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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스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
  • 조회 수: 4286, 2015-03-10 18:32:59(2015-03-10)
  • 맑스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

     

    오세철

      

     

    맑스주의와 맑스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른바 국민모임은 전혀 논란과 논의의 대상일 수 없다. 167년 전 맑스와 엥겔스가 이미 통렬하게 비판한 각종 사회주의와도 거리가 먼 부르주아지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돈보다 인간”, “이윤보다 생명”, “신자유주의와의 결전등의 구호가 마치 사회주의인 것 같은 색깔을 갖고 있다 해도 여전히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201412105인 선언과 201521050인 선언에 참여하고 있는 이른바 맑스주의자들의 정치행동이다. 우리는 1050인의 이름과 야권교체로 정권교체”, 그리고 또 다른 부르주아지의 분파인 정의당과의 보궐선거연대, 그리고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당적, 계파, 소속을 넘어 연대 단결하자는 주장을 확인하고 더 이상 이들의 행보를 기다릴 필요 없이 우리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로 한다.

    105인과 1050인 가운데 학계의 면면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사회의 변혁운동에 앞장 서 왔던 대표적인 지식인들을 발견할 수 있고 그들이 몸담고 있는 단체들이 우리사회의 진보적 지식인 운동의 견인차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민교협은 특히 전노협의 정신과 투쟁에 연대하고 그 활동을 지지·후원하는 교수 조직이었고, 교수노조는 전교조 초기에 함께 하다가 분리하여 독립적인 노동자운동을 해왔으며, 학단협은 기존의 부르주아 학회를 비판하고 새롭게 구성한 진보적 학회들의 모임으로 학술운동의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또한 맑스 코뮤날레는 맑스주의자들의 모임으로 2년마다 대회를 열고 맑스주의에 대한 토론과 논쟁을 벌여오기도 했다. 이들과 이들 단체가 지난 40년간 우리사회의 민주화 운동뿐만 아니라 변혁적 사회운동의 토대를 마련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단체들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이른바 맑스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의 국민모임에의 참여와 주도는 앞으로 우리사회의 맑스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그리고 진보적이고 비판적 지식인 운동의 발전에 옳지 못한 영향을 줄 것이 우려된다.

    2015년은 2005혁명적 맑스주의자의 모임이 제안되고 그 토론과 활동이 시작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 결과의 하나로 2008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이 결성되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탄압받고 201410월 부르주아 법정의 최종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지 6개월도 지나지 않는다. 더욱 자세한 역사적 평가는 조금 미루더라도 우리는 다시 한 번 맑스주의 운동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지금에서의 의미를 살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이 글은 2018년 맑스 탄생 200주년을 내다보면서 새로운 형식의 코뮤니스트 선언을 준비하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서는 1848년 맑스와 엥겔스의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우리가 끝까지 붙들고 놓쳐서는 안 될 몇 가지 주요 입장을 살펴보기로 한다.(자세한 설명은 앞으로의 글에서 추가하기로 한다.)

    반정부당치고 정권을 잡고 있는 적수들로부터 공산주의 세력이라 비난받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좀 더 진보적인 반정부당이나 반동적인 적수들에게 공산주의란 낙인을 찍으며 비판받지 않은 반정부당이 어디 있는가?

    이러한 사실에서 두 개의 결론에 이른다.

    1.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의 모든 세력으로부터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았다.

    2.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목적, 의도를 공공연하게 세계에 밝히고 공산주의 유령이라는 동화(童話)에 당 자신의 선언으로 맞서야 할 적기를 맞이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노동자 정당들과 대립되는 별도의 당을 결성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관계와 동떨어진 독자적인 이해를 갖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만의 종파적인 원칙을 세우고 이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을 짜맞추려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오직 다음과 같은 점에 의해서만 다른 노동계급 정당과 구별된다.

    1. 공산주의자들은 각국에서 진행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에서 국적에 상관없이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이해를 제기하고 전면에 내세운다.

    2. 공산주의자들은 노동계급과 부르주지 사이의 투쟁이 여러 발전단계를 거치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전체 운동의 이해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모든 나라 노동계급 정당 가운데 가장 선진적이고 단호한 부분으로서 다른 모든 정당을 앞으로 밀고 나아가며,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거대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의 진행경로와 조건 및 궁극적이고 전반적인 결과를 명료하게 인식한다.”

     

    (보수적 또는 부르주아 사회주의)

    부르주아지의 일부는 부르주아 사회의 지속적인 존립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의 폐해를 바로 잡기를 요구한다.

