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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번역2]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
  • 조회 수: 12717, 2021-12-23 11:36:55(2013-03-26)
  •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1)

     


    국제공산당 International Communist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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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이 글은 1960-61, 이탈리아어판과 프랑스어판으로 기관지에 실렸으며, 이후에 팸플릿으로 출간한 당에 대한 작업(party work)을 영어로 번역한 최초의 것이다.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국내 좌익 소아병으로 알려짐 : 역자 주)이 출판되고 40년이 지나, 전 세계의 기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노동계급을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에 감히 레닌과 그의 저작들에 대해 찬양하면서, 그의 빛나는 유산과 프롤레타리아의 일상적인 예속 속에서의 싸움을 부르주아지의 뜻과 필요에 팔아먹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196011,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노동자 정당들의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고, '결의안'을 내놓는데, 이에 대해 우리는 이미 '돼지들의 선언'라고 이름붙인 바 있다. 그 결의안은 우리의 글에서 자주 참고하는데,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회주의자들이 처음부터 맑스나 엥겔스, 이후에는 레닌에 이르기까지의 인물들의 뛰어난 비판을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듯이, 기회주의의 새로움이란 그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상황> 에 대한 새로운 설명들(악명 높은 발견물들!)을 찾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잘못을 저지른 배신자들을 정당화하고, 새롭고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을 써서 노동자들이 속고 있다는 것을 알기 힘들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새로운 주장이 거짓임을 밝힐 필요가 있어서도 아니고, 이미 죽은 자들에게 바치는 의례에 참여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도 아니다. 레닌과 그의 저작들은 우리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생생하기 때문이다. 용병들과 변절자들이 우리를 살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헛소문들로부터 당의 원칙과 조직을 보호하는 것이 당의 변함없는 책무인 것처럼, 그러한 주제에 대해 정신을 쏟는 것이 차라리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변절자들이 우리들과 혁명적 맑스주의에 가까워질수록,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적의 편으로 돌아선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신비화 속에서 더욱 초라해질 것이다.

    이 돼지들의 테제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의 글에서, 그리고 이후에 레닌의 글에서 좌익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주장은 불행히도 여전히 그들의 생각 속에 뿌리내리고 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국제 혁명 운동 속에 간교하게 침투한 일종의 변종, 거짓된 극단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글은 차이가 오직 전술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성격을 갖고 있으며, 유럽의 운동과 비교해 본다면, 그 차이가 러시아에서의 운동을 특징짓는 다른 시각뿐만 아니라 독특한 역사적 경험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국제적인 정당의 결정에 달려있었고, 역사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그 시대에 그것이 정당했다고, 명백하고 최종적인 해답을 내렸다. 그러나 이 글은 1920년과 그 몇 년 전, 우리가 아직 레닌을 알기도 전에, 우리와 볼셰비키 사이에 있었던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공통점도 보여준다. 규율되고 중앙 집중적인 맑스주의 당에 의해 지도되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 혁명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 뒤이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 아나키스트와 개량주의자라는 두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타협 없는 투쟁이 그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진짜 자본주의의 중심 권력을 공격할 수 있게 되기 전에 쓰러뜨려야 할 첫 번째 장애물임이 증명된,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실질적 담지자인 '극단주의자들'에 대항한 볼셰비키와 우리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들어가 있는 참호이다. 국제적인 정당을 정화하는 것은 완전히 이뤄질 수 없었고,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바이다.

    원칙에 있어서 그러한 공통점은 좌익 공산주의의 입장과 실질적인 활동에 대해 숨은 동기 없이 연구하는 것이 어려웠던 이들에게는 명백했다. 그리고 이 공통점은 텔레파시나 신비스런 국제적 연결 때문이 아니라 두 운동이 맑스주의의 방대한 학설들을 참고, 연구했기 때문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도 볼셰비키도 그런 신비스런 연결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레닌 스스로 그 사실을 그의 저작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야 역사에서 우리의 학설의 틀 속에 이미 교훈이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레닌의 글은 스탈린이 레닌이라는 대가의 가르침을 속이고 배신하기 위해 만들어 낸 '레닌주의'의 창시자의 글로서가 아니라 맑스주의의 위대한 학자라는 관점에서 읽고, 그의 위대함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가 혁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평생에 걸친 이론적 작업 덕분이었지, 그 반대가 아니다. 10월 경험으로부터, 몇 십 년 전부터 이론적 무기를 강화하고 날카롭게 하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왔던 진정한 맑스주의 정당이 지도했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고,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 외에 어떤 더 대단한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레닌의 <‘좌익공산주의>는 그 경험의 성취를 평가하고, 앞으로 다가올 혁명적 작업의 기반을 그의 방식에 따라 쌓고자 한 것이었다. 단결 이전에,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좌익의 입장은 질서정연했으며, 레닌은 그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오늘날 배신자로 알려진 이들은 최근 노동계급의 구원자인 체하며, <'좌익' 공산주의>가 그들에 반대하여 작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왜 1960, 모스크바에서 81인의 돼지들에 눈앞에서 던져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1984년 우리가 여전히 그 글이 우리의 것임을 전에 없이 더욱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인지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또한 이것이 우리가 24년 전의 글을 영어권의 프롤레타리아도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이유다. 국제 노동자 운동의 역사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연구에서 이야기했던, 노동조합주의가 탄생한 영국에서 일찍이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들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뛰어난 정치적 투쟁을 벌이는 동안 영국의 노동계급은 애국주의자, 협력주의자(collaborationists)라는 기회주의와 화려한 대영제국에 의한 부패의 덫에 빠져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혁명적 파도로 영국에서도 공산당의 창당되었다. 그러나 이들도 처음에는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시작되었으나 제3인터내셔널의 모든 정당들의 운명이 그러했던 것처럼 스탈린주의적 타락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영국 노동계급은 영국 사회를 문제에 빠뜨렸던 경제투쟁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자랑할 수 있지만, 대륙의 대중들이 역사적 전환점이 된 몇몇 사건들 속에서 겪은 혁명적 투쟁의 전통들이 실질적으로 없다. 이러한 과거의 차이는 영국의 노동자 전위와 국제적 혁명당 사이의 역사적 연결에 언제나 장애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은 미래에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제 공산당이란 러시아,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공산당이라기보다 세계의 공산당이며, 그 기원을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계급의 역사 속에서 경험한,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경험, 승리와 패배, 정복과 후퇴로부터 찾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영국, 미국, 그리고 호주의 노동자들의 정당도 마찬가지이며, 또한 그들 투쟁의 산물이며 그들의 역사적 이해의 성과이다.

