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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13호] 30년 뒤, 러시아혁명이 품은 이상과 현실(Ⅴ~Ⅶ)
  • 30년 뒤러시아혁명이 품은 이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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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위원회가 권력 독점을 유지하고 강화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던 좀 더 깊은 까닭은 무엇이었나?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시기 동안 볼셰비키는 자신들 말고는 그 누구도 믿지 못했다. 크론슈타트 사건에 의해 악화한 무거운 책임을 지닌 그들은 멘셰비키 사회민주주의자와 좌익 사회혁명적 농민당의 경쟁에 정치 무대를 열어놓길 두려워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볼셰비키는 세계혁명, 유럽에서 곧 닥쳐올 혁명, 특히 중유럽에서 혁명을 믿었다. 러시아에서 연립 정부는 다가올 혁명을 안내하고 지시할 운명을 지녔던 코민테른을 약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여기서 우리는 레닌과 트로츠키 당의 가장 크고 무거운 잘못을 건드릴 것이다. 여기에는 언제나 창조적 사고, 진실, 잘못, 바람직한 사고, 주체적 직관 등 모두가 뒤섞여 있었다. 그 어떤 것도 기업에 대한 믿음 없이, 실체적인 당연한 일을 평가하지 않고, 성공을 바라지 않고, 문제가 있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들어서지 않고는 착수되지 않았다. 모든 행동은 알지 못하는 미래로 실질적이고/현재 순간에서부터 투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 태도에서, 정당한 행동은 맹목적으로 앞으로 내던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처지에서 본다면, 유럽혁명의 교의는 정당한 것이었는가? 나는 우리가 그 문제에 만족스럽게 대응할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지닌 하나의 의도는 그것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안정적이고 점증하는, 상대적으로 평화적인 자본주의 시기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끝났다는 것은 틀림없다. 전지구적 혁명 시기의 개막을 알렸던 맑스주의 혁명가들은 사회주의가 적어도 유럽 강대국에서 스스로 세워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야만의 시기와 전쟁과 혁명의 순환”(엥겔스를 인용해서 레닌이 지적했던 것처럼)이 뒤따라올 수 있다고 하는 옳았다. 미래의 부르주아 유럽에 대해 믿는 쪽을 선택했던 보수주의자, 진화론자, 개량주의자들은 베르사유에서 조심스럽게 칼로 조각을 내었고, 로카르노에서 완패했으며, 국제연합에서 밝혀졌던 문구로 진저리를 나게 했던 오늘날 맹목적 정치의 정치인으로 기억되었다. 사회관계, 생산 관계의 지구적 전환이 아니라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국제 관계, 권력 관계, 사상과 관습에 대해서. 줄이면 세계혁명이 유럽에서는 시기상조였고 불확실했을 때 인도네시아에서 결정적이고 첨예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에도, 거대한 기술적 조류, 결정적인 국제적 책임, 모순적인 사회운동을 지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잘 조직된 공업국에 어울리게 특별한 지위를 지녔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이나 그리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 절대 비밀로 소련의 시베리아 불모지에 세워지고 있는 것, 트리에스터나 마드리드에서 일어나고 있거나 몰려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혁명의 겉모습이다. 볼셰비키 학파의 맑스주의 혁명가들은 노동대중의 자각과 새로운 사회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재조직화를 통한 유럽과 세계의 사회적 전환을 기다리면서 활동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게 될 때를 기다리면서 계속 활동했다. 그때 그들은 잘못했고, 그들은 패배했다. 그 대신 세계의 전환은 제도, 운동, 믿음의 무서운 혼동한 가운데서 기다리던 비전의 명쾌함 없이, 회복된 인간주의에 대한 의식 없이, 그리고 사람의 가치와 희망 모두를 위태롭게 하는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전반적 조류는 집단화와 경제의 계획화, 세계의 국제화, 억압당하고 식민화된 사람들의 해방, 그리고 새로운 종류의 대중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의 형성을 향해 1917~20년의 사회주의자들이 규정했던 경향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또한 대안을 내다보았다. 즉 야만주의와 전쟁, 전쟁과 야만주의는 두 개의 머리를 지닌 괴물이다.

