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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2호] 노동자계급 연대와 노동자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 정현철
  • 조회 수: 4821, 2018-02-25 19:51:18(2013-04-30)
  • 노동자계급 연대와 노동자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정현철


     


    “연대를 구해 고립을 두려워 않고
    힘 미치지 못해 쓰러지는 것은 개의치 않지만
    힘 다하지 않고 꺾이는 것은 거부한다.”

     

    -1969년 일본 전학공투회의(전공투)의 도쿄대 투쟁 농성장에 남겨져 있던 낙서-

     

     

     

    1. 들어가며

     

    지금 한국에서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고 연대를 간절히 원하는 고공투쟁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는 결국 지상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는 막다른 상황과 이를 돌파할 조직노동운동의 무능력이 노동자들을 하늘로 쫓아내지는 않았나!? 자본과 권력의 직접적 탄압이 덜 미치는 고공으로 올라가는 그나마 꿈틀대는 지상의 상황은 가히 혼수상태와 다름이 없다. 그들은 고립을 택하고 연대를 구하는데 어쩌면 지상에서 그들을 하늘로 유폐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중에 고공 농성 하던 쌍용차 해고자 문기주 동지와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 홍종인 동지가 건강악화로 지상에 내려왔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는 여전히 멀고, 유성지회 투쟁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미 고립되어버려 출구가 없어진 노동자들이 대선 이후 줄줄이 자살을 선택했다. 고립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세상과 등졌다. 죽음에 대한 연민은 넘쳐나는데 죽음을 막을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혁명적 언사는 넘쳐나는데 공허하다. 노동운동의 혁신과 재편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전투적 노동조합 강화론에 불과하다. 해법이 아니라 동어반복일 뿐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려는 시도에서 볼 수 있듯 배제와 분리를 통해 민주노총을 고립시키고 더 나아가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통제 강화의 욕심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 과연 연대는 구해지고 있는가?

     

    연대투쟁에 어떤 전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과 상황에 맞게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넓고 깊게 끝없이 투쟁을 확산시키는 것, 그것이 연대다. 그러나 지금 연대라는 이름으로 고공농성장에 가서 손 흔들어 주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동지들을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것이 과연 연대인가? 고립된 장소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저 애틋함만 있는 연대는 서글프다.

    이미 정규직-비정규직, 대형사업장-중소사업장 노동자들 간의 연대는 희귀한, 특별한 사례가 되어가고 있으며 노동자-학생 연대의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한마디로 노동자계급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진정한 연대는 눈을 씻고 찾아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한 지경에 이르렀다.

    연대할 힘이 부족하니 유명인을 앞세우는 전술에 집착한다. 한진중공업 투쟁에서의 김여진, 쌍용차 투쟁에서의 공지영은 그 개인들의 열정이나 헌신과는 별개로 각각의 투쟁이 계급적으로 변화, 발전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지는 않았는가?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타워크레인 고공 농성은 6차례의 희망버스를 통한 수천 명의 연대를 만들어내면서 각종 언론의 주목과 연대투쟁의 대중화라는 성과를 만들어냈으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중투쟁이 계급적 전망과 연결되지 못할 때 하나의 유행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3. 노동운동의 총체적 위기, 노동자 민주주의의 실종

     

    현재의 노동운동 위기는 역사적이고 총체적이다. 이른바 ‘민주노조운동’으로 시작된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적 쇠퇴의 결과이자, 노동조합과 연계·결합한 운동(진보정당/노동자 정치운동, 노동자 문화운동) 대부분의 전반적 몰락을 동반했다.

