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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 글씨] 소련,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세계혁명 - 오세철
  • 조회 수: 11392, 2013-05-05 19:36:22(2013-04-28)
  • 소련,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세계혁명

    [서구 마르크스주의, 소련을 탐구하다] 1)를 읽고

    오세철|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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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김수행은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한울아카데미, 2012)라는 의미 있는 책을 쉽게 풀어 출간했다. 우리나라에 마르크스의 [자본]을 처음으로 번역하여 대중화시킨 원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러시아 혁명 이후 존재했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그 성격을 규정한 적이 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의 토론과 논쟁에서도 그들의 국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앞으로 올 세계혁명에 대한 실천적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고 언급하지 않았다. 여름방학 동안 <사회실천연구소>가 개설한 [자본] 강의가 끝난 후 수강생들과 함께 종강 뒤풀이를 하는 시간에 막역한 친구이며 동지인 그와 함께하며 그의 책 이야기를 하며 비로소 ‘현실 사회주의’와 미래 사회에 대한 입장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의 책에서 몇 단락을 옮겨보자.

     

    노동자가 해방되니 자본가도 해방되어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사회’가 공산주의이고 사회주의라고 가르쳤습니다. … 사실상 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은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당과 정부의 관료들이 점점 더 인민 대중을 옥죄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을 조금만 읽었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소련식 자본주의’가 내부의 위기 때문에 ‘일반적 자본주의’로 성장 전환한 것이 바로 1990년의 소련 사회의 붕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김수행,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한울아카데미, p.4)

     

    노동하는 개인들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동력을 국영기업이나 콜호스에, 즉 국가자본에 판매하여 화폐를 얻고 이 화폐로 상품을 사기 때문에, 소련의 상품과 화폐는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상품.화폐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생산수단이 국가 소유로 되었기 때문에 사적소유는 없어지고 사회적 소유로 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추론입니다. … 이 경우 [사회적 소유] ‘사회’는 개인들을 초월하여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아니라, 자각한 개인들의 연합을 가리키거나 연합한 개인들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소련의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폐기되어, 이런 연합한 개인들의 사회적 소유가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 소유는 실질적으로 노멘클라투라의 소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앞의 책, pp.158~159)

     

    나는 2008년 8월 <아우프헤벤>그룹의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번역하는 도중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으로 잡혀가는 바람에 번역이 지연되어 2009년 6월에 그 책을 발간하면서 다음과 같이 옮긴이의 말을 적었다.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실 사회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였는지에 대해서도 분석하지 않고 반혁명적 스탈린주의에 대한 옹호로 갇혀있는 맹목주의자들이 있는가 하면, 1930년대에 가졌던 소련에 대한 방어논리의 미련을 못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머지않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와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으로 쟁취해야 할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다면, 반혁명의 참담한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 ‘현실 사회주의’를 아직도 혁명의 허상으로 붙들고 있거나, 스탈린주의를 교조로 삼는 사람들이 맑스주의자들이라면, 이 글과 같은 분석을 내놓기를 바랄 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자.(아우프헤벤, 오세철 옮김, [소련은 무엇이었나], 빛나는전망, pp.5~7)

     

    나는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좌익공산주의자로 불렀고, 공산주의 좌파의 정치적 입장과 혁명 전략에 동의해 왔다. 소련을 국가 자본주의로 보는 그들의 입장과 분석에 원칙적으로 지지를 보냈지만, 위에 번역한 <아우프헤벤>그룹의 자본주의로 보는 입장에도 비판적 지지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그룹의 글이 지니는 강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 맑스주의의 역사를 철저하게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면서 맑스의 가치론으로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트로츠키의 고뇌와 한계를 넘어서서 소련을 분석한 신트로츠키주의 이론가인 틱틴의 분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셋째, 국가 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로 보는 견해(좌익 공산주의와 제2인터내셔널과 코민테른의 중심 입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소련이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상품생산에 기초하지만, 자본주의로의 강제적 이행의 역사적 형식의 결과로써 생산의 자본주의적 본질과 상품교환에 기초한 사회로서의 외양 사이에는 탈구가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 탈구는 가치의 불구화와 사용가치의 불량을 가져왔으며 이 두 가지는 소련의 비자본주의적 특성을 유지시키는 기초가 되었고, 결국 소련의 궁극적 쇠퇴와 해체로 이끌었다고 본다.(앞의 책, pp.6~7)