    여기에 속하는 부류로는 경제학자, 박애주의자, 인동주의자, 노동계급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자, 자선사업가, 동물학대 방지협회의 회원, 열광적인 금주운동가, 그 밖의 온갖 종류의 보잘 것 없는 개혁가 등이 있다. 그리고 이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완전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체계적이지는 않으나 더 실천적인 두 번째 형태의 사회주의는 이러저러한 정치개혁이 아니라 오로지 물질적 생활조건, 즉 경제적 관계의 변화만이 노동계급에게 이득이 됨을 증명함으로써 노동계급이 목소하는 일체의 혁명운동을 평가절하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는 물질적 생활 조건의 변화를 오로지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의 폐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산관계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행정상의 개혁, 다시말해 자본과 노동 간의 관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은 채 기껏해야 부르주아 정부의 운명을 간소화하고 그 비용을 줄여주는 행정적인 개선으로 이해한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현존하는 사회·정치 질서에 반대하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한다.

    이 모든 운동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소유문제가 어느정도 발전했는가와 무관하게 소유 문제를 운동의 근본 문제로 전면에 내세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일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기존의 모든 사회질서를 폭력적으로 전복해야만 달성될 수 있음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잃을 것이라곤 족쇄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1848년 맑스와 엥겔스의 코뮤니스트 선언이 나온 이후 100년이 지난 194810월에 프롤레타리아트 정당의 본질과 기능이라는 글이 국제주의(Internationalism)38호에 게재되었다. 이 글은 100년 동안의 혁명적 노동자 운동의 모든 표현물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를 통해 미래(1948년 이후)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1948년 이후 지금까지의 혁명적 노동자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비판적 재검토는 대체로 이루어졌으며 그와 관련된 문헌이 혁명적 코뮤니스트 기관지와 웹사이트에 실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다섯 개의 소주제 아래 29개의 태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소주제에서 정리한 핵심적 내용을 정리하기로 하고 완역한 글을 다음에 제출할 계획이다.

     

    1. 사회주의와 의식

    1) 한 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이었던 당이 퇴행한 결과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기구가 되었다.

    2) 계급 개념은 경제적 분류가 아닌 현존하는 사회질서에 반대하는 역사적이고 정치적 개념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소멸에 대한 역사적 필요성에 대한 의식이다.

    3) 부르주아 혁명은 저발전의 생산력이 지배하는 인류의 전사(前史)이며, 반대로 사회주의는 계급의 모든 개인과 사회적 부와 모순되는 생산력의 발전에 근거한다. 사회주의 의식은 혁명적 계급 행동에 선행하고 그 행동을 조건화시킨다.

    4)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성취한 실현 위에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모든 시도는 본질적으로 실패할 운명이다. 역사적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은 사회주의 의식의 형성과 같고 사회주의 의식은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2. 역사에서 계급당의 형성

    5)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계급의 선택이나 위임이 아니라 계급 자체의 존재 양식과 삶이다.

    6) 사회주의 의식은 자발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런데 그 의식의 발전은 자본주의 모순의 발전에 의해 조건화되고 제한된다.

    7) 사회주의 혁명은 절대다수의 노동계급의 의식적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의식의 발전은 자본주의의 모든 노동자가 예속되어 있는 조건에 맞서면서 이루어지고 혁명적이고 역사적인 사명인 노동자의 의식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파괴하는 조건에 맞서서 이루어진다.

    8) 당의 역사적 기능은 계급의 행동을 이끄는 참모부가 아니다. 당은 계급을 대신해서 행동하지 않고 부르주아적인 의미의 신뢰를 요구하지 않는다.

    9)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일이다.

    10) 사회주의 혁명의 조건

    ) 사회주의는 필요성이다. 왜냐하면 생산력의 발전은 계급으로 분화된 사회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 이 필요성은 피억압계층의 의지와 의식적 행위를 통해 실현된다.

    ) 객관적 필요성과 주체적 의지로서의 사회주의는 목적을 의식하는 혁명적 행위로만 표현된다.

    ) 혁명적 행위는 혁명적 강령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11) 프롤레타리아트 당 형성을 향한 경향은 자본주의 사회의 탄생과 함께 나타난다. 그 맹아가 맑스의 코뮤니스트 동맹이다. 1851년 첫 번째 해산 결정은 유럽에서의 혁명의 실패와 반동의 승리 이후 였고, 두 번째는 1873년 파리코뮨의 실패 이후의 제1인터내셔널의 해소였다.

     

    3. 혁명 투사의 임무

    12) 2인터내셔널의 경험은 반혁명적 상황이 두드러진 기나긴 시간 동안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유지가 불가능함을 확인시켰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에 제2인터내셔널의 당들의 참여는 당의 기나긴 퇴행만을 드러냈다. 코민테른에서의 공산주의당들의 역사는 혁명적 흐름의 부침 속에서 당을 방어할 수 없게 만들었다.

