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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본] 다함께 대학문화 성폭력 사건은 무엇을 말하는가
  • 조회 수: 4641, 2014-12-31 19:05:59(2013-09-02)
  • 아래는 사노신의 [포커스]에 실린 기고 글인데,   [다함께․대학문화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의 문제제기에  대한 공감과 소통차원에서 2013년  ICP 홈페이지에 해당 기사를 공유했다.  최근 노동자연대(구 다함께)의 기사 삭제 요구와  그에 대한 사노신의 공식입장이 나왔다.  ICP에서는 본 사건과 기사에 대한  사노신의 입장에 공감하며  수정된 기사를 다시 올린다.  본 기사는 ICP의 입장과 다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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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 14일 <노동자연대(구 다함께)>에서 사회주의노동자신문에 공문을 보냈다. 공문은 사노신이 발간하는 <the focus> 2013년 7월호에 류한수진 동지가 기고한 <다함께 대학문화 성폭력 사건은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기사가 “허위 사실과 악의적 비방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즉각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노동자연대> 측이 허위사실로 제기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1. 류한수진 기고 글


    1) 2012년 11월, ‘노동자연대 다함께’는 한 차례의 논란에 휩싸였다. 16일 새벽, ‘다함께’에서 1년여를 활동해온 한 여성 활동가가 ‘‘다함께’ 회원이던 시기에 활동하던 단체에서 성폭력을 당했으며, 가해자 중에는 ‘다함께’ 회원도 있었고, ‘다함께’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도 방임했다’ 폭로한 것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사건 이후에도 반성의 기미 없이 성폭력적인 언행을 계속하였고, 이것이 문제가 있다고 느껴서 몇 차례나 ‘다함께’ 활동가들에게 사건에 대해 상담하거나 해결을 촉구했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고 한다.


    2) 피해호소인이 시종일관 제기하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다함께'가 반성폭력 교육이나 내규 등 여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다함께'가 그 스스로 역설하고 있듯 낙태나 재생산권, 여성 노동 등의 부문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점을 고려하면 다소 의외스럽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서도 '다함께'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민주노총의 무책임을 사정없이 질타한 바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다함께' 내부에서 성적 권력관계에 대한 성찰은 거의 전무하였고, 심지어 '여성 차별에 반대하면 됐지 여성주의가 왜 필요하냐'라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부 간부조차도 '여자가 숙박시설에 같이 가는 것은 관계에 동의한다는 뜻이므로 숙박시설에 따라갔다가 성폭력을 당한다면 거기엔 피해자의 책임도 있다'는 식의 인식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데이트 강간이나 가정폭력,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뒷바라지' 시키기 등의 불평등한 성역할 구분이 이루어져도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여자가 사회를 봐야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사회를 시키는 일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3) 그렇다고 '다함께'가 피해호소인의 문제제기를 번번이 묵살하고 심지어 피해호소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을 여성주의의 부재 탓으로만 돌린다면, 이는 사태를 왜곡하는 셈이 될 것이다. 여성주의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조직이라 하더라도, 조직에 대한 문제제기에 조금이라도 열려 있다면 내부 성폭력 문제에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는 없을 것이다. 


    4) 대의와 개인의 인권 사이의 이분법을 운운하기 이전에, 이는 조직의 이해관계와 대의를 동일시하는 유아적 사고방식, 조직의 입장이라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덮어놓고 따르는 무비판적 추종, 조직의 행위를 객관화할 능력의 철저한 결여 등, 그야말로 전형적인 종파주의의 사례라 할 만하다. 



    2. 사노신 편집자 주


    2011년 7월, 서울시립대 <대학문화> 교지편집위원회 MT에서 성폭력사건이 발생했다. 다함께 회원이던 대학문화 편집장과 편집위원이 함께 활동하던 여성 활동가에게 강제로 야동을 틀어놓고 보게 한 것이다. 이들은 이를 원치 않았던 여성 활동가에게 계속해서 성적 농담을 하며 거부의사를 묵살했다. 피해자는 MT 이후 1년이 넘게 다함께 측에 문제해결을 요구했지만, 다함께는 이 문제가 개인의 문제일 뿐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며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피해자가 제기했던 성폭력 사건의 정당성을 더욱 널리 알려내기 위해 <다함께․대학문화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의 류한수진 동지가 글을 기고해주셨다.많은 독자들의 지지와 응원이 이어지길 바란다.”