    우선 우리는 공산주의 좌파가 보는 자본주의와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국제 코뮤니스트 경향>은 생산수단의 국가소유가 제국주의 시대의 자본의 실질적 형식인 금융자본의 재산으로서의 자본주의 본질을 바꾸지 않았다고 보면서 엥겔스가 「반뒤링」에서 “… 주식회사로의 전환도, 국가 소유로의 전환도, 생산력의 자본주의로서의 성질을 지양하지 못한다. … 그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현대 국가는 본질적으로 자본가들의 기관, 자본가들의 국가, 관념상의 총자본가이다. 현대 국가가 생산력을 더 많이 자기의 소유로 떠맡으면 떠맡을수록, 그것은 더욱더 현실적 총자본가가 되며, 국민을 더욱더 착취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노동자로, 프롤레타리아로 남는다. 자본관계는 폐기되기는커녕 오히려 정점으로 치닫는다”라고 한 말을 강조하고 있다.(오세철 편저, [좌익공산주의], 빛나는 전망, pp.499~500)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국가는 국가 자본주의의 특수한 형식이었고 국가는 생산의 물질적 수단을 직접 통제하고 시장에 대한 독점을 장악했으며, 소련의 비참한 종말은 10월 혁명을 러시아 블록의 몰락과 분리된 오랜 세월 동안 공산주의 좌파가 발전시킨, 정치경제학 비판이나 맑스주의에 근거한 분석을 입증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국가소유와 사회주의를 동일시한 비극은 이른바 소비에트 사회가 고전적(곧 서구) 자본주의의 조직적이고 법적인 구성으로 돌아온 종말을 보여주었다고 결론짓는다.


    국가 자본주의에 기반한 러시아에서의 반혁명은 유럽 혁명운동의 패배와 맞물렸다. 반혁명의 과정은 당에게 러시아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을 부여했으며 동시에 그들 당이 사회민주주의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하게 만들었다. 당 없는 혁명의식을 생각할 수 없지만, 러시아 경험의 교훈은 가장 계급의식적인 당일지라도 소비에트와 고립되어 혁명을 유지할 수 없음을 입증했다. 지치고 죽은 노동계급으로부터 고립되었을 때 볼셰비키 지도부의 손에 남은 전력은 자본주의 국가의 권력이었던 것이다.(앞의 책, pp.503~4)


    한편 <국제 코뮤니스트 흐름>은 자본주의의 쇠퇴기 보편적 경향으로 국가 자본주의의 출현을 설명한다. 쇠퇴기에는 어떤 민족자본도 무제한적으로 발전할 수 없고, 각각의 민족자본 모두 무자비한 제국주의적 경쟁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밖으로는 경쟁자들에 대항해 자신을 경제, 군사적으로 가장 잘 방어하기 위해, 안으로는 증대하는 사회모순의 첨예화에 대응하기 위해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조직화한 것이 국가라고 설명한다. 경제 영역에서의 국가 자본주의로의 이러한 경향은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적인 특징들인 가치법칙, 경쟁 또는 생산의 무질서를 소멸시키지 않는다. 생산의 무질서가 국가적인 계획화 때문에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세계적 차원에서는, 특히 국가 자본주의가 방지할 수 없는 심각한 체계의 위기 기간 동안에는, 그만큼 더 강화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국가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합리화’이기는커녕, 자본주의의 붕괴 표현에 불과하다.(앞의 책, pp.458~460) 또한 정치적, 사회적 영역에서의 국가자본주의로의 경향은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와 같은 극도의 전체주의적 형식 속에서든 또는 민주주의의 가면 아래 은폐된 형식들 속에서든, 국가기구와 특히 그 집행력이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 막강한 통제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통해 표현된다.


