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15호] 105년 전 러시아 전쟁 반대 투쟁을 이끈 국제여성노동자의날
  • 105년 전 러시아 전쟁 반대 투쟁을 이끈 국제여성노동자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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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인 1917(구력 223/현재 38) 국제여성노동자의날, 공장과 가사 노동 중이던 여성노동자들이 페테르스부르크의 거리로 나섰다. 그때도 지금처럼 러시아는 죽음, 기아와 참상만을 가져온 재난의 전쟁 속에 있었고, 경찰국가의 무자비한 권력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정치 단체가 말하는 이른바 여성노동자는 너무도 시기상조인 나머지 파업을 벌일 만큼 충분히 조직화 되지 못했다.

     

    종전 2년 반 이후, 페트로그라드로 주문한 음식이 절반만 도착했던 2월 초에 시작된 빵 공급의 중단과 함께 여성 노동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섰다. 역사가인 부르츠할로프(Burdzhalov)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식료품점과 빵집 앞으로 긴 줄이 뻗어있었다. 전례 없는 고통을 가져다준 겨울이었다. 거리는 얼음으로 뒤덮였고, 가정집의 지붕과 거리, 도시의 다리까지도 눈 더미로 뒤덮여 있었다. 누추한 옷차림의 젊은이들, 여성들, 그리고 노인들이 추위에 떨며 수 시간 동안 빵을 기다렸으나, 빈번하게 맨손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식량 부족은 대중들 사이에서 더욱 심각했는데, ... 긴 행렬은 그 권력이 혁명적 회담, 수만 장의 혁명 전단와 맞먹었다. 거리는 정치적 클럽이 되어버렸다.”

     

    행동을 개시한 경우는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직물 공업의 여성노동자들이 기본이었고, 그들은 그들의 슬로건을 식량 문제에 국한하지 않았다. “을 외치는 소리가 전쟁을 중단하라!”차르는 물러나라!”와 경쟁했다.


    1914년의 1차 세계대전으로 25만이 넘은 여성들이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가 되었는데, 이는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의 40%, 전체로 약 1만을 이루었다. 상황은 분명 여성에 대한 것이었다. 남성이 전방에 징집된 후, 다수가 군수산업체에서 장시간 노동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돌보아야 했으며, 자유 시간이라고는 고작 빵과 석유를 기다리는 긴 행렬에서일 뿐이었다. 국제여성노동자의날이전의 여러 날 동안 빵 가게는 추방당했고, 돌팔매질을 당했는데 지금 이들 빵 폭동은 여성노동자들의 폭풍적대중 집회의 개최로 변모했다. 전통적 시위를 능가하기를 원했던 거다. 한 공장의 기계를 다운시키기로 결정, 다른 공장으로 달려갔으며, 때로는 노동자의 관심을 얻기 위해 창문에다 눈덩이(간혹 너트와 볼트도 있었다!)를 던지기도 했다. 여성과 남성은 공장에서 쏟아져 나와 시위대로 집결했다. 그날 모두가 들었다. 8만과 12만 명의 노동자 사이에서 다수의 여성이 빵과 평화, 그리고 차르주의의 종식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사실을.

     

