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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령토론]'사회주의 여성주의'는 '급진 여성주의'로 귀결되는 경향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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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5135, 2013-05-19 16:13:56(2013-05-19)
  • 여성문제, 계급문제에 대한 이원론적 접근 비판 


    이상진 (노동해방실천연대<준> 회원)

    들어가며 

    2008년부터 일어난 전세계적인 경제대공황은, 전 세계 민중들에게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는 대중적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관심 밖으로 내몰렸던 자본론이 다시 인기를 얻고, 경제공황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았던 유럽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여론조사가 진행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도 삶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주장이 대중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상황의 반영인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위기는 경제시스템 자체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적 생산양식의 하나인 자본주의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들간의 관계들조차 자본주의 방식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인간의 삶 전반을 철저히 파괴하고 위기에 처하게 만들고 있다. 생태문제만 보더라도 자본주의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궁극적 해결전망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대한 극복은 단순히 경제제도의 문제를 넘어 어떠한 사회를 인류가 추구해 나가야 하는지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실현하려는 대중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운동 자체도 자신을 반드시 혁신, 현대화해야 하는데, ‘(가칭)한국사회주의 노동자당 강령 초안’(이하 강령초안)은 이를 위한 핵심 중의 하나로 현대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여성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능동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성문제가 현대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현대에 들어 여성문제가 새롭게 나타났다는 뜻은 아니다. 엥겔스의 주장을 보더라도 여성억압은 계급의 등장과 더불어 출현한 것으로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여성억압에 맞선 투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본주의 출현 이후에 본격화되었고, 20세기를 관통하면서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 현재 한국 사회만 보더라도 여성문제는 다양하게 등장하여 제도적으로 일부 진전이 되기도 하고, 이제 막 문제의식이 싹트거나 벌써 논란거리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호주제는 철폐가 되었고, 여성의 정치참여를 높이기 위한 할당제가 도입되기도 하였다. 낙태 허용, 간통죄 폐지 문제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노동자로서 착취를 당하는 것과 함께, 같은 남성에 비해서도 차별을 받고 있고, 가정에서는 가사,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이중착취에 고통받고 있다. 여성들은 통계에도 잘 잡히지 않는 가정폭력에 고통받기도 하고, 직장 내에서는 성희롱과 성폭력으로 억압받고 있다. 대부분의 성소수자는 여전히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제도의 장벽으로 인해 억압받고 있다. 

    이러한 수많은 여성억압의 문제들의 등장은 사회주의자들로 하여금 여성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가하는 물음을 던져주었다.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지난 세기동안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구체적인 실천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여성문제, 즉 여성억압의 근원과 해결방안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사회주의 진영은 이러한 이론적 논의조차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강령초안이 발표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성해방을 위한 이론적 틀에 대한 논의가 특별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 이유는 현재 한국 운동진영 내 사회주의 여성해방운동자체가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노동운동 내에서조차 비정규여성노동자조직화가 강조되고, 양성평등 교육도 진행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반성폭력, 양성평등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 진영은 여성억압에 대한 근원을 밝히고, 여성억압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세워서 여성억압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실천을 준비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일단 현재 사회주의 운동 속에서 나오고 있는 여성문제에 대한 일부 주장, “여성문제는 계급문제로 환원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을 통해 여성문제에 대한 올바른 사회주의적 관점에 대해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주장을 대표하고 있는 이론으로 ‘사회주의 여성주의’가 있는데, 우선 이 이론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이 이론이 가지는 문제점을 검토하고 비판하는 것으로 하겠다. 


    1. ‘급진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과 ‘사회주의 여성주의’ 

