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15호] 1936년~1939년까지 스페인 전쟁,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
  • 조회 수: 1610, 2022-07-28 13:34:17(2022-07-27)
  • 1936~1939년까지 스페인 전쟁,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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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와 부르주아지 편에 복무하는 방법, 알리바이와 결과


    1) 정치노선 효과의 명확성

     

    정치적 행동 노선은 그것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 말하는 방식, 심지어 다양한 적들이 말하는 것에 의해서 판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행될 때 발생하는 결과에 의해서만, 그것의 물질적-역사적 조건에 의해 가해지는 영향을 고려한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으로 제국주의 자본주의 전쟁에 대한 국제주의 혁명가들의 태도가 다시 한번 화제에 오르게 되었다.

     

    국제주의 코뮤니스트좌파와 일부 국제주의 아나키스트 표현의 대다수 세력과 요소는 이 전쟁의 에피소드를 제국주의 자본주의 전쟁으로 다시 한번 정의했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 여러 정치적, 군사적 표현과 함께 수년간(2013-14년 이후) 계속되어 온 제국주의 자본주의 분파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따라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의 필요성, 주적이 자신의 나라에 있다는 특성을 지지하면서, 모든 곳에서 혁명적 패전주의를 일반적인 지침으로 채택했다. 그들은 이 패전주의가 자본- 제국주의 반대자에 의해 군사적으로 부르주아지 자신의 패배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부르주아지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반적 목표: 지구상의 규모로 계급 없는 사회-와 함께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투쟁 과정에 이러한 약점을 통합한다.

     

    이 기회에 국제주의 혁명적 패전주의를 옹호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제국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동일한 개념을 반드시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출판물과 전단을 읽게 되면 이러한 부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좌파 맑스주의 환경에서 다양한 해석이 있었지만, 1915년 침머발트 회의(스위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표현의 국제주의적 수렴을 방해하지는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소련에서 볼셰비키 통치 당시부터 분파가 나타나 코뮤니스트좌파의 일부로 이어졌고, 이는 소련을 제국주의 자본주의라고 새롭게 표현하면서 지지하는 것을 거부했다(주로 독일-네덜란드 코뮤니스트좌파들은 영국, 세르비아, 프랑스, 미국 등 다른 곳으로 떠났다).

     

    코뮤니스트좌파의 또 다른 부분인 이탈리아 좌파와 벨기에와 프랑스와 연계된 일부는 볼셰비즘이 이끄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코민테른)에 한동안 남아 있었는데, 특히 제3차 대회 이후 전술적 측면에서 혹독한 비판을 제기하여 볼셰비키 모스크바 중앙에 의해 행정적으로나 조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 추방되었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은 소련을 제국주의 자본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레닌주의 노선의 실질적인 방어에 기초하여 일반적으로 그렇게 해왔다. 이것은 보르디가주의(아마데오 보르디가의 입장과 일치하는 원칙파)에서 매우 분명하다. 데이먼주의(오노라토 데이먼의 입장과 일치하는 원칙파)는 명확성이 덜하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레닌을 실질적으로 정당화 한 것으로 유명하다.


    논리적으로 그 비판과 글에 나타나는 모순은 필자가 여러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주목할 만하다.

     

    트로츠키주의 좌익 반대파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에서 필요한 유일한 혁명은 정치 국가 권력에서 "스탈린주의 관료주의"를 제거하고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의 이행으로 간주한 경제의 노동계급 특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련을 퇴보한 노동자 국가로 지지했다. 코뮤니스트좌파는 트로츠키주의를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경향이 아닌 자본주의의 정치적 좌파 세력으로 여기면서, 수많은 비판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독일 - 네덜란드 좌파는 소련의 볼셰비키에서 반()혁명적 억압의 징조가 보였던 아주 초기부터 그렇게 했다. 이탈리아 좌파는 1930년대 초부터 트로츠키의 국제적 반대파 세력과 격렬한 토론을 벌인 끝에 떠났다.


