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을 내면서
  • 조회 수: 1776, 2022-03-22 14:48:59(2022-01-24)

  •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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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이 가까워졌다. 선거 이야기에 앞서 기회주의자들이 그토록 고려한다는 현실에 대해 살펴보자.

     

    현실의 청년들은 갈수록 악화하는 삶의 조건(취업 경쟁, 열악한 주거, 부채, 높은 실업률 및 저임금/과로/위험/불안정노동 등)에 수없이 좌절하며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어항 속 물고기의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고단한 삶은 가진 것 없는 중노년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연간 2억을 써도 백화점 VIP 회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기사가 뉴스 사이트에 올라온다. 기사에 따르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약 4,000~5,000만 원을 더 소비해야 안정적으로 최상위 등급에 속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보복 소비로 명품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백화점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고, 계급 사이의 신분 이동은 몇 세대를 지나도 거의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체제의 근본적 문제를 선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까? 설령 급진적 공약을 내건 후보가 당선된다 해도, 청와대와 국회 밖에 있는 더 큰 권력을 제압하고 공약 그대로 실현할 수 있을까?

     

    기성 정치인의 민생 공약조차 그대로 믿고 투표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이른바 사회주의 후보가 선거를 통해 체제를 바꾸겠다고 내건 공약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중은 선거를 통해 얻은 수많은 경험이 있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선거가 아니라 혁명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득표가 아닌 사회주의 선전을 위해 선거에 뛰어들었을 때 겪게 될 현실이다.

     

    이번에는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더는 통합진보당’, ‘진보정치’, ‘좌파정치운운하면서 고리타분한 대립을 논하지 말자. 가까이에서 보든, 멀리에서 보든, 우리 주변에 펼쳐진 노동자 투쟁 정치와 미디어에 비친 진보정치는 그 어느 것도 공통점이 없다. 정확히 말해, 96~7년 노동자 총파업 투쟁 이후, ‘민주노총 정치방침으로 형성된 진보정당(정치)’시대는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하면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치가 노동계급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낡은 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지금 필요한 것은, 진보정당에 제물을 올리고 축문을 읽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야권연대 진보정당을 비판하면서, 이른바 지도력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공동전선(통일전선)을 통한 노동자 독자정당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정치노선적으로 실체도 불분명한 민족해방 좌파, 중앙파, 현장파를 포함한 공동전선 당은 무엇보다, 한국 프롤레타리아 정치운동의 위기를 계급정치의 부활이 아닌 지도력의 정치에서 찾는 점에서 노동계급에 치명적이다. 또한, 통일전선 당은 그간에 진행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당 건설 공동 활동 경험과 노력을 폐기한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진행되는 공동전선 당 전략은 기껏해야 계급성과 혁명성도 애매한 진보좌파연합으로 수렴될 것이다.

     

    계급투쟁의 무기력함에서 오는 비관주의와 조급성, 여러 차례 패배의 자책감 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활동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 파업과 거리투쟁을 통해서 동지를 찾아내고,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투쟁을 통해서 새롭게 올라오는 대중의 잠재적 힘을 주목해야 한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금 혁명운동의 정치원칙을 강인하게 사고해야 할 때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출범하면서, 2012, 국제코뮤니스트전망)

     

    1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당 이름과 문구 몇 개만 바꾸면 현재 상황과 거의 같을 정도로 변한 게 없다. 통합진보당 대신 정의당과 진보당, 노동자 독자정당 대신 부르주아 진영으로 넘어간 진보정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 강령 통일과 실천에 따른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 대신 의회주의 좌파 정당에 흡수된 이른바 사회주의 대중정당, 그리고 노동자 운동 내부의 선거주의 고착화가 변화의 전부이다. 이렇게 후퇴와 타락을 거듭한 운동 속에서 선거주의자들은 어떠한 반성과 성찰도 없이, 또다시 '혼돈' 또는 '최악'이라는 부르주아 선거판에 뛰어들어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현실 선거는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부르주아 선거판은 온갖 거짓과 비방, 혐오, 음모론으로 가득 찬 하수 처리장이 된 지 오래다. 부르주아 정치는 이러한 악취 나는 권력투쟁이 본질이지만, 민주적 선거를 통해 위기관리와 계급투쟁 완화 역할을 한다. 부르주아지의 민주적 통치에는 오염된 정치를 정화하겠다는 급진적 부르주아 분파도 필요하고, 이른바 노동/진보/좌파의 참여도 필요하다. 그들을 부르주아 정치로 흡수해 계급 간 대립을 체제 내에서 관리하고, 선거 시기에는 노동자 대중이 정치혐오와 정치 참여 사이를 오가면서 선거 환상 속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노동/진보/좌파 진영의 단일후보 선출(민중 경선)이 무산되었다. 이번 후보 단일화 무산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민주노총에 일부 기반을 두었지만, 부르주아 진영에 속하거나 민족주의/계급협조 세력에 포함되는 이른바 진보정당과의 후보 단일화(선거연합)는 계급적 원칙과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과, 어떠한 명분으로도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나 사회주의 정치와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만약 계급적 원칙이 우선이었다면, 그동안 계급을 배신하고 투쟁을 교란한 과거에 대한 반성과 부르주아 정치와의 단절을 전제조건으로 선거를 넘어 공동투쟁에 나섰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자 권력이라는 목표와 노동자민주주의라는 계급의 원칙을 명확히 하지 않는 선거-정치 연합은 부르주아 정치를 넘어서는 대안이 될 수 없고, 자본주의 체제와 싸울 무기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렇게 암울한 현실에서 우리는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에 관한 코뮤니스트 원칙을 근본적으로 밝히고 현실 투쟁에 복무하기 위해 사상투쟁을 시작하려 한다.