    1960년대 말에 등장한 ‘급진 여성주의’는 낙태권, 성희롱 등 모든 여성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회문제들에 대한 행동적인 대응과 여성이 자신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급진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억압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활 속에서 남성의 성차별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려 하였다. ‘급진 여성주의’는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의 성차별에 맞선 투쟁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고 정치적으로도 통일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급진 여성주의’는 이론적으로 여성억압의 근원을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생리적 특성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남성지배체제가 확립되었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파이어스톤과 같은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진보에 의해 출산에 대한 인간의 통제를 획득하면 성억압에서 해방될 것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한편 ‘급진 여성주의’의 남성지배체제에 대한 분석은 가부장제1)라는 이론으로 발전되었는데,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구조의 핵심을 남성에 의한 여성지배구조로 보았다. 따라서 ‘급진 여성주의’는 정치적으로 모든 남성을 적으로 간주하고, 실천적으로도 분리주의, 즉 여성이 정치 사회적으로 남성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식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이러한 ‘급진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등장하였다.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여성억압의 문제를 자본주의의 문제, 계급문제와 분리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취하였으며,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필수적임도 강조하였다. 그리고 부르주아 여성들과 노동계급의 여성들의 억압을 똑같이 볼 수도 없는 것이며, 제국주의 국가의 여성과 식민지 국가의 여성들의 억압도 똑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여성문제가 맑스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주장하였고, 이러한 지점을 점점 강조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예를 들어 “생산 또는 ‘정치’와 표면상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여성주의 쟁점들, 가족과 ‘사적’ 생활에 관련된 쟁점들을 위한 공간을 우리의 맑스주의 구조 안에서 확보해야 한다”, “(가정내 남성폭력처럼) 상당한 확대해석과 왜곡 없인 사회주의 사상으로는 거의 간파할 수 없는 성억압의 주요한 측면들이 있다.”(유현경, 「변혁운동과 여성주의」)는 식이다. 


    2.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이원론적 이론구조를 취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현재 우리 사회주의운동 진영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여성문제는 계급문제로 환원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가 계급문제가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여성문제도 해결되는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면 문제가 없다. 이는 맑스주의에서도 기본적으로 취해 왔던 입장이었다. 

    엥겔스는 그의 저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여성억압은 계급의 출현과 역사적으로 일치한다”한다고 했는데, 이는 종종 여성억압이 계급의 출현으로 발생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엥겔스는 여성억압이 계급의 발생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 계급의 발생 자체가 여성억압의 근원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은 아니었다. 엥겔스는 사적소유의 발생을 계급과 여성억압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계급문제와 여성문제의 연관을 강조했지만, 결코 계급의 발생이 여성억압을 낳았다고 보지 않았다. 

    그런데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여성문제가 계급문제로 환원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통해, 맑스주의가 남성중심적 관점이었으며, 여성문제에는 맑스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맑스주의에 대한 왜곡으로까지 나아간다는 데 있다. 

    ‘사회주의 여성주의’의 이러한 특징은 다음의 인용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맑스주의가) 몰성적 관점, 남성중심적 관점이었음을 인정하고, 반성적 성찰로부터 다시 이론의 재구성과 실천의 형태를 결합” 

    “맑스주의 사상은 ‘여성문제’가 중심적이지 않음” 

    “노동과 생산에 대한 협소한 개념 자체가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생산/재생산에 대한 무리한 위계를 없애야 한다.” (유현경, 「변혁운동과 여성주의」) 


    다시 말해 여성문제를 계급문제로 환원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실제로는 기존 맑스주의에는 여성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개념이 협소하며, 이러한 개념을 “맑스주의 내에 새로 구성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각 역사발전단계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경제적 관계’가 결정적이라는 유물론적 이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이는 ‘근본모순 증후군’에 빠진 시대착오적이고 환원론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경제적 관계는 역사발전단계를 결정하는 다양한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는 태도를 가진다. 결국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이 생산력이나 생산관계의 문제로 ‘환원’되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맑스주의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비판했던 ‘급진 여성주의’로부터 ‘가부장제’라는 비맑스주의적 개념을 도입하게 된다.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가부장제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자적인 논리와 역사를 가지는 것으로 보고, 봉건제 생산양식,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아니라, 봉건적 가부장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와 같이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경제적 모순으로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체제로서 ‘가부장제’라는 이원적인 논리를 가지게 된다. 