    노동조합운동의 쇠퇴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쇠퇴 속에서 노동조합 자체의 성격 변화에 기인한다. 노동조합이 ‘국가 기구화’, ‘자본의 도구화’ 하는 과정으로 체제 편입 되면서 노동자운동의 ‘단결, 연대, 전투력’이 약화되었다. 또한, 이른바 ‘민주집중제’로 표현되는 중앙 집중적 의사결정구조는 대의제 민주주의(간접민주주의)와 결합하여 노동자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왜곡시켰다. 총회 민주주의(직접민주주의)는 사라졌고, 집행부와 대의원 장악이 모든 것에 우선시 되었다. 노동조합 상층기구와 형식적 의사결정구조는 조합원들의 자발적 행동과 노동자투쟁의 확산을 가로막는 역할로 변질되었다. 이것이 노동조합운동의 몰락과 회복불능을 가속화 시켰다. ‘노동자 민주주의’가 실종된 상태에서의 ‘민주노조재건’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허구인지는 이미 평조합원들이 절감하고 있다.

    최근의 상황을 짚고 넘어가 보자.

     

    故 윤주형 동지의 죽음을 둘러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와 기아차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기아차 정규직도 금속노조 조합원이고 기아차 해고자도 금속노조 조합원이다. 그러나 기아차 해고자들은 권리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같은 금속노조 조합원이었지만 이동우 동지는 기아차지부 조합원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고 윤주형 동지는 기아차지부 조합원이었으나 복직대상에서 배제되었다. 이 문제에서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는 무능력했다. 이것이 한국 최대의 산별노조의 현실이다. 원청과 하청의 권력관계는 자본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정규직 원청노조와 비정규직 하청노조에도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노조를 동등한 동지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시혜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비정규직의 문제를 자신들이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는 편의주의적이고 대리주의적인 모습에 사로잡혀있다.

    j1.JPG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연대와 단결을 실현’ 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된 1사 1조직 통합은 오히려 노동조합 내부의 권력관계를 공고히 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노조가 노동조합의 자주성마저 부정당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미 예측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 사이에 노동자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이러한 정규직 비정규직 분리, 노동자내부의 권력관계 양산은 자본의 노동자 분할전략과 일치한다. 여기서 노동자 내부의 분열을 가속화시킨 것은 바로 민주노총 자신이었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재능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가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은 투쟁하는 노동조합이 당연히 노동자 민주주의의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민주노총이나 상급연맹, 단위노조의 대의원대회 풍경을 떠올려보자. 횟수가 제한된 형식적인 찬반 토론 이후 곧바로 표결을 강행한다. 그리고는 다수결의 원칙이라며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장기투쟁사업장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당장의 치열한 투쟁을 연속으로 진행하면서 모든 권한과 힘이 위원장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것은 간부와 평조합원 사이에 위계를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민주주의는 금방 길을 잃게 마련이다.

    장기간 소수의 조합원으로 투쟁을 이어나갔던 재능지부는 그 어느 조직보다 노동자 민주주의를 강화 발전시킬 가능성이 많았다. 재능지부는 앞서 말한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어선 ‘평의회 형태의 투쟁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투쟁이 장기화, 전면화 되었을 경우 투쟁위원회, 파업위원회 같은 평의회 체계의 조직이 필요하다.

    j2.jpg  
    단체교섭 등 노동조합 고유의 역할을 제외하고는 평의회 조직인 투쟁공동체에서는 모두 주체가 되어야 한다. 소수 집행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다수 조합원이 수동적으로 임하는 게 아니라, 전 조합원이 스스로 집행부가 되어야 하고, 투쟁과 연대활동에서 모두가 동등하게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 또한,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지라도 다수가 소수를 배제해서는 안 되며, 모든 투쟁의 원칙을 주체의 일원인 연대단위와 함께 객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최근 사태에서 보듯 재능지부 역시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형식적 민주주의와 기존의 노동조합 관성에서 단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했다. 이제라도 투쟁공동체의 성격을 명확히 하여 주체를 바로 세우고, 투쟁의 원칙을 객관화하여 연대의 기풍을 회복해야 한다.

