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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조직과 계급의식] 3장. 독일 좌파
  • 조회 수: 3046, 2017-08-20 13:41:46(2017-08-20)
    • 코뮤니스트 조직과 계급의식

    • COMMUNIST ORGANISATIONS & CLASS CONSCIOUSNESS



    독일 좌파

     

    독일 네덜란드 좌파는 20년대 초부터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에 의해 울려 퍼진 반혁명의 합창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던 다른 하나의 혁명적 목소리를 대표한다.


    독일 좌파는 ‘공식적인’ 코뮤니스트당, KPD(s)에서 축출된 좌익 인자들이 설립한 KAPD를 중심으로 1919년에 재편되었다. KAPD는, ‘동조하는 당’으로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에 가입이 허락되었는데, 이들은 주로 인터내셔널의 의회와 노동조합에 대한 입장 (1920년 호르터(Gorther)의 레닌에 대한 대답을 참고)에, 공동전선의 개념에, 그리고 민족 해방주의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에 반대했다.


    KAPD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다른 좌파 그룹들, 예를 들어 벨기에, 헝가리, 이탈리아, 멕시코, 불가리아, 덴마크 좌파와 접촉하여 일관된 좌익 반대파를 형성하려 했다. 이러한 기회는 KAPD가 1921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에서 축출됨으로써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당에 대한 문제에서, KAPD는 전반적인 정치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고 당분간 소수로 남을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계급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강하고 일관된 당을 건설할 필요를 매우 정확하게 주장하는 점에서 그 공을 인정받고 있다 (1921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대회에서 발표하기 위해 쓰인, 당에 관한 테제들 중 제 7항과 8항). 이것은 독일 좌파의 입장 속에서 보르디가주의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아나코-생디칼리스트’적 입장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당에 관한 테제들 전체에서, 당이 권력을 쟁취할 필요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아마 이것이 이탈리아 좌파가 KAPD를 비난해서 말하는 그 아나키스트적 변형인가 보다). 반면, 강조점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도구로서 평의회(당과는 별도로 존재하는)의 역할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네덜란드 좌파는 이탈리아, 영국, 헝가리나 멕시코 좌파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혁명과 그 패배로부터 모든 교훈을 다 뽑아낼 수는 없었다. KAPD나 KAI(1922년 KAPD의 인자들에 의해 창설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문서에서도, 당과 국가가 평의회 권력들을 대체한 것이 러시아 혁명의 퇴행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언급도 없다.


    반대로, 일련의 심각한 혼란들이 독일 좌파 안에서 발전했다.

     

    1. 러시아 혁명을 부르주아 혁명과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혁명 두 가지 모두로서(1921년) 그런 다음엔 부르주아 혁명으로서 파악한 잘못된 분석 때문에, 정치적 당의 존재를 러시아 혁명의 부르주아적 본질의 근거로 보는 경향이 KAPD 안에서 발전했다.

     

    2. 권력을 잡아야 하는 의회적인 당의 하나로 간주되는 것을 옳게 거부하고 그러한 거부를 이론화함으로써, KAPD-AAUD 안에서 정확히 ‘반-당(anti-party)적’ 입장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경향이 형성되었다. 이 ‘반-인텔리(anti-intellectual)’ 흐름은 KAPD의 에센(Essen) 경향에서 그리고 그 후에 <평의회 코뮤니스트 연맹(League of Council Commmunists)>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잘 알려진, KAPD-AAUD와의 불화로 인해 1920년대 초, 오토 륄레(Otto Ruhle)를 중심으로 AAUD(E)가 결성되었다.

     

    3. 정치적 당과 같은 별도의 존재를 거부하면서, AAUD(E)는 당과 평의회의 중간정도 되는 조직, 즉 <일반 노동자 연합(the General Workers Union)>(AAU)의 발전을 옹호했다. 이러한 분석의 그 마지막 귀결까지 추구한 일부 인자들은 반-조직적(anti-organisational) 분석에 기초하여 분열하다가 결국 스스로 해산했다. 1925년 륄레 자신은 결국 스스로 모든 조직된 정치 활동을 포기했다.

