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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15호] 우크라이나와 대만 : 불확실한 제국주의 세계의 화약고
  • 조회 수: 2189, 2022-05-31 11:01:23(2022-05-16)
  • 우크라이나와 대만 : 불확실한 제국주의 세계의 화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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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와 대유행

     

    기후 변화는 단지 우리 미래의 많은 위협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미 환경 악화와 기본 자원 감소를 둘러싼 전쟁에 직면한, 이미 낮은 임금 또는 전혀 임금을 받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수백만 명의 삶은 이미 지옥이다. 제국주의 세력은 이러한 분쟁을 유발하여 수백만 명의 난민이 안식처에서 거류지로 쫓겨나게 하고 종종 안전한 생존을 찾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게 한다.

     

    지구상 어느 곳도 위험에서 벗어날 곳은 없다. 현재 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한 중국 에버그란데(Evergrande)처럼 산더미 같은 부채로 살아남은 침체한 자본주의 경제는 제국주의 경쟁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천천히 죽어가는 이 체제의 고통은 이제 아주 여러 가지 면에서 명백하다. 미국이 1945년에 강제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질서는 1971년 달러화 금본위제를 폐지한, 전후 호황이 끝난 이래로 부서지고 있다. 오늘날 중국과 미국 사이 증가하는 경쟁은 남아메리카에서 중동과 아프리카를 거쳐 남중국해에까지 뻗쳐있다.”

     

    그래서 우리는 글래스고(Glasgow)와 영국 전역의 COP26 시위에서 배포되었던 최근 선전물인 오로라(Aurora)에 기사를 썼다.(1) 분명히 몇백 마디 짧은 단어로 우리는 그곳 문제를 더 많이 확대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국제무대에서 최근 발전을 반영하여 여기서 그들에게 전망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세계적인 감염병은 현재 삶의 방식, 생산 방식, 혹은 당신이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인류에게 미래를 제공하는 그 어떤 개념도 사라지게 했다.

     

    우리가 지난 호(혁명적 전망18)에서 보여 준 바와 같이,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은 백신보다 운이 좋았다.(2) 비웃음을 당하거나 자금이 부족한 과학자들의 작업과 다른 사람들의 국제적 책임감 덕분에 바이러스 성격이 과학적으로 확인되었고 새로운 백신을 기록적인 시간 내에 생산하였다.(3)

     

    그러나 뒤따라온 것은 그들이 백신 대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부유한 국가 사이에서 보기 흉하게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모두가 안전해질 때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라는 세계보건기구의 거듭된 훈계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백신에 사용될 수 있는 물질(그것을 운반하는 유리병의 유리를 포함하는)의 수출을 금지했고, 영국과 같은 다른 나라는 그들의 독점적인 국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기에 백신 공급을 계약상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자화자찬했다. 첫 번째 백신이 허가받은 지 1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결과는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이후 전 세계 사람들이 한 번 이상 백신을 접종할 만큼 충분한 백신이 만들어졌지만,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은 단 한 번도 접종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이 변이(4)는 일부 바이러스학자들이 몇 년 동안(5) 훨씬 더 오래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세계적인 감염병 따라잡기 게임을 계속 만들고 있다,

     

    따라서 사회 시스템으로서 자본주의는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이 부족한 것으로 계속 밝혀지고 있다. 국제주의자들에게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형 제약회사'의 욕심은 차치하고,(6) 우리는 그들이 주로 위치한 국가들에 의해서 지원을 받는 경쟁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것은 19세기 후반부터 존재해 왔고 우리는 이러한 자본과 국가의 결합을 제국주의라고 부른다.

     

    제국주의는 더는 일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의한 영토의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질서 밖에 존재하는 국가는 없으며(어떠한 젊은 스탈린주의자들이 쿠바, 중국, 북한에 대해 논쟁하려고 할 수도 있다), 미국과 같은 지배적인 세계 강대국, 중국과 같은 신생 도전자, 영국과 같은 옛 세계 강대국, 지배적인 제국주의 강대국 사이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려는 의뢰인 국가 등 어떤 형태로든 제국주의 세계 질서에 참여한다.

     

    그들은 모두 각 나라의 정치 형태가 정확하게 무엇이든 각 국가의 주도적인 자본가 이익과 같은 고유한 국익을 가지고 있다.

     

    제국주의 경쟁은 세계적인 감염병 속에서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실제로, 그것은 대유행 감시 아래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확실히 만일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팽창주의 위협(역자: 이 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작성되었다)이나 중국의 임박한 대만 침략에 대한 서구 언론의 모든 이야기를 믿는다면, 지난 6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 할 것이다. 물론 마지막 3개 기간 동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에서처럼 침략을 주도한 것은 "국제 공동체"라는 별명의 서방 강대국이었다. 이는 그들이 '좋은 나라'라고 자처하며 부패한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자. 제국주의 세계에서는 모든 배우들이 그들 자신의 구석에서 탐욕스럽게 싸우는 세력이 되도록 내몰린다. "좋은 나라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평가하려면 한발 물러서서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분석해야 한다.

     

    냉전

     

    냉전”(때로는 미국과 동맹국 사이, 때로는 중국, 그리고 때로는 러시아)에 대한 언론계 추측이 무성하다. 이는 양측이 상대방을 공개적으로 먼저 공격을 한 국가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비유이지만, 중요한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1945년 이후 소련과 미국 사이의 경쟁은 오늘날과 같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경쟁이 1949년까지 양측이 핵무기를 보유했기 때문에 "냉전"으로 남아있었고, 그래서 감히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방정식 일부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1945년 두 나라 모두 제국주의 영역을 크게 확장하면서 전쟁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만족하는 세력"이었다, 그러므로 서로 직접적인 충돌로부터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 핵무기는 단지 그 계산에 더 무게를 실어줄 뿐이다.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이 새로운 축적의 주기를 시작하도록 허용했던 자본의 대규모 평가절하가 시작되었다. 실제로 1945년 이후 거의 30년 동안, 세계 경제는 아주 장기적인 그리고 엄청난 호황을 경험했다. 두 개의 "초강대국"이 지배하는 호황의 세계 경제 속에서 새로운 세계 질서가 서서히 나타났다. 따라서 냉전 제국주의 게임은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자 하는 필요성에 입각한, 불문율에 따라 발전했다. 대신에 그것은 기동전이 되었다. 1970년대 전후 호황 종식과 함께 시작된 일련의 요소의 정점에 이른, 현재 상황보다 훨씬 더 예측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축적 주기의 하향 이동은 결국 전면적인 경제의 구조조정과 금융화 및 세계화로의 전환을 가져왔고, 이는 서구 투자를 중국의 저임금 경제로 이전하여 세계 경제의 원동력으로 부상하도록 촉진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1991년 소련의 극적인 붕괴였다. 따라서 우리는 1945년 이후의 세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세계에 살고 있다.