    3. 이원론적 여성해방운동론은 실천에 있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급진 여성주의’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주의 여성주의’와 유사한 경우가 ‘생태주의적 맑스주의’에도 나타난다. ‘생태주의적 맑스주의’에서도 맑스주의 이론이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핵심으로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기 때문에, 생태문제를 해석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제임스 오코너의 ‘이차모순론’이다. 제임스 오코너는 생태문제에 대한 이론화를 하는 과정에서, 맑스주의가 생산조건(자연)을 부차적으로 보고 있다며, 생산조건이 생산력/생산관계와 모순관계가 있다는 새로운 이론, ‘이차모순론’을 만들어 내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기존의 모순 외에 생산력/생산관계와 생산조건 사이의 별도의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론은 결국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극복하는 투쟁과 생산조건과 생산력/생산관계의 모순을 극복하는 투쟁을 병렬적으로 위치시켰다. 결국 오코너의 ‘이차모순론’은 스스로가 비판하였던 포스트 맑스주의자들의 실천처럼 사회주의 운동과 생태운동을 기계적으로 분리시켰고, 결과적으로는 사회주의 운동을 생태운동에 종속적인 위치로 전락시키는 오류를 야기하였다.2) 

    여성문제에 있어 이원론적 입장은, 생태문제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맑스주의를 협소하게 인식하고, 역사유물론을 왜곡하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유물론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의 경제적 관계만을 파악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역사유물론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사회적 삶의 생산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역사유물론은 경제활동에 대한 협소한 설명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는 모든 측면들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여성억압을 역사유물론이라는 틀 속에서 파악을 하지 않고, 역사의 발전을 결정짓는 요소로서 생산양식과는 독립적인 기원과 상대적인 자율성을 갖는 가부장제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사회주의 여성주의’가 보이고 있는 이원론적 태도는 여성문제와 계급문제를 기계적으로 분리하는 것으로 관념론적 방법론일 뿐 아니라, 결국 잘못된 실천 상으로 귀결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여성억압의 근원을 총체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계급운동으로서 사회주의 혁명운동과는 독자적인 여성운동을 상정하게 되며, 이는 점차적으로 여성운동을 계급운동보다 우위에 두는 실천으로 나타나게 된다. 

    또한 ‘사회주의 여성주의’의 이원론적 이론틀은 사회주의 혁명과 여성해방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그 결과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이 여성해방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가부장제가 타파되어야만 자본주의가 폐지될 수 있다는 상반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또한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급진 여성주의’로부터 가부장제라는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려고 했기 때문에, ‘급진 여성주의’로 돌아가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4. ‘사회주의 여성주의’가 주장하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운동은, 계급투쟁과 여성해방운동을 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범계급적인 여성운동을 계급투쟁의 우위에 두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전략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운동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여성조직의 정치적 조직적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 

    여성의 특수한 이해를 대변하는 독자적인 여성조직이 있어야만 여성의 이해가 제대로 대변되고 여성문제가 심각히 고려될 수 있다. 

    2. 이 조직은 독자적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이에 조직적으로 권위가 부여되어야 하며, 여성들이 제기하는 이슈들에서 동수로 대표되어야만 하고, 독자적인 표현과 결정, 관리 통제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여성집단 내적 구조가 여성주의적 자율주의의 수평적 원리를 따를지라도 그것은 존중되고 허용되어야 하며 조직내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유현경, 「변혁운동과 여성주의」) 

    여성을 사회주의 운동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 특수한 임무를 가진 당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사회주의 정당 내 조직으로서 자율주의를 주장하면서 당내 독자적인 당원구조를 가진 조직을 허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정당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왜 여성조직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가? ‘사회주의 여성주의’의 입장에 서 있는 이론가들의 태도로 판단해 볼 때, 이는 정당 또한 남성 중심의 정당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사회주의 정당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 구조 자체를 가부장제, 남성중심의 구조로 바라보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성들이 여성을 종속시키는 데 공모하고 있다고 보는 ‘사회주의 여성주의’의 경향은 필연적으로 모든 사회계층의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억압을 겪고 있으며 공동으로 투쟁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결국 여성운동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노동자 계급운동과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범계급적인(부르주아 여성을 포함하는) 여성운동을 강조하는 경향을 낳는다. 이는 여성해방운동을 계급투쟁의 우위에 두는 경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여성운동과 병렬적인 위치로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배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운동은 여성해방운동에 대해 어떤 조직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정당 내 독자적 여성조직(예를 들어 여성위원회)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아래 인용문처럼 레닌의 발언에서도 충분히 나와 있다. 