    파업 다섯째 날, 차르주의는 시위대를 짓눌렀으며, 사망자는 이후 13백을 넘었다. 이 사건 이후, 수천, 수백 만의 남성들도 참가했지만, 닷새째까지 중요한 역할을 지속한 것은 여성들이었다. 1905년 혁명의 경험에서 그들이 알게 된 것은, 요충지에 대한 승리가 핵심 과제라는 것이다. 정직하게는 39, 연화 과정이 시작됐다. 비록 기병 코사크(역주 : 러시아의 경찰 기동대)의 대부분이 초기에는 명령을 따르기는 했으나, 노동자에 대한 동정의 징후들이 한두 곳에서 발생했다. 총검으로 무장한 군부대로 나아간 이들은 이번에도 주로 여성이었다. 그들에게 빵이 부족하며, 남성들이 전방에 있다는 사실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군 부대원들에게 자신들이 맡은 역할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려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이는 꽤 효과가 있었는데, 군인들 무더기가 점차 혁명 쪽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는 서쪽 국경에 또 다른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키는데, 불과 2주밖에 되지 않았다. 이의 경제적, 사회적 결과가 아직 체감되진 않지만, 적어도 1만 명의 사람들이(유아부터 시작해서 노년층까지 포함하여) “전쟁 반대를 요구한 혐의로 이미 체포되었다. 1917년으로 돌아가면 이 분위기는 더욱 강력했다. 단지 전쟁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양산한 사회 체제에 반대한 것이다. 19172월의 시위와 파업은 사실 전쟁을 종식하지 못했다. 노동자혁명이 현재의 러시아 제국주의 목적에 맞서서 싸우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용되었고, 이는 얼마간 이른바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새롭게 재건된 소비에트의 사회주의자들을 포함했다. 그러나 노동자 대중은 여전히 평화를 원했으며, 하나의 사회주의당으로 점차 흘러갔는데, 모두가 전쟁, 모든 소비에트 권력에 대한 저항을 요구했다. 19178월혁명은 38일 시작된 과정의 중단뿐만 아니라, 결국 제국주의 대량 학살로 마감하게 된 일련의 봉기에 대한 전조였다. 불행히도 이들 봉기는 자본주의와 임금 노예의 전복을 알리진 못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고립된 채 남아있었는데, 혁명은 1921년까지 일련의 새로운 제국주의 적들과 투쟁하게 된다. 이 적들과 직면한 혁명은 결국 그것이 노동자혁명이기를 완전히 그만둘 때까지 노동계급보다는 국가통제주의였다.

     

    1세기 전의 전쟁을 인식하는 오늘, 우리 역시 1917년에 창설된 혁명의 영감을 되새겨본다. 오늘, 일반화된 전쟁으로 결정적인 방향을 잡은 또 다른 제국주의 갈등의 가운데에서 같은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인플레이션, 식량 부족, 생활 수준의 하락, 사망. 이 모든 것이 체제가 양산한 것이다. 증대된 긴장 자체는 자본주의적 위기에서 촉발된 것과 같은 경제적 경쟁의식에서 초래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노동계급의 반응이 지난 수십 년 전보다 현재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우리는 105년여 전의 노동자들을 보기로 들 수 있다. 이 전쟁은 유산계급의 전쟁이다.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언급했듯, “노동자에게 국가가 없으며, 노동자에게서 없는 것을 빼앗을 수는 없다.” 모든 배외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항하여, 착취라는 공통의 조건에서 단결된 국제 노동계급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기반 위에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조직화해야만 가능하다.

     

    “... 혁명가들은 미리 정해진 운명에 의해서든 신들의 변덕에 의해서든 단순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가 확산하면서 경제, 사회적 상황을 연구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혁명적 코뮤니스트는 계급 사이의 권력 균형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의 변화를 알릴 수 있는 같은 권력관계의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변화와 조화를 이루어 혁명을 위한 주관적 조건을 만들어 낼 임무가 있다. 혁명가들이 지향해야 할 주관적 목표에는 계급 사이 관계에 변화가 없는 국제 코뮤니스트당(인터내셔널)을 건설하는 것이며, 계급투쟁의 재개는 자본주의의 대안을 이루는 데 있어서 일상적인 전술이나 전략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여전히 모든 위기와 전쟁의 원인이 되는 똑같은 비극적인 자본주의 고랑을 갈고 닦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도 10월혁명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볼셰비키당이 없었다면, 수천만 명의 농민과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어떠한 혁명적 해결책도 외면하고 신비로운 민족주의 풍토에 다시 흡수되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것은 혁명과 반()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의 또 다른 측면의 일부분이다. 오늘날 우리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에 승리를 안겨 준 과거의 교훈에서 배우고, 패배를 가속화 한 불리한 조건과 그에 따른 오류를 확인하면서 전쟁이냐 혁명이냐에 직면해있다.” (‘금융위기 후 10’, 파비오 데이먼,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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