    맑스주의가 프랑스와 영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성장하여 러시아에서 성공하였으며, 이탈리아에서 지칠 줄 모르고 방어되었으며, 맑스주의로 인해 멀지 않은 미래에 영국과 미국의 노동자 대중들이 자본의 요새를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1. 1920년 역사적 드라마의 배경

     

    레닌의 죽음 직후 공산주의 좌파의 발의로 로마의 카사 델 포폴레(Casa del Popolo)에서 그의 추도식이 열렸다. 추도식에서 한 연사는레닌의 것이라고 주장된 전술적 기회주의를 발표한 후 고전 <국가와 혁명>의 초반 문장을 인용했다. “레닌은 혁명의 위대한 선구자들의 가짜가 넘쳐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맑스와 그의 위대한 추종자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그렇다면, 레닌은 과연 그러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는가? 단연코 아니다!”

    이러한 태평한 예측 이후 36년이 흘렀다. 좌익의 가차 없는 비판 아래 펼쳐진 그들의 성적표는, 기회주의자들이 레닌이라는 인물 위에 쌓아 올리려고 한 거짓된 허튼 소리가 맑스에게 쏟아진 것보다 적어도 10배는 메스껍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곡하는 이들의 기본 체계는 언제나 똑같다. 우선 위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방법과 강령을 형성시켰던 역사적 진실의 장소에서 전설을 만든다. 이 전설 속에서, 고전적인 문헌들을 형성시켰던 실제 투쟁의 조건들과 분리하여, 완전히 동떨어지고 이런저런 불순물이 섞인 인용구들을 골라낸다. 마지막으로, 혁명 계급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 싸우고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그 의미를 노골적으로 완전히 바꿔버린다. 대부분의 경우 이 계급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에 몇 번씩이나 중고로 팔아 넘겨진 듯한 이론적 무기들로 무장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우리 계층이 그러하듯, 맑스주의자의 작업은 비현실적이고 억지스럽게 갖다 붙이는 아마추어리즘이나, 야비하고 타락하기 쉬운 출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맑스주의자의 작업은 좌익 공산주의의 모든 페이지와 모든 문장이 배신자들과 변절자들의 뻔뻔한 얼굴 위로 무자비한 채찍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수사나 선동을 읽고 실재의 역사적 사실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 당시 벌어진 사건들의 값싼 소문의 연대기가 아니라 진정한 역사적 사실 속에서 우리는 코볼트 (독일 도깨비: 역자 주)가 한 세기동안 부인하려 했던 독특하고 명백한 혁명적 교훈과 성취의 흔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920년 봄

     

    레닌이 러시아로 돌아온 지 4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17년에 10월 혁명이 일어났고, 파괴된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를 밝힘으로써, 19193월 혁명 1년 전, 3인터내셔널이 건설되었다.

    볼셰비키당은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전 방위적인 저주와 승인, 맹렬한 악담과 정열적인 지지를 동시에 받았다. 이 시기 러시아 당의 첫 번째 공헌은 데니킨(Denikin), 유데니치(Judenic), 브랑겔(Wrangel) 등이 이끄는 백군에 저항해 본격적인 내전을 시작한 것이었는데, 백군은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의 군사 원조를 등에 업고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시기는 정치적 의미에서 전선뿐 아니라 첨예하고 실질적인 군사적 대립이 팽팽하던 시기로, 이런 조건 속에서 러시아의 혁명의 궤적을 다루고 있다. 모든 것은 승리를 위해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그들이 40년 동안 애써 묘사하려고 했던 것처럼 레닌이 진짜 기회주의자였더라면, 그는 지원과 전쟁 선포 사이에서 단 1분도 선택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나운 적들에 포위당하고, 적색 독재의 테러에 격분한 모든 부르주아지가 똘똘 뭉쳐 흉포한 공격을 감행하는 국제 사회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가능한 모든 우군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레닌은 그 대신, 2차 대회 준비를 선포하는 글을 쓰고 19206월 대회를 소집했다. 그는 역사의 교훈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그의 글이 보여주고 있듯이, 당이 그 설립과 준비 과정에서 적과 아군을 가차 없이 구분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첫 번째 걱정거리는 세계 혁명당이 강령과 조직 교의(Organizational Doctrine) 없이 형성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러시아 외부의 수많은 지지자들을 거부하는 일이 될지라도 말이다.

