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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건설] 사노위 실패의 교훈과 혁명당 건설 투쟁의 연속성
  • 조회 수: 5274, 2014-04-08 16:30:12(2014-04-08)

  • 사노위 실패의 교훈과 혁명당 건설 투쟁의 연속성

    이형로

     

     

     

    사노위는 2010년 5월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출범하였다. 그 동안 각자의 써클과 활동공간에서 서로 다른 운동 노선과 문화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3개 조직과 개별 활동가들이 1년간의 공동의 실천 활동을 통해 당 건설 추진체라는 단일조직을 만들기 위해 무겁고도 험난한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사노위는 우선 11개 정치원칙을 조직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또한 당 건설 추진위의 전환조건으로 1)강령, 전술, 조직의 통일과 2)선진노동자에 대한 실천적 권위확보를 내세우면서 공동실천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하지만‘선진노동자에 대한 실천적 권위확보’라는 조건은 계급의식의 성장 정도와 계급투쟁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원칙적으로 정치조직이 실천적 권위를 갖는다는 것은 정치조직 고유의 강령과 전술에 입각한 실천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선진노동자들에 대한 권위확보가 당을 만드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당시의 8개월 정도의 공동실천 과정에서 드러난 이러저러한 문제점과 한계에 직면해서는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당 추진위 전환조건과 경로를 밝히는 것이 필요 했다. 필자는 [추진위 건설 경로와 무기로서의 강령][1]이라는 글을 통해 당 추진위 건설의 실질적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첫째, 전략 전술 모든 면에서 부르주아 국가권력에 맞서 독자적인 정치투쟁이 가능한 조직

    둘째, 혁명적 강령, 규약, 전술이 확립된 조직 

    셋째, 전국적인 조직망과 활동근거를 갖춘 조직, 모든 당원이 활동의 근간에서 직접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이 가능한 조직

    넷째, 정치의 중앙인 중핵과 활동의 근간인 현장분회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조직, 혁명조직의 기본인 민주적 집중제의 원칙이 관철되는 조직

    다섯째, 사회주의 세력을 혁명적으로 재 조직화하고, 전투적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의 과제를 제시하는 것의 중심에 서있는 조직

     

    그런데 출범 10개월이나 경과한 사노위는 여전히 위의 다섯 가지 조건 중 다른 조건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강령통일과 당적 조직 구조의 기초를 갖고 있지 못했다. 이 것에 한해서는 정확히 10%의 가능성도 존재 하지 않았다. 만약 강령통일과 당적구조가 갖춰지지 않은 채 조직의 형식만을 유지한다면 나머지 세 가지 요건은 껍데기에 불과해, 정치노선 없는 정치투쟁, 사회주의 정치 활동 없는 전국적 조직, 당 건설 전망 없는 혁명적 재편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사노위는 약속된 1년의 공동실천 기간 동안 혁명 강령에 입각한 당적 구조를 창출하는데 실패했고, 3차 총회를 기점으로 강령을 중심으로 또는 조직 활동을 중심으로 분리되고 만다.

     

    그렇다면 왜 사노위는 강령통일에 실패했고, 당적 조직구조를 창출하지 못했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정말 처음부터 동거 해서는 안 되는 이질적인 집단이 만난 것일까?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3개 조직과 개별 활동가들이 만났지만, 공동실천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써클 구도가 아닌 명확한 정치노선으로 재편되었고, 분리조차도 진정 이질적인 요소로 분화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현재까지 다수파와 소수파의 구도는 여전하지만, 사노위 잔류파도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도 3개 조직과 개별 활동가들을 대부분 포괄하며, 써클 구도가 아닌 정치적 입장으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위의 물음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얻기 위해 사노위 실패의 직접적 원인인 강령통일의 실패과정을 중심으로 작성 하였고, 현재도 진행 중인 혁명당 건설 운동의 연속성과 정당성을 지지하는 입장의 글이다.

     

     

    1. 5인안 강령의 탄생 배경

     

    출범당시 11개 정치원칙에 대한 동의를 지반으로 1년간의 공동실천을 통한 강령, 전술, 조직의 통일을 추구했던 사노위는 말 그대로 초창기에는 강령, 전술, 조직의 통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정치연합에 가까운 조직이었다. 정치적 안배와 공동실천에 초점이 맞추어진 중집, 중앙위, 지역위 구성은 조직의 통일이라는 내용적 측면보다는 조직의 형식을 완성하는데 관심이 집중되었다. 강령위의 구성도 이것의 일환이었다. 그래서 당 건설의 핵심요소인 강령 초초안 작업은 이처럼 조직적 통일이 전혀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강령기초위원회를 처음 구성할 때는 사노위내 양대 정파였던 사노준과 사노련의 정치적 안배가 작용했으나, 강령실무위원까지 포함하는 강령기초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한 단계에서는 더 이상 사노준 대 사노련의 써클 구도가 아니라, 적어도 4개 이상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갖고 있는 정치 사상적 결집체[2]의 내용과 형식을 갖게 된다.