    국가의 손에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국가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부르주아지가 축출되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일국 사회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스탈린주의 이론 및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들이나 ‘사회주의로의 노정에 있는’ 국가들에 대한 허구는 이러한 은폐에 모두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 자본주의로의 경향에 의해 초래된 변화들은 생산관계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법률상의 소유형식에서 발생한다. 또한, 프롤레타리아의 잉여노동 점유 및 국가 자본의 축적이라는 특수한 기능을 행사하는 국가 관료조직은 일종의 계급을 이룬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계급이 아니라 기능에 있어서 국가의 형태를 띤 낡은 부르주아지에 불과하다. 국가와 그 관료조직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집중화와 계획화는 소유의 폐지를 향한 진전이 아니라 착취 강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국제 코뮤니스트 흐름>은 이를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러시아에서의 반혁명의 승리는, 국가 자본주의의 가장 발전된 형식들을 적용했고, 이러한 혁명들은 ‘10월 혁명의 속행으로서’, 그리고 ‘사회주의의 건설’로서 냉소적으로 제시했던 민족경제의 일종의 재조직화로서 표현되었다. 이러한 예는 그 후 다른 곳에서도 추구되었다: 중국, 동유럽, 쿠바, 북한, 인도차이나 등등 … 이들 모든 국가들에서 공산주의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프롤레타리아적인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으며, 역사상 가장 커다란 허위의 무게 아래에 자본의 독재가 가장 쇠퇴한 형식으로 지배할 뿐이다. 이 나라들을 위한 그 어떤 ‘비판적’인, 또는 ‘조건부의’ 변호도 전적으로 반혁명적인 행위에 불과하다.(앞의 책, p.462)

     

    바로 이 시기에 「소련을 탐구하다」라는 방대한 소련연구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최근 우리말로 옮겨져 출간되었다. 5년 전 <사회실천연구소>를 맑스주의 연구자들과 함께 만들면서 우리는 번역의 시대를 다시 열자고 했다. 훌륭한 맑스주의 연구논문들을 번역 소개하여 맑스주의 사상이론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 맑스주의적 실천에 이바지하자는 것이었다. 그 글들은 [실천]지에 계속 실렸다. 이 책을 옮긴 황동하는 [실천]지에 린던의 책을 번역 연재했고, 드디어 올해에 이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은 북아메리카와 서유럽 출신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와 동유럽, 소련의 저자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1917년에서 2005년까지 서구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따르면서, 만일 더 짧은 시간 축을 적용했다면 모호해졌을 연속성과 변화를 확증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90년 동안의 소련에 대한 탐구를 망라하여 정리한 저작은 처음 있는 작업이며 연구의 역사와 구조를 큰 틀에서 인식하게 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거나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려는 모든 연구자와 실천 활동가는 자신이 특정한 정치노선을 선택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지침서로 손색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망라된 연구에 직접 다가가 꼼꼼하게 검토하는 몫은 저자의 몫이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저자는 특히 서구 자본주의의 안정과 활력에 대한 인식을 1917년부터 4단계로 구분하면서 연구의 성과를 정리하고 있는데, 첫 번째 단계는 1917년부터 1950년대 초까지로 일반화된 상품생산이 지배했던 체제의 쇠퇴, 하락, 붕괴를 강조하는 인식 유형, 두 번째는 1950년 초부터 1960년대 말까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역사적으로 보기 드물 만큼 경제가 성장하고 번영한 시기, 세 번째로 1960년대 말부터 자본주의가 해결할 수 없는 경제위기에 빠졌다는 믿음이 지배하는 시기, 그리고 네 번째로 그 위기 속에서도 자본주의가 당분간 세계를 계속 지배할 것이라는 인식의 시기이다. 이 책이 2005년까지의 연구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2009년부터 진행된 대공황과 자본주의의 쇠퇴와 파국의 경향을 고려한다면 아마 우리는 다섯 번째 단계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2장 10월 혁명에서 스탈린 시기까지(1917~1929), 3장 스탈린의 ‘대도약’에서 ‘대조국전쟁’까지(1929~1941), 4장 ‘대조국전쟁’에서 동유럽의 구조적 융합까지(1941~1956), 5장 소련 공산당 20차 당 대회에서 ‘프라하의 봄’ 탄압까지(1956~1968), 6장 ‘프라하의 봄 탄압’에서 페레스트로이카까지(1968~1985), 7장 소련 붕괴와 그 여파(1985년에서 현재까지), 8장 결론을 대신하며, 9장 메타 이론적 주석으로 짜여있다.


