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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17호] 프롤레타리아 진영에 아나키즘 도입을 반대하는 투쟁
  • 프롤레타리아 진영에 아나키즘 도입을 반대하는 투쟁

     

    지난 몇 년 동안 코뮤니스트좌파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그룹 내에서 맑스주의와 아나키즘의 흐름을 같은 선상에 놓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진정한 혁명적 흐름과 반()혁명적 흐름(종종 '개량주의자'로 표현됨)이 양쪽을 동등하게 관통하고 있다. 오늘날 기회주의적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아나키즘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에서 특히 돋보인다. 주요 주장은 국제주의적 아나키즘과 비()국제주의 아나키즘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나키스트 운동 또는 특히 "국제주의 아나키즘"은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일부이다: "구체적으로, 맑스주의자로 구성된 우리 조직은 국제주의 아나키즘 성원과 같은 편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 더 나쁜 것은 맑스주의와 아나키즘의 흐름이 똑같은 모순과 정치적 오류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일관된 맑스주의, 코뮤니스트좌파 그리고 국제주의 아나키즘에 도발적인 제목의 2010년 기사: 우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세계혁명414)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ICC"같은 '맑스주의자'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부르주아적이고 반동적인 조직을 숨기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아나키스트'라는 꼬리표도 마찬가지다." 아나키즘에 대한 맑스주의 원칙과 정치의 역사적 투쟁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종파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러므로 자신의 '예배당', 자신의 '가족'(아나키스트 또는 맑스주의자)을 방어하려는 여전히 너무 큰 경향과 상점주인 정신(1 인터내셔널 내 바쿠닌 세력과의 싸움 때문에 소작인으로 전락한 불쌍한 맑스와 엥겔스!)에 맞서 투쟁하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단언한다) 노동계급의 진영에서는 아무 관련이 없는 (...) 그리고 '맑스주의' 또는 '아나키즘'이라는 유일한 꼬리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혁명가들을 (...) 반동과 구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따라서 아나키스트 정치 흐름의 계급적 성격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오늘날의 신세대 혁명가를 비롯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마흐노(Makhno)"마흐노비시나(Makhnovishina)"의 특정 사례에 대한 다음 글을 게재한다. 이 글은 현재 우리 그룹의 일원이 된 동지 중 한 명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북미 지역 내 토론과 논쟁을 거쳐 작성한 글이다.

     

    마흐노 운동의 비()프롤레타리아적 계급의 성격

     

    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진영에서는 아나키스트 운동, 특히 마흐노비스트 운동의 성격에 대해 종종 혼란을 겪었다. 어떤 이들은 마흐노비스트 운동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운동이었다고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실제로 마흐노의 통지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경제적 상황을 어떻게 대했는지, 마흐노의 경험을 살펴보자.

     

    아나키스트들은 마흐노비스트 운동이 노동자 운동이라고 주장하지만, 봉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마흐노 동지 중 한 명인 볼린은 "운동의 단점" 중 하나는 "농민 봉기를 지원할 수 있는 활발하게 조직된 노동자 운동이 없었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2] 이로 따라 마흐노비스트 운동은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계급 정당의 정치적 지도력이 부족한 농민의 편을 공개적으로 들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마흐노비스트의 경험으로 돌아와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또한,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이며 마흐노 봉기의 기록자인 피터 아르시노프는 마흐노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저서에서 노동자와 대중이 코뮤니스트(볼셰비키)의 배후에 있다고 말했다. "(...) 코뮤니스트와 랑겔( Wrangel )의 차이점은 코뮤니스트는 혁명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3]. 그러나 아나키스트 역사학자 알렉산드르 스키르다(Alexandre Skirda)에 따르면, 볼셰비키와 좌파사회주의노동자당[4]의 노동자 입장을 지켜본 마흐노는 "노동계급은 가난한 농민보다 덜 급진적이었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마흐노는 1919119일부터 한 달 반 동안 예카테리노슬라브(Ekaterinoslav)를 점령했을 때 이를 충분히 파악하였다.[5].

     

    그러한 언급은 스탈린주의자나 트로츠키주의자의 말이 아니라 네스토르 마흐노의 아나키스트 동지들과 아나키스트 역사가들이 주장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진영에서 마흐노주의 운동을 자본주의 관계를 폐지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으로 제시하려는 모든 그룹은 기회주의에 빠졌으므로 비판받아야 한다.

