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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14호] 맥 인토시(Mac Intosh) 동지를 추모하며
  • 조회 수: 1151, 2021-12-30 16:36:19(2021-12-20)
  • 맥 인토시(Mac Intosh) 동지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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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동지, 맥 인토시(Mac Intosh)가 지난 827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그는 1985년 창립 이래 국제주의자 전망(Internationalist Perspective)의 주축이었다. 그는 소중한 친구이자 동지로서 몹시 그리울 것이다.

     

    처음부터 그리고 언제나, 맥 인토시는 계급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전부였던 투사이자 혁명적 맑스주의자였다. 그는 계급투쟁에 혁명가들의 참여를 강화한다는 관점에서 코뮤니스트 좌파 운동의 정치 활동에 많은 귀중한 이론적 공헌을 했다.

     

    그의 초기 정치적 경험은 10대 후반에 냉전이 시작되면서 형성되었다. 그 후 그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증가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1968년과 그 후 몇 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계급투쟁의 활성화로 활력을 얻는다. 이러한 지적, 정서적 성향은 그가 냉전 시대의 주요 제국주의와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성장한 민족해방운동과 서유럽과 북미에서의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모두 비난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수십 년간의 반동에 이어 계급 갈등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던 유럽의 산업노동계급 사이의 계급투쟁 고조를 열렬히 맞이할 수 있도록 그를 준비시켰다.

     

    60년대 중반에, 그는 맑스주의자가 되었고 좌파와 결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또한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전에 매우 중요했던 코뮤니스트 좌파의 전통을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그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지배계급의 이해와 분리하는 계급 노선의 비판적 중요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때 두 개의 불타오르는 신념이 점화되어 다른 모든 것을 이끌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모습의 자본주의 국가는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과 제국주의 사이 전쟁과 패배한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피로 그어진 계급 노선이 혁명적 분석과 방향을 위한 지침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같은 신념을 공유했던 지난 세대의 혁명가들, 특히 코뮤니스트 좌파의 전통인 노동자평의회의 중요성을 방어했던 코뮤니스트 좌파 투사들과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고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스탈린주의와 파시스트 국가들에 반대하여 제국주의 간의 분쟁에서 편들기를 거부한 빌랑(Bilan)국제주의(Internationalisme)의 투사들과 같은 혁명가들에 대한 커다란 존경심과 강한 정서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1969년에 그는 같은 견해를 가진 다른 동료들과 프랑스에서 혁명적 인터내셔널(Revolution Internationale)과 이후 영국에서의 세계혁명(World Revolution)과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를 발행한 그룹을 설립했다.

     

    이 모든 투사들에게 국제주의는 모든 수준에서 필수적이었다. 1974년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창설에 기여한 것은 그에게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그는 유럽과 북미의 주요 계급투쟁에 개입할 수 있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특히 국가 자본주의, 전쟁 경제의 발전, 지정학 및 이행기에 관한 지속적인 이론 작업에 크게 기여한 것이었다. 그러나 ICC 내의 조직적 긴장이 혁명조직과 그 역할에 대해 극에 달했을 때, 맥 인토시는 '중도주의'와 그 조직적 영향, 레닌주의 수사의 부활에 대한 논의에서 주저하지 않고 편을 들었다. 격렬하고 긴 토론과 1985년 총회에서 많은 동지를 추방한 후, 그와 몇몇 국가의 다른 동지들은 국제주의자 전망을 함께 출판하기로 했다.

     