     

    최초 냉전 경쟁의 물질적 기반은 소련의 제국주의 질서가 동유럽에 대한 명백한 군사적 점령뿐만 아니라 그것이 창출한 부수적인 경제 블록에 달려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얄타, 테헤란과 포츠담에서 미국 계산은 자국의 생산 기구가 반쯤 파괴된 소련 통제 하의 모든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를 단순히 압도할 경제적 역동성 보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유럽 국가들을 약탈한 후 스탈린은 얄타에서 자유 선거가 허용될 것이라고 한 약속에도 1948년 이전에 그들 모두를 모스크바에 충성하는 코뮤니스트당이 통제하게 했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기대치에 대한 실제적인 타격은 소련의 위성 경제가 비전환 통화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달러 지배(이는 브레튼우즈 이후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서 최고로 군림할 예정이었다)(7)에서 면제된 것이었다. 이것이 소련이 미국 경제의 필요에 따라 전후 세계를 형성하기 위해 고안된 마셜 지원 수용을 거부한 주된 이유였다. 그 부분이 거기에서 받아들여졌다면 동유럽을 서유럽에 개방했을 것이다. 이러한 완고한 무역 장벽의 설치는 소련 측 냉전의 첫 번째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제국주의 세계 질서의 진정한 제1막은 194586일 히로시마 폭격과 함께 이미 미국이 시행하고 있었다.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옹호자들은 항상 더는 미군의 인명 손실 없이 일본군이 항복하도록 하는 전략적인 필요성이었다고 주장한다(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폭탄 투하의 직접적인 여파로 사망한 총 민간인은 50만 명 또는, 그 두 배 이상을 항상 편리하게 표현한다). 이것은 연막이다. 심지어 미군조차도 핵무기 배치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더는 저항할 처지가 아니었고, 도쿄의 소이탄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두 번의 핵 공격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사망했다. 아니, 실제 이유는 러시아가 중국과 한국에 진출하기 전에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포츠담에서 스탈린은 독일이 항복한 3개월 후에 일본에 선전포고하겠다고 공언했다.(8) 독일이 58일 항복함에 따라, 소련이 극동 전쟁에 참여하는 날짜는 88일로 결정되었다. 영향력 범위에 관한 국제 합의에 있어서 형식주의자인, 스탈린은 그가 서명한 약속을 지킬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그는 히틀러가 1941(이로써 1939년의 나치-소련 조약은 깨졌다)6월 소련을 침공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고, 2차 세계대전 동안 루즈벨트, 처칠과 맺은 영토 협정을 지켰다. 그는 또한 포츠담 회담에 대한 약속도 지켰다. 소련은 따라서 88일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그것은 일본군에게는 최후의 일격이었지만, 소련이 동부에서 전쟁에 돌입한 다음 날, 심지어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에도 일부는 계속해서 항복을 반대하는 주장을 했다. 일본은 815일 항복했다. 그리고 24시간 안에 만주 관동군 73만 명의 일본군이 붉은 군대에 항복했다. 그들의 경전차 1,155, 대포 5,360, 항공기 1,800대는 모택동의 중국 공산당에 넘겨졌고, 그에 따라 중국 내 세력 균형이 그에게 유리해졌다.(비록 그들이 스탈린에게 민족주의자들과 거래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한편 붉은 군대는 한국에 진격하여 한반도 전체를 점령할 수 있었지만, 놀랍게도 스탈린은 이 시점에 한국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38선으로 나누자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는 스탈린이 전시 동맹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여겼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는 표시였다. 스탈린이 동유럽 정부에 대해 압박을 시작하기 전에도 처칠 전 영국 총리는 1946년 미주리주 풀턴에서 유럽 전역에 '철의 장막'이 쳐졌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1947년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는데, 이 독트린은 "코뮤니즘 봉쇄"에 관한 것이었다.

     

    "인류의 4분의 1"인 중국이 "코뮤니스트"가 되고, 1949년 소련 과학자들이 원자폭탄을 개발하면서 미국이 핵 우위를 잃었을 때, 워싱턴에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첫 번째 대응은 "코뮤니즘"를 억제하기 위해 나토와 전 세계의 다른 동맹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제 새로운 세계 질서의 기본적인 윤곽이 그려졌다.

     

    소련(1920년대 프롤레타리아혁명의 패배로부터 생긴), 중국(마오의 승리가 프롤레타리아트와 무관한)도 맑스가 이 용어를 이해한 의미에서의 "코뮤니스트"는 아니었다. 1928년부터 스탈린은 점차 군사화된 생산주의 국가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켰고, 무기 생산(5개년 계획부터)을 위해 중공업에 집중했지만,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스탈린주의 하의 "생산력 발전"은 맑스처럼 노동자 삶의 개선이 포함되지 않았다. 착취는 계속되었고 자본주의의 명령 경제 버전에서 그들의 가족에게 특권을 물려줄 수 있는 새로운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 라는 지배계급이 나타났다. 맑스주의는 또한 스탈린주의 신봉자로 전락했다. 스탈린주의 세계관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는 인류의 미래를 나타내는 반면, 위기에 처한 서구 국가들은 "불가피하게" "익은 과일처럼" 떨어진다.(흐루시초프) 따라서 소련은 영토 통제를 직접적으로 더 확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신에, 브레튼우즈(9) 이후 소련 블록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달러 지배를 뿌리치고자 하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지역의 부르주아지에 돈과 무기를 지원했다.

