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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 맑스 : 사랑하는 딸에게
  • 조회 수: 3448, 2021-05-07 19:22:23(2021-05-07)
  • 칼 맑스 :  사랑하는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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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맑스 : 1818년 5월 5일~1883년 3월 14일)



    맑스의 예언자 수염


    맑스가 알제(알제리의 수도)에 머물 때 예언자처럼 하고 다녔던 수염을 면도하였고,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짧게 하였을까?


    1882년 4월 28일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의 추신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런데 햇볕 때문에 예언과 같은 내수염과 모발을 제거해버렸어. (딸들은 간직하고 있는 것이 좋다지만) 그러나 알제의 이발사가 제단에 내 모발을 바치기 전에 사진을 찍어 두었네. 다음 일요일(4월 30일) 원판을 가질 걸세. 귀하가 마르세이유로부터 보낼 복사판을 볼 걸세. 8주간 계속 발랐던 콜로디온 성분의 칠을 볼 걸세.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 스타일) (사실 나는 하루도 완전한 휴식을 갖지 못했어). 싫어하는 일에도 환한 얼굴을 하였다네." 


    이 사진의 몇 복사원판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원판 하나를 날짜(착오로 1882년 2월 말이 찍혀있다)를 넣어 둘째 딸 라우라에게 선물했고, "나의 사랑하는 귀여운 예니"라고 써서 보낸 또 다른 원본의 날짜(1882년 4월 말)는 정확하다. 세 번째 원판은 엥겔스에게 보냈다. 맑스는 자기 사진을 친구 쇼르레머와 와이트섬의 벤트너에서 간호해 준 의사 부인에게도 보내고 싶어 했다.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맑스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 사진은 자주 재생되었다. 머리카락과 흰 수염, 콧수염과 눈썹은 검은 색깔이나 코 양쪽 면은 더 하지만 눈가에는 보일 정도로 주름살이 배어 있다. 있는 그대로 맑스를 보여 주는 아름다운 사진... 사진 찍는 자세의 어느 것도 건방진 곳 없다.


    이상하게도 사진에서 맑스는 병자의 얼굴이 아니다. (사진작가가 약간 손질한 것일까?) 8주간의 치료 기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병자 게임에서 건강한 얼굴을 하고 있음을 당신네들은 볼 것"이라고 적어 놓았다.


    4월 말 맑스는 새롭게 건강을 회복하여 산책을 시작하였고, 알제 열대 식물원과 프랑스 군함을 보러 다녔다. 엥겔스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맑스가 새롭게 아주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맑스는 라우라에게 사진을 보내면서 "어떤 예술도 사진보다 사람 모습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야."라고 내린 결론은 애교스러운 표현일까?


    아직도 의문은 남아 있다. 맑스가 그의 계획을 실행했을까? 정말 그는 예언자의 수염을 희생했을까?


    1882년 4월 말 이전 모든 서신 교류 어디에도 수염 없는 맑스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발견하지 못했다. 맑스의 모든 편지교환자 중 수염과 덥수룩한 머리칼의 그를 보는데 습관이 된 모든 이들은 자본론의 저자의 얼굴이 완전히 변한 사건에 아무도 조금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여기서 어떤 결론을 내릴까?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 맑스는 당초 계획을 포기하고 그렇게 사랑하는 딸들을 기쁘게 하려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간직하였다고...


    *마르벤베스퍼는 알제에서 백방으로 사진사와 맑스를 면도한 이발사의 흔적을 찾으려고 끈질기게 집요한 조사를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큰 딸 예니, 둘째 딸 라우라 셋째 딸 엘레노어 그 뒤에선 마르크스와 엥겔스(1864년).jpg



    1882년 5월 6일 둘째 딸 라우라에게 보낸 편지


    라우라 라파르그에게

    몬테칼로(1) 러시아 호텔


    나의 사랑하는 카카두(2)

    이곳 몬테칼로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되었구나. 엥겔스에게 띄운다고 알린 편지내용도 살펴볼 시간이 없을 지경이야. (어쨌든 네가 받을 이 편지보다 하루는 늦게 받을 것이야).

    이제 쓸 일용품을 사러 가야 하는구나. 너와 프레드(3)에게 사진 한 장씩을 동봉하여 보낸다. 어떤 예술도 사진보다 사람 모습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야.


    늙은 닉(4)이



    1882년 3월 27일 첫째 딸 예니 롱게에게 보낸 편지


    예니 롱게에게

    1882년 3월 27일 월요일


    내 사랑하는 애야(5)

    오늘 (3월 27일) 네 편지를 받았다. 네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늘 기뻐한다는 것을 너도 알지. 내 편지는 나쁜 어느 것까지도 너에게 숨기지 않았다. 앞서 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건강에 차도가 있다고 너에게 알린 것이 지어낸 말이 아니란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제일 힘들었던 불면증이 사라졌고, 식욕이 다시 돌아왔고, 기침의 발작증세가 완화되면서 기침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단다. 물론 효험이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은 아직도 발포성 약을 바르고 있다. 결국 왼쪽 켠의 늑막염 (피부 깊숙한 곳에는 약의 효과가 미치지 못한데) 치료는 별로인 것 같아.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계속하는 이 변덕스런 날씨 – 천둥, 무더위, 추위, 비, 아주 드문 화창한 날 –  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없이 마르고 더운 공기인 계절의 공기란다! 어저께 날씨가 어느 정도 좋아졌어. 하루 종일 따뜻해서 산책을 했었지. 오늘은 잿빛 하늘에서 폭우가 치더니 바람소리가 세차다. 지겨울 정도로 이런 날씨가 계속되니 좋다는 이곳도 이제는 끝난 거지. 12월을 포함한 달부터 알제리에서 이런 날씨를 본 일이 없었다는 거야. 기러기를 사냥하기 전에 반드시 사전조사를 했어야지. 이는 날씨에도 해당되지.