    그와 같은 선택은 부르주아 의회 정치를 빌려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우익으로부터의 위험도 이미 명백했고, 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 사이의 인물들이 새로운 인터내셔널로 침투해 가길 바람에 따라, 인터내셔널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카우츠키주의와 중도주의가 그것이다. 레닌은 이미 그들을 맹렬하게 공격했었다. 그러나 좌익’, 아나키스트, 자유의지론자(libertarians), 그리고 소위 혁명적 생디칼리스트라는 소렐 학파로부터 정치적 영역에서 지원들은 세심하게 검토되어야만 했다.

    이들(좌익, 아나키스트, 자유의지론자, 소렐 학파)은 러시아의 사건을 계급투쟁에서 무장 폭력의 승인이라는 점에서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멍청이들이 싸움이나 값싼 총질을 보고 흥분하는 것-이들은 대부분 인격적으로는 진정한 겁쟁이들이다-이 혁명적 입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레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런 인물들이 좌익주의자라고 잘못 불리며, 종종 프롤레타리아 태생이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진실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또한 그것이 도덕적인 면죄부를 나눠주는 문제가 아니라, 혁명적 세력을 조직하는 문제임을 잘 알았다. 그는 이러한 일탈자들을 향해, 우익 기회주의에게 한 것에 비하면 덜 거친 용어를 썼다. (물론 이 둘은 모두 노동자들을 잘못 이끌고, 스스로 지도자가 될 생각에 가득 찬 지식인이 되곤 하지만)

    이런 거짓된 극단주의가 무척이나 위험한 까닭은 역사의 전 과정에 걸쳐 국가와 당이 모두 혁명의 필수불가결한 도구라는 러시아 혁명의 근본적인 교훈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의 교의와 조직에 대해서는 이미 맑스와 엥겔스가 제1인터내셔널의 논쟁과정에서 평가한 바 있다. 레닌이 말하길, 러시아의 아나키스트들은 1870년에서 1880년까지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길을 잃었음을 증명해 보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혁명 이론으로서 아나키즘은 어리석은 것임이 드러났다.’소렐의 생디칼리스트들은 라틴계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레닌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 교의에 대한 비판은 전쟁 전까지 우익 맑스주의자들이 담당했다. (이탈리아의 상황은 달랐는데, 개량주의 사회주의자 소렐의 생디칼리스트와 심지어 아나키스트들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사회-애국주의(나치)에 빠져들었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레닌은 소렐 학파가 독일 공산당 스파르타쿠스 그룹의 이른바 좌익안에서, 호르터와 판네쿡의 트리뷴 네덜란드 그룹 안에서 어떡해든 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 이 분파가, 10월 혁명에 대해 공개적으로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레닌을 괴롭혔는가? 그것은 정확히 레닌이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이론적 엄격함을 방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레닌은 러시아와 프랑스의 거짓된 좌익주의자들을 거의 용서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번도 맑스주의 전통에 서 있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레닌은 그의 명석함으로, 여전이 스스로를 맑스주의자라고 선언하는 이들에 대해 더 신경을 썼다. 우리들이 스스로를 레닌주의자라고 부르는 이들에 대해 그러하듯이. 레닌은 칼 오일러의 교훈적인 제목의 글, ‘당의 해산으로부터 다음을 인용했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부르주아 국가를 없앨 수 없다. 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당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없앨 수 없다.’

    여기서 레닌은 큰 소리로 호통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명백하게 맑스주의자로 여기는 빈틈없는 독일인들이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라틴 국가들의 더 어리석은 생디칼리스트와 아나키스트들은 만족할지도 모른다.’(레닌, 선집, 1977년 판, 529)

     

    중요한 문제: 당의 독재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단순히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수단으로 무장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하게 여기는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으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러한 구분은 불충분하다. 레닌이 그러한 그룹들에 대해 당연히 의심을 품었으나 우익에 대해서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말했다.

    “(19204) 9차 당 대회 때에도 지도자의 독재”, “소수 독재등에 반대가 있었다. 그러므로 독일에서좌익 공산주의유아적 무질서가 나타난 것은 놀랍거나, 새롭거나, 또는 끔찍한 일이 아니다. 그 병은 전혀 위험하지 않으며, 오히려 병을 앓고 난 뒤 유기체는 더욱 건강해진다.” (위의 책, 531)

    이것이 유명한 레닌의 유아적 무질서에 대한 생각이다. 그러나 그는 중도파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우익으로부터 다른 위험이 닥쳐오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공산주의의 노년기적 무질서였으며, 이것은 혁명 유기체를 죽음으로 몰고 가, 결과적으로 제2인터내셔널의 파괴적인 재앙보다 훨씬 더 해로울 것이었다.