     

    그러나 "코뮤니즘 봉쇄"는 또한 미국이 전 세계에 더 적극적인 개입을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암살, 선출된 정부 전복과 그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군사 작전은 이 기간 내내 미국 외교 정책의 특징이었다. 이 모든 것이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졌지만, 미국은 1953년부터 1968년 사이에 폴란드, 동독,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노동자 저항에 대해 소련이 탄압한 것을 무시했다. 게임의 규칙에 따르면, 그들은 "러시아 구역" 안에 있었고, 그래서 시도될 수 있는 모든 것은 (폴란드의 가톨릭교회와 같은) 파괴적인 요소에 대한 CIA의 은밀한 지원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소련이 "대리인"으로만 존재하는 동안 한국과 베트남에서 전쟁을 직접 추진했고, 미국 기업을 국유화하겠다고 위협한 과테말라, 칠레, 그레나다, 도미니카 공화국 등의 정부를 전복시키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 패턴은 모두 똑같았다. 그들은 또 다른 국가가 전환 불가능한 통화의 "철의 장막" 배후에 있거나, 그들의 투자가 일부 국수주의와 국유화에 의해 손실을 볼 것을 두려워했다.

     

    이러한 개입 정책은 1961년 카스트로의 민족주의 정권을 몰아내려는 시도를 실패하게 했다. 그 일은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의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 카스트로가 "맑스주의-레닌주의"에 대한 성급한 지지를 하게끔 이끌었다. "미국의 뒷마당"에 발판을 마련한 것은 전후 소련에 아주 큰 이득이었지만 그것은 냉전이 낳은 가장 심각한 제국주의 위기를 가져왔다. 그것은 핵무기에 관한 대결이었다. (비록 그것은 "핵 대결"이 아니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1962년 미국은 소련보다 거의 9배나 많은 핵무기를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일부는 터키의 소련 국경에 배치하고 있었다. 흐루시초프는 마이애미에서 불과 90마일 떨어진 곳에서 유사한 위협을 가함으로써 균형을 잡을 생각이었지만, 196210월 새로운 미사일 기지가 U-2 정찰기에 의해 관측되었다. 13일간의 분쟁 후에 소련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약속에 대한 대가로 미사일을 철수함으로써 해결되었다. 비밀리에 미국도 터키에서 핵미사일 시스템을 철수하기로 동의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1971년이 되어서야 밝혀졌다.

     

    이 문제가 (핵은 고사하고)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은 것은 1962년에 여전히 작동했던 것과 같은 요소 때문이었다. 유라시아 대륙 밖에서 친()러시아를 선언한 국가는 쿠바가 처음이어서 위험성이 높았다. 그러나 전후 호황은 최고조에 달했고, 소련이 언젠가 세계를 인수(이러한 '평화공존'은 모택동의 중국에 의해 수동적인 입장으로 보여서 모스크바와 분열로 이어지게 했다)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케네디가 탄두가 섬에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쿠바의 봉쇄를 선언할 때 그는 그것을 "격리"라고 불렀고, 그것의 "차단"이 전쟁 행위로서 인식되었을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후르시초프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할 것을 두려워하여 러시아군은 핵무기를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저항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반면 미국은 쿠바 침공으로 인하여 소련이 베를린을 점령할 것을 우려했다. 양측은 모두 핵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그러나 더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 또는 둘 다 이를 고려했을 수도 있지만, 그 어느 쪽도 먼저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983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쯤에는 전후 호황이 끝나 있었다.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1980년대 서구 전역에 파업과 투쟁을 가져온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결합인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했다. 이로 인해 각국은 투자와 일자리를 동양으로 이동시키는 구조조정 절차를 시작해야했다. 브레즈네프 시대의 경제 침체, 낭비, 부패로 소련은 더욱 악화하였다. 성장률은 전쟁 후 연 5.7%에서 브레즈네프가 집권할 때 연 2.6%로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냉전 규범의 붕괴 징후는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소련은 브레즈네프가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 입성했을 때 1945년 이후 처음으로 자국 블록 밖에 있는 나라를 침략함으로써 제국주의 이익을 방어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 결과는 중대한 것이었다. 수천 명의 러시아 징집병 무덤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역할 전환으로 이슬람 전사들, 무자헤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아프가니스탄을 소련의 베트남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또한 소련의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 1982년 브레즈네프가 사망하자 국가보안위원회 수장인 유리 안드로포프(Yuri Andropov)가 그 뒤를 이었다. 그때까지 레이건은 치솟는 미국의 재정적자를 무시함으로써 소련과 새로운 군비 경쟁(때로는 제2차 냉전이라고도 함)에 돌입했다. 소련은 이미 GDP4분의 1을 군사비로 지출하고 있었고, 미국은 훨씬 더 많은 지출을 하고 있었지만, GDP6%에 불과했다. 연간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소련은 이미 심각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토는 소련을 목표로, 유럽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 훈련(코드명 "Able Archer 83")을 시행했다. 그것은 소련이 공격이 임박했다고 믿을 정도로 광범위했다. KGB는 그것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안드로포프는 이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만, 전쟁을 시작할 의사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그것들을 파괴하기 위해 공장과 궁전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전쟁을 시작하지 않고 우리를 '견제'한 뒤 '좌절'시키겠다고 선언하기 위해 군사적 우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10)”

     

    그는 틀리지 않았다. 그의 인식은 냉전의 본질뿐만 아니라 소련의 관료제 개혁의 필요성도 요약했다. 그러나 안드로포프가 죽고 몇 달 내 정치국 내 옛 강경파들의 저항으로 안드로포프의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개혁을 시작하기까지는 2년이 더 걸렸다. 그것은 너무 늦었고 인기가 없었다. 그 과정은 모든 단계에서 노멘클라투라의 지배계급 기구에 의해 방해를 받았고, 결국 고르바초프를 제거하려 했지만,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에 성공했을 뿐이다.

     

    신세계 질서

     

    2005년 크렘린 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은 소련의 붕괴를 "20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재앙"으로 묘사했다.(11) 소련 붕괴에 이어진 세월은 우리가 "역사의 종말"에 도달했다는 스탈린주의 아이러니한 메아리로 요약되는 서구의 승리주의에 의해 특징지어졌다.(12) 당시 베를린에서 KGB 요원이었던 푸틴은 나토와 EU의 동쪽 행진이 바로 구 러시아 국경까지 이르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러시아는 동독,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뿐만 아니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아제르바이잔과 중앙아시아 공화국 등의 위성도 잃었다. 러시아 경제는 저명한 미국 경제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충격 요법"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이 시점에서 거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경제적 침체에 이어, 옐친은 몇 달 만에 서구가 실현하는 데 20년이 걸렸던, 러시아 경제에 더 심화한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시도를 하였다. 1999년까지 러시아 국내총생산(GDP)40%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강력한 정치적(게다가 범죄) 연줄이 있는 사람들에게 45,000개의 국영기업이 헐값으로 매각되어, 문자 그대로 그들 자신에게 법이었던 과두계급이 탄생한 것은 재앙이었다. 그것은 루블화의 평가절하로 이어졌던 1998년 금융 붕괴로 끝이 났고 기대수명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비참함을 안겨주었다. 푸틴은 이 시기를 서구세계가 나토를 러시아 국경까지 연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써 러시아를 "노골적으로" 속인 기간으로 간주하고 있다.(13) 대신 나토와 EU는 벨라루스, 몰도바와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옛 동구권 모든 국가와 구소련 일부를 그들의 위성으로 열정적으로 통합했다. 그것은 푸틴이 중단하기로 결심한 것이고, 가능한 경우, 그가 지금 우크라이나와 같은 러시아의 "역사적 영토"의 방어를 말하는 이유이다.