     

    사노신은 기고자 류한수진 동지와 연락을 취하고 다른 경로로 사실관계를 파악해보았다.


    자체 파악결과 당시 <다함께>에서 활동했던 동지들의 증언을 통해 지적된 기고문의 사실관계와 표현들을 허위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다만 기고자는 직접 경험한 바가 아니라 전해들은 내용에 대해서는 전해들은 것이라고 명시하는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문제 제기 2)에 대해서 “그러나 실제로 ‘다함께’ 내부에서 성적 권력관계에 대한 성찰은 거의 전무하였고, 심지어 ‘여성 차별에 반대하면 됐지 여성주의가 왜 필요하냐’라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일부 간부조차도 ‘여자가 숙박시설에 같이 가는 것은 관계에 동의한다는 뜻이므로 숙박시설에 따라갔다가 성폭력을 당한다면 거기엔 피해자의 책임도 있다’는 식의 인식을 가지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데이트 강간이나 가정폭력,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뒷바라지’ 시키기 등의 불평등한 성역할 구분이 이루어져도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여자가 사회를 봐야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사회를 시키는 일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로 수정한다. 또한 3번 “피해호소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은”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글의 전후맥락을 볼 때 언어폭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나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피해호소인에게 언어폭력을 휘두른 것”이라고 수정하기로 했다.


    사노신 편집자 주의 경우, 가해자 중 <대학문화> 편집장은 다함께 회원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당시 편집자의 착오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깊은 사과를 드리며, “다함께 회원이던 대학문화 편집장과 편집위원”이라는 부분을 “대학문화 편집장과 당시 다함께 회원이던 편집위원”으로 수정한다.

    그러나 “피해자는 MT 이후 1년이 넘게 다함께 측에 문제해결을 요구했지만, 다함께는 이 문제가 개인의 문제일 뿐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며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피해자지지모임이 사건 발생 이후 <다함께> 측에 3회 이상 공문을 발송했으나 모두 기고문에서 쓴 것과 같은 답변을 보내거나 답변을 보내지 않았던 사실을 확인하였으므로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였다..

    사노신은 기고문의 문제의식이 전반적으로 타당하며,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에 위와 같은 확인을 거쳐 편집자 주와 글 내용의 일부를 수정하여 재개시 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만약 <노동자연대> 측이 진정으로 노동운동과 여성해방을 위해 헌신하는 조직이라면 다음 사항을 이행하기를 촉구한다.


    1. 본 사건의 피해자 동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


    2. 2차 가해를 중단하라.


    3. 사건의 재발을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


    2014년 12월 31일 사회주의노동자신문


    2011년 7월, 서울시립대 <대학문화> 교지편집위원회 MT에서 성폭력사건이 발생했다. 대학문화 편집장과 당시 다함께 회원이던 편집위원이 함께 활동하던 여성 활동가에게 강제로 야동을 틀어놓고 보게 한 것이다. 이들은 이를 원치 않았던 여성 활동가에게 계속해서 성적 농담을 하며 거부의사를 묵살했다. 피해자는 MT 이후 1년이 넘게 다함께 측에 문제해결을 요구했지만, 다함께는 이 문제가 개인의 문제일 뿐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며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피해자가 제기했던 성폭력 사건의 정당성을 더욱 널리 알려내기 위해 <다함께․대학문화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의 류한수진 동지가 글을 기고해주셨다. 많은 독자들의 지지와 응원이 이어지길 바란다. 기고 기사의 관점은 사노신의 입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노동자연대 다함께의 성폭력 방임을 폭로합니다'


    …제가 계속 거부를 하는데도, 강제로 야동을 보여주고 과도한 수위의 성적 농담들(“임신은 어떻게 하는지 아냐?”고 묻고 대답하기를 강요하는 등)을 했습니다. … 그 이전부터 … 일상적으로 섹드립을 쳤었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부적절한 언사를 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 다른 다함께 회원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털어놓았으나 그들은 … 개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다함께의 지도부 중 한 명에게도 이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했으나, …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 결국 지쳤고 직접 폭로할 용기가 없어 이 사건을 묻어두게 되었습니다.