    러시아 혁명이 불러일으킨 비평의 파도 속에서, 우리를 비판하는 많은 이들과 중상모략자들-맑스-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이들-, 우익 부르주아지에서부터 민주주의자, 아나키스트까지 다양했는데, ‘독재자들또는 독재자 레닌에 대해 합창으로 비난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자들은 크롬웰에서부터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가리발디에 이르는 그들의 위대한 독재자들을 잊었다.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을 언급하며, 어리석게도 다음과 같이 썼다. 애도할 것인가, 축하할 것인가? 홀란드, 독일, 그리고 다른 많은 나라들의 좌익은독재에 대해 이야기하길 망설였는데, 레닌은 올바르게도 그들의 그런 행위가 민주적이고 소부르주아적 정신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괘씸한 카우츠키의 중도파와 그 이후로 지금까지사회주의는 단지 민주주의이며, 모두를 위한 자유이다!라고 외치는 얼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오늘날 레닌의 이름으로 이야기하는 미심쩍은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진정한 좌익 맑스주의자 레닌은, 마치 우리들에 반대해서 쓴 것이라고 주장되는 이 글에서, 그 이름에 걸맞게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당 독재, 심지어 주어진 인물들의 독재의 구분에 대한 모든 망설임과 원칙들을 찢어놓는다.

    그 다섯 번째 장은 독일에서의 좌익공산주의, 그 지도자, , 계급, 대중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레닌은 공허한 대안을 내놓고 있는 독일의 좌익 공산주의의 팸플릿에서 풍부한 인용을 한다. 우리가 원칙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공산당의 독재인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인가? 이들은 하나의 대안을 다른 대안들에 반대하여 내놓는데, 투쟁의 발발을 기대하는 당의 지도자는 위에서부터, 대중 정당은 아래에서부터 행동한다는 식이다.

    이 지점에서의 레닌의 비판은, 공산주의자들을 아연실색케 하는당 독재를 우리가 거부한다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혁명을 모두 거부해야 하고, 당이지도자라는 단어가 무서워 지도자를 통해 움직이길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찬가지의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뤄진다. 우리의 당은 다른 모든 당과 다르고, 우리의 혁명적인 인간의 메커니즘은 다른 운동들이 떠들고 광고하는 메커니즘과 다르다. 그리고 레닌은 이를 비합법조직의 필수 불가결성으로 연결할 것이다.

    레닌은 그의 뛰어난 명쾌함으로 대중, 계급, , 지도자라는 범주들의 철학적 정의를 선사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다급했고, 그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레닌의 글은 당 독재와 극단적인 경우 특정 당 구성원들의 독재에 대해서도 그 필연성에 대한 모든 망설임을 제거한다. 이것은 그 이후 모든 정통의 사상가들-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네 지도자의 정상회담, 소위 네 거물들 앞에 엎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을 공포로 몰아넣어 왔다.

    모든 것은 임시정부와 국민선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당의 독재인가 계급의 독재인가, 지도자의 독재 정당인가, 대중의 독재 정당인가?’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가망 없이 어리석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대중들은 계급으로 나눠지는 것이 상식이다. 대중들은 계급과 대립하는데, 그것은 오직, 생산의 사회적 체계의 상태에 따른 구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광범위한 대중을, 생산의 사회 체계의 결정적인 상태에 대한 범주들과 대조할 때에만 그러하다. 대개, 적어도 현재 문명화된 국가들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계급들은 정치적 정당에 의해 이끌어진다. 정치적 정당이란, 일반적으로 가장 권위 있고 영향력 있으며, 경험이 풍부한 구성원들로 구성된, 다소 안정적인 그룹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가장 책임 있는 자리에 선출되며, 지도자라 불린다. 이 모든 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명확하고 단순하다.”(위의 책, 527-8)

     

    지도자의 배신에 대한 올바른 진단

     

    이런 명쾌한 문장은 엥겔스가 스페인 아나키스트에게 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혁명은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권위주의적인 사건이다

    계급 혁명은 전쟁이며, 내전이다. 군대, 본부, 그리고 당은 필수적이며, 승리 이후의 국가, 정부, 권력자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은 활동이 과거 완전히 합법적이었던 상황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 비합법적 상황이 되어버린 독일에서와 같이, 어떻게 비합법적 활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런 어리석은 생각들이 도출되는지를 설명한다.

    혁명과 내전의 폭풍과 같은 발전으로 인해 활동이 합법적인 것에서 비합법적인 것으로 빠르게 변화해가는 상황에서, 그 둘을 결합하고,‘불편하고’‘비민주적인선택을 하거나 그룹의 지도자를 형성하거나 보호하는 것에 적응해가는 것이 가는 것이 관습적(customary)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 될 때, 사람들은 그들의 입장을 잃고, 완전한 난센스를 생각하기 시작한다.”(위의 책, 528)

    1914, 사회주의자의 배신으로 손을 덴 많은 훌륭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지도자들을, 그들이 누구였든 간에 불신하기 시작한다. 레닌은 우리에게 지도자들의 몰락은 맑스주의자들에게 오래된, 그리고 명백한 사실이며 지도자를 대중에 대립시키는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나쁜 지도자와 좋은 대중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지도자와 대중 모두의 변질에 대한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1852년과 1892년 영국의 예를 들어 이러한 일들의 주요한 원인을 여러 차례 설명했다. 지역의 배타적인 입장으로 인해 대중으로부터 반-또는 소-부르주아지, 기회주의 노동 귀족들이 출현한다. 이 노동 귀족의 지도자들은 지속해서 부르주아지로 나아가며, 직접적이든 간접적인 역할을 다한다. 맑스는 그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음으로써 이러한 불명예스런 인물들의 증오를 유발하는 영예를 얻었다.’ (위의 책, 528-9)