     

    강령기초위원회 초기과정에서 강령 초초안 마련을 위해 강령의 체계와 구성, 작성방법 등을 결정했던 당시에는 독자적인 강령제출이 가능한 정치노선이라면 어느 입장이라도 각자의 강령 초초안을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사노위가 더 이상 써클 간의 연합이거나 정치적 노선이 없이 공동실천만을 하는 조직이 아니라,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갖는 조직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강령 건설 또한 정치사상적 노선을 중심으로 내 외부 토론과 대중적 검증과정을 거쳐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을 공유했다.

     

    당시의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강령 초초안이 적어도 4개 이상으로 제출될 것이 예상되었다. 그리고 여러 개의 초초안이 제출되더라도 토론과정에서 각각의 초초안 내용을 기초로 하여 공통의 지반과 차이점을 확인하고, 쟁점사항은 토론을 심화시켜 공개적인 검증과정을 통한다면 강령통일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공통의 지반과 차이점이 명확해 질수록 강령통일은 사노위 구성원 전체의 일이 되고, 실천적 검증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령 초초안 작성을 막 시작하려던 시점에 사노위 에서는 당 추진위 건설 과정에서 강령만큼이나 중요한 조직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소위 ‘가입원서 사건’이라는 웃지 못 할 사건이었는데, 당시에는 아직 사노위 전체의 문제나 중앙위의 문제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서울지역위원회에서는 가입원서 거부자(정확히 규정하자면 가입원서 작성과 반대에 대한 행동 자체를 거부하고 정치조직의 민주집중제 원리를 공식적으로 부정한 자)에 대한 징계 안이 상정되었다. 물론 가입원서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 중 가입원서 작성이라는 형식문제와 집행과정에서의 소통부족은 문제를 더욱 부정적인 쪽으로 확산시키는 원인으로 작용 했다. 하지만 처음의 문제는 가입원서 작성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입원서 거부흐름을 반조직적으로 촉발시킨 중앙상근자의 태도와 그를 비호하는 세력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문제는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정치토론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정치조직으로서는 당연한 멤버쉽 확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을 확산시킨 것은 써클주의 운동에서 나오는 온정주의 흐름이었다.    

     

    나중에 일이 확대되면서 문제의 핵심이 민주 집중제와 연방주의 문제로 옮겨가게 되고, 이때 민주 집중제를 주장했던 세력들(이후 의견그룹 구성)은 낡고 경직된 조직관을 가진 사람들로 오해 받기도 했지만, 사실은 당시 사노위의 조직상태가 민주 집중제를 강제할 만큼 정치토론이 가능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것은 외부에서 생각하듯이 가입원서 작성 행위 한 가지를 두고 레닌의 고전적인 민주 집중제를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상적인 정치토론을 통해 상호 설득의 과정을 거쳐 정치적 승인을 하거나, 그럼에도 승인이 불가능하다면 조직을 향해 적극적인 내부투쟁을 벌여달라는 단지 사회주의자다운 행동을 요구했던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동지들에서 대해서는 전체주의적 강요, 파시즘 운운하며 정치토론을 통한 설득이나 내부투쟁 같은 모든 행동자체를 거부하면서, 조롱으로만 일관했기 때문에 징계라는 불가피한 제재조치를 상정한 것이었다. 즉 행동통일만을 강조하는 민주 집중제에 대한 과잉 되고 경직된 적용에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에서 생긴 문제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행동통일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반대의 행동을 하더라도 정상적인 내부투쟁을 해달라는 요구[3]가 일체의 행동거부와 민주 집중제에 대한 왜곡, 그리고 과거 써클 구도를 이용한 온정주의 흐름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거나 묵인하는 사노준 출신의 3인을 제외한 강령위원 8인은 긴급회합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는 강령문제 이전에 정치조직의 기본이 되는 조직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강령토론이나 강령채택 과정에서도 결국 다수파의 논리와 써클주의 정치가 작용하여, 조직보존을 위한 야합이나 실천적 의미가 없는 강령 채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 후 1인은 독자강령 제출을 위해 그 모임에서 빠지고 나머지 7인은 조직문제에 대한 공유, 강령 원칙의 큰 틀에서의 동의를 기반으로 공동의 강령 초초안을 제출하기로 결정한다. 이것이 5인안이 탄생한 일차적 배경이다. 그리고 이러한 써클주의에 대한 우려는 2차, 3차 총회와 서울 지역위 임시총회, 강령토론의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고, 사노위 실패와 분리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 하게 된다.