    우리끼리 얘기지만 와이트 섬의 날씨도 그저 그랬으나 내가 런던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내 건강상태가 좋아진 걸 보고 사람들이 놀랬었지. 그리고 그 섬의 벤트너 마을에 있을 때는 아주 편했어. 반면에 런던에서 엥겔스의 권고 극성이 아빠의 건강을 헤쳐버렸단다. 그리고 라파르그 이 허풍선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걷는 것” 이라고 생각한 거야. 마다 할 수가 없었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런던을 벗어나야 하겠다는 조급함이 앞섰거든. 너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너를 파멸 시킬 수 있거든. 이와 같이 환자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 없다고!

    나의 사랑하는 얘야. 너에게 얘기한 것처럼 접대 잘하고 단순하면서도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다. 이 빌라호텔에는 스위스 로망지방의 스위스인들과 프랑스 본토의 프랑스인들이 있는데 독일인이나 영국인은 없단다. 스테판 의사의 지시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모리스 카스텔아즈씨가 있다. 님(Nym)(6)은 더는 친절하지도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있어. 어쨌든 얘야, 애비에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모든 사람이 네 애비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돌봐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병자”의 특권은 말하지 않고 구석에 쳐박혀 있는 거란다. 혼자 있을 때는 혼자 있고 더는 사람과 사귀기 싫을 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특권 말이다.

    이제 프랑스나 영국 일간지를 꼼꼼히 보는 것도 내동댕이 쳐버렸어. 속보만 읽고 있지. 읽고 싶은 것은 파업에 관한 롱게의 기사란다. 그의 편지 중 어느 편지에선가 라파르그는 롱게가 잘 썼다(7)고 하더라. 마사르 에밀 마사르(8)의 어리석은 짓거리에 대해서는 네가 알려준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어.

    히르쉬(9)에게 그의 “아담-컨트리뷰션” 이라는 기고문을 보내달라고 편지해줘. 여기 날씨가 좋을 때 나르는 융단(10)으로 죠니를 오게 하고 싶네. 내 귀여운 손자인 무어인, 아랍인, 베르베르인, 터키인, 니그로(11), 바벨탑과 그들의 의복(상당히 시적인 면이 있는)을 보고 놀랄 것이나, “질서” 를 세운 프랑스인들과 슬픈 영국인들이 섞여 있는 이 동양 세계! 내 귀여운 해리, 고상한 월프, 다 큰 파(12)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나의 친애하는 애야.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롱게에게도 내 인사를 전해다오.

    너의 올드 닉


    재간(13)때  자본론 을 다듬거나 고칠 생각하면 안 된다.



    <주>


    1. 몬테칼로 : 모나코 수도

    2. 카카두(Kakadou) :  맑스의 둘째 딸 애칭

    3. 프레드 :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일반 호칭. 프리드리히를 프레드라고 함.

    4. 닉 : 맑스의 별칭. 애칭

    5. 이 편지는 영어로 되어 있으며 피에르 클랭카르가 번역했다.

    6. 님(Nym) : 헬레나 델무트

    7. 로안(Roanne) : 프랑스 서남쪽 섬유도시. 이 도시의 공장파업에 관한  라 주스티스 에 게재된 기사를 말함.

    8. 에밀 마사르(Emile Massard) : 프랑스 사회주의자. 게드 신문인 르 시투와엥  기자 편집위원이었으나 편집상 충돌로 상기 신문을 떠남.

    9. 칼 히르쉬 : 파리로 이민 온 독일 사회민주주의 기자. 사회주의 계열 여러 신문에 기사를 썼고, 아담 부인이 발행하는 공화파 출판물인  누벨 르 뷰 에도 기고하였다. 이 출판물로 인해 “아담-기부금” 공식이 생긴다. 이 문제의 기사는 “독일의 사회주의” 라는 제목으로 실림.

    10. 일식 표현과 대등. 니벨룽겐(Niebelungen)의 에피소드에서 암시한 요술 모자 덕분으로.

    11. 아프리카 흑인. 당시는 경멸의 뜻이 없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음. 

    12. 맑스의 다른 손자들. 해리, 애칭 월프의 에드가 그리고 마르셀은 맑스 가족 거의 모두가 애칭으로 불렀다.

    13. 자본론 독일어 3판은 맑스 사망 다음해인 1884년에 출간됨.



    「알제리에서의 편지」 ,  정준성 옮김,  빛나는전망,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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