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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당은 1914년에... 노동계급과 "연계가 끊어졌다"
  • 조회 수: 3204, 2022-01-27 18:33:24(2021-12-28)
  • 노동당은 1914년에... 노동계급과 "연계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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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글은 영국 노동당이 노동자정당에서 자본가정당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노동계급이 이들과 단절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으며, 한국의 이른바 진보정당과 비교하며 읽기를 권한다.


     

    "노동당은 노동계급과 연계가 끊어졌다." 이것은 1974년 선거구로 만들어진 이래 하틀풀(Hartlepool) 보궐선거에서 노동당이 처음으로 패배한 후에 나온 이야기로, 노동당이 진지하게 공직을 놓고 경쟁할 수 있는 정당으로서 신뢰를 되찾기를 간절히 바라는 좌파들의 탄식이다.

     

    그러나 우파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탄식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승리의 선언이다. 우리는 이제 보수당이 영국 노동자의 정당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보수당만이 "좌파", "백인 노동계급" 또는 "열심히 일하는 서민"의 현실적 고민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년간 토리 보수당의 선거 성공은 과거 노동당을 굳건히 지지했던 다수의 노동계급 유권자를 압도하는 그들의 능력, 이른바 붉은 벽돌에 큰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1]

     

    노동당이 유럽의 다른 많은 사회민주당(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과 함께 점점 더 선거의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특히 프랑스의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이탈리아의 라리가(La Liga), 스페인의 복스(Vox), 영국의 독립당(UKIP)과 같은 포퓰리즘 정당으로 조직되었든, 영국의 토리 보수당이나 미국의 공화당처럼 포퓰리스트의 구호와 태도를 가져다 쓴 전통 정당을 통해서든, 많은 나라에서 포퓰리즘이 부상한 이후 두드러졌다. 오늘날 우익 밈(이민, 범죄, 인종, 젠더와 같은 문제에 대한 반() 자각적 자세)'국가 공동체'의 복지에 거액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종의 신케인즈주의를 결합하면서, 정치 생활에서 '기성 엘리트'를 비난하는 데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포퓰리스트들이다. 이것은 봉쇄 기간의 일시 휴가 계획과 코비드19 백신에 대한 연구 및 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보수당 정부가 거액을 지불한 것으로 대표된다.

     

    노동계급의 진정한 대표자로 자신을 내세우는 포퓰리스트의 능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계급 정체성의 상실을 상징하는 것으로, 위기에 처한 체제 앞에서 노동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글에서[2] 더 길게 썼지만, 요약하면 계급정체성의 상실은 엄청난 이데올로기 캠페인(특히 1989년 이후 이른바 "코뮤니즘 붕괴"를 둘러싼 캠페인)과 세계 생산 조직의 물질적 변화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노동계급이 사라지거나 전통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다는 생각을 강화하기 위해 결합되었으며, 많은 새로운 부문(통신, 서비스 등)에서 임금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특히 대도시에서는 본질적으로 "중산층"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다른 부분들 사이의 진정한 이해관계의 통합은 브렉시트를 둘러싼 캠페인으로 대표되는 잘못된 선택의 연막 뒤에 숨겨져 있다, 이는 친EU 성향의 "도시 엘리트"와 존슨(Johnson)의 구호인 "브렉시트 완수"를 지지하는 붉은 벽돌 유권자의 대결이었다.

     

    코빈(Corbyn)이 가장 희화화한 방식[3]으로 표현한 브렉시트에 대한 노동당의 임시방편은, 노동계급의 이러한 서로 다른 부문에 호소하는 노동당의 무능력을 표현했으며. 일반적으로 잘못 명명된 도시 엘리트 또는 중산층과 점점 더 동일시되고 있다.