    레닌은 같은 현상이 전쟁 과정에서, 그리고 제2인터내셔널 안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특정 유형의 배신자, 기회주의, 그리고 사회적-애국주의 지도자들이 양산되었는데, 이들은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것들과 노동 귀족정치 속 일부인 자신들의 이해를 지켰다. 기회주의자들의 당은 대중들’, 다시 말해 노동 인민들의 광범위한 계층들, 그들의 다수, 저임금 노동자들로부터 분리되었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러한 과 싸우지 않고서는, 그리고 기회주의자, 사회적 배신자 지도자의 정체를 밝히고, 의심하고, 추방하지 않고서는 승리할 수 없다. 이것이 제3인터내셔널이 취하고자 하는 정책이다.’(위의 책, 529)

    대체 어떤 맑스주의자가 이러한 역사적 입장을 자유의지론적 제안- 악은 당과 유명한 지도자들에게 있다 -과 혼동할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조건적, 또는 더 나쁘게도, 지역적, 민족적, 독일적 전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원칙과 강령에 대한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심지어 그 특수하고 계급적인 혁명적 교훈들을 참고했던 지도자들과 모든 정당들이 계급의 적들의 편으로 돌아섰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이,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지도자들과 당의 힘을 거부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실 맑스주의 교의는 처음부터 -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정당으로 조직하길 요구하는 공산주의선언에서부터 (1 인터내셔널의 인물들에 따르면, ‘모든 다른 정당에 대한 거부’), 독일의 혁명과 반혁명에 대해 쓴 맑스와 엥겔스의 저술들 등에 이르기까지 - 그러한 거부를 논박해왔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야기할 수 있다. 맑스와 레닌의 시대에는 프롤레타리아가 승리한 러시아와 같은 국가, 외교적으로도(연합군), 국내 정치적으로도(자본주의적 경제, 사회적 조치) 적의 편으로 넘어가는 지점까지 타락하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기회주의가 지난날 맑스나 레닌에게 알려졌던 것에 비해 20배는 더욱 혐오스러운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멍청한가를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러한 짓거리들은 당과 프롤레타리아트를 욕보일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첫 번째 언급에 대해서도 망신을 준다. 그러한 사실은 단순히 다음과 같은 말함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사람은 타락하기 쉬운 존재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타락하기 쉽다.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는 타락하기 쉽다. 당은 타락하기 쉽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국가도 타락하기 쉽다. 진짜 역사적인 권력관계, 살덩어리의 나약함이나 다른 윤리적인 설명 때문에. 그러나 위에서 이야기한 것들은 우리가 다음과 같은 것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한다. 국가를 비난하자. 권력은 더러운 것이며, 모든 이를 부패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론적인 이단은 맑스와 레닌에게 잘 알려져 있었고, 그들은 이를 완전히 산산조각 냈다. 그리고 레닌은 독일의 좌익주의자들의 원칙들로부터 똑같은 잘못된 생각들을 발견했다. 그는 우리가 사람, , 그리고 국가 정부의 지도와 같은 모든 어려운 무기들을 다뤄야만 함을 확인했다. 우리의 정치적인 동지들, 우리의 혁명적 당, 우리의 국가 기구들은 과거가 생산해 내었던 것들- 슬프지만 부분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것들을 포함하여 -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며, 그것들은 우리의 교의가 이론화되어 독자적인 형태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역사적인 과정을 보여주는데 있었다.

    레닌은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제기했으나, 그도 인간인지라 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독일 좌익주의자들이 당의 형태에 대한 의심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국가의 형태에 대해서도 불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들의 강령에 따르면, 맑스주의가 거리낌 없이 선언했던, 독재의 역사적인 형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더 이상 배신자들이 볼 수 없도록 당이 해산되어야 한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소부르주아지가 권력을 휘두르는 타락한 유혹을 저지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국가도 해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독재의 기간

     

    그러므로, 레닌이 맞선 위험은 우리가 이후에 다룰 전술의 오류가 아니라, 근본적인 원칙의 잘못, 그러므로 당의 내부의 조직적 수단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오류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한 역사적 순간, 대부분의 오류들은 절단과제명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구성원의 증가라는 유혹에 굴하지 않고 그것을 재빨리 칼로 끊어냄으로써 피할 수 있는데, 그것은 새로운 세계의 공산당은 어떤 구성원을 받아들일지그 조직적 방법에 대한 문제다. 이 논증을 끝내기 전에, 독재가 짧은 기간이 아니라 꽤 긴 역사적인 단계에 걸쳐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레닌의 비할 데 없이 박력 있는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속된 말로 구급책이 아니라, 우리의 이론과 우리의 전투를 생동감 살아있게 하는 산소와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당과 부르주아지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아무리 작은 오류라도 그것이 지속되고, 그것을 정당화하려 한다면, 그 논리적 결론에 가서는 엄청나게 거대해 질 것이라는 진실에서 납득할 수 있다.