    13) 이러한 이유 때문에 1935년부터의 트로츠키 인터내셔널같은 당 그리고 이탈리아의 국제주의 공산주의당의 결성은 가공적인 것이었고 혼란과 기회주의의 기획일 뿐이었다. 낡은 강령과 의회주의, 조합주의 같은 전술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14) 당의 조직으로서의 존재의 붕괴는 계급 이념의 발전의 붕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강령적 정교함에 대한 긍정적인 비판작업은 옛 당으로부터 나오는 유기체를 통해 추구된다. 이것들은 후퇴의 시기에서 그리고 새로운 혁명적 고양의 시기에서의 미래의 당의 건설에 적극적 요인을 구성한다. 보기를 들면 코뮤니스트 동맹의 해산과 제1인터내셔널의 창설 사이의 맑스의 분파, 1919년 코민테른 창설을 낳게 한 1차 세계대전 동안의 좌익 흐름, 코민테른의 퇴행 이후 혁명적 과업을 지속시킨 좌익 분파를 들 수 있다.

    15) 새로운 계급당의 건설을 위한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사민주의나 스탈린주의로부터의 여러 흐름을 기대하는 것은 당의 개념에 대한 기본 토대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16) 노동자의 경제적 착취가 노동자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의식에서 절대적으로 불충분한 조건으로 나타난다면, 이러한 의식의 발전은 혁명적 투사들이 그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어렵다.

    17) 지난 30(1918-1948) 동안의 경험에 기반하여 우리가 범주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요구와 이른바 민주적요구(의회, 민족자결권 등)가 아니다.

    18) 우리는 계급운동을 결성하는 유일한 요소로 제시되는 자발적 투쟁 행위의 개념뿐만 아니라 그 운동의 단순한 피동적 반영으로서의 기계적인 당 개념을 모두 거부해야 한다.

    19) 가공적이고 설익은 당건설은 계급의 유기체로서의 건설을 부정하게 만든다.

    20) 1인터내셔널의 경우 같은 조직 축소나 해소 같은 당의 소멸, 2 그리고 코민테른 같이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경로를 통한 당의 소멸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투쟁의 시기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를 두 번 경험했고 레닌과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의 거대한 당들의 배신을 무기력하게 지켜보았고 트로츠키와 보르디가는 공산주의 당의 퇴행과 괴물 같은 자본주의 기계로의 전환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투쟁에 대한 자아비판, 과거 개념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 강령의 정련화, 의식의 성숙, 그리고 새로운 간부 및 투사의 형성이다.

    21) 이 시기에는 국가자본주의, 쇠퇴와 같은 자본주의의 진화와 혁명의 실패 사이의 변증적 관계를 규명하는 일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괴물 같은 국가자본주의체제로부터의 사회주의적 해방을 분리시키는 능력을 통하여 계급해법과 그의 실현을 위한 수단을 회복하는 것이다.

    22) 현 시기는 혁명적 투사들이 소그룹으로 제한적 영역에서 선전 작업을 하는 동시에 연구와 이론적 명료화를 위한 끈질긴 노력을 해야 할 시기다.

     

    4. 미래의 당

    23) 당은 계급투쟁의 진화를 따르고 역사의 각각의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유기체로서 특정한 형식에 조응한다. 19세기 전반에는 국지적 투쟁, 교리 학파, 정차, 동맹의 출현이었는데, 가장 발전된 표현이 코뮤니스트 동맹, 그리고 코뮤니스트 선언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나타났다. 1인터내셔널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유럽 주요국가에서 사회·정치적 투쟁에 효과적으로 진입하고 노동계급의 단일조직으로서 정점을 찍었으며 제2인터내셔널에서는 임금 노동의 경제투쟁과 사회·정치투쟁의 분화로 나아갔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와 쇠퇴의 시기를 열었으며 코민테른에서는 투사의 철칙이라는 조직적 수단을 통해 대응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24) 혁명이 조직문제를 포함하지만 조직의 문제는 아니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넓은 대중 속에서의 의식의 성숙이라는 이념적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조직도 어떤 당도 계급 자체를 대신할 수 없다.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들의 과업이다.”

    25) 당은 지시와 집행의 조직이 아니다. 이 기능은 계급의 단일조직에 속한다.

    26) 혁명 후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의 시기에는 당을 전체주의체제의 단일 당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당은 국가와 구분된다.

     

    5. 당의 내부체계(27-29)(생략)

      

     

    우리에게 67년 전에 정리된 맑스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에 대한 테제를 지금의 시점에서 재검토하고 앞으로의 30년을 조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이 시기 우리사회의 맑스주의자들과 세계의 맑스주의자들이 공동으로 토론하고 구성해야할 과업이다. 적어도 맑스주의자, 혁명적 사회주의자, 코뮤니스트라면 그들이 현장의 투사이건 연구자이건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러한 과업에 매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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