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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17호]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성 회복
  •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성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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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사건은 지역 또는 직접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국제적 규모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영향을 받은 많은 부문,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전투성, 노동 인구의 광범위한 행동에 대한 지지 등을 고려할 때 올여름 영국 전역으로 확산한 파업의 물결은 국내 차원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의 역사적 의미는 지역적 차원이나 일회성 사건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도 이해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유럽 국가의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해체라는 엄청난 압력에 시달려 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20년부터 팬데믹의 여파로 수많은 피해를 보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에서 야만적인 전쟁의 공포를 겪었다. 이러한 사건들이 노동자들의 전투성에 영향을 미쳤지만, 2021년 말과 2022년 초에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한국, 이란에서 벌어진 투쟁이 여전히 드러나고 있으므로 그러한 전투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경제 위기의 심화와 보건 위기의 결과,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생활 수준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파업의 물결은 다른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영국 노동자들은 전 세계 노동자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공격을 당하고 대응하지 못한 채 희생을 감수해왔지만, 오늘날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더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신호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 프롤레타리아트가 투쟁에 돌입한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영국 프롤레타리아트가 전투성을 회복하다.

     

    이 투쟁의 물결은 1990년 이후 계급투쟁의 전반적인 후퇴로 인해 누구보다 더 큰 고통을 받아온 유럽 프롤레타리아트 일부가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1970년대에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등 다른 국가에 비해 다소 늦었지만, 영국 노동자들이 매우 중요한 투쟁을 전개하여 1979('불만의 겨울') 파업의 물결로 정점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지난 40년 동안 전투성의 감소가 가장 두드러진 유럽의 한 국가였다.

     

    1980년대 영국의 노동계급은 영국 부르주아지의 '철의 여인' 대처 총리가 집권하고 있던 1985년 광산 노동자 파업 패배로 절정에 달한 부르주아지의 효과적인 반격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영국은 탈산업화와 중국, 인도, 동유럽으로의 산업 이전으로 인해 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1989년 전 세계적으로 노동계급의 전반적인 쇠퇴로 고통을 겪게 되었는데, 이는 특히 영국에서 두드러졌다.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영국 노동자들은 포퓰리즘 운동의 맹공격과 무엇보다도 맹목적인 브렉시트 캠페인으로 인해 '잔류파''탈퇴파' 사이의 분열을 자극했고, 특히 영국에서 노동계급을 크게 짓누른 코비드19 위기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심각한 친()우크라이나 성향의 민주주의 과대광고와 특히 끔찍한 전쟁 선동에 직면해 있다.

     

    "대처 세대"는 큰 패배를 겪었지만, 오늘날 새로운 세대의 프롤레타리아가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은 더는 이러한 패배의 무게에 더는 영향을 받지 않고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이 이러한 주요 공격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우리는 1968년 프랑스 노동계급이 등장했을 때와 매우 유사한(그러나 동일하지 않은) 현상, 즉 반()혁명의 무게에 기성세대보다 덜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의 등장을 목도하고 있다.

     

    2. 국제적으로 중요한 영국 노동계급

     

    "분노의 여름"은 지구상의 모든 노동자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세계 5위 경제 대국의 노동계급이자 미국, 캐나다와 같은 국가 또는 인도 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같은 다른 지역의 투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어권 프롤레타리아트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소통이 되는 영어의 영향력은 보기를 들어 프랑스나 독일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영향력을 능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영국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투쟁의 선봉에 서야 할 유럽 노동자뿐만 아니라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특히 미국 프롤레타리아트에도 길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미래 투쟁의 전망에서 영국 노동계급은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와 미국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성은 특히 서유럽에서 부르주아지가 '사회적 정세 악화'의 연장 위험에 대해 우려하는 반응으로 가늠할 수도 있다. 이는 특히 프랑스, 벨기에 또는 독일의 경우 영국 부르주아지의 태도와 달리 부르주아지가 석유, 가스 및 전기 요금 인상에 상한선을 두거나 보조금 또는 감세를 통해 인플레이션 및 가격 상승의 영향을 보상하기 위해 더 확고히 조치하면서 노동자의 구매력을 보호한다고 큰 소리로 선언을 한 경우이다.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의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서 언론이 대대적인 보도를 한 것은 계급투쟁의 이미지에 대응하고 대신 민족주의의 열정에 휩싸여 부르주아 헌법 질서를 존중하는 단결된 영국 국민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부르주아 언론은 계속되는 파업 운동에 대해 대대적인 침묵을 했다.

     

    부르주아지는 위기의 심화와 전쟁의 결과가 계속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현재의 맥락에서 부과할 수밖에 없는 공격,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심지어 전 세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분파에 대해 유사한 첫 번째 공격에 직면하여 이미 대규모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르주아지에 심각한 걱정을 안겨준다.