    출판물의 수는 28편(1917~1928), 53편(1929~1940), 130편(1941~1956), 63편(1957~1968), 402편(1968~1985), 107편(1986~2004)으로 총 783편이며 이를 시기별로 자본주의, 관료적 집산주의, 타락한 노동자국가 그리고 다른 이론으로 분류하여 연구자별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1917년부터 논쟁의 규모는 차츰 증가했고, 1957~1968년 동안에는 얼마간 줄어들었으며, 1968년 뒤 폭발적으로 늘었고, 1980년대 뒤부터는 다시 꽤 줄었다.(마르셀 판 데르 린던 지음, 황동하 옮김, [서구 마르크스주의, 소련을 탐구하다], 서해문집, p.373) 그는 서론에서 소련에 대한 이론화에 영향을 준 세 가지 요소로 서구에 대한 인식, 소련에 대한 인식,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분석에 대한 해석을 꼽았는데 그 세 가지 영향도 여러 단계를 거쳤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도표로 정리하고 있다.(앞의 책,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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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결론적으로 소련에 대한 이론의 전개가 네 가지의 분명히 다른 단계로 구분된다고 정리한다.

     

    1) 1917~1929년은 고전적 단선주의가 지배했다. 혁명 이후의 사회가 성공적이든 또는 역사적으로 불가능하든, 그도 아니면 실패로 끝날 운명이든 사회주의로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던 시기였다.
     2) 1929~1968년은, 스탈린주의적 전환의 결과로서,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회형태가 소련에서 출현했다고 인식하던 시기였다. 세 가지 중요한 변종이 이 기간에 제시되었다. 즉 ① 국가 자본주의 이론과 ② 타락한 노동자 국가 이론이다. 두 가지 이론 모두 여전히 단선적 도식을 고수했다. 그뿐만 아니라 ③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도 나왔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관료집단은 새로운 지배계급으로서 기능했다. 그 이외에 주의 깊게 네 가지 접근을 한 시도(‘이름표 없는 이론들’)가 1940년대 초기에 (페드호사, 힐퍼딩), 그리고 특히 1950년대 초 서독에서 출현했으나, 이것들은 상대적으로 고립되었고 다시 잊혀졌다.
     3) 1968~1985년의 시기에는 논쟁이 다시 활기를 띠었고, 네 번째 접근법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으며, 세 가지 오래된 접근법은 정체하는 경향을 보였다.
     4) 1985년 뒤부터는 논쟁의 강도가 약해졌다. 그럼에도 특별히 새로운 (국가) 자본주의 이론의 수가 많이 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앞의 책, p.376)

     

    그러면서도 저자는 (국가) 자본주의 이론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면서 타락한 노동자 국가이론과 관료적 집산주의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먼저 정통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타락한 노동자 국가론의 몇 가지 근본적 문제들을 지적하는데, 첫째 관료적 현상의 일시적 본질에 대한 의문, 둘째 생산의 영역과 분배의 영역 구분이 마르크스와 모순되는 점, 셋째 분배와 관련된 기생적 기능을 관료의 것이라고 봄으로써 관료가 생산 영역에 뿌리를 둘 수 있음을 부인했다는 점, 넷째 정치적 영역과 경제적 영역의 분리의 모순을 들고 있다.
    그는 노동자 국가 이론은 부분적으로는 정통에 어긋나고 부분적으로는 비논리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결론짓는다.(앞의 책, pp.382~385) 이어서 소련을 지배계급이 있는 새로운 사회형태로 보는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에 대해 그는 첫째, 이론 전체가 마르크스의 틀에 맞지 않는다는 점, 즉 자본주의 뒤에, 다른 추가적이고 온전한 역사적 단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고 잘라 말한다. 둘째, 관료계급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와 관련하여 논자들이 서로 모순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있음을 들었고, 셋째, 이 이론이 옳다면 권력을 잡기 전에는 존재한 적도 없었던 지배계급이 출현했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점 때문에 마르크스의 정설과 일치할 수 없다고 본다.(앞의 책, pp.385~387) 또한 저자는 1968년 이후 ‘이름표 없는’ 이론의 급속한 확산과 정교화가 옛 이론들의 강점과 약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는 아닐지라도, 소련이 독특한 생산양식을 가진다는 점을 부인했던 ‘네 번째 경향’의 출현은 이해할만하다고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저자가 지적한 대로 1985년 이후 (국가) 자본주의 이론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며, 특히 소련 붕괴 이후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이 책 37장 소련 붕괴와 그 여파(1985년에서 현재까지)에서 저자는 (국가) 자본주의 이론을 제시한 몇몇 그룹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우선 <혁명당 동맹(LRP)>의 이론가인 월터 다음을 들 수 있는데, 그는 1990년 그의 책 [스탈린주의의 삶과 죽음]에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이행에 대한 새로운 시대 구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


