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15호] 선거, 부르주아 통치의 화려한 사기 전술
  • 조회 수: 1840, 2022-05-23 13:18:51(2022-05-09)
  • 선거, 부르주아 통치의 화려한 사기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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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에서 행해지는 모든 선거는 노동계급의 현실과 고통을 감추고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환상을 퍼트린다. 밤에 태양보다 촛불이 더 밝다고 태양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부르주아 선거판을 넘어 사회 곳곳에서는 촛불이 진리고 암흑을 비추는 등대로 자리 잡았다. 부르주아 독재는 자유민주주의로, 간접민주주의는 의회민주주의로, 민족주의는 진보로, ()노동주의와 반()여성주의는 공정과 정의로 포장되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교과서를 벗어나 보편타당한 진리로 둔갑했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파렴치한 언행뿐만 아니라 그들이 만든 법도 개정하고 없던 법도 만드는 국회는 박물관에나 존재하여야 할 소수정, 귀족정이나 다름없지만, 의회민주주의라는 화려한 치장으로 현혹하고 있다.

     

    이쯤 되면 부르주아 정치는 치졸한 사기술이기도 하다. 한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늘 지배계급의 사상이었듯이 부르주아의 사기는 이데올로기 기관을 통해 재생산화되고 일상 곳곳에 파상적으로 침투해있다. 그 정점에 선거판이 있다. 이 글은 자본주의 국가의 각종 선거가 어떤 역할을 하며 지배계급이 선거를 통하여 어떤 이익을 얻는지에 대한 비판과 노동계급의 역할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선거 : 옛것이 새것으로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지배계급 분파의 20대 대통령선거는 언론과 검찰 권력의 비호를 받는 분파가 승리했다. 윤석열은 아직 취임도 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그리고 노골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공격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 각종 경제 규제 완화, 차기 정권 인사에 시장주의자와 비리 인물 내정 등 본색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권이 반자본/친노동적이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시장주의자 등용과 친자본 정책을 추구했다. 선거 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약속은 수많은 노동자에 대한 사기였다. 새 정부는 일터, 가정,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노동이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노동자 관점의 정책, 법제도 등을 만들어 달라라며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첫 일정에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국민건강보험센터, 발전 비정규직, 가스공사 비정규직, 인천공항 비정규직, 법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장서 싸우겠다라고 주장하고 있다.1)

     

    결국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정권과의 차이는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노골적인 친자본/반노동의 본질은 같다. 지난 5년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가격 폭락 방지책, 임신 중지를 범죄로 낙인찍는 모자보건법의 개정안, 디지털/그린 뉴딜 같은 전형적인 자본 이윤추구 정책과 반()노동 정책은 자본의 이해관계에 대한 철저한 반영이다. 남 대 여, 정규직 대 비정규직, 지역주의, 민족주의 등의 갈라치기 통치방식은 정국의 고비 고비마다 요긴하게 이용되고 재생산되었다. 그런데도 선거판은 옛것(자본 이해관계에 대한 옹호와 적대적인 노동정책과 인물, 제도 등)을 새것으로 둔갑시키고 환상을 퍼트린다. 이것은 현존하는 각종 위기의 원인인 자본주의에 생명 연장 장치를 달아주는 꼴이다.

     

    전쟁, 기후 위기, 대유행, 경제위기(부동산값 폭등, 청년실업, 빈부격차 가속, 임금과 이윤 격차 증대) 등 자본의 위기로 발생한 상황을 감추기 위해 지배계급은 선거에서 피지배계급의 편을 가르고 경쟁하는 지배계급끼리의 비방전으로 본질을 감추고자 했다. 자본의 위기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불만을 선거판을 통해 갈라치기와 흑색선전, 가짜뉴스를 통해 체제에 위협적이고 위기의 원인을 피지배계급의 특정 집단을 적으로 만들어 본질을 가렸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는 각종 위기에 대한 진단 능력도, 극복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이런 위기를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자 여러 환상을 퍼트리는데 선거는 아주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과 코뮤니즘에 대한 지향을 차단하고 노동자에게 환상만 심어준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사기 공약과 자유주의적 시각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는 경제위기를 비롯한 각종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공약은 처음부터 지켜질 수 없는 헛공약이 남발된다. 문재인 정권이 지난 4년간 달성한 공약 이행률은 17.5%이다. 공약 이행률이 저조했던 건 문재인 정권만이 아니다. 역대 정권 중 공약 이행률이 50%를 넘은 정부는 단 한 곳도 없다. 물론 특정 정권을 공약 이행률 수치로 평가하는 것은 단면적이다. 공약 이행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특정 집단의 표심을 얻기 위한 공약의 이행여부다. 가령 문재인 정권은 탈원전,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언론/검찰 개혁 등의 공약으로 개혁적 이미지로 미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위 공약은 말뿐인 공약이었다. 그 이전의 민주당 정권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면 친자본 정책은 철저하게 이행되고 시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노동자에게는 헛공약이 아닌 사기 수준이다.

     

    기만적인 공약은 노동자에게는 사기이지만 지배계급에는 정권 쟁취와 유지의 핵심이고 통치 철학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정권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불가능한 공약을 들고 선거판에 뛰어든 운동 세력과 진보정당이 자본주의 좌파 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왜 사기 공약인 줄 알면서 지지와 환호를 보내는 것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성장이데올로기이다. 성장이데올로기는 경쟁적으로 경제공약을 내놓는 기반이고 자본주의 모순을 감추는 특효약이다.