    -'노동자연대 다함께의 성폭력 방임을 폭로합니다!' 중에서(2012.11.16.)


    2012년 11월, ‘노동자연대 다함께’는 한 차례의 논란에 휩싸였다. 16일 새벽, ‘다함께’에서 1년여를 활동해온 한 여성 활동가가 ‘‘다함께’ 회원이던 시기에 활동하던 단체에서 성폭력을 당했으며, 가해자 중에는 ‘다함께’ 회원도 있었고, ‘다함께’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도 방임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사건 이후에도 반성의 기미 없이 성폭력적인 언행을 계속하였고, 이것이 문제가 있다고 느껴서 몇 차례나 ‘다함께’ 활동가들에게 사건에 대해 상담하거나 해결을 촉구했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로 충격적인 것은 이 글에 대한 ‘다함께’의 반응이었다. 글이 올라온 직후, 가해자로 지목된 회원은 물론 다함께의 다른 회원들 여럿이 집단적으로 욕설과 인신공격으로 점철된 악성 덧글을 달고 SNS에 글을 올려 피해호소인을 거짓말쟁이, 음해 세력, 정신이상자로 몰고 가기 시작했으며, 이들 가운데는 ‘다함께’의 중앙위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수십 명의 다함께 회원이 동조하는 덧글을 달거나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등의 방식으로 동조하였다. 한 회원은 장문의 입장서를 올려 피해호소인이 연애결별의 앙갚음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으며, 이를 읽은 활동가들 몇몇이 '2차 가해'라고 지적하자, '다함께' 회원들은 '2차 가해를 이유로 토론을 봉쇄한다'며 이들을 교조주의자로 몰아갔다.

    가해지목인들은 피해호소인이 시청을 거부한 것은 공포영화를 볼 때의 반응[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반응]과 같은 것이며, 피해호소인이 성적으로 문란했기 때문에 교육을 위해 동의를 받고 보여준 것이고, 성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농담을 주고받다가 포르노까지 보게 된 것이라는 등 모순되는 주장을 늘어놓으며 피해호소인을 거짓말쟁이나 정신이상자로 몰고 갔다. 수많은 '다함께' 회원들은 이 주장을 덮어놓고 받아들이면서, 이 사건과 관련하여 ‘다함께’를 비판하는 활동가들을 ‘진실을 모른 채 부화뇌동하는 이들’이나 ‘원래 ‘다함께’를 싫어하는 이들’이라고 폄하하였다. 가해지목인 정**는 급기야 피해호소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고, 한 대학에서는 '다함께' 회원들이 총학생회장을 찾아가 '다함께'를 비판하는 자보를 붙인 사람을 고소자 명단에 추가하겠다며 누가 자보를 출력해갔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엽기적인 일까지 일어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함께'의 대응은 좀더 지능적으로 바뀌었다. 사건이 폭로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다함께' 회원들의 대부분은 사건에 대해 침묵하기 시작했다. 대신 갑자기 'Duckling Hyeon'이라는 계정을 사용하는 익명의 '다함께' 회원이 SNS에 글을 올려 자신이 정**의 대리인을 맡기로 했으며,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다함께'를 탈퇴한다고 밝힌 후 피해호소인과 지지모임 회원들을 정신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Duckling Hyeon'은 피해호소인이나 지지모임에 대한 온갖 욕설과 인신 공격으로 가득찬 입장서를 거의 매일같이 자신의 SNS에 게재하고, 피해호소인이 성적으로 문란하였다거나 정**를 운동 사회에서 영구추방하려고 주장한다는 등의 거짓말을 퍼뜨리고, 심지어 지지모임 회원에게 '까불던데 나랑 한 번 만나자'는 위협의 메시지를 보내거나 '가만 안 두겠다. 죽을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하는 등 실로 다양하고 악질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였다.