     

    푸틴은 2000년에 옐친을 대신했다. 그가 먼저 처리해야 할 몇 가지 지역 문제가 있었다. 그의 첫 번째 행동은 옐친과 그 가족의 기소 면책 특권을 보장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 체첸 분리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군사적으로 분쇄하고, 동시에 그가 선택한 임명권 하에서 체첸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주었다. 그는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Mikhail Khodorkovsky)를 투옥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지지하거나 국가의 전반적인 세력에 맞서는 다른 과두정치에 대한 경고로 그의 유코스(Yukos) 제국을 해체했다. 나머지 사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대우로 고통받게 될 것이고, 국내외적으로 반대파들에 대한 암살은, 국가 정책이 될 것이다. 러시아를 지구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로 만들었지만,(14) 높은 에너지 가격을 기초로 평가절하에 따른 경제 회복은 푸틴이 국내에서 실제로 인기를 얻게 했다.

     

    그런데도 서구의 오만함은 계속되었다. 2004년 러시아에 우호적인 정부를 전복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색깔 혁명"은 재정적으로 서구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15) "혁명"은 둘 다 러시아를 나토(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경우 EU도 포함)에 그들을 통합하려는 직접적인 움직임을 동반했기 때문에 러시아 포위 과정을 훨씬 더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는 푸틴 정권하에서 러시아에 대한 첫 번째 도전이었지만, 더 강력한 경제로 인해 그는 더 나은 위치에서 대응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분쟁은 표면적으로는, 상업적인 분쟁이었지만 제국주의 세계에서는 순수하게 상업적인 분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값싼 가스(러시아의 유럽 송유관 운송료 대신 가스를 공급받았다)를 공급받았다. 그러나 2005-6년 겨울, 가즈프롬(Gazprom)(푸틴 지지에) 우크라이나가 EU를 위해 의도적으로 가스를 빼돌렸다며 이제부터 우크라이나가 시장 가격으로 지급을 요구했다. 석유와 가스는 러시아 경제 회복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이 시점에서 러시아 수출·입의 70%를 차지했고 오늘날에도 러시아 예산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에너지 수입에 대한 그러한 의존은 크렘린이 만들어가는 모든 움직임이 신중하게 계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에너지 문제를 EU 그리고 그곳과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들에 더는 지정학적 힘의 악화를 막기 위해 압력을 가하고 싶어 하지만, 가스 공급을 차단하는 것은 수익 손실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다른 곳(수압 파쇄법에서 나오는 미국산 LNG는 트럼프가 그의 시대에 추진한 하나의 옵션)을 찾도록 자극할 수 있다.

     

    2006년에는 우크라이나가 더 큰 비용을 지불하고 러시아 가스가 EU 국가에 도달하는 것을 막지 않기로 합의한 14일 타협에 도달할 때까지, 3일 동안 가스 공급이 실제로 중단되었다. 이는 2009년 휘발유 가격을 둘러싼 더 이상의 대립을 막지 못했다. 우리는 당시 이 상황이 이전의 위기보다 EU에 더 해롭다고 분석했다. 푸틴(민간 회사인 가즈프롬 사측 대변인으로 얘기하는)현물시장”(비상시 즉시 사용할 수 있는)에서의 가스 판매를 언제나 거부해 왔다. 그리고 장기 계약만 이행할 것이다. 2006년과 2009년의 위기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송유관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EU에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고, 특히 독일은 우크라이나, 폴란드, 벨라루스와 같은 옛 러시아 위성국을 경유하지 않고 러시아에서 독일로(그리고 우크라이나, 폴란드와 벨라루스와 같은 구소련을 통하지 않는) 직접 가는 노드 스트림(Nord Stream) 송유관에 가입해야 한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그 당시 언급했다,

     

    냉전 기간 소련은 단 한 번도 가스 공급을 차단하지 않았다. 이것을 오늘날과 비교해 보자. EU의 경우, 1월의 가스 위기는 러시아가 에너지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했을 뿐이다. 러시아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시대는 결과 없이 끝났고 폴란드와 체코공화국 같은 과격한 반()러시아 회원국은 억제될 것이다. 가스 전선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얘기하는 어떤 말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어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배계급 사이에 친서구파와 친러시아파의 갈등은 계속될 것이지만)(16)”

     

    우크라이나 분파 간의 공방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러시아에서는 주로 과두정치를 강요해왔다. 2013년 우크라이나에서는 50여 명의 과두정치가 경제(17)와 정치의 45%를 장악했다. 일부는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서부에, 다른 일부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동부(특히 돈바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련의 경제 위기(특히 2008년 세계 경제 전반에 걸쳐 투기 거품이 꺼진 후)에 직면한 그들 사이의 경쟁은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한 어떠한 일관된 대응도 약화했다. 그 결과는 2014년에 분명해졌지만, 우리가 그것을 보기 전에 우리는 다른 "색깔" 혁명, 즉 조지아의 "장미 혁명"의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조지아에서 패턴은 같았지만, 그 결과는 러시아 제국주의 전망을 변화시켰다. 조지아의 대통령으로서, 한때 고르바초프의 외무장관이었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Eduard Shevardnadze)의 전복으로 조지아가 NATO에 가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생겨났다. 조지아의 남오세티야(South Ossetian)와 압하지안(Abkhazian) 지역은 트빌리시(Tbilisi)의 통치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고, 1996년에 러시아는 독립 국가 연합이 강제한 압하지안에 대한 제재에 동참했다. 이것은 옐친에 의해서 소련의 후속 조직으로 설립되었다. 장미 혁명 이후 푸틴은 이러한 제재를 끝내기로 했고, 2008년 러시아 군대는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압하지안으로 이동했다. 조지아의 새 대통령 사카슈빌리(Saakashvili)는 남오세티야를 공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NATO가 지원을 암시하면 실제 원조로 전환될 것으로 믿고 있다.) 러시아군은 제대로 수행하지는 못했지만 조지아를 침공하는 데에 성공했으며 NATO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 제국주의가 부활하고 있었고, 조지아 침공은 우리가 그 당시에 언급한 바와 같이 구소련 영토에서 힘의 균형 재조정의 일부였다.