     

    볼셰비키는 예상한 독일혁명에서 러시아혁명의 구원을 보았다. 이 점에서 그들이 잘못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사회주의 정권 아래 농업 러시아와 공업 독일은 틀림없이 평화롭고 풍부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테제 하에서, 러시아는 발전하고 있는 내부 관료제에 의한 교살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나치즘의 어두운 밤과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확실히 세계는 다른 투쟁을 알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그러한 투쟁이 히틀러주의와 스탈린주의라는 소름 끼치는 기계를 생산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그와 달리 모든 지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갈 때 승리한 독일혁명이 전체로서 인류의 사회적 진보를 풍부하게 해주었을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 역사의 가설에 대한 추론은 만일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고 지금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길 바란다면 적법하고 필요하다. 그런 추론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역사가 시간의 흐름에서 인간의 삶의 전개가 아니라 일련의 숙명론적이고 기계적인 발생 사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명을 위해 싸우면서 독일 스파르타쿠스단, 러시아 볼셰비키, 그리고 모든 그들의 전 세계 동지들은 지구 전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치적 대변동을 막으려고 투쟁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이 다가오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그들은 해방에 대한 커다란 의지를 통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한 혁명가와 어깨를 맞대고 싸웠던 사람은 누구든지 그 점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역사에서 그 어떤 사람도 전체로서 인간의 대의에 그처럼 헌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1917~27년의 혁명가들에게 헤게모니와 세계 정복 열망을 귀속시키려 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지만, 어떠한 종류의 비참함과 이해관계가 역사적 진실이 지닌 특성을 빼앗으려는 그런 시도의 뿌리에 놓여 있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때 볼셰비즘이 잘못한 것도 틀림없다. 유럽은 불안정했고, 사회주의 혁명이 이론적으로 가능하고 이성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서구에서 노동자계급의 압도적인 다수는 투쟁을 뒷받침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그 대신에 전쟁 전 시기의 사회적 진보로 돌아가는 것을 믿었다. 그들은 위험에 연루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감정을 간신히 생각해내었다. 온건하고 평범한 지도자들이 이끌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은 191811월에 쉽게 일어날 수 있었던 혁명이 치를 희생을 두려워했다. 그 대신에 그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적인 길을 따르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가 볼셰비즘을 폭력을 통한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불러왔다고 꾸짖었을 때, 역사적 대안, 즉 독일에서 개량주의적이고, 온건한 사회주의의 길을 고려하는 것은 오직 올바른 것일 수 있을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다 써버리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그러한 대안은 히틀러주의의 승리로 직접 이끌었다.

     

    볼셰비키는 서구, 주로 독일 노동계급의 정치적 이해와 에너지를 잘못 보았다. 볼셰비키가 지닌 전투적 이상주의 때문에 생겨났던 이러한 실수는 가장 심각할 수도 있는 결과를 생기게 했다. 그들은 서구 노동계급과 접촉을 잃었다. 코민테른은 소비에트 당-국가의 창조물로 되었다. 마지막으로 일국 사회주의라는 그릇된 교의는 속임수에서 생겨났다. 스탈린주의화한 코민테른의 바보스럽기도 하고 형편없는 전술은 독일에서 나치즘의 승리를 촉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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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혁명에 대한 첫 설명은 1927년쯤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흘렀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1920~21년 이래 코뮤니스트당의 독재, 즉 그 자체로 볼셰비키 친위대’(Bolshevik old-guard)의 독재로 되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친위대는 오히려 뛰어난, 즉 지적이고 이타적이며, 적극적이고 완고한 엘리트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성취한 결과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해외에서 소련은 인정받았고 존경과 흔히 감탄의 대상이었다. 국내에서, 전쟁 시기에 파괴로 경제는 이용할 수 있는 재원이 거의 없었지만 대중의 에너지를 통해 되살아났다. 집단화한 생산의 새로운 체제는 낡은 자본주의 생산을 대체했고 꽤 잘 작동하고 있었다. 러시아 노동계급은 투쟁에서 승리하고 조직하며, 생산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믿음과 존엄감을 심어주었다. 부르주아 철학에서 인간에 내재 되었다고 생각한 사유재산에 대한 본능은 자연스럽게 멸종하는 길에 있었다. 농업은 평균 수준으로 재건되었고 1913년 수준을 뛰어넘기 시작하고 있다. 노동자의 봉급은 1913년보다 아주 높았다.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대한 평가는 틀림없이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재건설이 아니라 공업(자동차, 항공, 화학, 알루미늄···.)의 진전과 새로운 발전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제 활력을 되찾은 농업 부문과 상대적으로 약한 공업 부문 사이의 불균형을 고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소련은 고립되었고 위협을 받고 있다. 소련의 방어를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맑스주의자는 전쟁을 금지한브리앙-켈로그 조약에 환상을 갖지 않았다. 정권은 갈림길에 있다. 당은 권력 투쟁으로 갈기갈기 찢어졌고 예전 권력이 세워놓은 강령을 둘러싸고 ()볼셰비키를 서로서로 경쟁시킨 투쟁으로 찢어졌다. ‘영웅적 시기의 후계자 가운데 가장 명석한 사람들은 트로츠키 주위에 몰려 재그룹화되었다. 그들은 전술적 실수를 할 여지도 있고, 완전하지 못한 이론을 지닐 수도 있으며, 머뭇거릴 여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이 지닌 용기와 장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공업화와 계획화의 필요, 그뿐만 아니라 반동 세력, 무엇보다 관료제와 싸울 필요를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전투적 국제주의와 정권 민주화의 명백한 필요를 알고 있다. 그들은 서기들의 위계제에 패배했다.