    아나키즘의 연방주의 원칙과 맑스주의의 민주적 중앙집중제를 비교하거나 이러한 이론적 입장이 단지 용어상의 차이일 뿐이라고 주장하거나 "부르주아 진영과 프롤레타리아 진영을 구분하지 않는다"[6]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거짓이며, 이는 이론적으로 코뮤니즘과 일치하지 않는 반()맑스주의적 비교에 해당한다.

     

    1926년 아나키스트 "마흐노비스트" 조직 강령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에게는 1926년 조직 강령[7](이하 강령)"러시아에서 반()혁명에 대한 저항이 분쇄된 이유 중 하나는 저항하는 사람들, 특히 아나키스트들이 조직적 그리고 강령의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올바르게 주장한 "점은 흥미롭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혁명의 퇴보에 반대하는 문제에 대한 올바른 계급적 반응이었다.“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은 무엇인가? 이러한 대응은 정확히 무엇이었나? 그것은 모든 생산 단위를 조정하는 중앙 조직 없이 모든 생산 단위가 다른 생산 단위와 직접 거래하는 아나키스트 사회의 생산 시스템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들은 지방 정부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상품 생산을 통한 상업주의 경제에서 규모가 변화한다고 해서 사회의 기본 구조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개 기능(상업 등)을 수행하는 중개 계급은 부르주아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입장에서 새로운 생산체제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생산체제에서 조직 기능은 노동자평의회, 직장위원회 또는 공장과 공장의 노동자 행정과 같이 노동자 대중에 의해 특별히 만들어진 기구에 맡겨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구는 시, , 국가 차원에서 서로 연계하여 생산 관리 및 운영을 위한 시, , 그 이후 일반(연방)기구를 구성하게 된다." [8]

     

    ICC는 강령의 계급사회에 대한 인식과 그 핵심에 뿌리를 내린 계급 적대감이 맑스와 엥겔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며 그 강령에서 맑스주의 영향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맑스가 J. 바이데마이어(Weydemeyer)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계급의 존재나 계급 간의 투쟁에 대해서 발견한 공로는 나에게 있지 않다. 나보다 훨씬 전에 부르주아 역사가들은 이러한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과 부르주아 경제, 계급의 경제를 설명했다. 내가 한 일은 새로운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계급의 존재는 생산 발전의 특정한 역사적 단계와 결부되어 있을 뿐이며,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 이어진다는 것, 이 독재 자체가 모든 계급의 철폐와 계급 없는 사회로의 이행에 불과하다." [9]

     

    따라서 계급사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맑스주의 이론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하고 독특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계급 없는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독재는 맑스주의적 방법에 따라 진전된 것이다.

     

    그 강령 자체에서 " 이행기""낡은 것의 흔적을 가진 새롭게 태어난 사회"[10]라는 역사적 유물론(즉 맑스주의자)의 입장과 전혀 다르다. 이행기라는 개념 자체가 강령에서 말하는 것처럼 본질적으로 반()아나키스트적 일수 있다.

     

    "사회혁명이 아나키스트 사회가 아니라 구()자본주의 체제의 요소와 유물을 간직한 다른 형태의 체제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이행기 개념은 본질적으로 반()아나키스트적 발상이다.“

     

    그 강령에는 관념적이고 반()맑스주의적 방법의 보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과 형식은 코뮤니스트 선언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들과 소부르주아 아나키스트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보기를 들어:

     

    "동시에 현재의 사회 구조는 노동 대중을 자동으로 무지와 정신적 침체 상태로 유지하며, 교육받고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못 하게 하여 통제가 더 쉬워지도록 만든다." "이러한 모든 그리고 다른 많은 문제에 대해서 대중은 아나키스트에게 명확하고 정확한 답변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이 아나키스트 혁명과 아나키스트 사회 구조의 개념에 대해서 대중이 관심을 두게 되면, 그들은 이러한 모든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제시하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아나키즘의 일반적인 개념과 연결하여 효과적인 실현을 위해 모든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전체 아나키스트 연합과 아나키스트 운동이 사회 혁명에서 사상을 주도하는 세력으로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또는 "아나키스트는 사실 국가가 대중의 모든 권리와 사회 및 경제생활에서 모든 기능을 박탈하기 때문에 국가를 가장 큰 장애물로 간주한다. 국가는 미래사회에서 단 하루도 좋은 날이 없어서는 안 되도록 사라져야 한다. 그것은 승리의 첫날에 노동자들이 파괴해야 하며 다른 어떤 형태로도 복원해서는 안 된다. 그 자리는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성된 자체 관리 노동자 조직의 연합으로 구성된 체제로 대체될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 권력의 조직과 어떤 정당의 독재를 모두 배제한다." (원문. 우리가 강조 추가).