     

    30년대 초부터, 독일-네덜란드 좌파로부터 남은 것이라고는, 고립된 ‘반-당(anti-party)’적인 개인들, 반 데어 루베(Van der Lubbe)와 같은 테러리스트들, 그리고 AAUD(E)에서 나와서 코뮤니스트 강령의 원칙들을 보존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조직의 필요성을 거부한 그러한 코뮤니스트들이 전부였다.


    사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의 일반적 패배로 인해 그리고 혁명적 물결 동안의 독일 혁명가들의 허약함으로 인해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이러한 독일 좌파의 이러한 인자들의 큰 실수는, 첫째로 그들이 쇠퇴기(decadent period)에 당의 본질과 기능에서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실패한 것에 있다. KAPD는 이 변화를 어렴풋이 눈치 챘다. 그것은 혁명적 시기와 의회주의 시기 사이의 차이를 정확하게 지적했고, 19세기 의회적인 노동자 정당의 역할과 사회주의 혁명 시기의 코뮤니스트당의 역할 사이를 구분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의 모든 함축된 의미들을 독일 좌파가 완전히 흡수했던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KAPD 안에서 대중 의회 정당의 개념과 당의 개념을 혼란시킨 한 경향이 발전했다. 이 경향은 시기의 변화가 갖는 실천적인 귀결들을 모두 도출할 수는 없었기에, 볼셰비키의 대리주의적 실수를 노출할 수 없었던 까닭에, ‘욕조의 물을 비우려다 아기까지 버리고’ 말았다. 이 뒤에 놓인 추론 근거는 다음과 같다 : “그러한 당의 역할이라고는, 지도자로, 즉 그들의 위치에서 대중을 지배하고 권력을 휘두르려는 의회주의의 우두머리로 되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들은 이 역할을 거부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당을 지양할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 독일 좌파는 언제나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전반적 미성숙함으로 인해, 이론으로 무장하고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물결을 맞이할 준비가 된 혁명적 당을 만드는 데 무능력한 이 나라 혁명가들로 인해 고통받았다. 오랫동안, SPD 좌파의 인자들은 공개적으로 사회민주당과 결별하고 독립적인 당을 만드는데 망설였다. 이러한 이유로, KAPD는 경험이 거의 없는 어린 조직으로서 등장했다.


    계급의 이러한 일반적 미성숙함은 독일 좌파의 시야를 흐리는데 큰 역할을 했고, 특히 계급들 사이의 힘의 균형의 본질에 대해, 혁명적 물결의 충격에 대해 그러했다. 이렇게 해서 KAPD는 1921년의 사건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패배의 시작을 알리는 것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그것을 혁명 운동의 고조의 상징으로 보았다. 이러한 과대평가로 인해 그들은 1921년 ‘3월 행동’이라는 모험을 감행했다.