     

     

    2. 5인안 강령의 원칙과 쟁점

     

    위와 같이 공동의 강령 초초안을 마련하기로 한 7인은 다음과 같은 원칙 속에서 강령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우선 혁명당과 혁명강령의 관계에 대한 규정에서, 혁명 강령 없는 혁명조직은 존재할 수 없으며, 혁명정당과 혁명 강령은 계급의식의 정치적 표현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혁명투쟁에 필수불가결하다는 전제하에 강령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첫째, 어떤 강령인가의 문제였는데, 우리가 건설할 강령은 한마디로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 강령이다. 이 강령은 프롤레타리아계급에 대한 착취체제인 자본주의체제의 본질과 현 쇠퇴시기의 본질을 밝혀내고,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밝혀내는 강령이다. 역사와 생산과 권력의 주체인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해방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 등 혁명의 전 과정에 대한 혁명적 원칙을 정립하여, 노동자계급에게 사회주의 혁명, 세계혁명의 전망을 제시하는 강령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현실의 계급투쟁에서 자본가계급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무기로서의 역할을 하는 강령이다.

     

    둘째, 누구의 강령인가라는 문제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에게 제출하는 강령이자,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계급과 그들의 혁명적 부위인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함께 건설되어야 할 강령이다.

     

    마지막으로,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에서 혁명 강령을 건설하면서 고수해야 할 원칙문제였다. 그것은 첫째,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에서 스탈린주의를 포함한 과거 그리고 현존하는 사회주의를 참칭하는 모든 국가 자본주의와 기형적 체제에 대한 사회주의 불인정. (가짜 사회주의 규정) 둘째,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필연성 인정. 셋째, 사회주의 혁명은 혁명당과 노동자계급의 의식적이고 조직화된 집단행동에 기반 해야 하며, 부르주아 계급의 폭력과 반혁명 책동에 대해 노동자계급의 무장력(계급폭력)으로 맞서야 하며, 부르주아 권력의 타도에서 무장봉기전술의 필요성 인정. 넷째, 단계론 을 거부하고, 혁명의 첫 단계에서부터 부르주아 권력의 즉각적 타도와 모든 국가기구의 파괴와 노동자평의회 권력을 확립하는 것을 경로로 명시. 다섯째, 세계혁명과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노동자국제주의의 당면 실천목표로 설정. 여섯째, 위의 원칙에 입각한 노동자계급 권력 장악을 위한 이행요구(강령) 실천을 원칙으로 삼아 강령 초 초안이 만들어진다.

     

    위와 같은 강령의 원칙들은 이미 강령 초 초안의 내용을 대부분 규정해주고 있었다. 따라서 강령 초 초안 작성과 강령토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강령의 원칙에 대한 동의였다. 강령문구와 전체 내용에 대한 동의는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는 가능하지도 않고, 강제로 설득해서도 안 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토론과 실천을 통해 검증 받아야 할 앞으로의 과제로 상정했다. 그래서 원칙들에 대한 근거 제시와 세부적인 내용상의 불명료함 해소는 반드시 국제적인 흐름과 한국적 상황을 연계하여 풀어나간다는 원칙하에, 많은 부분을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둔 채 강령 초 초안을 제출하게 된다.

     

