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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커스] 벼랑 끝에 선 투사들 :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진 않은가 - 이태영
  • 조회 수: 5153, 2014-04-08 20:38:21(201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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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 끝에 선 투사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진 않은가

     

    -이태영

     

    (* 이 기사는 5월1일 사노신이 발행한 격월간지 <포커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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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의 당선으로 수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소위 멘붕에 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박근혜 당선 이후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최강서 열사, 이운남 열사, 윤주형 열사

    처지와 조건은 다르지만 최근 목숨을 끊은 동지들은 대부분 기나긴 투쟁을 하고 있던 해고노동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조직노동운동과 현장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박근혜 정권의 등장이 주는 실망감이 생명을 끊는 절망감의 원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투쟁이 빚어내는 인간관계의 파괴와 고립감도 그러한 선택에 일조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곁에 있던 동지의 죽음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커다란 회한을 남긴다. 하지만 이것이 개인적인 회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을 만든 운동문화와 구조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끝없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계속되는 장기투쟁

    지난 수년간 노동운동의 특징은 비정규직과 해고자 중심의 장기투쟁이 투쟁전선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수 백 일 동안 계속된 이랜드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한국통신 계약직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례적이고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수백 일을 훌쩍 넘는 장기투쟁은 이제 일반적인 일이 되고 있다. 백일 정도 투쟁한 정도로는 장기투쟁이라는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까?

    한국 노동운동 역사는 노동에 대한 탄압의 역사였다. 박정희 정권 이후 노동법은 집단적노사관계법의 개악을 통해 노동조합의 건설을 어렵게 만드는 대신 개별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근로기준법을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 주는 식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외침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이 법제도적으로 봉쇄된 상황에서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군사정권의 통제 속에 현장에서는 작업장을 군대처럼 운영하는 병영통제가 횡횡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폭발하자 정권과 자본은 뒤늦게 노동운동을 포섭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당시 세계 자본주의의 트렌드는 이미 합의와 포섭보다는 노동을 파편화하고 배제시키는 신자유주의로 기울고 있었다. YS정권의 노동법 개악 시도는 결국 신자유주의 흐름을 따라가려는 시도였으며, 결국 87년의 거대한 집단적 기억을 잊지 않은 노동자들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했다. 조직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은 정권을 무력화시켰고 정권 교체를 불러왔다. 하지만 97년 총파업 이후 이어진 자유주의 정권의 십년 집권은 시민운동을 제도화함으로써 이른바 민주화 세력을 체제내로 흡수하고 노동운동을 고립시켰다.

    IMF 이후 노동운동에 대한 전방위적 공세 속에서 1998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를 통해 민주노총 합법화·노조의 정치참여 보장·복수노조 도입 등 조직노동운동의 제도적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수정과 근로자파견제·정리해고제 등 노동유연화 악법이 도입되는 개별적 노사관계법의 개악을 바꾸는 합의를 해주었다. 이는 기존 조직노동운동의 이해와 비정규직·불안정노동자의 증가를 합의하는 신자유주의 코포라티즘의 변형된 형태였다.

    98~2000년 구조조정 공세 속에 노동운동은 다른 사회계층으로부터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한 채 패배했다. 자유주의 정권 십년 동안 노동자 투쟁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노동유연화가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조직노동운동의 이해와 비정규직의 증가를 맞바꾸는 협약은 구조조정이 휩쓸고 지나간 단사 현장에 그대로 반복되었다. 대공장노조들은 정규직 고용을 보장받는 대신 비정규직 증가를 합의했고, 이는 노동운동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갈라놓았다.

    구조조정 이후 급속한 경기회복은 금속대공장과 공공사업장 조직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사회양극화 속에서 조직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사회적 지위는 상승했다. 구조조정 이후 자본은 대규모 작업장의 정규직노동자들에게 고용과 안정적인 임금인상을 보장하고 산업평화의 안전판 역할을 하게한 대신 비정규직노동자들과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바탕으로 높은 이윤을 확보했다.