    그는 1930년대 중반까지 트로츠키가 소련의 전개과정을 분석했던 것처럼 소련이 발전했지만 전화점이 된 1936년부터 몇 년 동안 자본주의의 복원에서 정점에 다다른 반혁명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국가화된 자본주의’라고 불렀으며, 경쟁을 자본주의의 본질로 보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추진력을 축적 노동, 자본과 노동 사이의 투쟁, 근본적으로는 임금체계를 통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로 규정했다.(앞의 책, pp.320~322)


    두 번째 영국의 반-볼셰비키 공산주의자 프로젝트에서 활동한 페르난데스는 그의 책 [소련의 자본주의와 계급투쟁](1997)에서 자본주의의 세 가지 결정적 특징(즉, 상품과 임노동과 이윤을 위한 생산)으로 생각한 것이 모두 소련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이 책의 요약은 [소련은 무엇이었나](아우프헤벤 지금, 오세철 옮김, 빛나는 전망)의 부록에 실려 있다. 219~233쪽을 볼 것)


    세 번째는 <아우프헤벤>그룹은 자본주의를 사적 소유와 ‘시장의 무정부 상태’를 기초로 한 이윤추구체계로 보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진부한 해석을 거부하고 자본주의의 본질이 소외된 노동의 자기 확장이라고 보았다. 소련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소련 노동자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이 그룹은 “틱틴을 따를 것을, 그리고 소련을 이행기 사회구성체로 여길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보르디가와 이탈리아 좌파의 통찰을 따르는 우리는 소련을 자본주의로부터 이행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로 이행기에 있는 사회구성체로 파악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해 공산주의 좌파의 국가 자본주의론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더 자세한 것은 위에 언급한 책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볼 것)


    7장 결론에서 저자는 “비록 소련이 초기에 광범위한 공업화 방법과 경제외적 강제를 사용하는 데 성공했지만, 소련은 비효율성이 늘어나고 집중적인 성장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지구화하는’ 세계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경제적.군사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제성장 모델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사상경향에서 차츰 지배적이 되었다”(앞의 책, p.369)고 결론짓는다.


    타락한 노동자국가이론과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에서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저자의 평가와 국가 자본주의 이론에 대한 그의 평가는 다르다. 그의 평가를 점검해 보자. 첫 번째 국가 자본주의 이론가들이 (국가) 자본주의의 본질을 해석하는데 네 가지 관점을 지녔다고 보았다. ① 노동계급의 존재(제임스, 매틱, 레오), 또는 잉여가치 생산(위럴), 생산수단의 임금노동자 착취(홀룸베리), ② 이윤을 실현하고 시장계약을 통해 그들 사이의 재화를 교환하려고 시도하는 개별 기업 사이의 분리(보르디가, 베틀랭, 샤토파디야), ③ 임금이 최소화되어 있고, 잉여가치가 투자와 비생산적 소비를 위해 사용될 경우(그란디소), ④ 이윤 극대화를 통해 유발된 자본 사이의 경쟁(클리프)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임노동에 초점을 맞추는 대부분의 이론이 마르크스의 일면만을 강조했다고 해석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보기에, 몇몇 ‘요소’를 구성요소로 하나의 통합체를 구성한다. 이때 임금노동은 몇몇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만일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언급된 저자들은 마르크스의 의미에서, 즉 체제에 내재하는 논리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생기는 소련에서 기업경쟁의 존재를 입증하는데 실패하고, 따라서 소련 국가 자본주의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 어쨌든 임노동은 [자본론] 제1권에서 다루어졌지만, 경쟁은 [자본론] 제3권에서 폭넓게 다루어졌다.(앞의 책, p.380)