    레닌의 패전주의에 관한 글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효과가 있었고, 당시 코뮤니스트였던, 사회주의자 좌파를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개념과 나중에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정의한 그 글들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레닌은 패전주의가 제국주의 세력과 관련된 군사적 충돌에서만 유효하고 적용이 가능하지만, 제국주의 세력이 식민지, 신식민지 또는 종속 국가를 공격했을 때는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제국주의 국가와 비()제국주의 국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의 저서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와 다른 글들에서는, 잘못과 논리적 오류를 지닌 책, 레닌주의자들이 걸작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그의 정의와 해석에 일관성이 있다. 제국주의에 대해 잘못된 설명과 함께 일관성은 각각의 경우에 다소 뉘앙스가 있는 레닌의 추종자들에게 일어난 것과 같이 필연적으로 모순과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개념화와 해석은 우리가 로자 룩셈부르크, 안톤 판네쿡, 헤르만 호르터와 같은 다른 맑스주의자들을 연구하게 되면 레닌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커다란 힘을 가진 자본주의 권력, 또한 더 적은 역량, 등급을 매길 수 있는 다양한 형식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단순히 식민지와 신식민지, 그리고 이들 국가의 민족해방운동을 저지하고자 하는 강대국들의 외교정책만은 아니다. 제국주의는 국제 경제와 관련된 모든 당을 포용하는, 자본주의가 이미 세계에서 승리했다는 증거(일반적으로 레닌주의자들에 의해 거부됨)를 여기에서 통합하는 표현이다. 발전하고 있던 것은 자본이 더 작고 다른 형태와 생산 관계가 여전히 존재하는 지역에서도 그것의 국제적인 성장 운동이었다. 세계 경제에서 비중이 거의 없는 작은 나라들조차 제국주의 사이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부르주아지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어 동맹, 영향력, 특혜 투자, 무역 협정, 신용 네트워크 등의 게임에 참가하여 최고의 조건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레닌이 제국주의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아직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자본을 수출함으로써 확장할 수 없었던 작은 나라들, 그리고 그들의 내부에서 거의 독점하지 않은 나라들 둘 다 이미 세계화된 자본 사이 의 경쟁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인도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파운드화에 반대하는 자본의 지원을 받아)에서 무장하는 데까지 나아갔고, 대내외적으로 억압하여 여러 차례 전쟁을 일으켜 현재 상황에 도달했다. 소련의 도움으로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소련과 빠르게 충돌하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전쟁, 다양한 지역에서 게릴라들을 선동하는 외국 운동에 착수하는 인민 공화국이 만들어졌다. 미국을 내쫓은 후,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중국의 적들을 무장시킨다. 베트남은 결국 미국의 경제 네트워크와 중국 소유의 공장으로 끝난다. 그 목록은 엄청나다. 이들의 민족 자결은 제국주의의 약화라는 개념과 함께, 레닌의 이론이 오류로만 판명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것은 이러한 자본들이 그들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하고 착취하고 잉여 가치와 천연자원의 다른 포식자들과의 경쟁에서 힘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국가의 독립은 사회적, 역사적, 그리고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자본주의 관계의 발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미 해방된 국가에서는 자본주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국제 경제의 상대적 비중 면에서, 그들의 경제 구조에서 자본의 유기적인 구성이 덜한, 작은 나라들은 발전을 위해 제국주의 동맹에 그들 자신을 억지로 끼워 넣어야 했다. 따라서 그들의 민족해방운동은 자본주의 이전의 표현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진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대체하고 부인하는 대가로 가능한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과 세계 시장을 위한 투쟁의 형태를 구체화한 형태였다. 이는 그들이 경쟁적으로 제국주의 투쟁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강력한 힘으로 그리고 다른 이들은 제한적이거나 축소된 힘으로 제국주의를 행사했다. 그러나 국제 무역과 자본과 투자의 흐름이 양적, 질적 측면에서 점점 더 세계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도 제국주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한 정치적 의미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러한 견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부르주아지 운동과 대의명분을 지지하지 않고 국제주의 편에 머물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맑스-레닌주의자들은 특징적으로 다른 자본주의 세력에 대항하여 자본주의 세력을 지원하면서 그러한 수많은 국가적 명분을 지지해왔다. 그들은 모두 노동계급의 경제적 착취에 대한 실질적인 방어를 공유했다. 그들은 모두 노동계급을 사회적으로 지배하고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문화적 수단, 항상 다른 자본가들과 힘의 균형을 개선하고자 공유했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코뮤니스트좌파의 지부는 제국주의 사이 충돌에서 직접적인 지지를 하는 데에까지 이르지 않았지만 수많은 오류를 범하고 모순을 입증했다. 일반적으로, 민족해방운동의 혁명적 잠재력(추정)에 대한 그들의 과대평가는 제2차 대회에서 이루어진 민족 문제에 대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글의 타당성에 대한 일반화된 상기를 표현해 주었다. 이러한 좌파들은 스탈린주의나 맑스-레닌주의, 그 결과와 알리바이, 그리고 매우 분명한 모순과 기회주의 제국주의와 국가 자본주의의 과정을 통해 그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레닌주의를 복구하려고 한다. 이러한 민족운동에 대한 지지가 이들 국가의 지배적 부르주아지에 의한 프롤레타리아와 가난한 농민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논점이 구분된다. 이 때문에 편지에 대한 오해 의혹이 자결권 방어에 부차적으로 제기될 여지가 생겼다. 국민당이 노동자와 코뮤니스트를 어떻게 학살했는지 그리고 이것에 관해서는 많은 잉크가 필요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레닌을 근거로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민족주의적 명분, 그들의 민족자결권이 그들에게 제국주의적인 자본인 러시아 자본에 의한 반동적 제국주의적 침략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대해 방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전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에게 제국주의자인 러시아의 자본. 우크라이나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대의는 레닌주의의 개념과 글을 인용하면서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상한 해석과 중도적 수사와 함께 카우츠키주의의 반향은 자본주의의 국제적 발전의 변화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그들의 함의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레닌은 식민지에서 민족 전쟁이 불가피하고, 그들은 둘 다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전쟁, 식민지를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로부터 해방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유니우스 팸플릿스보르니크 소시알데모크라타 1(191610) marxists.org).를 참조하라. 그에게 있어서, 로자 룩셈부르크의 유니우스 팸플릿"사회주의 아래(참조)에서도 민족 자결권을 부정하는, 특정의 네덜란드 사람[, 판네쿡과 호르터와 같은 트리뷴주의자]과 폴란드 사회민주주의자"의 작업과 같은 잘못에 시달리게 했다.