     

    우리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된 선거홍보물 비판이나 선거에 대한 강령(전략적) 원칙을 반복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우리 비판의 핵심은 사회주의자를 자임하는 세력의 운동적 퇴보와 그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낡은 후보 전술이 계급의식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공공연한 선거주의자들은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교주주의라 왜곡해서 비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의회주의-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선거 참여는 전술일 뿐이라며 선거 자체를 거부하는 우리를 초좌익으로 몰아가며 깎아내린다. 후자의 논리는 대부분 레닌 저서(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와 트로츠키 입당 전술(1934, 프랑스 전환)의 무비판적 수용에 기인한다. 역사 학습에 게으르거나 한쪽만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인 운동가들은 여전히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러시아에서는 적합할 수 있으나 서유럽에는 맞지 않고 오히려 기회주의자들에게 문을 열어 준) 낡은 문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운동의 원칙을 훼손하고 계급의식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번의 선거 전술 실패 사례만 살펴보아도 선거주의자들의 거짓은 쉽게 드러난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그들의 선거 참여가 계급의식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퇴보하는 운동의 역사는 오류를 반성하지 않는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지만, 혁명적인 운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근본적으로 밝혀내 바로잡는 것으로 운동을 발전시킨다. 혁명운동의 걸림돌은 좌익의 급진적인 행동으로 타격을 받는 것보다 기회주의자들이 계급 운동에 들어와 계급의식을 후퇴시키고 투쟁을 교란하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기어서라도 국회에 가겠다."라는 선거주의 폐해를 노동자 운동에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타락한 운동의 상징일 것이다.

     

    부르주아 선거에 임하는 코뮤니스트 원칙은 자본주의 체제의 혁명적 전복과 노동자 평의회 국제 권력 수립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노동자 운동 내부에서 당연시했던 것과는 전제 자체가 다르다.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발간했고, 코뮤니스트 좌파의 의회/선거 강령에서부터 지난 10년간의 한국 선거 평가, ()의회주의 투쟁 역사까지 전반적으로 다루었다. 우리는 이번 대선만이 아니라 앞으로 노동계급이 주기적으로 치르게 될 모든 부르주아 선거에서 계급적 입장과 노동자 정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을 발간한다.

     

    마지막으로 계급의 대변자를 자임했던 자들이 가장 많이 배신하는 경우는 탄압받을 때가 아니라 선거 기간이며, 노동자들이 희망을 갖는 것은 선거가 아니라 투쟁에 나섰을 때라는 것을 강조한다.

     

    "해방을 위한 투쟁 속에서 당연히 온갖 오류를 다 범하게 돼 있다.

    그러나 자신 한 몸의 영달을 위해 사는 것보다 더 무서운 오류는 없으니 그래도 투쟁하는 게 더 낫다."

    (한 혁명가의 회고록, 빅토르 세르주)

     

    폭력의 힘에 맞서는 수단이 희망이라면

    그 희망의 전부가 오로지 비폭력적 희망으로 존재한다면

    희망이라는 힘이여!

    우리에게도 격렬한 희망을 다오

    격렬을 뛰어넘어, 망각과 평화와 저항마저도 뛰어넘어

    희망에게도 폭력적인 희망이 존재할 수 있게 해다오

    (...)

    희망을 빼앗고 절망조차 넘겨받은 힘없는 희망들이

    이제 곧 격렬한 희망으로 길바닥 나뒹구는 돌맹이가 되리니...”

    (격렬한 희망, 임성용)

     

     

    2022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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