     

    러시아도 중앙아시아(미국이 적어도 기지 하나를 포기해야 했던 곳)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회복하는 데 어느 정도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해에도 그들은 중국과 이란과 함께 카스피해의 석유와 가스를 통제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응하기 위한 상하이 협력기구에 가입했다. 동시에, 러시아는 이란 제재에 대한 어떠한 지지도 철회하고 부셰르(Bushehr)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재개했다.

     

    그러나 남오세티야에서 러시아 육군이 조지아를 침공한 것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88일 러시아의 침공은 의심의 여지 없이 츠힌발리(Tskhinvali)에 대한 조지아군의 로켓 공격으로 촉발되었지만, 러시아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조지아에 기지를 두고 있으며 조지아 군대를 훈련했었다. 이라크에서 세 번째로 가장 큰 부대로 구성된 2,000명의 조지아 군대는 트빌리시 방어를 돕기 위해 미국 수송선을 타고 귀환했다. 러시아의 행동은 계산된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후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한 약속에 구속되어 경건한 성명을 발표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19)"

     

    그것은 2013-14년 우크라이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모스크바 성향의 야누코비치(Yanukovich)오렌지 혁명으로 쫓겨났지만, 반대파들의 분열로 인해 2010년 재선에 성공해서 나토에서 벗어나 EU와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2014년 그가 갑자기 EU와의 협정을 어겼을 때 시위대는 키예프(Kyiv)의 독립광장(마이단)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야누코비치는 여러 명이 사망한 후에 도망쳤다. 조지아 이후로 더 강해진 푸틴은 조지아에 친러시아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비밀리에 우크라이나 동부에 러시아군을 파견했다. 현재까지 14000명이 낙진으로 사망했다(그리고 아직도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도네츠크(Donetsk)와 루한스크(Luhansk)는 푸틴이 크림반도를 침공하여 합병하는 동안 여전히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는 러시아에 의한 구소련 영토의 첫 번째 공개적인 재점령이다. 우크라이나는 나토(비록 그 군대가 나토 훈련에 참여했었지만)의 일원이 아니어서 나누어진 유럽과 미국을 위해 행동해야 할 공식적인 의무는 없었다.(20) 그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나은 것은 제재였는데, 이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

     

    그렇다면 푸틴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이든 행정부가 20214월 우크라이나에 12,500만 달러 규모의 무기를 공급하기로 한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미 국방부는 "러시아 침략에 대한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21) 이는 6월에 보류되어 러시아군은 철수하기 시작했으나, 10월 키예프를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Lloyd Austin) 미 국방부 장관이 절반만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군의 증강은 재개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무장시키고 있는 유일한 NATO 강국은 미국만이 아니다. 터키는 우크라이나가 지난 10월 루한스크(Luhansk)에서 분리주의자 대포를 파괴하기 위해 사용한 드론을 판매했다.(22) 또한 영국도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판매함으로써 세계에서 무기 거래를 모색하고 있다. 영국 해군은 서부 동맹(워싱턴의 비위를 맞추는)에 대한 충성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45식 구축함 HMS 디펜더를 크림 해안의 5마일 내에서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항로로 보냈다.(23)

     

    따라서 푸틴과 서방은 제1차 냉전에서 "벼랑 끝 전술"이라고 불렀던 것을 이용하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연극이고 일부는 진지하며, 물론 항상 "오해"의 여지를 남긴다. 푸틴이 본 것은 미국이 세계 경찰이라는 기존의 위치에서 후퇴했다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시리아(러시아가 아사드 정권을 구한 결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혼란과 비참함만을 남겼다. 지난 30년간 나토 확대에 대한 그의 반격에 대해 서구와 유럽이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다. 그는 역시 나토 연합군에 대항하는 러시아의 상대적 약점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 징집군 자체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크며(70만 명 이상) 나토(NATO)의 정교하고 새로운 무기들로 개혁과 재편이 진행되고 있으며, 더욱더 효율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곧 돈바스를 되찾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행동보다 중립이 더 중요한 어떠한 상황이 있다는 것도 그는 또한 알고 있다. 따라서 2020년 코카서스에서 그는 아르메니아의 빠른 패배를 끌어내기 위해서 에르도안이 아제르바이잔에 대해서 조건 없는 지지를 허용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중립을 지켰다.(24) 그는 1980년대 브레즈네프의 모험과 20년간 미국이 대참패를 한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어떤 군사 행동도 갑작스럽게 그리고 짧으며 날카로워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여기에 더해 추가적인 장점은 서구 강대국은 노드 스트림 2와 같은 문제에 대한 그들 사이의 차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는 자국의 뒷마당에서보다 더 공격적인 러시아 정책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정해진 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나토의 가장 중요한 동맹중 일부를 비판함으로써 이러한 분열을 악화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바이든은 이후 유럽 동맹국과의 관계를 일부 개선했지만, 유럽 내에서는 미국이 그들과 상의 없이 푸틴 대통령과 일부 거래를 한 뒤 결과를 정리하도록 방치할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블링컨(Blinken) 미 국무장관은 만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을 차단하기 시작하면 메르켈 총리가 더 많은 공동제재를 하겠다는 위협에 동의하도록 만들었지만, 노르드스트림22022(비록 새로운 독일 정부가 지금까지 그것을 승인하지 않았지만)에 가동될 것이라고 이미 인정했다.