     

    3. 국제적 계급투쟁 역동성의 균열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는 지난 40년 동안 두 차례의 세계전쟁 이전과 달리 패배하지 않았지만, 1989년 이후 계급의식의 쇠퇴('코뮤니즘의 죽음' 캠페인에 의해 강조됨)는 그런데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둘째, 1990년대 이후 계급 해체의 심화는 계급 정체성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경향은 2006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제1차 고용계약(CPE) 반대 투쟁, 2011년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 운동, 2014년 프랑스에서 SNCF와 에어프랑스의 투쟁 및 2019년 연금 개혁 반대 운동, 2021년 미국의 '10월 파업' 같은 21세기의 첫 20년 동안의 계급의 소수들 사이의 어떠한 투쟁의 움직임이나 반성의 표현에 역전될 수 없었다,

     

    더욱이 21세기 초반 20년 동안 전 세계 노동계급은 프랑스에서 '질레 쥔(Gilet Jaunes)'의 행동, 미국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 '기후를 위한 행진' 또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과 같은 부르주아 캠페인, 미국 및 기타 지역의 낙태권 지지 운동 등 계급 간 운동의 위험에 직면하여 투쟁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위기의 첫 번째 결과에 직면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연료 및 다른 기본적인 상품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수많은 대중 봉기가 발생했다. 이러한 모든 운동은 노동자들을 계급 사이 영역으로 끌어들여 '시민'이라는 대중에 의해 익사하거나 완전히 부르주아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초래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재앙에 대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이러한 운동과는 달리, 영국 노동자들의 파업 물결의 근본적인 기여는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하는 투쟁이 명확한 계급적 토대 위에 놓여야 하며,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에 대한 공격에 맞서 명확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해준 것이다. "더욱이 이것은 최종 분석에서 세계정세의 결과를 결정할 요소이며, 자본주의 위기의 가차 없는 악화는 계급의 투쟁과 의식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자극제이며, 사회적 부패에 의해 증류된 독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의 전제 조건이 된다. 해체의 영향에 대항하는 부분적 투쟁에서 계급의 단결에 대한 근거는 없지만, 그런데도 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에 대항하는 투쟁은 계급의 힘과 단결의 발전을 위한 기초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해체에 관한 논문, (1991) 국제평론107, 2001). 구매력 방어를 위한 투쟁에서 이러한 거대한 전투성의 발전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동구권과 스탈린주의 정권의 붕괴 이후 겪은 깊은 좌절을 극복하고 계급의 정체성과 혁명적 관점을 회복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요컨대, 역사적 관점과 노동계급이 직면한 현재 상황에서 볼 때, 영국에서 발생한 이번 파업은 계급투쟁의 역학 관계에 균열을 일으켜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4. 프랑스의 685월과 공통점과 차이점

     

    영국에서 투쟁과 함께 일어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는 프랑스에서 685월에 시작된 상황, 즉 오랜 반()혁명과의 단절을 상징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억압하는 스탈린주의 감옥을 뚫고 새로운 역동성, 즉 노동자 투쟁의 전 세계적 발전을 가져와 향후 20년 동안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로 확인된 계급 대결의 시대를 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1970년과 1976년 폴란드의 투쟁은 19808월에 절정에 달했고, 1970년과 1972년 벨기에, 1983(공공부문), 1986년 미국(오하이오주 로드스타운의 제너럴 모터스)에서는 1972년에 이어 1986년 여름에 새로운 파업의 물결이 일어났다, 프랑스에서는 1979년 롱위와 데낭의 철강 노동자, 철도 노동자(86년 겨울)와 간호사(8810), 1984년 스웨덴, 198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부두 노동자, 독일, 그리스, 브라질,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다시 파업이 발생했다....

     

    영국 프롤레타리아의 투쟁 참여는 계급전쟁에 가장 경험이 많은 프롤레타리아 부대가 서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발전된 자본주의의 중심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685월 투쟁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박차를 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운명이다. 영국에서도 685월과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에 의해 점화되는 같은 불꽃을 볼 수 있는데, 노동계급은 동일한 적(), 즉 투쟁을 통제하고 방해하며 계급적 지형에서 멀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 노조, 좌파 정당, 좌파 조직이라는 형태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세계 위기의 극적인 악화와 부르주아지의 공격에 대응하여 영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성이 다시 깨어난 것은 다시 모든 요소를 염두에 두고 685월을 떠올릴 수 있으며, 이는 영국 경제 활동의 주요 부문을 강타하고 있는 투쟁에 참여한 수많은 노동자를 떠올리게 한다. 유럽 중심부에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발전에 대한 분석은 이러한 역사적 차원을 고려해야 하며, 위기와 부르주아지의 공격에 직면한 노동자 자신의 지형에서 노동자 전투성의 발전이 확인되고 있으며 계급투쟁의 심화를 향한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두 가지 상황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오늘날 노동계급은 상당히 약화하였다는 점에서 상황은 전혀 같지 않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을 향한 도정에서 가지고 있는 매우 큰 환상과 혼란은 685월 투쟁과 그 이후 20년간의 노동자 투쟁의 주요 약점 중 하나이다. 이로 인해 1989년 동구권이 붕괴했을 때 프롤레타리아트는 무장 해제되고 방향을 잃었으며, 부르주아지는 맑스주의와 코뮤니즘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이데올로기 캠페인을 전 세계적으로 전개하여 그릇되게 스탈린주의와 동일시하고 후자의 붕괴를 전체주의 "코뮤니즘" 정권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로 제시할 수 있었다.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약화하고 계급투쟁의 전반적인 역류를 유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 이러한 이데올로기 캠페인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투쟁 능력에 깊은 영향을 미쳐 쇠퇴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단계, 즉 해체의 국면을 열었다. 이 단계는 사회가 스스로 부패하는 경향으로 특징이 나타나며,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가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의 "탈출구"(세계혁명이냐 세계전쟁이냐)를 마련할 수 없었던 계급 사이 장벽의 산물이다.