    소련사회에 대한 성격규정 문제가 그렇고, 자본주의 쇠퇴 문제 등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진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강령토론과정에서 나타난 3인 안과의 사상적 차이점들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둔다고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소한 오해의 문제나 강령 문구상의 해석 차이를 넘어 근본적인 원칙에서부터 전혀 다른 사상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두 입장은 강령토론 내내 평행선을 달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강령토론 자체가 처음부터 공개적이고 외부 지향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내부의 문제로 치환되고 내부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개적인 토론이나 실천과정에서 검증 받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이것은 결국 1년간의 공동실천 과정에서 강령통일을 못 이루어 당연하게 조직을 해산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압력이나 노동자계급에 대한 책임감이 작동하기 보다는, 내부적인 조직봉합과 조직보존논리가 다수를 점해 사노위를 계속 유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앞으로 사노위 잔류파의 통합강령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3차 총회와 강령초안 토론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확인된 3인 안과 5인 안 강령초안의 사상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소련 사회의 성격 규정문제에서 3인 안이 소련, 중국, 북한 등을 가짜 사회주의가 아닌 모종의 사회주의 국가로 규정하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의 차이 정도가 아니었다. 이것은 앞으로 건설할 사회주의 국가의 상에 관한 문제이고, 여전히 3인 안이 스탈린주의적 잔재와 노동자국가에 대한 환상(당과 관료가 주도하는 국유화, 계획경제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버리지 못해 나타나는 사상적 혼란스러움이기 때문에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문제였다. 우리는 소련사회에 대해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지만 다함께 에서 주장하는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4]오히려 가치법칙과 계급투쟁의 고려를 통해 소련사회를 분석하려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는 맑스주의 혁명적 전통에 따라 이행기 문제를 판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물론 아직까지 명료하지 못한 측면들은 앞서 말했듯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혁명 강령의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이행기 문제를 퇴보한 노동자국가론이나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실패한 모종의 노동자국가로 판단하는 사상들은 우리와는 현실 투쟁에서부터 적대적[5]일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적당한 타협이나 강령상의 이견병기로 넘어가려는 행위는 정치적 야합일 뿐 역사와 노동자계급에게 정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둘째, 자본주의 쇠퇴 규정의 문제도 단순한 시대규정이나 경제학적 분석[6]만이 중요한 쟁점은 아니었다. 이것은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끝 모를 위기의 본질을 밝혀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삶의 문제이고, 계급투쟁의 주체들이 처해있는 객관적 조건과 전망에 대한 문제이다. 이것은 결국 노동자계급 미래의 문제, 혁명의 문제이다. 3인 안처럼 자본주의의 상승기/쇠퇴기 개념 없이 단순한 주기적 위기론, 공황론 정도로 자본주의 위기상황을 판단한다면, 쇠락해가는 자본주의의 야만성과 반동성, 기생성과 부후성의 근원을 밝혀낼 수 없다. 더욱이 이것을 혁명적으로 극복할 대안(이행 프로그램)을 그 물적 토대로부터 도출해낼 수 없다. 또한 쇠퇴하는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의 위기전가 상황을 맞이하여 생존권의 위협과 급격한 생활수준의 하락에 직면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생존조건이 계급의식과 조직의 상태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분석할 수 없다. 낡아서 소멸하는 운동과 새롭게 창출되는 계급운동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분출되고 꺼져버리는 계급투쟁 속에서 혁명적 전망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 쇠퇴 개념을 무시한 채 이들이 제시한 전망이라는 것은 고작 과거운동의 혁신이나 계급의 재조직화(주체형성)라는 구태의연하고 앙상한 실천적 전망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자본주의 쇠퇴개념에 대한 반정립에 치중한 나머지, 자본주의 쇠퇴의 시작 (1914년, 1979년대, 1998년 이후 등)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나, 쇠퇴의 여러 근거에 대한 연관성 부족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자본주의 쇠퇴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최근 경제학자들[7]과 자본가들까지 자주 사용하고 있는‘자본주의 쇠퇴’라는 개념을 계속 부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것은 모든 것을‘자본주의 위기’라는 말로 치환시키게 되어, 사회주의 혁명의 물적 토대를 스스로 부정한다는 오해를 사게 되었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하려는 캠페인은 좌우를 막론하고 시대의 화두가 되어왔지만, 쇠퇴하는 자본주의로부터 노동자계급을 구하려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실천은 오로지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혁명의 길밖에 없다는 것을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말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 혁명은 세계적이어야 하고, 세계적이지 않으면 그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또한 세계혁명은 새로운 인터내셔널 즉 세계혁명당이 건설되어야 실현 가능하다. 세계혁명과 세계혁명당 건설의 관점에서 강령은 세계적으로 통일된 강령이 필요하며, 이것은 처음에는 맑스주의 전통을 계승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과 혁명적 계급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투적 노동자계급들을 포괄할 수 있는 기준강령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 기준강령에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혁명적 원칙들이 담겨있어야 한다. 일국의 특수성을 반영한 국가별 지역별 당이 존재하는 한, 처음에는 각 당의 강령이 별개로 존재하겠지만 세계혁명당의 강령과 조직은 하나일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국 혁명당의 강령과 조직은 세계혁명당의 기준강령과 통일되어야 하며 세계혁명당의 건설에 복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나 불분명한 자신들만의 사상과 경험으로 일국의 강령을 독자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은 세계혁명의 관점을 가질 수 없으며, 노동자국제주의와도 거리가 멀다. 사노위에서 5인 안이나 제4인터 안은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 또는 정통 트로츠키주의 노선을 명확히 했으며,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당면 목표로 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 달리 3인 안은 강령토론의 과정에서 인터내셔널의 관점이 아닌 일국의 독자적 강령과 당 건설을 상정하고 있음을 드러냈고, 이것은 일국 당들의 연합형태를 인터내셔널로 규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맑스주의를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계승하는 정치노선을 밝히지 못한 채 정체불명의 혼합된 노선과 다른 노선에 대한 반정립으로 일관해 왔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것은 사노위 내에서의 연방주의적 조직관을 인터내셔널 건설에까지 적용한 정체불명의 사상적 표현에 다름 아니었다.