    새로운 그룹은 비록, 조직이 자신의 원칙을 배신했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ICC의 강령을 계속해서 방어했기 때문에 자신을 "ICC의 외부 분파"(EFICC)라고 불렀다. 그러나 곧, 그 비판은 ICC의 실천을 넘어 이론적 기반으로 확대되었고, EFICC라는 이름은 삭제되었다. 그러나 맥 인토시는 맑스주의가 단지 적용되어야 할 완성된 이론이라는 널리 받아들여진 견해에 반대하여, ICC의 실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맑스주의 이론 자체의 발전 상태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 가도록 국제주의자 전망(IP)을 더욱 밀어붙였다. 그는 IP가 이른바 '맑스주의 르네상스'에 참여할 필요성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 자신도 이러한 르네상스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는 이 그룹이 "그룬트리세", "즉각적인 생산 과정의 결과" (자본론1권의 이른바 6번째 미발표 장) 등과 같은 그의 후기 작품에서 맑스의 통찰력을 받아들여 활용하도록 권했는데, 이 통찰력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널리 보급되었다. 그는 자본주의 역사의 궤적, 국가 자본주의의 발전, 개량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의 국가 기구로의 통합,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본주의 사회적 관계와 가치법칙이 생산의 전체 영역뿐만 아니라 유통과 소비의 영역에서도 침투하는 과정에서 발전된 과학과 기술의 자본주의의 본성, 그리고 가치 생산의 명령과 논리에 인간 존재의 모든 측면을 굴복시키는 것에 대한 IP의 이해를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 자본주의의 형식적 지배에서 실질적인 지배로의 전환에 대한 맑스의 개념을 특히 강조했다. 맥 인토시는 가치법칙 자체의 운영에 내재한, 자본주의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기 파괴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조직 내부 논의에 따라, IP는 기계론적 유물론, 조잡한 경제 결정론, 자본주의의 종말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자동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낳는 법칙에 기초한 목적론적 역사철학, 역사적 진보에 따른 자본주의 형식의 생산력 발전 양식에 기초한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역사 유물론"이라는 비전을 종합적으로 거부했다.

     

    IP 설립 이후의 기간은 혁명적인 맑스주의자들에게 힘든 시기였다. 우리는 혁명적 고조 사이에서 가장 긴 시기를 겪었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발전하였으며,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1968년 이후의 혁명적 낙관주의는 세계 자본주의 아래 사회생활의 새로운 현실이 진화하면서 소멸하였다. 모든 맑스주의 그룹들은 이것을 받아들여야 했고, ()혁명적 환경이 상당한 손실을 보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제주의자 전망은 이에 지지 않았다. 맥인토시는 공개 토론과 이론적 심화에 초점을 맞추는 원동력이었다.

     

    소련의 붕괴, 테러와의 전쟁, 2008년 금융 붕괴, 사회적 투쟁의 세계적 부활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 지정학, 집단 노동자의 진화, 혁명적인 주제에 대한 더 깊은 분석을 요구했다. 맥 인토시는 우리 웹사이트의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토론과 글쓰기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동시에 그는 대량학살, 특히 홀로코스트의 의미, 인류에 대한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맹공격의 진화에 반대하는 작업을 했다. IP는 가까운 미래에 그의 글 모음집을 출판할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 문제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단순히 지적 운동으로서 그 자체를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문제에 관한 어떠한 통찰력이 드러날지 보기 위해 항상 다양한 관점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는 특히 새로운 맑스-읽기(Neue Marx-Lektúre)와 그 후속에 관심을 두게 되었지만, 특히 그의 분석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필수적인 국가에 대한 그들의 견해에서, 다양한 지지자들의 정치적 견해를 예리하게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맑스주의 르네상스에 기여할 수 있는 코뮤니즘화(communization)의 이론적 요소, 특히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특징인 노동을 긍정하는 것에 대한 거부와 함께 혁명 과정 자체에 필수적인 코뮤니즘화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코뮤니즘화는 노동을 넘어선 생산과 노동 형태를 구체화하고 가치 형태가 마침내 사라진 인류 공동체의 사회적 기반을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본주의 파괴에서 의식적인 부분의 역할을 간과하는 것을 강력히 비판하였고 그 필연성에 관한 견해가 역사 유물론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그가 연구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든 맑스주의 이론적 무기고에 추가하여 자본주의와 모든 착취에 대한 투쟁에서 계급투쟁과 혁명적 주체의 출현에 기여하려는 의도였다. 이 점에서 그는 결코 전투적인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투사인 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확고한 신념으로, 맥 인토시는 국제주의ICC의 설립에 착수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는 조직이 원칙을 져 버렸을 때 그 조직을 떠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분석적으로 엄격하고 명료하며, 논쟁에 있어 용감한 그는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대했으며, 항상 비판적 사고를 장려하기를 열망했다. 맥 인토시는 정치적 삶 전체를 통해 언제나 우리의 사랑스럽고 존경받는 동지였다. 우리는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그칠 줄 모르는 장난기를 그리워할 것이다.

     

    20219

    그의 영원한 동지, 국제주의자 전망(IP)

     

     


    <출처>

    https://internationalistperspective.org/mac-intos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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