     

    사회주의 이상에 대한 헌신을 뚜렷이 보여준 소련의 몇천 명의 설립자는 권력에서 쫓겨나 감옥에 갇히거나 추방되었다. 그들이 비난당했던 것은 모순적이고 아무런 뜻도 없었다. 중요하고 지배적인 사실은 1927~1928년에 당내에서 쿠데타 세력때문에 혁명적 당-국가가 관료주의적 경찰국가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 국가는 혁명의 이상에 대해서는 모든 중요한 점에서 반동적이었다. 이데올로기 변화는 야만스럽게 빠르게 일어났다. 공직에서 태어난 죽은 슬로건인 맑스주의는 생각하는 사람의 비판적 맑스주의에 자리 빼앗으며, 지도자 숭배가 시작되었다. ‘일국사회주의는 지도자 숭배를 통해 자신들이 지닌 새로운 특권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신참자들의 표어가 되었다. 정권의 반대자들이 고뇌에 찬 짧은 생각에 동의했던 것은 새로이 나타나고 있는 국가, 전체주의 정권의 단면이다. 트로츠키주의 반대파를 적대한 많은 구 볼셰비키, 즉 부하린, 릐코프, 톰스키, 류틴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소름 끼쳤고 저항할 시기를 놓쳐버렸다. 너무 늦었다.

     

    전체주의에 맞선 혁명 세대의 투쟁은 1927년에서 1937년까지 10년 동안 지속하였다. 이러한 투쟁이 취한 혼란스럽고 때때로 일치하지 않은 방법은 투쟁이 지닌 실질적인 중요성을 우리에게 비밀로 해서는 안 된다. 투쟁을 이끈 지도적인 인물은 서로서로 반목했고, 싸웠으며, 화해하기도 했고, 심지어 배반했다. 그들은 길을 잃었고, 독재 앞에서 굴욕감을 느꼈으며 폭력배의 허를 찌르려고 애썼고 자신을 지치게 했으며, 죽기 살기로 반란을 일으켰다. 전체주의 정권은 그들을 서로 대항하는 데 이용했다. 이 모든 것은 그들 정신에 영향을 남겼기 때문에 훨씬 더 효과가 있었다. 화석화된 당과 혁명에 대한 애국심, 헌신, 실질적 결과, 위대한 미래에 대한 커다란 비전, 공통의 위험 의식, 이 모든 것은 심지어 가장 명석한 정신 속에도 현실감각을 없애버렸다. 이 모든 것에도, 구사회주의 볼셰비키가 대표했던 혁명 세대의 저항은 참 완고했고, 그러한 저항은 1936~38(모스크바 재판 시기)에 새로운 정권이 자신을 굳히려고 제거되어야 할 운명인 전체 세대에 필요한 것이었다. 이것은 역사에서 가장 피로 더럽혀진 탈취였다. 볼셰비키는 첫 10년의 업적 때문에 망했다. 유기체와 사회의 순환적 발전을 연구한 두 명의 미국 사상가가 그러한 업적을 바라보면서 “1917~18년에, 러시아가 팽창과 성장의 시기에 들어섰고, 그 때문에 지금(1940년대) 러시아가 지구의 강력한 국가 가운데 가장 젊은 국가로 서게 했다”(Edward R. Dewey & Edwin F. Dakin, Cycles, New York, 1947)고 지적했을 만큼, 그러한 업적은 실질적이었다. 우리는 스탈린주의적 전체주의가 러시아의 새로운 활기를 어떻게 약하게 만들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이와 관련해서, 달린(David J. Dallin)은 우리에게 하나의 지표를 준다. 1차 세계대전 동안, 러시아는 연합국의 30%에 맞먹는 주민을 잃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는 1,200~1,600명이나 연합국의 80%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전장에서 붉은 군대는 침략국 병사들의 죽음보다 4배 많은 병사를 잃었다.