    그리고 '다함께'의 일반 회원들 대신 '다함께'에서 여성주의자를 자처하는 활동가들이 'Duckling Hyeon'의 입장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거나 연대단체에서 피해호소인을 험담하는 등 보다 온건한 배후 지원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다함께'는 공식적으로는 'Duckling Hyeon'은 '다함께'와 관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사건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개인적 문제이므로 '다함께'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사건이 폭로된 이후로 6개월이 흘렀다. 그 동안 피해호소인을 지지하는 활동가들이 모여 피해자 지지모임과 사건 해결을 위한 연대회의를 결성했고, 피해호소인은 이 단체들을 통해서나 개인적인 수단을 통해 계속해서 피해를 호소하고 자신의 문제의식을 거듭거듭 설명해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건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피해호소인의 요구와 입장에 대해서는 왜곡된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 왜 이렇게 상황에 진척이 없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어떻게 이런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다함께'의 행동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에 대한 억압과 착취에 맞서 싸운다는 활동가들이 어떻게 이런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을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는 진보단체가 내부의 불의를 지적하는 입장을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묵살해버릴 수 있었을까? 해방을 지향한다는 정치 조직이 어떻게 조직의 힘을 이렇게 비열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까?

    피해호소인이 시종일관 제기하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다함께'가 반성폭력 교육이나 내규 등 여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다함께'가 그 스스로 역설하고 있듯 낙태나 재생산권, 여성 노동 등의 부문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점을 고려하면 다소 의외스럽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서도 '다함께'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민주노총의 무책임을 사정없이 질타한 바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다함께’ 내부에서 성적 권력관계에 대한 성찰은 거의 전무하였고, 심지어 ‘여성 차별에 반대하면 됐지 여성주의가 왜 필요하냐’라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일부 간부조차도 ‘여자가 숙박시설에 같이 가는 것은 관계에 동의한다는 뜻이므로 숙박시설에 따라갔다가 성폭력을 당한다면 거기엔 피해자의 책임도 있다’는 식의 인식을 가지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데이트 강간이나 가정폭력,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뒷바라지’ 시키기 등의 불평등한 성역할 구분이 이루어져도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여자가 사회를 봐야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사회를 시키는 일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정** 등 일부 회원들의 경우 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곧 해방이라는 이상한 개방주의가 진보적인 것처럼 주장하고 다니기도 했다. 요컨대 '다함께'가 외형상 여성운동에 매우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다함께' 회원들이 자기 삶과 사고, 언행에 자리잡은 성적 억압과 차별을 성찰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함께'에게 있어 여성주의는 결국 실천을 규율하는 원칙이 아니라 단순한 구호나 동원 기제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고 '다함께'가 피해호소인의 문제제기를 번번이 묵살하고 심지어 피해호소인에게 언어 폭력을 휘두른 것을 여성주의의 부재 탓으로만 돌린다면, 이는 사태를 왜곡하는 셈이 될 것이다. 여성주의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조직이라 하더라도, 조직에 대한 문제제기에 조금이라도 열려 있다면 내부 성폭력 문제에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다함께'가 보여준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나 많은 '다함께' 회원들이 조직에 대한 어떤 문제제기도 은폐하고 억압함으로써 조직의 체면을 보존해야 한다는 오도된 조직보위론에 철저하게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의와 개인의 인권 사이의 이분법을 운운하기 이전에, 이는 조직의 이해관계와 대의를 동일시하는 유아적 사고방식, 조직의 입장이라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덮어놓고 따르는 무비판적 추종, 조직의 행위를 객관화할 능력의 철저한 결여 등, 그야말로 전형적인 종파주의의 사례라 할 만하다. 운동 전체의 관점에서 조직을 볼 수 있는 시야, 조직의 입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따져보고 스스로의 입장을 정할 수 있는 용기와 주체성, 조직의 오류를 인정하고 그것을 시정하도록 이끌 수 있는 반성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때 조직에 대한 믿음과 일체감이 어떤 괴물을 낳을 수 있는가를 '다함께'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실 위에서 던진 질문들은 이번에 처음 던져지는 것이 아니고, 이 사건에 대해서만 제기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함께'의 행태들은 정도에 있어 더 노골적이고 폭력적일 뿐,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비롯해 조직이 내부의 인권 문제를 묻고 넘어가려고 할 때 흔히 등장하는 양상들과 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100인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여성주의자들이 운동사회 성폭력에 대해 본격적으로 포문을 연 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다른 말로 해서, 이는 '다함께'가 이번에 보여준 끔찍한 면모들이 운동 사회에, 또 한국 사회에 널리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피해호소인의 목소리는 단순히 ‘다함께’에 대한 항의뿐만 아니라, 운동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


