 공표된 정치적 최고 권력의 형식이 지니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적 성격의 결정적 토대가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의 실현이라는 그 사회적 실재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방주의적인반대자들에게 분권화된 연방국가 형식은 그 자체로 현대 부르주아 국가의 중앙집권적 정부 형식과 다름없이 전적으로 부르주아적이라는 점을 매우 신랄하게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강력하게 대립했던 반대자들과 같은 오류를 저질렀다. 코뮨 체제의 연방주의적성격에 집중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의회주의나 그 밖의 부르주아 국가 체제의 지양된 형식으로부터 파리코뮨을 구별 짓는 다른 형식적 차이들(예를 들어, 시민군을 통한 상비군의 대체에 관하여, 집행부 권력과 입법부 권력의 통합에 관하여, “코뮨공무원을 해임할 책임과 권리에 관하여) 지나치게 많이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적지 않은 개념상의 혼란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파리코뮨에 대한 맑스주의의 입장과 관련해서뿐 아니라, 또한 이후 혁명적 평의회 체제라는 새로운 역사적 현상에 대한 혁명적 맑스주의의 방향 설정에서도 해로운 결과를 초래했다. “연방형식으로 부르주아 국가를 극복한다는 프루동이나 바쿠닌에 동의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것처럼, 마찬가지로 오늘날 일부 맑스주의적인 혁명적 코뮨의 신봉자들이 혁명적 평의회 체제에 관하여 맑스와 엥겔스, 레닌의 그러한 잘못된 설명을 토대로 언제든지 취소될 수 있는 위임에 매여 있는 단기적인 의회의 대표들이나 또는 평균 임금을 위해 사적인 계약으로 고용된 정부 공무원들은 선출된 의회정치가에 비해 보다 덜 부르주아적인 방식일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이들이 만약 어떤 코뮨의체제 형식 또는 평의회와 유사한체제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결국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통치하는 국가가 모든 국가에 달라붙어 있는 저 계급억압의 수단이라는 성격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완전히 틀렸다. 최종적으로 코뮨주의 사회 속에서 국가를 사멸시킨다는 이론, 즉 맑스와 엥겔스가 유토피아 사회주의의 전통으로부터 이어받아 당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실천적 경험을 토대로 더욱 발전시킨 그 이론 전체가 그 혁명적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 것은, 우리가 레닌과 함께 더는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는 국가가 아니라 인민 그 자체라는 다수가 자신들의 억압자를 억압하는국가가 존재한다고 선언한 그 순간, 또한 이때 참된 민주주의 또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실현자로서의 능력을 갖추는 그러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는 이미 사멸 중인 국가이다.” (국가와 혁명)라고 선언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참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이론의 두 기초이론, 1871년 파리코뮨 반란이나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과 같은 투쟁의 특정 국면에서 현실적 요구들에 일시적으로 순응함으로써 결국 폐지될 위험에 이르렀던 그 이론들을, 다시 충분히 명료하게 정립할 때가 왔다.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본질적인 최종목적은 어떤 하나의 국가가 아니다. “민주주의국가도, “코뮨국가도, 또는 심지어 평의회와 유사한국가도, 그 어떤 국가도 아니다. 그 최종목적은 계급도 없고 국가도 없는 코뮨주의 사회이며, 그 종합적인 형식은 더는 어떤 종류의 정치권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그러한 연합(코뮤니스트 선언)이다.

     

    맑스주의적 개량주의자들의 환상에 따라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아무런 변화 없이 지양된 국가 장치를 장악해내든, 또는 혁명적 맑스주의 이론에 따라 급진적으로 그 지양된 형식을 분쇄하고 또 자발적으로 창조되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대체함으로써 그러한 형식을 전용하든, 둘 중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렇게 될 때까지 어떤 경우가 됐든 이러한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코뮌주의 사회로 변화하는 혁명적 기간을 거치면서 정치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 계급적 성격 및 사회적 기능을 통해 부르주아 국가와는 달라질 것이다. 혁명적 코뮨과 혁명적 평의회 체제, 또는 역사적으로 출현하는 다른 모든 노동계급 정부의 진짜 비밀은 이러한 사회적 내용에 담겨 있을 뿐, 다른 어떤 인위적으로 고안된 정치형식이나 또는 일부 특수한 역사적 환경에서 언젠가 한 번 실현된 적이 있었던 그러한 특수한 제도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 아니다.


    2013년 코뮤니스트 2, ‘혁명적 코뮌칼 코르쉬’ - 남궁원

    2021년 파리코뮨 150년 재발행


    <이전 글>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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