     

    그러나 일부 저자가 임노동을 가장 중요한 유일 조건으로 보았다고 해서 국가 자본주의 이론 전체를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그의 결론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1985년 이후 제기된 국가 자본주의 이론(다음, 페르난데스, 아우프헤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저자는 국가 자본주의 이론의 문제를 지배계급의 존재 문제로 본다. 몇몇 저자들이 이와 관련해서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고 사적 자본가의 존재만을 부인했지만, 대다수 저자는 부르주아지가 러시아 자본주의를 지배했다는 것을 부인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가 계급이 자본주의를 위한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한 것과 모순된다는 의미이다. 다만 클리프와 베틀랭만이 소련에서의 부르주아지의 존재를 상정했고 경쟁이 존재한다고 믿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어느 한 가지 이론도 사실과 일치하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부합하는데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결론짓는다.


    위에 언급한 이론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 저자는 열 한가지의 잠정적 관점을 확인하고 있다.

     

    ① 볼셰비키 체제와 나중에 스탈린 체제는 근대화 독재 정권을 만들어냈다.
    ② 소련은 아시아적 생산양식과 유사점을 나타냈다.
    ③ 소련 사회는 ‘잡종’ 사회구성체, ‘비논리적’ 현상, 인간역사의 도중에 있는 막다른 길이었다.
    ④ 볼셰비키주의 그리고/또는 스탈린주의는 역사적으로 제한된, 일시적 현상이었다.
    ⑤ 소련 사회는 계급 사회와 무계급 사회 사이의 이행기 단계의 한 예가 되었다.
    ⑥ 스탈린주의와 파시즘 또는 국가 사회주의는 동일한 사회형태의 두 가지 변종이다.
    ⑦ 소련에서 정치에 대한 경제의 종속 또는 완전히 자율권을 획득한 국가가 되었다.
    ⑧ 지배 엘리트의 권력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에 기반을 두었다.
    ⑨ 소련에서 노동자는 ‘자유로운 임금노동자’가 아니었다.
    ⑩ 소련이 오래 존속하면 할수록 비효율성이 더욱 증가하거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더욱 커졌다.
    ⑪ 소련의 역동성은 서구와 경쟁하면서 만들어졌다.(앞의 책, pp.388~390)

     

    저자는 서구마르크스주의가 탐구한 소련 연구의 역사를 검토한 후 내린 열한 가지 잠정결론에서 명시적으로 소련이 (국가) 자본주의인지, 타락한 노동자 국가인지 관료적 집산주의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사회구성체인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국가)자본주의 이론에서 본 소련 사회 분석과 상당 부분 공통된 인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1917년부터 지금까지의 소련에 대한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소개한 최초의 연구 성과로서 소련 연구의 지침서적 사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주요 논쟁을 자세하고 깊게 다루지 않았고 각각의 연구에 대한 접근을 역사를 공부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쇠퇴의 마지막 단계를 경과하는 위기와 모순을 보면서 100년 만에 제대로 된 세계혁명의 가능성과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해 계급투쟁의 주체적 조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접근과 이해에 무지하거나 왜곡된 주관주의적 교조와 자의적 해석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스탈린주의의 망령에 갇혀 반혁명과 파시즘을 방어하는 또 다른 파시스트의 모습을 본다. 공산주의자와 노동계급의 투쟁의 역사와 러시아 혁명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그 성과를 받아드리면서도 스탈린 체제 이후 반혁명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에 대한 반성이 충분하지 않다.


    소련은 무엇이었나에 대한 과학적이고 명쾌한 분석 없이 세계혁명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공산주의 좌파를 포함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분석한 입장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해방을 향한 세계혁명과 공산주의 사회 건설의 강령과 세부적 실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소련을 자본주의로의 이행으로 볼 것인가? 국가자본주의로 볼 것인가의 토론과 논쟁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1917년부터 1989년까지의 소련 역사 속에서 진행된 주체적 사실을 바탕으로 연구할 과제라고 본다.

     

     

    <주>
    1) 마르셀 판 데르 린던 지음, 황동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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