    당의 반대파는 결국 당의 원칙과 규율의 거부에 도달했다. 그것은 부르주아지의 이해에 프롤레타리아트를 완전히 무장 해제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부단한 노력과 단결, 그리고 조직적 행동이 불가능한 소부르주아지의 산만하게 흩어지는 성격과 불안정함은, 만약 그것이 장려된다면,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 운동을 필연적으로 파괴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이치에 닿는다.’(위의 책, 529)

    이런 점에서 이 구절은 매우 고전적이다. 그리고 현재 연구의 결론과, 우리가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는 이탈리아 맑스주의 좌파의 테제와 일맥상통한다. 레닌은 죽어서 우리와 함께 있지 않지만, 그가 살아있었을 때조차 새로운 인터내셔널과 함께하는 우리의 이탈리아에서의 운동과 레닌의 비밀 협약(1920,‘민주적으로 선출된대표가 포함되지 않은, 이탈리아 사회당의 공산주의 기권주의 분파의 대표가 모스크바로 갔을 때, 레닌이 개인적으로 맺은 협약)이 있기 전부터 우리는 그것을 주장해왔다. 여기서부터 강조는 레닌이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것이다.

    공산주의의 관점에서 당의 원칙에 대한 거부는 (독일의) 자본주의의 붕괴 전야에서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 또는 중간 단계로의 도약이 아니라 높은 단계로의 도약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러시아에서(부르주아지의 전복 이후 3년차)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로의 이행의 첫 단계를 밟고 있다. 계급은 여전히 남아 있고,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획득한 이후에도 몇 년 동안(레닌의 강조)은 모든 곳에 여전히 그럴 것이다. 더 이상 소농이 없는(그러나 소부르주아지는 존재하는) 영국에서는 아마 이 기간이 좀 더 짧을 수 있다. 계급철폐는 지주나 자본가들의 단순한 추방(또는 죽음. 우리의 주석) - 우리는 상대적으로 이를 쉽게 달성할 수 있다 - 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상품생산자를 없애는 것(레닌의 강조)이다. 우리는 그들을 추방할 수도 없고 부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매우 장기적이고 느린, 그리고 주의 깊은 조직적 수단을 통해서만 변형되고 재교육될 수 있다(되어야만 한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스며들어 그들을 오염시키고, 지속적으로 나약하고 분열되어 있으며, 개인주의적이고, 그리고 고양과 우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변덕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원인이 되는 소부르주아지의 공기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둘러싼다. 이에 대항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조직적 (그리고 주요한) 역할을 올바르게, 성공적으로, 승리하도록 수행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정당 내의 가장 엄격한 중앙 집중화와 규율이 요구된다.’

    (레닌의 마지막 강조는 반()프롤레타리아트가 내전 동안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나 이후에 그들은 해산되고 분산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제 이를 강조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피가 흐르든 그렇지 않든, 폭력적이건 평화적이건,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교육적이든 관리적이든 지속적인 투쟁이다. 수억의 습관의 힘은 가장 무시무시한 힘이다. 투쟁 속에서 다듬어진 철의 당이 없다면, 계급의 모든 정직한 사람들의 신뢰를 누릴 수 있는 당이 없다면 (우리는 대중 속에서, 심지어 계급 안에서 건강하지 못한 잔여물들, 반혁명의 영향의 희생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그들이 교화될 수 없다면, 잔인하게 진압될 것이다) 대중의 분위기를 (그것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파악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당이 없다면, 그런 투쟁은 성공할 수 없다.

    똘똘 뭉친 거대한 부르주아지(독점자, 파시스트로 읽는다)를 무찌르는 것은 수천 수억의 작은 지배자들을없애는것에 비하면 천 배는 쉽다. 일반적이고 일상적이며 미세하고 교묘하며 사기를 꺾는 활동들을 통해, 그들은 부르주아지가 필요로 하고, 복원(레닌의 강조)하고자 하는 바로 그 결과, 부르주아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독재의 기간 동안) 프롤레타리아 당의 철의 규율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는 것이 누가 됐든, 그는 실제로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여 부르주아지를 도와주는 것이다.’(위의 책, 529-30)

    이러한 명백하고 단호한 공식화를 통해 레닌은 노동자 소비에트가 공산당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좌익 공산주의가 혁명 투쟁 이전에 소비에트를 소집하는 것을 제안할 만큼 어리석은, 다른 생각들을 제거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관이나 다름없는 소비에트의 기관은 부르주아지가 찬성표를 던지지 않음으로써,‘당을 해산할권리를 부여받았다. 1919년 이후 이탈리아 좌파는 이후 2차 당 대회의 소비에트와 공장위원회의 결의안을 비난하는, 그러한 반맑스주의적 테제와 싸워왔다. 이 테제로 돌아가 보는 것은 의미 있다.