     

     

    3. 혁명당 건설 투쟁의 연속성

     

    공산당 선언에서는 공산주의 전위의 본질적인 책임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노동자계급당과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만 구분된다.

     

    1. 여러 나라의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국내 투쟁들에 있어서 국적에 상관없이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지적해내고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2.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 있어서 항상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자당 선언」

     

    공산주의자들에게 노동자계급 운동을 혁명의 길로 이끈다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역사적이고 국제적인 이해관계와 운동의 최종적 목표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계급 운동의 최종적 목표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혁명가들이 명확한 정치적 지향을 가져야 하며, 혁명가조직을 통해서만이 그 지속성을 유지하며 계급의식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혁명가조직(혁명당)을 건설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공산주의자의 본질적 임무이자 혁명의 성공을 위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전제조건이다.

     

    공산주의자당 선언에서 말하는“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은, 여전히 한국의 운동사회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민족주의(사민주의)와 스탈린주의 경향과의 단절 속에서만 혁명가 조직 건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계급투쟁의 발전 단계들에서 항상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 는 노동자계급 당파성 원칙은 현재 사회주의 당 건설을 표방하거나 목표로 삼는 여러 서클 들의 종파주의와 생디칼리즘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자립성과 혁명성을 약화시키는 부문운동주의를 극복해야만 혁명당 건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혁명가조직(혁명당)의 건설은 상대적으로 짧고 일천한 사회주의 운동의 경험 속에서도 합법·비합법 써클-사노련-사노위 과정을 겪으면서 민족주의, 스탈린주의, 사민주의(의회주의), 써클주의, 전투적 조합주의, 부문운동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명확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혁명세력들이 형성된 지금이 바로 즉각적인 혁명가조직 건설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자, 역사적 전환점인 것이다.

     

    2005년 이후 혁명당 건설을 위한 과정은 바로 그 과정의 일부이다.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 사노련, 사노위, 그리고 (가)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은 이를 위한 구체적 발현태 이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객관적 정세가 혁명당 건설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혁명의 동기가 진보하려면, 프롤레타리아트와 사회주의의 승리가 꿈이 아닐려면, 혁명적 노동자들은 그들의 전투적인 에너지를 활용하고 안내할 수 있는 선도적 유기체들을 만들어야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 붉은 깃발, 1918」

     

    현재 한국에서 사회주의 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그룹들의 수준은 1918년 독일의 수준에도 못 미칠 정도로 여전히 정치조직의 첫 단계에 머물러있다. 즉, 활동과 조직의 수공업적(써클적) 수준으로 인해 독자적인 정치투쟁(사업이 아닌 투쟁)을 벌여나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혁명적 전통에서 출발하지 못한 정치 사상적 불확실성과, 실천적으로도 계급투쟁에서 자라나긴 했으나 계급 속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짧고 단절된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는, 전체 사회주의 세력의 분열과 분산을 가속화시키면서 수공업적 수준을 극복하는데 걸림돌이 되어왔다.

     

    더욱이 부르주아 선거의 시기인 1, 2년 사이 선거주의, 의회주의, 개량주의가 혁명적 투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동할 것이다. 하지만 혁명세력은 더더욱 스스로를 무장하여 준비 태세를 갖추어야 하며, 반노동자적인 사회민주주의를 넘어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의 성과물인 혁명 강령이라는 무기를 들고 혁명당을 건설해야 한다.

     

    1918년 이미 혁명당 건설을 주장했던 로자의 교훈은, 안타깝게도 실천으로 옮겨지지 못해 훗날 크나큰 비극을 초래했지만, 우리는 이 교훈을 통해 오늘날 혁명당 건설은 계급의식과 계급투쟁의 조건에 따라 유보되거나 훗날의 과제로 미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혁명가들이 명확한 정치적 지향을 갖고 모든 예비적 선전 작업과 계급투쟁에의 개입을 통해 그것을 즉시 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혁명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주체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그것의 준비는 첫째 혁명적 강령·규약의 건설을 통해 정치사상적 명료함을 획득해내는 일과, 둘째 조합주의와 대리주의를 넘어서는 공세적인 운동노선을 제기하면서 현실의 계급투쟁에 함께해야 하고, 여기서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가장 활성화된 부분을 차지하여 투쟁에 활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장기적으로는 명확한 정치적 지향을 갖고 노동자계급 속에 깊이 튼튼하고 강고하게 뿌리내리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준비는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며, 이런 노력들의 결과가 당 건설을 앞당겨 줄 것이다.