     

    국가 사회민주당은 항상 혁명을 주로 자신들의 정부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생각해 왔다. 레닌은 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된 분열을 타파하는 데 도움을 준 모든 운동은 사회주의에서 인류의 궁극적인 통일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사회주의 혁명은 하나의 행동도, "하나의 전선에서의 단일한 전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규모의 일련의 전투였다. 사회주의는 모든 "민족의 고립"을 종식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민족의 불가피한 통합을 이루는 방법은 첫째, "모든 억압받는 민족의 완전한 해방, 즉 그들의 독립된 자유"를 통해서였다.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의 자결권. "논문" 191642일 보보테 marxists.org 참조)

     

    레닌은 세계를 세 종류로 나라로 나누었다: 첫째, 노동자들의 임무는 그들 자신의 나라와 식민지에서 억압된 민족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던 서유럽과 미국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 둘째, 오스트리아, 발칸 반도,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은 억압받는 국가의 계급투쟁이 억압받는 국가의 노동자 투쟁과 병합될 예정이었다, 셋째,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이 이제 시작된 중국, 페르시아, 터키와 같은 식민지와 반()식민지 국가였다. 여기서 사회주의자들은 "민족해방을 위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의 혁명적 요소들에 확고한 지지를 보내고, 그들의 봉기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의 봉기를 돕고, - 만일 필요하다면 그들의 반란과 혁명전쟁을 지원해야 했다." (위의 글 참조)