     

    이러한 설명은 본질적으로 관념적이다. 맑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시대에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 된다

     

    "왜 반()권위주의자들은 정치적 권위, 국가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만 머물러 있지는 않을까? 모든 사회주의자는 다가오는 사회 혁명의 결과로 정치적 국가 그리고 그것과 함께 정치적 권위가 사라지는, 즉 공적인 기능이 정치적 성격을 잃고 사회의 진정한 이익을 감시하는 단순한 행정 기능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반()권위주의자들은 정치 국가를 탄생시킨 사회적 조건이 파괴되기도 전에 정치 국가를 단번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회혁명의 첫 번째 행동은 권위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신사들이 혁명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까? 혁명은 확실히 가장 권위주의적이다. 그것은 인구의 한 부분이 소총, 총검, 대포, 즉 권위주의적 수단을 통해 다른 부분에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승리한 정당이 헛되이 싸우고 싶지 않다면, 자신의 무기로 반동 세력에 공포심을 불어넣어 이러한 지배를 유지해야 한다. 파리 코뮌이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무장한 민중의 권위를 활용하지 않았다면 단 하루라도 버틸 수 있었을까? 반대로 자유롭게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을 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따라서 두 가지 중 하나는 반()권위주의자들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거나, 이 경우 혼란만 야기한다는 것, 또는 알고 있지만,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을 배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반동에 도움이 된다." [11]

     

    아나키스트 강령은 계급투쟁을 사상투쟁의 입장으로 축소하거나 이행기에 관한 입장과 미래사회 구조에 관한 입장으로 축소함으로써 아나키즘의 소부르주아적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나키스트 방법과 그들의 이론에 대해서는 유물론적이고 역사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의 개념은 이론적 입장의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부수적인 개념으로 취급되었다.

     

    이론과 실천의 아나키즘

     

    아나키즘 흐름이 맑스주의 이론을 활용하는 것을 살펴보면, 그들은 맑스주의 이론의 내용 중 자신의 도덕적 입장에 맞는 부분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과 방법 전체는 거부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보기를 들어, 그들은 임금노동에 대해서 착취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그들의 도덕 개념에 어긋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1 인터내셔널 이래 맑스주의 이론 일부이자 이론적 이바지해 온 자주적 생산 단위의 중앙집권화와 해체, 그리고 이들 사이의 상업과 무역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프롤레타리아 진영에서 이러한 기회주의적 글 및 코뮤니스트 운동과 아나키스트 운동 사이의 실제적이고 계급적인 차이를 무시하려는 시도는 비판받아야 한다. 노동계급 투쟁과 제1 인터내셔널 내부의 투쟁을 통해 아나키즘은 [12]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중도주의적 혁명당의 편을 직간접적으로 들었고, 그러한 비()정치주의와 경제주의적 실천을 통해 혁명적이고 국제주의적 정치적 흐름으로 간주할 수 없었다.

     