    성폭력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 : 공동의 과제, 모두의 몫


    피해호소인이 '다함께'에 요구하는 것은 이번 사건이 성폭력이었음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반성폭력 내규와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가해자들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하라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요구는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제대로 논의되어 보지도 못했고, 피해호소인이 가해자들을 매장시키려고 한다거나 '다함께'를 파괴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왜곡된 구도만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다함께’에 응당한 책임을 묻는 것을 생략하고 모든 것을 성폭력적 문화나 억압적 구조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변화는 구체적인 계기들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건 하나하나가 투쟁의 고리가 되지 못하고 '구조'나 '문화'의 문제로 일반화되고 추상화될 때, 그 구조와 문화를 타격할 구체적인 지점은 유실되고 만다. 성폭력적 문화를 바꾸는 데 있어서,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는 없다'는 선례를 만드는 것은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다.

    게다가 자신들이 말하는 대의와 이렇게 정면으로 모순되는 행동을 한 조직이 정치적 평가를 받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무책임한 슬로건만 횡행하는 것을 막고 운동 사회의 자정작용을 꾀할 수 있을 것인가? 정말로 성폭력을, 나아가 운동 사회의 병폐와 무책임을 물리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가 아무리 힘이 있다 하더라도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른 이(조직이든 개인이든)를 단호하게 평가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워야만 하며, 만약 그가 책임 회피하고 불의를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그를 더 이상 동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운동 사회가 지금 사건에 대해서 해야 할 첫 번째 대응이다.

    그럼에도, 사건의 해결이라는 것이 단순히 ‘다함께’를 응징하는 데서 그친다면, 혹은 '다함께'가 태도를 시정하는 계기가 되는 데서 그친다면, 이 투쟁의 의미는 애초의 문제제기가 지닌 함의에 비하면 매우 협소해지고 말 것이다. 또한, '가해자의 태도 변화'라는 목표를 싸움의 종착점으로 삼게 되면 자칫 투쟁 전체가 소모적인 과정이 되기 쉽다. 무엇보다 ‘다함께’가 설령 변한다 한들, 다시 ‘다함께’에 돌아갈 마음이 없는 피해호소인의 삶에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함께’에 속해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는 연대 세력에게는 이 사건이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 누군가를 도와준 것 이외의 어떤 경험으로 남을 수 있을까?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운동 사회의, 나아가 사회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확장된 시야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다함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다함께'의 어떤 지점에 대해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것인지, 왜 그것이 바뀌어야 하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답할 수 있을 때, 즉 이 사건의 쟁점들을 운동 사회 성원들이 공유하는 경험과 과제들에 연결지을 수 있을 때, 사건의 해결은 곧 우리의 삶과 연관된 변화의 과정으로 정립될 수 있을 것이고, 피해호소인에 대한 연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함께 손잡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피해호소인의 치유라는 측면에서도 절실히 필요한데, 왜냐하면 피해호소인이 자신의 피해를 인정받고 피해로부터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그녀가 받아야 했던 고통을 보상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 해결을 위해 투쟁하는 시간들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과정으로 남기 위해서는, 피해호소인이 불운을 당했다가 힘들게 구제받은 사람이 아니라 운동을 진전시킨 주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것이 ‘다함께’ 뿐만 아니라 피해호소인이 앞으로 살아나갈 공간에서도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사건에서 '다함께'의 행동과 거기에 대한 문제제기는 분명 운동사회의 현실에 대해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일단 무시하고 이 투쟁의 의미를 단순히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데 둔다 할지라도, 그것이 운동사회 전체라는 관점에서 원칙을 확립하는 효과를 낳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투쟁은 훨씬 더 넓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건 해결의 주체는 지지모임과 다함께뿐만 아니라 좁게는 운동사회, 넓게는 한국 사회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의 해결은 ‘다함께’가 반성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이 사건이 던져주는 문제의식을 받아안고 스스로 변화하는 데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전자보다 후자일 수도 있다. 피해자의 문제의식이 올바로 전달되고, '저들의 악덕'이 아니라 '우리 삶의 문제'로서 풍부하게 논의되고,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되는 것- 이 사건의 해결을 그렇게 정의한다면, 지금 우리 모두는 '다함께' 못지않게 사건에 대한 책임을 어깨에 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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