     

    비록 사노위는 실패했지만 사노위의 과정을 통해 당 건설 주체들의 정치적 입장은 보다 명확해졌다. 외부의 우려처럼 “사노위에 참여한 급진좌파들이 서둘러서 강령을 통일하려고 무리하지 않고, 서로 정치적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동전선적으로 협력하며 좌파 결집체를 운영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8]라는 판단은 현재의 결과만 보는 근시안적 태도이자 대기주의적 자세이다. 앞서 말했듯이 혁명 강령 없는 혁명당은 존재할 수 없으며, 공동전선의 지속이 강령통일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강령토론을 통해 내외부적으로 근본적인 사상투쟁을 벌이고 실천적 검증을 하는 과정을 통해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획득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강령통일과 혁명당 건설에 도움이 된다. 비록 사노위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의 원인은 성급한 동거나 무리한 강령통일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동안 서로의 정치사상과 노선을 강령적 수준에서 명확히 밝히고 토론하는 과정이 없었던 것이 더 문제다. 이것이 성급한 동거를 불러오기도 했지만, 결국 강령적 차이에 따른 서클구도의 해소와 분리,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재 집결이라는 소중한 성과를 가져왔다. 이 경험은 앞으로의 당 건설에 있어 규모와 관계없이 강령적 동의를 기반으로 조직이 생성되게 할 것이며, 강령적 원칙의 동의만이 조직과 개인들의 결집과 재조직화를 추동 하게 만들 것이다.

     

    아직도 개혁주의 노동자정당이라는 환상에 갇혀 입당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다함께 같은 정파들은, 1920년 말의 트로츠키 노선[9]에 집착하여 자신들과 정치적으로 유사한 사회주의자들과의 유대와 연대를 통해 혁명당을 건설하는 일에 역할을 하기보다는, 대중과의 접촉도가 높은 사민주의에 동참함으로써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강령이라는 혁명조직의 본분을 묻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이 특별히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개혁주의적 노동자들과 소통하고 접촉하는 기회를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대리주의 노선에 빠져, 대중의 품 안에서 공동전선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중추수적 당 건설 경로로는 아무리 조직이 커지더라도 당 건설은커녕 계급대중에 대한 영향력 강화에만 몰두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해방과 혁명의식은 노동자들 자신의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계급에 대한 당의 궁극적 목표는 계급을 혁명적 의식으로 무장시키고, 그들이 다수가 되어, 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혁명을 만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상시기(계급의식이 충분히 성숙되어 있지 못하고 균질화 되어 있지 못했을 때) 당의 역할은, 이러한 상태의 계급의 다수를 획득하거나 국면적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가 되더라도 혁명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은 계급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노동계급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당장의 인기와 계급대중의 다수를 획득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판단하여 “미래에 계급이 얼마나 혁명적으로 변화 되었나”로 판단해야 된다. 그리고 계급에 대한 영향력도 혁명적 시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필수요소)이지, 일상시기 또는 침체기에 혼란스러워 하는 다수의 계급의식과 타협하는 영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수에 대한 영향력을 잃더라도, 혼란에 대해 단호하게 단절하도록 밀어붙이는 것이 노동자계급에 진정으로 공헌하는 길이다. 혁명조직이 노동계급에 근거하고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끈기 있는 인내만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의 모든 활동의 방향이 진정으로 노동계급을 변화시키고, 계급적 단결을 도모하고, 공산주의 혁명에 실질적인 공헌을 하는 것에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왜곡되고 분할되어온 계급 의식은 노동자계급 본래의 계급성을 잃어가게 했으며, 조합주의와 사민주의 운동에 갇혀버린 노동자들의 투쟁들은 동질성을 회복하기는커녕 이질성이 높아져가고 있다. 이것을 뛰어넘는 것은 결국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계급적 자각일 것이며, 그것을 촉진하는 일에 혁명당은 매진해야 한다.

     

    오늘날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이 혁명적으로 부활하고, 세계적으로 새로운 계급투쟁의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현실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오늘날 혁명의 순간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갑작스럽게 전면적으로 들이닥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혁명시기가 오기 전 노동자계급은 혁명정당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뼈아픈 사노위의 실패를 딛고, 이제는 공산주의 정치적 지향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혁명당 건설에 즉시 착수하자.