     

    러시아혁명이 터졌을 때, 모든 혁명 정당이 이용할 수 있는 실질적으로 조직된 당원은 제국 주민의 1%도 못 되었다. 이러한 1% 가운데 볼셰비키는 오직 하나의 분파를 이루었다. 이러한 아주 적은 사람은 자신의 목적에 이바지했고 탈진해버렸다. 191710~11월 혁명은 젊은 사람의 당에 의해 인도되었다. 그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레닌은 47살이었다. 트로츠키는 38, 부하린은 29, 카메네프와 지노비예프는 34살이었다. 10년에서 20년 뒤,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은 나이 든 세대가 했다. 그리고 이 세대는 권력의 특권에 매수된 젊은 경찰-관료제의 무게에 굴복하지 않았지만, 대중의 수동성 때문에 무너지기 직전에 지쳐 떨어졌다. 대중은 테러주의 정권 때문에 영양 부족 상태에 있었고 불구가 되었으며, 선전에 취해 있었다. 게다가 나이 든 세대는 외부세계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들이 소련 안에서 저항하고 있는 동안 전 세계의 반동 세력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위대한 민주주의자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화해했거나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인민전선의 수명, 서구 노동계급의 후위 투쟁은 나치즘, 파시즘, 프랑코의 동맹을 통해 스페인에서 박살 났다. 바로 그 순간에 스탈린의 폭력배는 러시아에서 볼셰비즘을 청산하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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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하여 의기양양한 첫 10년과 뒤이은 암흑의 10년 뒤에 우리가 러시아혁명에서 방어할 것은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역사적 경험, 아주 당당한 회고록 이것들은 이미 행운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볼셰비즘의 교의와 전술은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나는 연구실이 현장에 대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생산 체제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가 저절로 나타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도덕적이고 정치적 방식으로 헤게모니의 포기를 뜻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다시 나타날 것이고 미래의 투쟁에서 확실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미래에는 이런저런 종류의 혁명적 독재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경우에 노동자 운동의 역할이 이러한 정부의 민주적인 성격을 보증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프롤레타리아트 단독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와 심지어 민족들을 위해서. 이런 뜻에서 프롤레타리아혁명은 더는 우리의 목적일 수 없다. 우리가 이바지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혁명은 오직 사회주의적그 말의 인간주의적 뜻에서, 또는 좀 더 정확히 민주주의적이고 자유의지적인 수단을 통한 사회화한(socializing) 것일 수 있다.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당에 대한 볼셰비키 이념은 완전히 실패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심리적 배경은 불쌍한 부하린이 그렇게 당당하게 칭찬했던 이상에 헌신했던 동질적인 전투가 집단의 그룹화를 불가능하게 했다. 중앙집중주의, 규율, 그리고 지도된 이데올로기는 비록 우리가 조직적 틀이 필요로 하는 것이 나쁘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건강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모든 이것에서 러시아인들이 지지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역사의 저항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통해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사슬 말고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누군가 달린과 보리스 니콜라예프스키(Boris I Nikolaevski)가 쓴 객관적이고 타협하지 않은 저작 소련에서 강제노동(Forced Labor in the Soviet Union)을 곧 프랑스어로 번역해주길 바란다. 그 책은 우리에게 1928, 즉 소련의 테르미도르 동안 GPU 강제노동수용소에는 약 3,000이 못 되는 사람이 갇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오늘날 스탈린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몇백만의 노예가 갇혔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가장 적절한 평가는 1,000 또는 1,200만 명이다. 즉 이들 저자에 따르면, 적어도 성인 남성 인구의 16%(그리고 아주 낮은 비율의 여성)이다. 최근에 대중(Masses)에서 나는 이러한 수치가 지닌 결정적인 중요성을 낮게 보았다. 주민의 15%에 달하는 사람들이 유럽인의 생활 수준과 같은 것을 누리는 특권을 지녔다고 보면서, 나는 ‘7% 특권 노동자, 15% 천민, 78%가 비참과 가난에 착취당한 사람들이었음을 알았다. 사람들은 그러한 사회체제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방어할 가치가 있는가?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이러한 강제 노동수용소 소우주의 영향은 유럽에서 사회주의와 사회적 재조직화의 발전을 봉쇄하게 되었다. 따라서 비극은 러시아 하나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이다. 이러한 과정의 논리적 결론은 제3차 세계대전일 것으로 보인다. 다른 가능성이 가까워 있는 한, 우리는 체념하고 재앙적 결과에 맡겨서는 안 된다. 국제 사건에서 스탈린주의 정권의 공격성은 내부 상황의 중력을 통해 결정된다. 이러한 정권에 맞서 러시아와 비()러시아 대중이 반란을 일으킬 잠재적 경향은 공격(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소련 침공-옮긴이)이 시작될 때 그들의 패배주의와 그들이 침략자(독일군-옮긴이)를 해방자로 환영했던 방법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것은 또한 승리에 뒤따랐던 곤경’, 그리고 블라소프(Vlasov) 군대의 운동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것은 독일군의 포로가 된 2~3십만 명을 통해, 그리고 강제노동수용소가 꽉 들어찬 것을 통해 입증되었다. 나는 전체주의 정권이 반란의 훌륭한 공장이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러시아 사람들이 지닌 혁명적 전통 때문에 훨씬 더 그럴 것이다.