    1936-1939년 스페인의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아나키스트의 지지, 1914년 제국주의 전쟁에서 아나키스트가 어느 한 편을 지지했거나[13],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제국주의 전쟁에서 압도적 다수의 아나키스트가 어느 한 편을 지지하거나 군대에 합류한 상황 등, 근본적으로 반()노동계급적 성격을 가진 아나키즘의 역사적 사례는 오늘날까지 많이 존재한다. 노동자 운동의 발전 초기부터 아나키스트 조직원들은 아나키스트가 아닌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충실하게 남아있을 수 있었다. 러시아 혁명에 참여하여 볼셰비키 당원이 되거나 빅토르 세르주(Victor Serge), 안드레스 닌(Andres Nin)과 같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옹호자가 된 많은 아나키스트가 정치적으로 아나키즘과 결별한 경우가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마흐노와 그의 성원들이 코뮤니스트 지지자, 볼셰비키, 그들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을 직접 공격하고 처형한 다른 사례도 있다. 이를테면, 마이클 말레(이 책을 쓸 당시 아나키스트)검은 군대의 부대에 있던 폴론스키(Polonsky)라는 코뮤니스트에 관해 이야기한다. 불운하게도 폴론스키는 지방 볼셰비키 당 대회에 참석했고, 마흐노는 그의 첩보부대에 이들을 모두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폴론스키의 니코필(Nykopil)에서의 활동과 카테리노슬라브(Katerynoslav)에 드나드는 모습은 비록 군대의 업무를 하는 중이기는 했지만 분명 눈에 띄었을 것이다. 지휘관 회의가 124일 카테리노슬라브에서 열렸다. 폴론스키 외에도 다른 니코필 코뮤니스트들이 지방 당 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는 자신의 활동에 관한 보고를 할 만큼 신중하지 못했다. 회의가 끝난 후 자정이 되자, 폴론스키는 마흐노와 다른 친한 친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한 시간 후 카레트니크(Karetnyk), 추벤코(Chubenko), 바실리프스키(Vasylivsky)가 폴론스키와 니코필(Nykopil), 카테리노슬라프(Katerynoslav) 등 볼셰비키 몇몇을 결박했다. 사형 선고를 받기는 하였지만, 이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며, 콘트라즈베드카(방첩대)에 넘겨져 처리된다. 그들은 강으로 끌려가서 총살 당했다." [14]

     

    같은 작품에서 말레는 마흐노의 농민 반란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마흐노에게 강탈당하고 마흐노가 실천에 옮긴 경제에 대한 유토피아적 이해의 결과로 고통받는 노동자 사이의 갈등에 대해 언급한다. 마흐노의 목표는 농민 공동체와 도시의 노동자 사이에 일종의 물물교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리브스케의) 마흐노비스트들은 두 차례의 노동자 대회를 조직했고, 이 대회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통제 아래 생산을 재개하고 농민들과 직접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았고 임금을 원했다... 전형적인 오해는 마흐노비스트들이 백군에게 획득한 총의 자물쇠를 수리하기 위해 큰 브랸스크 공사에 보냈을 때 발생했다. 작업이 완료되었으므로 노동자들은 대금을 지불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적은 금액의 현물 지급 제안에 당연히 모욕감을 느꼈다. 이런 배은망덕한 태도에 분노한 마흐노는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는 것 없이 총을 빼앗으라고 명령했다. (...) 그는 이어서 반란군 신문에 기사를 실어 브랸스크 노동자들을 '최전선 전사들의 피와 영웅주의를 희생해서라도 자신들의 풍요를 늘리려는 쓰레기, 이기주의자, 협박범'이라고 공격했다"[15].

     

    마흐노비스트 운동은 노동자 운동이나 심지어 예외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아나키스트 방식과 그 소부르주아적 성격의 정확한 결과였다. 아나키스트의 이러한 경험을 정화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기회주의에 빠질 필요도 없다. 매우 다른 두 전통을 조화시키려 하기보다는 1873년 스페인 봉기에서의 활동과 제1 인터내셔널에서 그들의 모험주의를 통해 엥겔스가 아나키스트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주목해야 한다.

     

    "아나키스트는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은 국가의 정치적 조직을 없애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 승리 이후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조직은 바로 국가다. 이러한 국가는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기 전에 상당한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에 그것을 파괴하는 것은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새로 획득한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자본주의 적들을 억누르며 사회의 경제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을 파괴하는 것이며, 그것이 없는 모든 승리는 새로운 패배와 파리 코뮌 이후와 유사한 노동자들의 대량 학살로 끝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16]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는 전술뿐만 아니라 이론적 이해에서도 체계적이지 못하고 일관성이 없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부르주아 공화주의 국가를 지지하면서 처음에는 '국가의 죽음'을 외쳤지만, 나중에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더는 사회를 계급으로 나누는 조직을 대표하지 않는 것처럼, 이 시대의 정부(공화주의 국가)는 국가라는 조직을 규제하는 도구로써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적 힘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둘 다 CNT의 개입으로 인해 국민을 억압하는 경향이 더욱 줄어들 것이다"[17].