     


    4. 연대투쟁과 노동자 민주주의의 복원을 위한 제안

     

    연대는 품앗이고 연대하는 건 당위적이며 연대의 목적은 영향력 확대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연대의 원칙과 목적은 계급투쟁의 확산이다. 확장의 방법은 동원이나 이벤트가 아닌 연대의 주체들이 스스로 나서게 하는 것이다. 연대는 행동에 앞서 자기가 투쟁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투쟁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집회에 나가거나 자본과 권력의 공격에 맞서 힘을 보태는 것에서 더 나아가 투쟁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투쟁의 전 과정에 개입하고 공동책임을 지는 것이다

    연대는 원칙이 지켜져야 하며, 운동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연대는 정치토론과 운동의 목표설정을 통해 단계적으로 발전해야 하며, 반드시 행동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당면한 정세요구에서 시작하겠지만, 최종적으로 '체제 자체에 저항하는 근본적인 것'이어야만 넓고 깊은 연대가 가능하다.
    현재 우리의 적이 강력하고 압도적일수록 조급하고 어설프게 연대해서는 안 된다. 충분히 토론하고, 투쟁이 자신의 활동이 되었을 때, 공동의 적을 향해 직접 행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계급투쟁의 부활과 노동자계급 연대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자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동지들과의 회의과정에서는 어떠한 이유로든 음모적 회의진행, 회의전술 구사를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또한, 모든 과정의 공개와 정보의 공정하고 정직한 전달, 그리고 토론에서 관용과 모욕금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1)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경향은 어떤 생각들을 명확히 하는 게 아니라 폭력, 조작, 다수표를 얻으려는 싸움 등이다. 그래서 이러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프롤레타리아 조직에 스며들 때 위기와 쇠락의 씨앗을 늘 품게 된다.”2)


    “노동운동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는 대부분 각각 의견들이 대립에서가 아니라(물론 이 문제가 근본이기는 하지만) 토론하기를 거부하고 사실을 명확히 밝혀내는 과정을 무시하는 데서 왔다. 기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사용한다. 이들은 중요한 대립들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작은 대립들을 과장하거나 있지도 않은 대립들을 만들어낸다. 또한, 개인 공격은 물론 중상모략과 비방도 서슴지 않는다.”3)

     

    ‘노동자 민주주의'는 투쟁하는 노동자의, 토론하는 노동자의 발전하는 정치의식이다. 다수결-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투쟁하는 소수의 원칙이 존중받고 토론과 논쟁과 실천적 검증을 통해 언제든 소수가 다수가 되고, 다수와 소수 모두 왜 다수와 소수가 되었는지 인식하고 더욱 깊게 연대하고 단결하면서 투쟁을 확산하고 발전시키는 민주주의. 다수가 이러한 정치의식에 익숙해졌을 때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우월한 노동자계급 의식이 된다. 노동자들의 의식적이고 민주적인 토론만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계급 내부의 오류를 스스로 교정할 수 있다. 이것은 지난한 계급의식 발전 과정의 일부이며, 이러한 토대에서만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창조성과 자발성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넘어 더욱 높고 깊은 계급의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처음에는 어렵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할 수도 있고, 토론의 결과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혁명의 승리는 고사하고 내부 분열이 반혁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열린 토론과 직접행동을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바탕 위에서 부르주아 대의제도의 허위의식을 타파하고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를 만들어 간다면 무너진 폐허에 새로운 것이 들어설 가능성이 실제로 보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휘황찬란하나 알맹이 없는 ‘더 강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계급정당’이 아니라 ‘진정한 연대 투쟁의 복원’과 ‘노동자 민주주의 실현’이다. 모든 형태의 노동조합주의를 과감히 뛰어넘어 노동자계급 전체를 관통하는 노동자평의회 운동을 창출해나가자. 노동자 민주주의와 노동자계급 연대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면서 계급투쟁의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자.

     

    <주>
    1.국제주의자 토론 네트워크(INTERNATIONALISTS DISCUSSION NETWORK)  소개의 글
    2.국제공산주의흐름, 『 인터내셔널 리뷰( International Review)』131호, 2007년 11월 [토론문화 : 계급투쟁의 무기], http://en.internationalism.org/ir/131/culture-of-deb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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