     

    1968년에서 1989년 사이의 투쟁이 전개되는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두 블록 간의 대결에서 전쟁을 막는 장벽으로써 완전히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계급적 지형에서 동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부르주아지에 의해 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는 제3차 세계대전 발발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계급이 군사적 야만주의로 추락을 막을 수 있는 상황에 빠지지 않은 오늘날에는 더는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 상황은 자본주의 쇠퇴의 마지막 단계에 포함된 치명적인 위험이 축적되고 상호 작용하여 세계전쟁이 발발하지 않더라도 지구 전체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영국의 투쟁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결정적인 패배를 겪지 않았고, 아직 패배하지 않았으며, 모든 어려움과 필연적으로 그 앞에 닥칠 새로운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어설 수 있음을 미래의 대안이 코뮤니즘이냐 야만이냐라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1968년에서 1989년 사이의 투쟁을 대표하는 많은 환상과 약점이 사라졌다면, 계급투쟁의 현장에는 또 다른 주요한 어려움이 등장했다. 코뮤니스트혁명을 향한 길은 여전히 멀고 점점 더 위험한 함정과 걸림돌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 길을 따라 전진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가 인류를 파괴하기 전에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세력으로 자신을 긍정할 수 있을 정도로 투쟁을 발전시켜 계급이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다는 전망으로 이 투쟁에 단호하게 참여할 수밖에 없다.

     

    5. 제국주의 전쟁으로 악화한 경제적 공격에 대항하는 투쟁

     

    이 운동의 중요성은 오랜 기간의 상대적 수동성에 마침표를 찍는 데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투쟁은 전 세계가 대규모 제국주의 전쟁, 즉 유럽 땅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항하는 전쟁이지만, 특히 나토 회원국들이 무력뿐만 아니라 경제, 외교,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도 동원되는 전 세계적 범위의 전쟁에 직면한 시점에 전개되고 있으며, 서방 국가의 정부는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이들 국가의 프롤레타리아가 우크라이나 지배계급과 서방 국가의 통치자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사실은 "허리띠를 더 조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분쟁에 직면하여 전쟁에 반대하는 노동자 자신의 직접적인 동원을 요구하는 것은 서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환상이지만, 20222월부터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지난 기간의 위기와 재난의 축적 및 상호 연결의 산물인 임금에 대한 공격과 "우크라이나 국민의 영웅적 저항"을 지원하기 위해 희생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캠페인에 반대하여 노동자들의 반발이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본주의 긴축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전쟁에 대한 반대도 포함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점점 더 많은 희생을 치르는 것을 거부, 국가 경제와 전쟁 노력을 위한 희생을 거부하고, 인류를 파국으로 이끌고 마침내 파멸로 이끄는 이 체제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것, 이는 노동자들이 항상 완전히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영국 노동계급의 파업이 잠재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현재 투쟁이 한 국가에 국한되어 있다 하더라도, 비록 그 힘이 소진되고 가까운 장래에 다른 나라에서 유사한 일련의 주요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이정표에 도달한 것이다. 영국 노동자들의 투쟁의 본질적인 성과는 일어서서 싸우는 것이다. 가장 나쁜 패배는 싸우지 않고 빈곤을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교훈을 얻고 투쟁을 진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업은 질적 변화를 의미하며 부르주아지에 대한 노동계급의 상황 변화를 예고한다. 노동계급은 대규모 경제투쟁을 통해 40년간의 해체 압력, 투쟁과 의식의 썰물, 계급 간 운동, 포퓰리즘, 환경 캠페인의 공세에 의해 침식된 계급 정체성을 점진적으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파업은 새로운 투쟁의 시작이 될 계급적 지형에서 전투성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계급은 사회 전체에 대한 전망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2022년 여름 '이전''이후'가 존재한다.

     

    2022922

    R. 하바나이스(Havanais)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260/return-combativity-world-proletari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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