     

    러시아 대중의 사기에 대한 문서자료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정권의 철의 장악 속에서, 누군가 러시아를 알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듯이, 여전히 중요한 생명력(활기)이 있다. 일하고 건설하고 발명하고 관리하는 사람의 9/10는 비록 그들의 사슬이 부서졌지만, 노동자 민주주의에서 적극적인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을 막으려고 사회주의 러시아를 위해 제때 그들의 사슬을 부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스탈린주의 정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을 지닌 억압받는 대중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반동의 강력한 세력은 러시아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심지어 비()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훨씬 더 쉽게 반동 세력이 나타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범이슬람주의의 영향에 배여 있었던 중앙아시아 무슬림들 사이에서. 그런데도 나는 억압이 가장 잔인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 동안 소련에서 실행한 나의 관찰을 바탕으로 삼아 커다란 다수가 틀림없이 공식 사회주의(official socialism)의 사기 행각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구체제로 돌아가는 것도 심지어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러시아에서 일어난 국가가 통제한 생산으로 인한 발전이 아주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유럽 전체에서 국유화와 계획화 바람이 일어났다) 진짜 러시아 민주주의는 생산자의 이익에서 사회화된 생산을 재조직하는 데서 건강과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생산의 기술적 명령은 사회정의에 대한 열망과 공동체의 이익에 따라 경제를 또다시 세울 수 있는 새로 발견된 자유와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이고 깊이 느낀 희망이 우리에게 남아 있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지 않았다.

     

     

    멕시코,

    19477~8

    빅토르 세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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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hel Bolsey가 불어본을 영어로 옮기다.

    <한국어 출처> 실천200710월호




    <이전 글>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0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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