    이 속에서 지난 십 년 동안 민주노조 운동의 양축을 이루었던 금속대공장과 공공부문 대규모 사업장 상당수가 어용노조로 넘어갔다. 그러나 어용으로 넘어가지 않은 사업장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0년대를 경과하며 작업장에서 어용 대 민주노조의 전선구도는 붕괴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태도는 어용이든 민주노조진영이든 다르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진행하던 임단협 파업마저 2000년대 중반부터 자취를 감추고 무분규 타결이 관례화되기 시작했다. 금속대공장과 공공부문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노동운동은 구조조정 분쇄 투쟁 이후 사실상 투쟁전선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생존권이 악화된 중소사업장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들은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 정권들은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극악한 탄압으로 일관했다. 김대중 정권을 계승한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무현은 초기에 반짝 유화적 노동정책을 쓰는 제스처를 펼치다가 반년도 안 돼 탄압으로 돌아섰다. 비정규직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노무현의 말은 이 시기 건설된 무수한 비정규직노조에 대한 탄압과 파괴로 나타났고 현장에 안착한 노조는 별로 없었다. 많은 노조들이 장기투쟁으로 내몰렸다.

    장기투쟁의 양상은 다 비슷하다. 투쟁에 나섰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은 별로 많지 않다. 대개 농성장을 설치하고 복직투쟁에 들어간다. 정당한 노조활동, 혹은 노동조건에 대한 요구는 복직요구로 좁아진다. 하지만 자본은 현장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의 요구에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초기에는 상급단체에서 몇 번 형식적인 집회를 박아주기도 하지만 오래되면 그것도 없다. 길거리 투쟁이 수십 일에서 수백 일 계속된다. 대다수의 조합원들은 투쟁에서 이탈하고 소수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투쟁이 이어진다. 성과가 없기 때문에 투쟁을 접기도 어렵다. 그래서 투쟁은 한없이 길어진다.

    87년 이후 최초로 이전 정권보다 보수적인 정권의 집권이었던 MB시대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따라서 지난 15년간 금속과 공공 등 조직노동운동 핵심부위의 형식적인 투쟁을 빼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탄압이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탄압받는 노동자투쟁에 대해서 조직노동운동의 태도는 방관과 무시였다.

    이는 대규모 사업장 자신에 대한 공격에도 마찬가지였다. 98~99년 구조조정 공격에 대한 대공장노조들의 투쟁은 적어도 처음에는 전공장 파업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에서 애초부터 전공장 투쟁의 조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해고자들의 명단이 확정될 때까지 투쟁은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결국 해고자 명단이 나오자 해고당사자들 중심의 싸움이 되었다. 해고자들이 밀려난 현장은 어용노조에 의해 장악되었고, 해고된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은 다른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거리로 내몰렸다. 해고가 되고 나서야 노동자는 하나가 되어 투쟁하는 아이러니가 빚어졌다.


    심화되는 갈등과 무너진 의사결정 구조 .

    2001년 이랜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이 260일을 넘겼을 때 모두가 놀랐다. 2002년 한국통신 계약직노동자들의 투쟁이 500일을 넘겼을 때는 더더욱 놀랐다. 그러나 기록 갱신은 계속되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1895일을 투쟁했다. 현재진행형인 재능교육교사노조의 투쟁은 1900일을 넘기고 있다.

    오랫동안 조직노동운동의 상징은 주먹을 불끈 쥔 투사의 얼굴이었다. 이는 금속대공장의 남성노동자를 전형화한 것으로 전노협과 민주노총의 전투적 조합주의를 상징한다. “질긴 놈이 승리한다”, “끝까지 투쟁한다는 구호들, 무척 귀에 익은 말이었다. 우리 운동은 언제나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굳건한 철의 노동자가 될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강철로 만들어진 투사라 해도 수 년 동안 계속되는 투쟁에는 장사가 있을 리 없다. 무한정 길어지는 투쟁은 노조체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내부의 인간관계도 산산조각 나게 만든다.