     

    인터내셔널의 전략과 전술

     

    최근 기회주의 스탈린주의자들의 언론은 레닌의 <‘좌익공산주의>40년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무리들에게 이것은 그저 의례적인, 관습적으로 인사하는 날이나, 생일과 같은 무슨 무슨 날을 모아놓거나 농담 등으로 가득 찬 노트의 메모에 불과하다. 그들은 <‘좌익공산주의> 문구에 대부분 찬양하면서도, 이탈리아 좌파에 반대하여 속임수를 쓰거나 인용하기 위해 수백 번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것들은 지금부터 우리가 이야기할, 이탈리아 지방의 국지적인 문제를 넘어선 국제적인 방법과 심지어 레닌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최소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레닌이 상황적이거나 국가적인 전술 문제를 다룰 때, 혁명적 공산주의 운동의 구성적이고 역사적인 전략들을 고려하는 원칙의 명확한 지점들을 밝히려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혁명적 공산주의 운동이란 오직 세계 혁명과 세계 공산당의 조직이라는 목표를 가진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중요한 작업 속에서 어떻게 이탈리아 좌파가 레닌을 지지했으며, 다른 누구보다도 결정적인 지점에서 그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짧게 이야기할 수 없는 우리들의 설명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 그 당시 네덜란드-독일로 일반적으로 기인하는 전술적인 지점들이 보고되어야만 한다. 그들의 입장과 이탈리아의 입장이 흔히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독일 반대파는 실질적으로 두 지점에서 이탈리아 공산주의와 다르다. 무엇보다도, 독일 반대파는 공산주의자는 기회주의적 - 그 당시에는 반동이라고 불렸던 - 노동조합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점에서 독일 반대파는 이탈리아 공산주의와 아무런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다. 이탈리아에 아나키스트 경향과 독일공산주의노동자당(KAPD)이 독일에서 만들려고 했던 것과 같은 좌익 노동조합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노동조합과 분리를 지지한 적은 없으며, 그 지도자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바로 그 개량주의 일반노조, 이탈리아 노동총동맹(Confederazione Generale del Lavoro) 안에서 활동했고, 그것은 레닌이 선호한 바로 그 전략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전술적 해결책은 원칙에서 직접적으로 도출된다. 혁명적 기능은 주요하게 당에 있는 것이지, 노동조합이나 공장위원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익 노동조합이나 다른 노동조합을 거부함으로써가 아니라, 레닌이 명백하게 동의했던 것처럼, 정당을 쪼갬으로써 새로운 공산당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오히려 그 이후야말로 단일한 노동조합을 위한 투쟁의 시점이다.

    독일 좌익의 두 번째 실수는 의회 선거를 보이콧한 것이었다. 보라, 실리주의자들이 기뻐 날뛰지 않는가! 레닌은 독일과 이탈리아 모두를 비난해야 했다. 그러나 그 경우 입장이 다름을 레닌은 알았고, 그것을 가르쳤다.

    평범한 바보에게 혁명적 반란과 국가 속에서 공산당의 주요한 기능을 거부하고 다른 즉자적인프롤레타리아 기관인 노동조합, 위원회, 소비에트 등 (이것들은 우리의 주요한 적, 직접주의 경향이다)에 넘겨주고, 그러한 투쟁의 정치적인 측면에 대한 거부로부터 의회적인 측면에 대한 거부까지 이끌어내는 일이 실수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어진 역사적 단계에서 혁명적 정책에 반대하는 합법주의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동의에 이르진 못했지만 레닌과 논의한 바이다. 우리는 규율을 위해 그의 해결책을 받아들였다.

    이 연구의 마지막, 또는 그 다음의 연구에서, 오늘날 배신자들이, 의회주의 문제에 대해 원칙적으로 레닌과 우리들과 반대에 입장에 선 반면, 이 경우 우리들이 실제로 레닌과 원칙적으로 함께했던, 그러나 전술적인 차원에선 불일치를 보였던 의회주의에 대해 보여주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 될 것이다. 사실 2차 당 대회에서의 논의는 의회주의를 파괴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한 것이었고, 레닌과 다수는 그러한 파괴가 의회주의 외부가 아니라 그 내부로부터 행해져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했다. 우리는 저기 있는 의회 속으로, 스스로 레닌주의자라고 맹세하면서 실제로는 의회를 지킬 준비가 된 광대들들 속으로 들어간다. 이 문제에 대해 대중들이 광대들을 따르는 한, 대중들은 그야말로 일탈하여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는 사회민주주의적 믿음을 갖고 투표소로 향한다.

     

    레닌의 계획

     

    맥락으로부터 분리된 문장만을 인용하는 이들(이러한 이유에서도 이들은 왜곡을 잘하는 스탈린주의자의 학생일 수밖에 없다)과 우리들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좌익공산주의>에 대한 팸플릿의 모든 부분을 순서대로 검토하여 그 강령과 원칙을 모두 뽑아낼 것이다.

    추가적으로 역사적으로 자세한 부분들을 제시하고, 요약을 해 보자.‘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주요한 책무에 대한’ 2차 당 대회의 테제는 당과 노동계급과 몇몇 대중 운동의 관계에 대한 개념들이 불충분하다고 선언한다. 독일 공산주의 노동당(Communist Workers Party of Germany), 헝가리 잡지 공산주의(Kommunismus) (그들이 아무리 러시아 혁명에서 아름다운 투쟁을 펼쳤다 하더라도 그것이 관념적 유형인 교의의 오류를 숨기지는 못한다), 영국 사회주의 노동 연합, 미국 세계산업노동자(IWW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스코틀랜드 직장 위원(공장 위원회)가 그러한 운동들이다. 여기서는 노동조합과 의회 보이콧을 모두 비난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우리가 여전히 오늘날까지, 심지어 반스탈린주의 그룹 안에서도 싸우고 있는, ‘직접주의라는 이름의 경향에 반대하는 하는 정통적 맑스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 다른 점인데, 레닌그라드에서 있었던 대회 전 모임에서 그러한 운동들을 대회의 한 부문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참관자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심지어 러시아인들도 깜짝 놀랐던 것은, 이탈리아 대표가 그러한 운동들을 배제하자고 제안했으며, 이 대회는 오직 공산당만이 가입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의 정당 대회라는 데까지 주장한 것이다. 그것은 이후에 21개 항의가입 조건(conditions of admission)’에서 명확해진다.