     

    따라서 가디언과 같은 좌파 신문의 오피니언 기고자에게 중요한 문제는 노동당의 새로운 고객과 잘못된 이전 지지자를 모두 끌어들일 수 있는 정책을 찾는 방법이다. 그들은 대유행을 둘러싼 토리 보수당의 실패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의 비공식적인 정부 장관 로비와 같은 스캔들에 대한 옛 토리당의 추잡함과 다우닝가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의 아파트 개조 비용을 누가 지불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스타머(Starmer)의 부정적인 접근에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그들은 노동당이 "진보적인" 문화, 사회적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서 녹색 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결합하는 긍정적인 정책을 내놓기를 원하고 있다. 한편, 현재 토리 보수당원들이 고도화(levelling up)”라는 약속으로 출마하고 있고, 대유행과 봉쇄로 드러난 기괴한 사회적 불평등을 극복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안타깝게 인식하고 있다.

     

    노동당의 선거 패배는 노동계급의 패배가 아니다.

     

    블레어에게 돌아가든, 코빈에게 돌아가든, 아니면 새로운 연금술 혼합물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든, 노동당의 승리 공식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그 질문이 완전히 다른 용어로 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계급과 연계한다는 것이 실제로 그것의 조직화한 표현 중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면, 노동당은 자본주의 기계에서 완전히 작동하는 톱니바퀴로 변모했을 때 노동계급과 연계가 끊어졌다“.

     

    19세기 후반,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우리는 맑스처럼 코뮤니스트라는 용어를 선호한다)은 대규모 노동자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 활동했는데, 이것은 노동조합과 함께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내부의 뚜렷한 사회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의 일부였다. 확장하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개혁을 위해 싸우면서 동시에 인류 역사상 완전히 새로운 단계를 시작할 사회주의 사회의 관점을 발전시킬 수 있는 세력이었다. 그러나 정확히는 자본주의가 성공적인 확장과 상승의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정당(독일의 사회민주당, 그리고 20세기 초에 결국 노동당에 모일 조직들) 안에는 이러한 새로운 사회가 가능성뿐만 아니라 필수적인 필요성이 되리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자본주의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점점 더 많은 틈이 있었다. 사실 노동당이 창당되었을 때, 그 강령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SPD(독일사회민주당)의 개량주의자 주요 대변인 에두아르트 베른스타인(Eduard Bernstein)"운동은 모든 것이고, 목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회민주당과 달리 노동당은 사회주의 혁명의 "최대강령"이라는 목표조차 방어하지 않았다.

     

    이 중요한 논쟁은 1914년의 사건으로 해결되었다. 제국주의 전쟁의 대학살은 인류가 직면한 선택이 개혁이냐 혁명이냐가 아니라 혁명이나 야만이냐 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쇠퇴의 시대에 접어든 자본주의는 인류의 생존에 점점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과 다른 나라에서의 혁명 운동은 자본주의의 파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즉 노동자평의회의 국제적 권력에 의한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를 통해서라는 것을 확인 시켜 주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직면한 노동당은 다른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의 다수와 함께 그러한 선택을 했다.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한 노동당이 애국심에 굴복하여 학살을 위한 "병사 모집"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1917년 이후 혁명의 위협에 직면했는데, 영국에서도 그 반향을 일으켰다. 그 슬로건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자본주의 국가의 편에 서라였다. 러시아혁명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과 1919"레드 클라이드 사이드(Red Clydeside)" 파업과 같은 일부 매우 전투적인 노동자들의 투쟁에 직면한 노동당은 노동계급 내에서 증가하는 혁명적 열망을 흡수하거나 탈선시키기 위한 선동적인 슬로건을 채택했다. 1918년에 채택된 유명한 당헌 "4조항[4]은 노동당이 사회주의로 위장 전환했다는 증거였으며,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 관계의 마지막 성벽으로서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헌신이었다.