     

     

    [참고 문헌]

     

    국제공산주의 흐름 2008, 《자본주의의 쇠퇴》, 빛나는 전망

    국제공산주의 흐름 2009, 《공산주의 조직과 계급의식》, 빛나는 전망

    마르크스, 카를 2005, 《공산당 선언》, 새날          

    사노위 《창립총회 자료집》

    사노위  ‘출범선언문’(2010.5.9),
    http://swc.jinbo.net/board/bbs/board.php?bo_table=sub0401&wr_id=29&page=4

    사노위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추진위) 강령 초초안 토론을 위한 자료집》(2011.1.15)

    사노위 2011, ‘2차 총회 결과’(2011.2.9),
    http://swc.jinbo.net/board/bbs/board.php?bo_table=sub0401&wr_id=111

    사노위 2011, 《강령 초안 토론 자료집》(2011.5.14)

    사노위 강령기초위원회 2011, ‘강령 초초안 자료집을 내며’(2011.1.15)

    아우프헤벤 2009, 《소련은 무엇이었나》, 빛나는 전망

    양한승 2010, ‘일반화할 수 없는 레닌의 규율’, <참세상>(2010.12.18)

    이형로 2011, ‘추진위 건설 경로와 무기로서의 강령’, <사회주의자 통신> 1호(2011.3.16)

    이형로 2011, ‘자본주의 쇠퇴 규정 폐기의 의미’(2011.5.19),
    http://swc.jinbo.net/board/bbs/board.php?bo_table=sub1101&wr_id=219&sfl=&stx=&sst=wr_datetime&sod=desc&sop=and&page=2

    전지윤 2011, ‘사노위 실패가 좌파에게 보여주는 것’, 《마르크스21》 10호(2011년 여름)

    프뢸리히, 파울 1991,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과 실천》, 석탑

    A.V. Gusev 1996 , ‘The Left Communist Opposition’, 《Otechesttvennaia Istoriia》

     

     

    ====================================================================================================================

    <주>


    [1] 이형로, 추진위 건설 경로와 무기로서의 강령, <사회주의자 통신 1호>
     
    [2] 강령기초위원회는 강령기초위원과 강령실무위원으로 구성되었는데 총 11명이었다. 강령위원회 구성은 사노준 출신 3명, 사노련 출신 3명, 개별 활동가 5명으로 이루어졌는데, 두 써클 소속이 아닌 5명은 레닌주의, 좌익공산주의, 트로츠키주의, IBT(트로츠키주의 일부) 등 다양한 정치 노선을 갖는 개인들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다함께(전지윤, 사노위 실패가 좌파에게 보여 주는 것, <마르크스21>, 10호, 2011년 여름)에서 규정한 사노련파 대 사노준파의 구도는 강령기초위원회에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3]  ‘ “백 년 전 러시아 볼셰비키 초기 규율이 … 혁명운동의 보편적 모델이 되리라고는 상정할 수 없다” 라는 양한승의 주장은 가입원서 문제가 이미 전체주의 문제, 민주 집중제에 대한 왜곡으로 확장된 이후에 제기된 내용으로 사태의 본질인 써클주의 ,연방주의 폐해들과의 투쟁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난 주장이었다. 의견그룹 내부에는 레닌의 민주 집중제를 원칙적으로 주장하는 동지들도 있었지만, 로자나 판네쿡의 입장을 가진 동지들도 다수 존재했기 때문이다. 민주 집중제에 대한 생각들은 다수파보다 의견그룹내부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4]  토니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의 결정적 결함은 국가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최고의 단계라는 견해이다. 그것은 국가자본주의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지점에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국가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최고의 단계라면 소련은 근본적으로 서구자본주의 보다 앞서 있어야 했다. 1940년대 말에는 스탈린의 급속한 공업화의 결과로 인해 그럴듯하게 보였던 소비에트 체제가 그 후 몇 십 년간 경기침체와 경제적 낭비가 점점 명확해 졌고 1990년대의 몰락과 사적 자본주의로의 회귀로 인해, 국가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최고의 단계라는 생각은 약점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또한 소련이 가치법칙에 종속되는 수단으로 군사경쟁을 촉발한다는 클리프의 시도는 또 하나의 약점으로 작용한다. 클리프는 무기경쟁을 유지하기 위해 소련이 거대한 군사 설비를 축적해야 했는데, 이러한 군사축적의 추동력은 러시아 경제의 축적을 추동 했고, 이러한 군사경쟁은 자본축적의 박차를 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군사설비가 축적된다는 사실은 자본의 축적과는 다른 것이다. 맑스의 가치법칙은 ‘경쟁’을 통해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경쟁적 교환을 통해 부과 된다. 그것은 가치가 형성되는 상품의 교환을 통해서 일 뿐이다. 군사축적은 직접적으로 가치의 축적이 아니라 사용가치의 축적이다. 상품 생산 없이 어떠한 가치도 없으며 가치 없이 자본의 축적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클리프는 소련의 군수산업에 상품생산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자기모순은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발전을 막는 작용을 했다.
     