     

    선거 때마다 복지를 포함한 경제는 늘 핵심 이슈였다. 경제와 복지 공약은 성장이데올로기를 전제로 정책을 내놓고 집권한 시기에도 경제성장률은 핵심 선전 내용이 된다. 여기에는 성장 위에서만 분배, 복지 등의 논의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지배계급은 파이가 커지면 조각도 커진다.’라는 논리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이 논리로는 빈곤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격차가 더 가속화될 뿐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서는 성장과 착취, 수탈은 결코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에 대한 착취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지탱될 수 없기에 이런 의도는 자본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성장이데올로기의 허구는 자본축적의 상징인 고층빌딩과 빈곤의 상징인 슬럼가가 동시에 존재하는 모습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슬럼은 첨단 건축 재료를 사용하고 근대 이전에 존재하지 않는 근대의 산물이다. 슬럼가 사람들은 고층빌딩 청소부, 경비 등으로 경제체제에 결합하여 빌딩을 더 고층화하기 위한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복무하는 철저한 착취 속에 있다. 결국 경제성장이 슬럼을 고층 빌딩화한다는 것은 속임수이며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회를 고층, 슬럼으로 이원화하는 데 불과하다.

     

    또한, 성장이데올로기의 전제는 정치와 경제를 따로 분리하는 자유주의적 이분법에 기초해 있다. 이런 시각의 바탕에는 억압적 사회구조들은 독재로 상징되는 잘못된 정치가 없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문제의 근원은 국가의 권위주의적 개입에 기인하므로 국가의 경제개입 배제 및 시장원리가 보장된다면 문제는 없어지고 이후에 경제성장은 민주주의를 위한 토대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박근혜에 대한 지지의 핵심은 박정희에 대한 신드룸이었다. 박정희 신드롬의 핵심은 성장이데올로기이다. 또한 성장이데올로기는 문재인 정권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탄생의 배경은 민주당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정당들과 이른바 진보 인사라고 지칭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그, 진보 정당들과 일부 운동 세력을 비롯한 자본주의 좌파들이다. 윤석열 정권의 등장 배경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선거를 통해 더욱 확실히 공고화되는 자유주의 시각과 성장이데올로기는 이렇게 자본주의에 대한 생명 연장과 기대를 상승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박정희 신드룸, 윤석열 정권의 탄생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토대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 본질

     

    자유주의의 기원은 부르주아가 봉건제적 질서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사적 소유권 보장과 개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의 보장을 요구하면서 성립되었다. 자유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도 불구하고 재산권에 의해 차별받는다. 유산계급만이 자유와 평등이 적용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기점으로 차별적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확립하려는 계급적 이념이고 민주주의는 신분 질서에 대항한 정치영역에서의 투쟁으로 성립되었다. 이는 부르주아에게 자유주의 내에서 민주주의적 요구를 수용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면서 부르주아의 권리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 자유주의를 고수하면서 자본과 노동계급의 타협된 정치 기제를 제도화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는 그들에게 위험한 민주주의를 제한하기 위해 대의제, 차등 대표제를 제안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변질시키고자 평등을 자유와 조화라는 개념으로 변화시켜 자유민주주의로 결합하였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 발달에 힘입어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로 형성해 왔다. 이는 철저하게 자본의 이해 보호와 대중에 대한 무시와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20세기 이후에는 대표 선출 기제나 절차로서만 파악하는 것으로 변했다. 그러나 대표가 될 수 있는 자유와 경쟁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기회, 조건의 불평등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의 이해를 옹호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지배계급의 이러한 인식은 차기 정권 외교부 장관 내정자인 박진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미국 기밀문서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는 20086월 이명박 정권 당시 박진은 미국 관료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대해 "한국은 너무 많은 민주주의를 갖게 됐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폭로했다.2)

     

    이처럼 자유민주주의 하의 국가기구는 철저히 부르주아의 부와 지위를 재생산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리를 배제하는 부르주아 독재에 불과하다. 또한 부르주아적 권리를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호하는 국가체제로서, 오직 부르주아적 개인들의 대표기구가 합법적으로 위임하는 바에 따라 국가 행위가 이루어진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는 노동자에게 정치적 패배주의만을 조장하며 경제적 불평등을 무시하고 있다.

     

    나오며 : 선거는 부르주아 독재의 통치술

     

    의회 제도는 부르주아 국가의 폭력적 통치를 은폐하여 상대적으로 덜 야만적인 폭력을 사용하고, 주기적인 선거제도를 통해 지배계급의 분파 사이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게 한다. 선거와 의회제도는 노동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합법적인 지배를 보장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이것은 노동계급에 자신을 다스릴 사람을 직접 선출하고 자신이 정치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부르주아지는 국가의 폭력을 통해 전 사회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특권을 가졌기 때문에, 어떤 특권이나 착취도 필요가 없는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의 국가를 그대로 이용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자본의 국가기구나 그 제도, 장치 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서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투쟁해야 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의회주의 혁명전략’, 코뮤니스트정치원칙)

     

    이처럼 지배계급은 선거를 통해 자유주의의 재생산과 자본주의의 위기를 왜곡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부르주아 선거판은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적 장치를 유지하고, 노동자의 혁명성을 제거하는 수단이다. 간접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를 위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동계급에는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기구와 제도(의회/선거제도 포함)를 파괴하는 것이 혁명의 출발점이다.

     

    부르주아 독재 파괴하고 노동자민주주의를!

    자유주의 환상을 퍼트리는 부르주아 선거 거부!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을!

     

    20224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윤태상

     

     


    <>

    1. 윤석열 당선에 노동계, 일제히 우려비정규직 투쟁 선포’, 참세상, 2022. 03. 10.

    2. 박진 후보자가 미국에 한 말 한국은 민주주의가 지나치다”, 오마이뉴스, 2022. 0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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