     

    미국은 정말로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데 있어서 중국에서 오는 훨씬 더 위험한 위협에 집중하고 싶어 한다. 비록 수사법은 다르지만, "아시아로의 중심이동"과 제국주의 세력의 가짜 영역을 다른 곳에서 잘라내야 할 필요성은 (트럼프에서 바이든에 이르기까지) 미국 지배계급의 대부분을 결속시키는 유일한 문제이다. 중국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의 하나로, 탈레반에 대한 양보로 인해 미군의 대규모 재투입만이 이를 보존할 수 있을 정도로 약화한 아프가니스탄 정부(25)는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불명예스러운 후퇴 협상을 했다. 바이든은 트럼프만큼이나 아프간 모험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판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카불 사태를 막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비록 "적색 노선""양측의 심각한 결과"에 대해 허풍이 많이 있지만, 1월 제네바에서 회담과 2월 바이든과 푸틴의 대면 전망은 우크라이나 주변의 현재의 경관이 새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징표로 푸틴은 성탄절 이브 "훈련"에서 10,000명의 군대를 철수시켰으며,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동쪽 국경과 크림반도에 9만 명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에 더 초점을 맞추고 러시아를 따로 다루기를 원하지만, 두 국가 사이의 최근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차이를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지난해 러시아와 중국은 더 긴밀한 협력을 모색해 왔다.

     

    러시아/중국과 미국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스탈린주의자의 과거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7년 정도만 말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련/러시아는 결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심지어 1969년에 선포되지 않은 7개월간의 전쟁을 치렀는데, 일부 소식통들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어떤 경쟁보다 핵 분쟁에 훨씬 더 근접했다고 주장한다.(26) 오늘날 유라시아의 두 강대국이 함께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진출한 이후 미국과 그들의 분리된 대립이 이를 더욱더 자극하고 있다.(27) 2020년 러시아-중국 무역 가치는 1,030억 달러였지만, 양국은 이를 4년 만에 두 배로 늘리기로 합의하였다.(28) 러시아는 중국의 주요 무기 공급 국가이며 두 번째로 큰 석유 공급원이다. 게다가 중국은 북극권 야말(Yamal) LNG 공장과 러시아 역사상 최대 규모인 550억 달러 규모의 가스 프로젝트인 시베리아 전력에 최소 20%의 투자를 하고 있다. 둘 다 중국에 가스를 전달할 것이다. 야말 LNG2.5m 두께의 얼음을 뚫고 북해로를 횡단할 수 있는 쇄빙선(29)을 통해 전달될 것이며, 러시아가 건설한 최대 규모의 시베리아 송유관은 계획보다 4년이나 늦은(30) 2022년에야 개통할 예정이지만 블라고베셴스크(Blagoveshchensk)에서 중국으로 가는 지선이 있다. 실제로 온난화로 인해, 북극권은 중국이 유럽에 수출하는 데 있어서 두 강대국 모두에게 더 빠른 경로를 제공하는 기회의 지역이 되었다. 우리의 캐나다 동지들이 최근에 언급했듯이:

     

    "극지 실크로드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전역에 걸쳐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세계 경제를 중국 자본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고 공개적으로 미국 자본에 도전하려는 중국의 대규모 일대일로 계획과 연결되어 있다.(31)"

     

    중국은 러시아의 드비나(Dvina)강 하구에 항구를 건설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 북극 지역에서 발견되는 니켈, , , 아연, 인산염, 금의 풍부한 매장량을 채굴해서 이익을 얻고 싶어 한다.

     

    2014년 이후 양국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중-러 관계 개선이 경제협력을 넘어섰음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미국이 지난 8월 카불에서 주민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동안 양국은 중국 내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연합훈련을 벌이고 있었다.(32) 10월에는 중국과 러시아 군함이 태평양에서 훈련 과정에서 일본 본토 주변을 거의 한 바퀴 도는 합동 기동 훈련을 시행했다. 이어서 1119일 양 군은 폭격기를 일본과 한국의 방공호로 보내 "한국이 이에 대한 대응으로 분주하게 전투기를 출격시키도록 했다".(33) 4일 후 러시아와 중국 국방부 장관은 미국의 공중 위협을 이유로 향후 4년 동안의 "긴밀한 군사 협력 로드맵"에 서명했다.(34) 그것은 두 나라가 군국주의, 개입주의 및 다른 나라에 대해 미국 가치를 강제적으로 강요하는 미국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려는 열망을 공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35) 그리고 물론 이 새로운 군사 동맹은 "평화에 대한 기여"이다.

     

    만약 그것이 친숙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미국과 그 동맹국들로부터 틀림없이 같은 선전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남아있고, 또한 세계 무기 지출의 60%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바이든이 올해 초 분명히 언급한 바와 같이:

     

    "내가 보기에 중국은 세계 최고의 국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36)"

     

    그러나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은 통합된 지휘 및 통제 구조와 함께하는, NATO와 같은 동맹이 없다. 사실 미국의 아시아 조약 동맹 중 이런 구조를 가진 것은 한국과의 동맹이 유일하다. 냉전 동안 미국은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라고 불리는 나토와 동등한 것을 설립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진정한 군사 동맹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유럽에서 대표되는 소련 공동의 적이 없었기에 1977년에 종결되었다. 역시 나토 국가들이 누리는 일련의 긴밀한 협력의 종류에 해당할 수도 있는 중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동안에, 미국은 현재 나토 동맹국들이 러시아에 대항하여 그들 자신의 뒷마당에서 군사비 지출 비용을 더 많이 늘리도록 노력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 위협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만의 침공을 모의하는 중국의 군사훈련, 또는 대만의 영공 상공을 계속 비행한 이야기는 모두 훨씬 더 적극적인 중국의 모습을 추가로 보여주는 것이다.(37) 남중국해의 인공섬 건설, 사실 이것이 중국의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이라는 주장과 일본, 베트남, 그리고 필리핀과 그 지역의 다른 국가들과의 분쟁은 현실성이 충분하다. 중국의 해상 민병대(총기를 든 수백 척의 어선)는 공식적으로는 국가기구에 속하지 않으면서 여러 섬을 통제하려는 중국의 요구를 강제하기 위해서 이용한다.(38)

     

    동시에 미국은 이념 문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장 위구르족 억압과 홍콩의 민주적인 반대 세력 해체는 물론 시 주석이 중국 공산당에 대해 점점 더 권위주의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우리는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라는 설화에 들어맞는다. 20212월에 바이든은 이것을 더 명확하게 했다.

     

    우리는 독재정치가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민주주의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 사이의 변곡점에 서 있다.(39)”

     

    미국은 이러한 군사적, 이념적 위협을 이용함으로써 세계 지배를 위한 거대한 게임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한 움직임의 하나로, 공식, 비공식적인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 호주, 일본, 인도가 참여하는 4차 안보 대화(Quad),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들의 다섯 개의 눈 정보공유기구,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미국이 호주와 영국, 영국 등과 체결한 협정, 아우쿠스(AUKUS)가 포함된다.