    [5] 사노위 신문에서는 리비아 사태를 두고 이미 두 가지의 적대적 경향이 동등하게 게재되었다. 이것이 자국 상황이라면 둘의 입장은 피할 수 없는 적대적인 입장인데도 같은 조직을 유지한다는 것은 부르주아 정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여기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혁명과 인터내셔널의 건설이라는 관점에서 서로 적대적인 입장이 자기 일이 아니라서 자국중심으로 아무렇지 않게 동거를 하면서도 인터내셔널을 외친다는 것은 인터내셔널조차 희화화 시키는 일이다.
     
    [6] 다함께의 쇠퇴론 비판도 3인 안과 유사하게 경제주의적 측면이 강하다. “사노련파의 쇠퇴론은 자본 축적에서 비롯하는 이윤율 저하 경향보다는 축적의 외적 조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비자본주의 영역의 소멸로 ‘시장이 더 팽창할 수 없다’거나 ‘내부 시장이 중요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윤 창출의 핵심은 비자본주의 영역에 대한 수탈이 아니라 자본주의 영역 속에서 일어나는 착취에 있다. ” 전지윤, 사노위 실패가 좌파에게 보여 주는 것, <마르크스21>, 10호, (2011년 여름)
     
    하지만 우리는 사노위 강령토론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이 자본주의 쇠퇴의 원인을 외부시장 소멸론 에 만 두지 않는다. 당연히 이윤율 저하 경향이 기본으로 작용한다는 전제 속에서 외부시장의 소멸이라는 조건이 더해져 경쟁을 심화시키고 이윤율 저하를 가속화시키고, 이런 결합들 속에서 위기의 주기 또한 짧아지고 영구적 위기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외부시장의 문제는 요인일 뿐이고, 축적 자체에 대한 분석 속에서 쇠퇴기 자본의 축적양식, 계급투쟁의 양상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이것은 쇠퇴론의 실천적 의미를 포함한다.  이것의 결론은 파국론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의식적 행동을 요구하게 되고, 그것의 정식화가 바로 노동자계급의 자립화로 표현되는 것이다. 물론 강령초안을 제출할 때 까지도 이 문제에 대한 완전한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체계적이고 명료한 서술을 할 수 없었던 것은 5인 안의 근본적인 한계이자 앞으로의 과제이다.
     
    [7] 맑스주의 경제학자인 김수행 교수조차도 자본주의 쇠퇴라는 용어를 직설적으로 사용한다. <경향신문> (2011년 5월24일) 김수행 칼럼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이제 자본주의는 빈부격차와 계급대립의 심화, 국제협력의 붕괴, 제국주의에 대한 제3세계 인민의 저항, 민주주의의 약화 등으로 쇠퇴하지 않을 수 없다.” 고 주장했다. “
     
    [8] 전지윤, 사노위 실패가 좌파에게 보여 주는 것, <마르크스21>, 10호, (2011년 여름)
    [9] 1928년 뛰어난 트로츠키주의자이기도 했던 라덱은 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트로츠키가 왜 민주집중주의자들과 연합하여 새로운 공산당을 만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당시 트로츠키와 그 지도자들이 민주집중주의자 그룹을 극좌, 분파주의자로 몰아 해체시키고 다른 반대파들, 이탈리아 공산주의 좌파뿐 아니라 그들과 정치적으로 가까웠던 공산당반대파와 독일의 사회주의 노동자당과의 유대도 거부한 것은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트로츠키는 대중들의 패배와 반혁명의 통제 아래에서도 여전히 대중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스탈린주의적 외양이던 유럽의 나머지 사민주의적 외양이던 그들과 단절하여 노동자계급의 독립적 노선을 방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들과의 접촉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대중들이 속해있는 반혁명적 조류들에 타협하고 동참하는 일에 정열을 쏟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러한 풍조는 21세기인 지금에도 부르주아 사상에 오염되었거나(사민주의) 반혁명적 전통을 가진 조류들(스탈린주의)로부터 대중들을 빼내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대중들을 방어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그들에게만 적용되는 유일한 방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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