    올해 목숨을 끊은 활동가들 중에는 소위 현장이전을 한 의식적인 활동가도 있었다. 현장투신은 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였으며 2000년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2000년대 초 의식적인 활동가들은 대개 취업이 비교적 용이한 대공장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다. 그렇게 현장에 들어간 이들은 커다란 개인적 희생과 헌신을 통해 대공장 사내하청투쟁의 기반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동지들 중에 현장에 남아있는 동지는 별로 없다. 거의 대부분 해고되었다.

    장기투쟁에서 끝까지 남아 노동자들 중에는 이런 의식적인 활동가들이 많다. 이들은 높은 정치의식과 헌신성으로 열악한 해고생활을 감내하며 투쟁전선이 유지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이런 동지들마저 절망감에 목숨을 끊고 있다는 것은 지금 운동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투쟁이 길어지면서 투쟁주체들 사이에는 생계 등 물적 조건이 부족함에도 당위적인 기준으로 서로를 강제하다가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 많다. 운동에 대한 긍지가 높은 의식적인 활동가들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자신들의 물적·심적 조건에 대한 고려보다는 이른바 운동적 전통과 원칙을 앞세우려 하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활동가들이 주도성을 쥐게 되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특성상 누가 투쟁을 더 헌신적으로 더 원칙적으로 더 전투적으로 했냐가 정당성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운동에서 이탈하거나 전술적으로 후퇴하는 동지들을 보고 너무나 쉽게 나약함에서 기인한 기회주의로 낙인을 찍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왔다. 과장된 투사성을 운동의 이상형으로 삼아 나약함을 죄악시하는 문화는 진정한 소통을 가로막는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소리를 할 수 없고, 투쟁일수가 길어질수록 점점 더 극한적 투쟁을 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내부 갈등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노조체계가 파괴되면서 갈등을 해결할 의사결정 장치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수백 수천이라면 별다른 논란 없이 다수결 같은 민주주의 기제들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전술에 대한 견해에 이견이 나타날 경우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선동하고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투쟁 주체들이 명 단위로 소수화 된 투쟁에서는 그런 기제들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전술상 갈등이 개인들 사이의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 전술에 대한 이견은 흔히 활동가들 사이의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대립으로 발전한다. 그 속에서 오랜 기간 열악한 상황에서 쌓여온 사소한 마찰과 갈등들이 극대화되며 소통은 중지되고 불신이 쌓이게 된다. 기존의 의사결정 장치들은 작동을 중단하고 개별인자들 간의 고립과 갈등이 심화된다.

    장기투쟁에 뒤따르는 생활고와 스트레스에 이런 갈등적인 문화가 주는 고립감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절망과 우울의 늪으로 빠뜨리고 있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이런 문화가 극단적인 선택의 주원인은 아니라 해도 아예 무관하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주체와 연대의 경계를 허물고 투쟁의 책임을 나누어야

    노동운동이 위기를 넘어 이미 죽어가고 있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높다. 새로운 운동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운동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존재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그 무엇보다 우리 운동에 소중한 자신이다. 하지만 이들이 살아서 투쟁하며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관성에 얽매인 운동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행히 여러 가지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운동에서 주체와 연대의 경계는 선명했다. 90년대 후반 민주노총 주류가 소위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론을 들고 나와 사회개혁투쟁 노선을 제기했을 때, 전투적 노동투사들은 이를 비판하며 현장권력 쟁취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현장중심 전술, 현장사안을 통한 노동자들의 직접투쟁을 옹호했다. 그들은 연대는 있으면 좋지만 부차적인 것 뿐 기본적으로 현장노동자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요구를 쟁취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과연 지난 한진중공업 투쟁에서 주체는 누구고 연대는 누구였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금속노조나 한진중공업지회가 과연 이 투쟁의 주체였는가? 희망버스를 타고 내려온 수 천 명의 사람들은 연대대오였는가, 이 투쟁의 주체였는가? 이처럼 최근의 투쟁들에서 주체와 연대의 위치가 때로는 뒤바뀌기도 하며 경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물론 이것이 기존 노동운동 체계가 몰락하면서 나타나는 양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운동방식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직노동운동이 빠져나간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희망버스 운동 이후 흔히 사회적 연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87년 이후 점진적으로 체제로 흡수되었던 민주주의 운동은 보수 정권의 등장과 함께 촛불투쟁이라는 형태의 새로운 대중투쟁으로 등장했다. 일부의 냉소적인 평가와 달리 촛불이 열어 놓은 의식은 투쟁하는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미약하나마 장기투쟁 사업장에 대한 연대와 희망버스 운동으로 이어졌다.