    “우리가 공산주의 여성들의 분리된 조직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당원도 남성당원과 똑같이 당의 일원이고 양자는 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한 이견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 대중을 각성시키고 이들을 당에 결합시키며 당의 영향 아래 튼튼히 묶어 세우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할 활동그룹, 위원회, 특별위원회, 전문부 등의 기관이 필수불가결합니다. 이것은 여성 사이에서 체계적인 사업을 벌이기 위한 것이지요. 우리는 각성되고 조직된 여성들을 훈련시켜서 공산당의 지도 아래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나서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단지 공장과 가정에서 일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여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농촌 여성, 소부르주아여성 또한 자본주의의 희생자이며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들 여성은 정치와 사회에 대해서 무지하며 사고도 후진적입니다. 그들은 타인으로부터 고립된 영역 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생활방식도 매듭이 모호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여성 속에서 활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적당한 기관, ‘특별한 선동방법, 특별한 조직형태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페미니즘(여권확장주의)이 아니며 실천적인 혁명적 방책입니다.” (‘여성문제에 대한 레닌과의 대화’ 클라라 제트킨)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회주의 정당 내 남성과 여성은 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같은 수준으로 당활동에 참여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의 모든 정당, 진보정당을 포함하여서도 보면 여성당원은 남성당원보다도 훨씬 적다. 유교적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고,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들은 가정에 묶여있기 일쑤다. 이렇기 때문에 여성들을 당활동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별도의 활동기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5. 결론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이론에 있어서, 맑스주의의 역사유물론과는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가부장제를 주장하면서 이원론적 구조로 나아갔다. 이는 계급문제와 여성문제를 총체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사회주의 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내지 못하였다.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맑스주의에서 좋은 것, 급진 여성주의에서 좋은 것을 취합하여 “행복한 결혼”이 되리라 생각하였지만, 사실은 물과 기름처럼 하나로 합쳐질 수 없는 것이었다. 

    여성문제에 있어 이러한 이원론적 입장은, 결국에는 여성운동을 하나의 부문운동으로서, 사회주의 변혁운동과 병렬적으로 위치시키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병렬적 운동이 지속되다보면 결국에, ‘급진 여성주의’의 입장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 여성주의’가 나름대로 완결적인 이론 틀을 가지고 여성억압의 체계를 설명하고 있는 ‘급진 여성주의’로부터 가부장제라는 개념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적, 실천적으로도 여성운동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노동자계급적 여성해방운동보다는 범계급적 여성운동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주의자들은 여성문제를 이해하는데 있어 ‘사회주의 여성주의’로 빠지는 것을 명확히 비판해야 한다. 이 글에서 근래 제기되고 있는 ‘여성문제는 계급문제로 환원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이 ‘사회주의 여성주의’로 귀결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번 글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주로 ‘사회주의 여성주의’에 대해 비판을 하였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여성억압의 원인을 어떻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어떻게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다. 서두에서 밝힌 바대로 여성억압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강령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사회주의 운동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여성억압의 근원과 해결방안에 대해 명확하게 정식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성문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억압의 기원에 대한 엥겔스의 설명은 인류학적 지식의 발전으로 일부 부정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났지만, 여성억압의 근원을 이해하는 이론으로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최근 성별분업과 계급의 등장이 여성억압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성과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여성문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이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맑스주의의 방법론인 역사유물론은 인간사회의 총체적 구조 속에서 여성억압에 대해 설명하는 적절한 이론틀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향후 여성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식화하는 내용들이 강령토론을 통해 더욱 풍부해지기를 기대한다. 


    미주) 
    1) 가부장제는 원래 남성혈통을 따르는 친족구조를 지칭하는 데, ‘급진 여성주의’는 이를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하였다. ‘급진 여성주의’에서 사용하는 가부장제 개념은 남성지배와 여성억압을 핵심으로 사회의 총체적인 구조를 뜻하고 있다. 또한 가부장제는 모든 사회, 즉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등에서 공통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가부장제 속에서 남성은 여성에 대한 지배력을 재생산한다고 보았다. 
    2) 이에 대해서는 황정규, 「생태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을 참조바람. 
    여성문제, 제 4호 
    강령토론, 강령토론 4호, 계급환원론 비판, 사회주의 여성주의,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제 4호, 여성문제, 여성운동, 여성해방



    ▒ 출처: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편집위원회 간 ‘사회주의 강령을 토론하자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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