     

    몇 년 후 1924년 노동당은 실비아 팽크허스트가 1920년에 예측한 대로 집권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에 완전히 통합되었음을 확인 시켜 주었다: "영국 노동당은 다른 나라의 사회애국주의 단체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자연적 발전 속에서 필연적으로 집권하게 될 것이다. 사회애국주의자들을 전복할 세력을 만드는 것은 코뮤니스트의 몫이며, 이 나라에서 우리는 그 일을 미루거나 주저해서는 안 된다."[5] 그리고 팽크허스트는 레닌의 견해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지도력에 대한 자신의 반대를 반영하면서 "우리는 노동당의 힘을 보태는 데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노동당의 권력 상승은 불가피하다. 우리는 그것을 무너뜨릴 코뮤니스트 운동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요컨대, 오늘날에도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다른 좌파들에 의해 여전히 전파되고 있는 입당주의라는 생각, , 노동당에 입당해 내부에서 그것을 변환시킬 수도 있고, 또는 적어도 노동당의 상당수를 혁명으로 이끌어 승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역사는 적()의 계급 진영으로 넘어간 당의 본질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의 필수적인 구성요소인 그것을 파괴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급 운동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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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또는 야당, 자본의 당

     

    그 이후의 사건들은 이러한 결론을 더욱 강화했다. 1917~23년의 혁명적 물결의 패배는 제2차 세계 제국주의 전쟁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노동당은 무엇보다도 "파시즘에 맞선 인민 전쟁"(스탈린주의 "코뮤니스트당과 대다수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공감한)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병사 모집의 휘장을 과시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1914~18년 대학살에 뒤이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불만이 되살아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노동계급을 기존 체제와 함께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무엇보다 1948년 국민보건서비스(NHS) 도입과 같은) 국가자본주의적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다시 집권한 것은 바로 노동당이었다.

     

    다시 1968년 이후 몇 년 동안, 새로운 경제 위기와 새로운 노동자 투쟁의 물결에 직면한 노동당은 프롤레타리아 위험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대응과 아주 잘 들어맞았다. 첫째는 노동자들에게 좌파가 권력을 다시 잡을 수 있는 밝은 전망을 제공하는 전략이었고, 그다음은 집권 노동당이 시작한 노동 조건에 대한 공격에 맞선 노동자들의 분노(1979년 불만의 겨울처럼)를 대처의 보수당 사이에 일종의 역할 분담으로 처리해야 했다. 일자리에 대한 잔혹한 공격을 실행하는 정권의 권리와 순전히 부르주아적인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는 야당인 노동당. 전략은 바뀌었지만, 계급투쟁을 관리하려는 목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89년 이후 우리는 계급투쟁에서 장기적인 후퇴의 시기를 겪고 있는데, 이는 지배계급 내부의 분열이 점점 더 잔혹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사회적 분열의 시기이다. 이런 맥락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한 노동당의 역할은 점점 더 복합적이고 혼란스러워졌다. 그것의 주된 역할은 더는 떠오르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탈선시키는 것이 아니며, 브렉시트 대실패로 인한 상처에서 볼 수 있듯이, 지배계급의 내부 분열에 점점 더 휘말리고 있다.

     

    앞으로 계급투쟁이 부활하면 노동당을 사회주의 세력으로, 진정한 노동자정당으로 내세울 새로운 추동이 있겠지만, 노동당이 어떤 정책을 채택하든, "스타머라이트(Starmerite)" 존경심이든 "코비나이트(Corbynite)" 급진주의든, 그것이 노동당의 계급적 성격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노동계급은 선거라는 부르주아 지형이 아니라 자신의 요구와 정치적 전망, 즉 사회의 밑바닥에서 최상층까지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와 사회 변혁의 전망을 위해 투쟁함으로써 완전히 의식적인 방식으로 자본가 정당인 노동당과 단절해야 할 것이다.

     

    2021516

    아모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

     

    [1] 하틀풀(Hartlepool) 선거의 낮은 투표율(42.7%)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노동자들이 토리당에 투표하기보다는 노동당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투표를 포기한 결과이다.

     

    [2] 계급투쟁에 관한 보고서 :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체성의 형성, 상실 및 재정복

     

    [3] 20191월 영국 상황에 대한 결의안 참조.

     

    [4] <역자 주> 당헌 4육체노동자나 정신노동자가 충분한 노동의 대가와 가장 공정한 분배를 보장받으려면 생산·분배·교환 수단의 공동소유라는 바탕 위에서 모든 산업과 서비스를 대중이 관리하고 통제하는 체제가 확립돼야 한다.”

     

    [5] 1920221, 노동자전함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018/labour-party-lost-touch-working-class-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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