     

    또는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를 지지했다가 나중에 반대하고, 러시아혁명을 국제혁명으로 이해하고 코뮤니스트 사회 건설을 위한 국제혁명의 필요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처음부터 볼셰비키 운동을 부르주아 운동이라고 이론화하기 시작했다. 아나키스트의 이러한 이론적 변화는 제1차 세계대전에 편승한 아나키스트들뿐만 아니라 '열여섯 가지 항목의 선언'을 거부하고 '국제주의자'의 입장을 취한 아나키스트도 받아들였다. 그들의 국제주의 혁명은 계급의 철폐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국제주의는 이름뿐이며 이론이나 행동이 아니었다.

     

    이러한 비()정치주의 경향은 아나키스트 흐름이 혁명의 물질적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가 후퇴했지만 필요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도 혁명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스페인 공화국 정부의 비호 아래 노동 수용소(당시에는 강제 수용소라고도 불렀다)의 설립을 요구하고 민족주의 선전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그들의 대의에 동참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18] 이러한 관행은 권위와 위계라는 그들의 개념과 상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부르주아 국가와 동맹 및 그들이 지배하는 지역의 노동자에 대한 억압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필요한' 행위가 된다.

     

    연방주의: 자본주의의 유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푸르동의 경제적 이상주의는 아나키즘에 내재해 있다. 연방주의 또는 분권화와 자기 관리의 경제 구조는 다양한 아나키스트의 이론 작업에서 지속해서 견지하고 있다.

     

    스페인 내전[19]에 관한 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나키즘이 선호하는 사회 구조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권력의 섬들이 서로 물물교환하고 재화를 직접 교환하는 방식으로 교환가치의 보존을 통해 상품생산과 임금노동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물물교환 방식을 통해 화폐 제도는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의 등가성을 더 쉽게 만들 수 있으며, 이러한 상품의 등가성은 상품의 소멸이 아니라 상품생산의 강화에 이바지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노동력 착취는 철폐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화폐는 교환의 매개체로써 생산과 소비 사이에 필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선진국 화폐 제도에서는 교환을 위해서만 생산하거나, 교환을 통해서만 그것을 생산하게 된다. 화폐를 없애면(보조적 물물교환에 해당하는) 낮은 생산 단계로 되돌아가거나, 교환가치가 더는 상품의 주요소가 되지 않는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 이유는 화폐를 대표하는 사회적 노동이 더는 사회적으로 매개된 사적 노동으로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20]

     

    이 모든 것은 실제로 아나키즘이 자유 교환과 자유 시장의 지속, 따라서 자본주의적 사회 및 경제 관계에 대한 소부르주아지의 꿈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이상주의적이고 비역사적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는 자본주의 관계의 구체적인 부분을 변화시키지 않는 행위와 개별 테러 행위에 의한 선전의 관행이다.

     

    맑스와 엥겔스 당시에도 아나키스트는 프루동과 다른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의 이론에서 얻은 연방주의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엥겔스가 파리 코뮌 20주년을 맞아 코뮌의 경제 상황을 언급하며 구시대적이라고 표현한 말이다.

     

    "1871년에 이르러 수공업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도 대규모 산업은 이미 더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어서 코뮌의 가장 중요한 법령은 각 공장 노동자들의 연합에 기초할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연합을 하나의 거대한 연합으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산업과 제조업의 조직, 즉 맑스가 내전에서 올바르게 말했듯이 결국에는 반드시 코뮤니즘, 즉 프루동 교리와 정반대되는 조직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따라서 코뮌은 프루동 사회주의 학파의 무덤이기도 했다. 오늘날, 이 학파는 프랑스 노동계급 사회에서 사라졌다; 지금 그들 중에서, 맑스주의 못지않게 가능성 있는 것 중에서, 맑스주의 이론은 도전받지 않고 지배적이다. "급진적인" 부르주아지들 사이에서만 여전히 프루동주의자들이 있다." [21]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마흐노비스트의 연방주의에 대한 지지는 스페인 내전 당시 아나키스트의 연방주의와 프루동 경제학의 연방주의와 비슷하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 혁명가들의 용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나키스트 운동에 대한 그들의 역사적 경험과 국제 프롤레타리아 투쟁과의 관계에 대한 유산이다. 이러한 경험은 아나키스트 운동의 좌파, 즉 부르주아적 성격이 스탈린주의자나 트로츠키주의자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아나키스트 운동을 좌파, 즉 자본의 좌파로 규정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흐름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완전한 세력으로 간주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노동자 단결'이나 '아나키스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와 같은 변명으로 아나키스트 운동을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으로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프롤레타리아 진영 내 동지 그룹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다.