     

    레닌의 글에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모순이 분명히 존재한다. 한편, 로자 룩셈부르크, 판네쿡 또는 호르터에 의해 표현된 국제주의 정치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 사이에, 제국주의, 그것의 본질, 그리고 그것의 기원에 관련된 분석에 있어서는, 완전한 우연은 없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외부 자본주의 시장과 이미 칼 카우츠키가 실현한 유사한 접근법과 관련된 일련의 오해들을 발전시켰는데, 이론이 훨씬 더 정확하고 타당한 판네쿡이나 호르터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정치적 결론은 일치하며, 레닌주의와의 대조와 차이는 명백하다:

     

    제국주의 국가의 정책과 제국주의 전쟁은 억압받는 한 나라에 자유와 독립을 안겨 줄 수 없다. 강대국 파트너의 공범인, 지배계급인 소국은 강대국의 제국주의 체스판에 있는 일개의 졸로 구성되며, 전쟁 후 자본주의 이익에 희생되어 그들 자신의 노동 대중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일어날 때 도구로 이용된다." (테제 6)


    "국익은 노동대중을 그들의 치명적인 적,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두는 구실일 뿐이다.(테제 5) (로자 룩셈부르크, 국제 사회 민주주의의 과제에 관한 논문. 1915년 말)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의 위기(유니우스 팸플릿)에서 "현재의 제국주의 환경에서는 민족자결 방어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중간 생략)

     



    결론

     

    트로츠키와 그의 지지자들이 틀렸고 국제주의 코뮤니스트좌파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레닌주의에 의한 그러한 과정과 실제 결과는 우연이 아니다. 소련의 권력(스탈린주의와 포스트 스탈린주의)이나 그 외의 것(4 인터내셔널)에서 그들은 부르주아 자본주의적 성격을 가진 모든 것이, 그들에게 적합할 때마다 민족운동을 지지해 왔다.

     

    중국은 소련과 쿠바(앙골라, MPLA 그리고 UNITA 포함)와 같은 그 동맹국에 의해서 지원받는 다른 사람들과 충돌한 무장 세력의 일부를 지원했다. 20세기에는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

     

    레닌주의 이론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을 요구하는 구호였다. 진행된 것은 모두 프롤레타리아트를 정복하고 착취하여 자본 축적과 그 가치를 위한 자원의 약탈을 촉진하는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경쟁이었다.

     

    레닌의 테제는 부르주아 분파에 혼란과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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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코 장군은 1959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였다. 스페인에서 프랑코 장군은 1959년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를 맞아, 스페인은 미국 편에 서서 자신을 유럽주의자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스페인 등에서 사용했던 기지를 가지고 스페인 경제의 고립과 자치권이 배후에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 발전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소련은 여전히 동쪽에 있었지만, 위기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전차는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 탱크는 도처에 블라디미르 동상이 있고 국가 권력 분파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면서 폴란드 GDR에서 진압하고 있었다. 소련은 국제 부채가 증가하고 있었고 군비에 점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이미 광물의 순환에 편입되었고, 그들의 많은 동료는 경영과 국가 행정의 순환에 편입되었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자본을 축적하고 세력권을 주장. 그 총성은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전역에서 유혈과 타락의 강 속에서 발사되고 있었다. 자본의 제국주의는 진전되고 있었다. 미국은 영국에 대항하여 일어섰고 심지어 때때로 무기 생산, 사업, 그리고 다양한 해적 행위 속에서 러시아와 중국 제국주의는 돈, 상품, 그리고 괴물 같은 국가 기관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발표했다.

     

     

    2022318

    아니발(Anibal)

    Leftdis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2/03/18/war-in-spain-1936-39-war-in-ukraine-today%ef%bf%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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