     

    다섯 개의 눈작전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진격에 대한 정보를 그 동맹국에 제공하는 것이지만, 쿼드는 1990년대 이후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역에서 매년 합동 해군 훈련을 조직해 왔다. 2020년 훈련은 말라바르 해안에서 실시되었으며 특별히 뉴질랜드, 한국, 베트남 해군이 추가로 참여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NATO"의 창설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논의된 것은 이 연습 동안이었다. 태평양에서 새로운 반중 우위의 동맹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올해 아우쿠스(AUKUS)의 설립과 함께였다. 호주에 있는 우리의 동지들은 그들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915, 바이든, 모리슨, 존슨은 중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기 위한 미국의 개선된 노력의 하나로, 아우쿠스(AUKUS) 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호주가 현재 남오스트레일리아 오스본(Osborne)에 있는 코프(Corp)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 상호운용성 향상, 국방부 장관과 외무장관 및 당국자 간의 관계, 새로운 형태의 회의와 약속을 수반한다. 그리고 사이버 전반에 걸쳐있는 더 깊은 협력은 AI, 양자 기술과 해저 능력을 적용한다.(40)”

     

    그리고 2021년을 마무리하는 즈음에 일본과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때를 대비해서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따르면, 미 해병대는 일본의 4대 섬 중 하나인 큐슈(Kyushu)에서 뻗어있는 난세이(Nansei) 섬 사슬에 임시 기지를 설치하고, 타이완 비상사태 초기 단계에 군대를 배치한다.(41)”

     

    이러한 동맹은 특히 증가하는 중국의 도전에 맞서 미국의 힘을 공고히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제국주의가 휘청거리는 이 혼란스런 상황에는 많은 모순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의 부상은 1970년대 이후 국내에서 충분한 이윤율을 찾을 수 없었던 서구 자본의 대량 투입으로 예견된 것이다. 강도 높게 착취당한 중국 노동자들에 의해 생산된 값싼 중국 상품들은 축적된 세계 경제 위기에 직면하여 서구 경제의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초기 자본이 첫 번째 장소로 왔던 바로 그 나라에 도전하게 되는, 그것이 2049년까지 세계의 지배적인 강국이 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경제 거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무역, 특히 "자유 무역"이 항구적인 평화를 촉진한다는 자본주의 개념을 확실하게 약화하지만, 제국주의의 전체 역사는 이미 이것을 충분히 입증했다. 서구가 충격을 받은 것은 중국이 시장을 포용한다고 해서 공산당 통치가 자동으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소련의 길을 따를 것으로 추정되었다. 천안문 대학살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당 지배는 여전히 강력해 보인다.

     

    미국의 진정한 두려움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 강대국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현재 이것은 아직 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달러는 1945년 이후처럼 심각한 경쟁자가 없는 세계 무역에서 여전히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걱정스러운 징후들이다. 많은 트럼펫을 불고 있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은 이전에 이 페이지에서 분석한 적이 있지만, 현재 142개 국가가 다양한 방법으로 가입되어 있다. 이러한 나라들과 많은 문제가 있지만, 프로젝트는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로 중국이 대체 무역블록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후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RCEP 무역블록은 인구와 GDP 면에서 세계 최대이며, 각각 전 세계 총액의 약 30%를 차지한다.


    “RCEP의 회원국은 호주, 브루나이, 캄보디아, 중국, 인도네시아, 일본,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뉴질랜드, 필리핀, 싱가포르, 대한민국, 태국, 베트남이다. 이는 25조 달러에 가까운 시장 가치와 약 25억 명의 총 기본적인 소비자에 해당하며, 이 중 10억 명은 중산층 소비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대략 미국의 3배에 해당한다.(42)”

     

    무역블록은 회원국의 무역상품 92%에 대한 관세를 영(ZERO)으로 인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경제학자가 많이 있지만, 이는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잠재적 승부수다. 중국은 예상보다 빠르게 세계적인 감염병으로부터 회복했다. 202111월 연간 수출액은 22% 증가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 부동산 부문은 126일 에버그란데의 채무불이행 이후 위기에 처해 있다. 중국 부동산 부문은 전체 경제 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에 2022년 전체 성장률 수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유행이 없더라도, 현재 상황은 소련과 미국 사이의 전후 경쟁을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다. 푸틴이 러시아(43) 남부와 서부 국경의 세력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노골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도 중국을 수정주의강국으로 지칭했다. 미국은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러시아와 중국뿐만 아니라 향후 5대 강대국들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국방 예산은 7,500억 달러로 증가할 것이지만 이는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는 6%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15%에 달하는 수치이다. 그것은 (자연스레 계약한 군과 산업에 의해 논의되는) 위협의 심각성과 새로운 유형의 무기 개발 모두를 고려할 때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사실 사이버 전쟁, 드론 전쟁, 미사일 방어 시스템 등에서 어느 정도의 속도로 군비 경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어느 분야에서든 전략적 우위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낮은 수익률의 전술핵무기가 전쟁터에서 사용될 수 있다고 모든 군대 세력 내에서의 인식이 증가한 부분이다. 미국은 20202월 러시아(44)를 상대로 잠수함 발사 핵무기를 이용한 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미 정보기관도 같은 가능성을 보고 있다). 또한 중국은 둥펑(Dongfeng)-41(동풍) 이동 살상 미사일(45)과 같은 항공 모함에서 미국의 5-1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5배의 속도로 이동하면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극초음속 활공 차량(46)의 시험은 군비 경쟁에 훨씬 더 강도를 더했다. 이 모든 것들이 요구하는 질문은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이다. 당신은 무기를 먹을 수도 없고, 어떤 것을 창조하는 데 사용할 수도 없다. 그들은 지구의 쇠퇴하는 야생동물을 사냥하기 위한 도구로써는 제한적이지만, 그 외에는 사헬과 시리아에서 이디오피아와 예멘에 이르기까지 세계 "지역" 분쟁의 적대하는 많은 당사자에게 그것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지만 오늘날 고통의 규모는 시스템이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호황은 새로운 축적 주기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하는 대규모 자본의 파괴를 전제로 했다. 그 파괴 정도는 어떠한 세력도 가볍게 일반화된 전쟁에 관여하지 못하기 충분했다. 그 비용은 잔액에 반영되어야 했다. 그러나 70년대 초호황은 막을 내렸고, 시스템은 살아남기 위해 하나의 편법에서 다른 편법으로 휘청거렸다. 중국으로 많은 생산력을 이전하는 것은 단지 이들 중 하나였지만, 오늘날 이는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동맹과 새로운 그리고 매우 정교한 군비 경쟁으로 가장 위험한 종류의 제국주의적 경쟁을 단순하게 재현했다. 비록 퇴임하는 인도-태평양 미군 사령관 데이비드슨(Davidson) 제독이 공개적으로 "향후 6년 이내"(물론 그가 국방 예산의 증가를 요구했기 때문에)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이것이 언제 더 일반적인 분쟁으로 이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47) 체제는 우리를 위험한 도로보다 더 쉽게 무너뜨리고 있다. 실질적인 화약고는 우크라이나 또는 대만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 불확실한 시기에 그 어떤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은 지구를 지배하기 위한 투쟁이고, 그것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 동지들이 대만에 관한 최근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자본주의는 세계적인 의미의 새로운 분쟁을 준비하고 있으며, 환경적 차원뿐만 아니라 이제는 경제적, 사회적 차원에서도 지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비록 때때로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자본주의는 모든 분별 있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거부하는 생각: 즉 그것의 구원, 부활로서의, 파괴라는 이념을 추구한다. 유명한 슘페터의 정의에 따라 자본을 평가절하하고 원하는 "창조적 파괴"를 얻음으로써 자본은 이러한 재건이 지구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과 상관없이 이전 전쟁과 같은 새로운 축적 주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갈 것이다.(48)”

