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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키 : 노동계급이 왜 노동조합 투쟁을 넘어야 하는가?
  • 조회 수: 3875, 2022-04-28 19:45:11(2022-03-18)
  • 터키 노동계급이 왜 노동조합 투쟁을 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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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기사에서 우리는 많은 부문에서 발생한 파업을 언급했다.(1) 알파인 삭스(Alpin Socks) 공장, BBC 터키, 트렌드욜(Trendyol)의 노동자들은 이미 파업으로 쟁취했고, 다른 파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또한 우리는 노동자들의 서면 및 시청각 인터뷰에서 연대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도 들을 수 있었다. 보기를 들면, 미그로스(Migros) 식료품 창고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미그로스 회사는 인근 지역에서 새로운 노동자들을 데려와 파업을 막으려 했지만, 새로 들어온 노동자들 역시 파업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많은 부문의 노동자 단체들이 서로에게서 얻은 용기로 파업에 돌입했다고 차례로 선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때때로 경찰의 공격을 받는다. 미그로스 창고 노동자의 경우가 그랬는데, 150명 이상의 노동자가 구금되고 250명이 해고되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파플러스 오토모티브(Farplas Automotive)라고 생각한다. 터키 진보노동조합총연맹(DISK)산하 금속노조연합(UMW)이 조직한 코자엘리-게브제(Kocaeli-Gebze) 파플라스 공장 노동자들이 노조 권리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그 결과, 150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 이에 교대 근무 중인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노조 권리와 동료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경찰이 공격을 준비하자, 노동자들은 공장 옥상에 올라가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 200명의 노동자가 연행되었다. 이 상황은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늪으로 끌어들인 것을 보여주지만, 노동조합이 투쟁을 가두는 '법적 한계'가 노동계급을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노동조합의 '법적' 한계를 넘어선 노동자들이 자신만의 투쟁 방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기를 들어 미그로스(Migros), 트렌디욜(Trendyol)과 예멕 세페티(Yemek Sepeti)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동안 이들 회사에 대한 보이콧 요구가 있었다. 불매운동은 노동자들에게 빠른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도구를 주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파업을 지역적이고 법적인 관점으로 축소한다. 게다가, 불매운동에 대한 대다수의 지지는 미그로스가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싸워야 할 적()이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보다는 권리를 무시하는 소수의 자본가 회사로 전락한다. 자본과 노동계급의 '중재자'로서의 노동조합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노동계급을 '타협'으로 이끌며, 투쟁을 부르주아지에 대한 노동계급의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여기게 만든다. '권리 투쟁'은 노동계급의 투쟁을 자본주의 체제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유지하게 하고, 투쟁의 정당성은 부르주아지 법이 규정한 틀 안에서 유지하게 한다. 정치적으로 '권리'는 부르주아지의 경제,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노동계급이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법적, 물질적 '이익'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것이 트렌디욜(Trendyol)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38.8%의 임금 인상을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독립노조 대변인이 앞으로의 투쟁에서 불쾌한 행동은 멀리하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한편 예멕세페티(Yemeksepeti) 택배노동자를 조직한 나클리야트(Nakliyat) 운송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나클리야트의 지도 아래노동자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르주아 좌파와 노동조합은 현재 터키에서 벌이는 행동에서 자신을 계급으로 대체하고 노동자들의 진정한 투쟁을 무시함으로써 그들의 스탈린주의적 반영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가 쟁취한 성과는 노동조합 방식이나 자본가, 개량주의 좌파의 조직과 정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용기, 연대, 단결을 통해 이루어진다. 코뮤니스트로서 우리의 임무는 노동계급의 의식을 혁명적 수준으로 높이고, 노동자 투쟁을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시키고, 노동계급 자신의 당인 세계혁명당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지, 계급을 대신하여 투쟁을 그늘에 남겨두거나 계급과 분리된 지도력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이 왜 노동조합 투쟁을 넘어야 하는가?


    전체 노동자-노동조합-자본주의 삼각관계에서, 노동자 투쟁의 첫 번째 수단이 노동조합 안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법적인 투쟁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영역은 노동조합이다. 생존 위기에 몰린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법적 틀은 해고를 두려워하는 노동자에게 유용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얻은 성과는 자본주의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본질과 이데올로기 공격을 인식하고, 중재 도구(자본가 정당, 노동조합, 선거 등과 같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인식을 통해 국제적 차원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노동자들은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투쟁에서 영구적인 이익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투쟁에서 맑스주의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비판을 활용하는 이유이다.

     

    또 다른 맥락에서 맑스가 말했듯이, “만약 사물의 현상과 본질이 같다면 과학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 뒤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노동조합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현실이 드러난다.” (2)

     

    노동조합은 역사적으로 항상 중재자역할을 해왔지만, 과거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것이 항상 명확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중재자로서의 주된 역할이 '타협'이지만, 항상 자본가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숨길 수 있는 걸림돌은 없다. 개량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의 유일한 문제가 지도자나 관료화에 있다고 보고, 노동조합을 혁명가들이 장악해야 하는 투쟁의 장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조합을 이끄는 사람이 누구든 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왔다는 수많은 경험으로 거듭 반박되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구체적인 특징이 아니라 역할과 기능을 살펴봐야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자본과 노동 사이의 중재자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요소이다. 19세기에 등장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직접 만들었다. 19세기 후반까지 노동조합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모순이 고조되고 제국주의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국가는 체제를 유지하려는 과정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그 일환으로 노동조합이 착취율을 고정시키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은 점차 자본주의에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국가는 노동조합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법적 지위도 부여했다. 따라서 노동조합 역시 '합법성'의 틀 안에 갇혔다. 그리고 그들은 1차 세계 대전 중에 파업을 중지하고 각 국가 자본의 전쟁 목표에 대해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 보상했다. 그리고 그 이후 노동조합이 이 체제에 대한 충성을 다짐할수록, 노동자에게 여기저기서 약간의 부스러기를 주면서, 그들은 더욱 관료적으로 되었고, 노동자의 진정한 이익을 점점 더 대변하지 못하게 되었다노동조합이 이렇게 변한 것에 대한 비판적 이해는 노동조합을 떠나라라는 추상적인 주장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혁명가로서 노동조합의 (낮은 지위를 포함하여) 어떠한 공식 지위도 거부하지만, 우리는 항상 노동자들이 있는 곳에 있다. 우리는 관료주의에 얽매이지 않을 때만 노동자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을 지지하지만, 노동자들이 자신의 집회와 선출된 파업 위원회에서 자신만의 투쟁 형태를 만들 때만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노동조합 투쟁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계급이 자신감을 얻고 광범위한 대중에게 투쟁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위기 속에서 다시 일어선 계급투쟁은 스스로 '권리'와 개혁을 강요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갇힌 좌파를 피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오직 혁명적인 국제 계급투쟁만이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고, 지구의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본주의의 고조되는 위기는 이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쟁취할 세계가 있다!


    2022218

    미미와 메두사(Mimi and Medusa)

    터키의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지지자

     


    <>


    <사진> 사진 속 현수막과 피켓에는 “DISK가 우리를 속였는가?”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불행을 초래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손을 잡고 있다.” 등이 적혀 있다.


    (1) 터키: 노동자들은 전 세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2-02/turkey-workers-are-trying-to-find-their-own-voice-all-over-the-world

     

    (2) 노동조합 - 그들은 누구의 편인가?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0-03-01/unions-whose-side-are-they-on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02-18/turkey-the-trade-unions-are-an-obstacle-to-all-workers-strug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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