    회적 연대는 과거 연대운동이 단체들이나 학생들이 주축이던 것과 달리 다양한 배경의 노동하는 개인들로 확대되고 있다. 연대방식 역시 다양해지고 있으며, 시간이 경과하면서 자연스레 주체와 연대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실제로 장기투쟁 사업장에서 모든 전술이 연대단위들과 공유되고 공동으로 결정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중요한 고비에서 주체들이 연대단위에게 자신들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를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연대단위들 역시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투쟁주체에게만 모든 짐을 떠맡기지 말고 보다 의식적으로 주체와 연대의 경계를 허물고 투쟁의 책임과 의무를 분담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미 의미를 잃고 박제화 되고 있는 노조질서의 절차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함께 투쟁하는 자들의 민주주의로 우리의 사고를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 노동운동의 가장 훌륭한 전통으로 꼽힌 총회민주주의는 교섭권 위임 같은 관료적 절차를 인정하지 않는 투쟁하는 자들의 직접 민주주의였다. 물론 그것은 당시 대공장의 기업별노조라는 형태를 띠었지만, 지금에 있어 투쟁하는 주체는 더 이상 노조내지는 노동운동이라는 틀로 한정될 수 없다. 오래 전에 투쟁의 장애물이 된 조직 노동운동의 관료적 질서보다 연대하고 투쟁하는 자들을 진정한 주체로 보아야 한다. 투쟁은 이미 더 이상 소위 주체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특히 비정규직과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된 시대에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이 갖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볼 때도 더욱 그러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총회민주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이른바 주체와 연대가 모두 함께 하는 대중총회 같은 방식의 새로운 의사결정 구조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모든 것을 토론하고 결정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이제 주체는 연대를 대상화하지 말아야 하고, 연대도 스스로를 연대라는 이름으로 침묵하거나 주변화하지 말고 주체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새로운 투쟁주체로 성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살아서 투쟁하기 위해 .

    지금까지 장기투쟁의 목적은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당연한 목적이다. 그러나 활동가들에게 있어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활동가들의 현장복직의 의지는 생계문제만이 아니다. 돌아가서 운동을 하기 위해서이다. 돌아가서 현장의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조직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현장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대개의 경우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예전에 알던 그 현장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제 현장복직만을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투쟁을 그것을 향한 지난하고 힘든 과정으로만 생각 할 것이 아니라 이 투쟁을 통해 연대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운동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민주적이고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새로운 투쟁의 형태를 만들어나가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투쟁의 힘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여러 투쟁사업장에서 가열 찬 투쟁 뿐 아니라 그 이전까지는 잘 몰랐던 다양한 분야의 투쟁하는 사람들과 문화일꾼들과 교류하고 함께 즐기는 보다 풍부한 투쟁문화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투쟁 분위기 속에서는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자신들을 현장의 벽에 가둘 수는 없을 것이다.

    연대와 지원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꿋꿋하게 전선을 지켜온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성과다. 이제 앞으로는 또 다시 수백 일을 투쟁해서 그런 지원을 간신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네트워크를 확대시켜 보다 생존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조건 속에서 투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이제 우리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강철로 생각하는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랜 투쟁으로 상처 입은 투사들을 트라우마 운운하며 금치산자로 몰아가기보다, 모두가 주체가 되어 그들의 부담을 덜어 주고 그들의 심신이 얻은 상처를 치유할 시간과 여유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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