     

    202226

    죠크(Jock)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

    (1)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10-25/aurora-2021-10-25

    (2)혁명적 전망18호에서 "대유행이 어떻게 국가의 진정한 보건을 드러냈는지" 참조

    (3)같은 글

    (4)이 문장은 최신 오미크론 변종이 등장하기 전에 작성되었다.

    (5)보기를 들면, WHO의 특별 특사 데이비드 나바로(David Nabarro) 박사.

    (6)순전히 탐욕 때문에 화이자는 손바닥을 잡는다. “화이자 백신 내부의 이야기”, Financial Times, 2021121euronews.com 참조

    (7)혁명적 전망18호 참조

    (8)이 주제의 확장은 아래 참조.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05-08-01/holocaust-and-hiroshima-imperialism-and-mass-murder-in-the-twentieth-centuryleftcom.org

    (9)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08-15/1971-2021-50-years-since-the-usa-reneged-on-bretton-woods

    (10)러시아 KGB 기록보관소는 아직 실제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KGB 기록보관소는 미국 역사학자들에 의해 분석이 되고 있다. wilsoncenter.org

    (11)"푸틴은 소련의 붕괴를 개탄한다."를 참조하라. BBC News. 2005425

    (12)맑스는 코뮤니즘의 설립이 "실제 인류 역사의 시작"이라고 항상 주장해왔다.

    (13)파이낸셜 타임즈에 보도된 바와 같이 그는 최근 하나의 요점을 반복하였다. digital.olivesoftware.com을 참조

    (14)110명이 러시아 수입의 35%를 통제하고 있다. huffingtonpost.com

    (15)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4-06-09/ukraine%E2%80%99s-crisis-%E2%80%93-local-players-and-imperialist-games

    (16)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09-04-15/the-clash-for-gas-europeans-shivered-while-ukraine-and-russia-haggled

    (17)현재 그 수치는 대유행과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인해 훨씬 더 낮다. en.wikipedia.org

    (18)세계은행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현재 유럽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낮다. 그리고 수천 명이 폴란드 등으로 이민을 했다.

    (19)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08-09-01/the-war-in-georgia-not-just-another-international-crisis

    (20)푸틴의 크림반도 점령은 소련 시절의 역사적 부당함을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크림반도는 19542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뒤를 잇기 위한 권력투쟁을 하면서 공포한 법령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넘기기 전까지 언제나 러시아 영역이었다. 이 법령의 팩시밀리는 위에서 인용한 윌슨 센터에 의해 보존된 우크라이나 KGB 기록보관소에 있다. 푸틴은 이것을 심지어 소련 법에 따르면 불법이라고 묘사했다.

    (21)nbcnews.com

    (22)themoscowtimes.com

    (23)영국 정부는 처음에 이 항로가 도발적이고 그것은 단지 충성스러운 해군의 문제라는 것을 부인하려고 했지만, 나토의 대사 후보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남긴 MOD 문서의 발견으로 이것이 정확히 그 대사가 그 직업! 을 얻지 못했던bbc.co.uk "최고 수준에서" 논의된 것임이 밝혀졌다.

    (24)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0-10-15/nagorno-karabakh-war-for-workers-the-real-enemy-lies-at-home

    (25)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08-24/afghanistan-the-usa-and-its-allies-retreat

    (26) 이에 대한 확실한 출처를 아직 알 수 없으므로 공식 문서를 구하는 것은 어렵다. 실제로 일어났던 것처럼 보이는 한 가지는 그것이 모택동이 미국과 화해할 생각을 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27)https://www.aljazeera.com/news/2021/11/25/why-are-russia-and-china-strengthening-ties

    (28)statista.com

    (29)ft.com

    (30)hydrocarbons-technology.com

    (31)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10-19/ice-breaker-imperialism

    (32)militarytimes.com

    (33)aljazeera.com

    (34)militarytimes.com

    (35)militarytimes.com

    (36)Quoted in amp.theatlantic.com

    (37)대만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보다 자세한 분석은 아래 참조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1-12/the-crisis-in-the-taiwan-strait

    (38)aljazeera.com

    (39)Also quoted at amp.theatlantic.com

    (40)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10-02/aukus-another-preparation-for-imperialist-war

    (41)theguardian.com

    (42)silkroadbriefing.com

    (43)그 중 러시아와 벨로루시 군대가 카자흐스탄의 정부를 '대중 봉기'로부터 구하기 위해 신속하게 사용한 것도 또 하나의 사례다.

    (44)theguardian.com

    (45)businessinsider.com

    (46)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1/oct/22/hypersonic-glider-weapons-china-new-arms-race

    (47)https://news.usni.org/2021/03/09/davidson-china-could-try-to-take-control-of-taiwan-in-next-six-years

    (48)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1-12/the-crisis-in-the-taiwan-strait



    혁명적 전망」 (Revolutionary Perspectives) 19

    옮긴이 : 이명수

     

    <출처>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2-06/ukraine-and-taiwan-flashpoints-in-an-uncertain-imperialist-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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