    이제 레닌의“‘좌익공산주의를 살펴보자. 이것은, 읽고 읽을 수 있는 문제이다.(It is a matter of reading it, and of being able to read it). 우리는 이미 역사적인 윤곽을 제시했다. 요약은 다음과 같다.

    1. 러시아 혁명의 국제적인 중요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2. 볼셰비키 성공의 본질적인 조건

    3. 볼셰비즘의 역사에서 주요한 단계

    4. 노동계급 운동 내의 적들에 대한 투쟁은 볼셰비즘이 발전하고 힘을 얻으며, 강철로 다듬어지는데 도움이 된다.

    5. 독일에서의 좌익공산주의. 지도자, , 계급, 대중

    6. 혁명가들은 반동적인 노동조합에서 활동해야 하는가?

    7. 우리는 부르주아 정당에 들어야 하는가?

    8. 타협은 없는가?

    9. 영국에서의 좌익공산주의

    10. 결론들

    부록

    1. 독일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분리

    2. 독일의 공산주의자와 무소속

    3. 이탈리아의 투라티

    4. 올바른 전제로부터의 그릇된 결론

    우리는 레닌이 이 글을 쓸 결심을 했을 때의 역사적인 순간에 대해 이미 언급했다. 이 글의 테제는 매우 중요하며, 언제나 타당성을 갖고 있지만, 공식적인, 자칭 레닌주의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계속 짓밟혀져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섹션5의 주제를 강조하며, 레닌의 주요한 걱정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것은 당의 주요한 기능에 대한 과소평가의 위험뿐만 아니라 당 독재에 대한 두려움이 가진 위험이었다. 진부한 직접주의자와 너무 열심히 일하는 -정치주의자의 진정하고 고전적인 비난은 언제나 고전적인 맑스주의자들이 부숴왔다.

    그 후에 우리는 다른 주제들에 대해 간단하게 다룰 것이다. 의회주의 문제에 관해서 우리는 레닌의 주장은 보이콧과 참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다룰 것이다. 우리는 이탈리아 정당의 역사와, 부르주아 아벤티노(Aventino)와 함께 한 어리석은 후퇴의 단계를 다시 끄집어 낼 것이다. 아벤티도는 좌파가 당을 더 이상 지도할 수 없는 위치에서 귀환을 강제했지만 중도파에 의해 부름을 받았다.

    우리는 레닌이 기권주의자들이 191910, 볼로냐에서 투라티와 함께 선거를 원한 압도적인 다수로부터 분리되었어야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구를 인용할 것이다.

    타협의 이론에 대해서는, 우리는 1918년 브레스트-리톱스크 평화조약의 거부를 언급할 것이다. 이탈리아 좌파는 러시아와 연결되어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멸에 이를 혁명적 전쟁을 선택하지 않고, 독일의 도적들과의 조약을 조인한 레닌의 입장을 공유한다.2)

    인터내셔널이 싸우고 있었던 주제,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에 대해서는, 그 정통성이 언제나 의심스러운 그람시의 오르디누보 (신질서 운동)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쉬울 것이다.

    레닌이나 맑스의 저작들을 읽는 방식이 매우 고된 일이라는 것은 우리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이 미쳐 날뛰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의 유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유일한 길이다.

    선정적인 효과를 좋아하고 진부한 것에 스스로 만족하고, 기만적으로 사형을 회피한 이들은 누구나 하수구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번역: 편집부)



    <주>

    1) 출처: http://www.sinistra.net/lib/upt/comlef/ren/renegadebe.html

    이 글은 공산주의 좌파 인터내셔널 도서관 (www.sinistra.net) 에 실린 문서로, 출처는 이탈리아 공산주의 좌파 계열의 국제공산당이 발간한 4<공산주의 좌파의 텍스트>.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 문건은 I.1920년 역사적 드라마의 배경 II. 러시아, 또는 인류의 역사 III. 볼셰비즘의 토대 : 중앙 집중화와 규율 IV. 볼셰비즘의 역사적 궤적 V. -볼셰비즘 두 운동에 대한 투쟁: 개량주의와 아나키즘 VI. 레닌이 한 것으로 주장되는 '타협안에 대한 승인'의 핵심 VII. 이탈리아의 문제에 대한 부록 총 7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이중 서문과 1장을 번역한 것이다. 이후 기획번역으로 완역할 예정이다. (편집자


    2) 우리의 Storia della Sinistra Comunista, Milano, Ed. Il Programma Comunista, 1964를 보라. 특히 342쪽 기사, 전진(Avanti)결정적인 국면의 러시아 혁명의 방향’, 1918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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