     

    "모든 비판을 억누르고 자신의 당에 성찰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욕망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통일의 단순한 사실이 노동자에게 만족스럽지만, 이러한 순간적 성공은 너무 큰 희생을 치른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22]

     

    202210

    다론(Daron)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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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s://en.internationalism.org/wr/336/anarchism

    [2] https://files.libcom.org/files/Volin%20The%20unknown%20revolution.pdf

    [3] Peter Arshinov, History of the Makhnovist Movement (19181921)

    [4] 사회주의혁명당(SR)"농업 사회주의자"이자 민주적 사회주의 러시아 공화국을 지지하였다. 나로드닉의 이념적 후계자인 SR은 차르의 전복과 농민에게 토지를 재분배하는 것을 지지함으로써 러시아 농민들 사이에서 많은 추종자를 확보했다. 이 조직의 좌익은 나머지 조직보다 볼셰비키 및 아나키스트들과 더 나은 관계를 유지했다.

    [5] 알렉산드르 스키르다, 폴 샤키 - 네스토르 마흐노 아나키의 코사크 우크라이나 자유 소비에트를 위한 투쟁 (1917-1921)

    [6] https://en.internationalism.org/wr/336/anarchism

    [7] https://libcom.org/article/organisational-platform-general-union-anarchists-draft

    [8] "1926년 프랑스에 망명한 러시아 아나키스트 그룹인 디엘로 트루다(노동자 대의)그룹은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에 관한 이러한 소책자('자유주의 코뮤니스트 조직 강령'으로도 알려져 있음)를 발간했다.“

    (https://libcom.org/article/organisational-platform-general-union-anarchists-draft)

    [9] Marx’s letter to J. Wydemeyer, March 5th 1852.

    [10]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by Marx

    [11]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72/10/authority.htm

    [12] 그것은 정치적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부의 경우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정직하게 확신할 수 있는 트로츠키주의자나 좌파를 위해서 우리가 하지 않는 것처럼 개인의 아나키스트 성원이 접근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명확하고 직접적인 논증을 통해 역사적으로 아나키즘의 소부르주아 계급적 성격과 오늘날 좌파 또는 자본으로의 완전한 통합, 즉 정치적 기구로의 통합을 비판하는 것이다. 더욱이 아나키즘이나 트로츠키주의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환상을 정치적 흐름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편집팀에 의해 추가됨).

    [13] "16가지 항목의 성명(프랑스어: Manifeste des seize) 또는 16가지 항목의 선언은 1916년 저명한 아나키스트 피터 크로포트킨과 장 그레이브가 작성한 문서로, 1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주요 강대국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를 옹호했다." (위키백과)

    [14]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michael-malet-nestor-makhno-in-the-russian-civil-war

    [15]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michael-malet-nestor-makhno-in-the-russian-civil-war

    [16] Engels letter to Philipp Van Patten - 1883

    [17] 솔리다리다 오브레라, CNT의 아나키스트 일간지, ICT 팸플릿 스페인 1934-39에서 인용: 노동계급 투쟁에서 제국주의 전쟁까지

    [18] https://files.libcom.org/files/WorkersAgainstWork-Seidman_0.pdf

    [19] http://igcl.org/Spain-1936-Can-There-be-a and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1-09-01/spain-1934-39-from-working-class-struggle-to-imperialist-war

    [20]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57/grundrisse/ch04.htm#p213

    [21]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71/civil-war-france/postscript.htm

    [22] Marx to W. Bracke In Brunswick, 1875,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75/letters/75_05_05.htm

     

     

    <출처> 혁명인가 전쟁인가2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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