    독일 혁명가들의 수많은 망설임, 자신들의 역할에 대한 신뢰 부족, ‘3월 행동’의 실패 이후 쓰디쓴 패배주의,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퇴행과 혁명적 물결의 퇴조,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힘의 균형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실패 : 이 모든 것들은 독일 좌파의 혼란, 비관주의 그리고 최후의 붕괴를 촉진해서 결국에는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에 절망적으로 의지하는 지점까지 이르도록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에 대해 좀 더 실제적인 대차대조표를 그릴 수 있었던 이탈리아 좌파와 대조적으로, 독일 좌파는 반혁명기 동안 혁명가들의 책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이해하기에는 그 스스로가 무능력하고 나약함을 증명했다. 이탈리아 동지들과 달리, 독일 혁명가들은 과거 투쟁의 성과를 모두 지켜낼 역량을 갖춘 분파를 자신들로부터 만들지 않았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평의회주의 조직들은 결코 과거의 혁명적 물결과 명확하고 일관된 연속성을 유지하고 표현하지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비판했을 때의 그 독일-네덜란드 좌파의 강력함을 표현하지도 않고, 모든 약점과 혼란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보르디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평의회주의자들도 계급의 경제 투쟁의 잠재적인 혁명적 본질을 부정했다. 혁명적 과정에 대한 그들의 분석은, 이탈리아 좌파의 분석과 마찬가지로, 결과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노동조합’ 수준의 투쟁과 의식을 넘어설 가능성과 필요성을 박탈해 버렸다. 보르디가주의자들에게는 이 무능력을 당의 존재가 보완하지만 평의회주의자들에게는, 아나코-생디칼리스트들에게처럼, 국가를 파괴하기에는 경제 투쟁 그 자체만으로 충분했다. 네덜란드 좌파의 명백히 경직된 예의 하나인, <다아트 엔 게다흐테(Daad en Gedachte)> 노동조합에 의한 파업과 코뮤니스트 혁명 사이에 질적 차이가 없다! 이 그룹은 경제적 투쟁에 대한 변명을 불합리한 지점까지 밀고 나가서, 명백히 제2 인터내셔널과(…) 레닌의 ‘경제주의적’ 입장으로 끝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가 노동조합 수준을 넘어설 필요성을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해했던 레닌과는 달리, <다아트 엔 게다흐테>는 경제적 투쟁에 끊임없이 찬사를 보낸다. 투쟁의 양적 확장은 구세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아트 엔 게다흐테>에게 있어서, 이러한 양적 축적(quantitative accumulation) 또한 질적 발전(qualitative development)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혁명은 일상적인 계급행동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보기를 들어 노동자들이 그들 스스로 혁명의 과정에서 높은 의식적 수준에 도달하는 사실만 보아도 그러하다. 혁명은 이러한 계급행동과 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으며, 유일한 차이점은 양적인 면 뿐이다.” (다아트 엔 게다흐테, 1975년 5월)


    <다아트 엔 게다흐테>에게,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순수하게 경험적이며 즉각적인 것이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조직적 정치적 경험들을 일반화할 필요가 없다. 각각의 투쟁은 그 자체로 충분하며, 그 공장, 지역, 한정된 영역 안에 제한된다. 평의회주의자들은 경제 투쟁들의 혁명적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계급의식의 동질화를 통해 그러한 투쟁을 정치적으로 확장할 필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운동이 모든 것이며, 목표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사회민주주의의 오래된 후렴구를 발견한다.


    계급의식에 대한 이러한 당면주의적 사고로 인해 평의회주의자들이 노동조합주의와 지역주의로 비틀거리며 쓰러지게 되고, 투쟁에서 혁명가들의 역할을 완전히 방치하게 되는 것은 논리적이다. 어떤 경우에, 이러한 과소평가는 단순히 혁명가들의 역할을 전적으로 부정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다아트 엔 게다흐테>는 엄격하게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활동의 한계 속에 머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엄격히 경제적인 투쟁에 국한시키는 것에 대한 평의회주의자들의 변명을 그 마지막 결론까지 추구하면, 그것은 모든 혁명적 조직의 완전하고 단순한 자기-파괴로 끝난다.


    평의회주의자들은 1920년대의 혁명적 물결의 성숙에 의해 남겨진 정치적 성과들을 거둬들이는데 있어서 보르디가주의자들보다 더 유능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더 이상 왕겨에서 알곡을 분리할 역량도 없고, 대리주의적 일탈을 거부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 조직의 필요를 안전하게 보호할 역량도 없다. 평의회주의자들은 보르디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50년간의 반혁명, 50년간의 혼란과 이론적 당황에 치뤄진 희생이었고, 그러는 동안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는데 성공한 혁명가들이 거의 없었다. 오직 <프랑스 좌파 코뮤니스트>(Gauche Communiste de France) (1940년대와 50년대 『국제주의(Internationalisme)』라는 이론지를 발간함)와 같은 그룹만이 러시아 혁명의 경험이 남긴 소중한 성과들을 보전할 역량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국제주의』의 텍스트 중 하나인, 1948년 10월 발간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당의 본질과 기능에 대해(On the nature and function of the political party of the proletariat)’에서 보이듯이, 이 그룹은 보르디가주의자들과 평의회주의자들의 입장들에서 드러난 정치적 변질에 물들지 않은 거의 유일한 그룹이었다.

     

    결론

     

    우리는 보르디가주의자들과 평의회주의자들의 혼란이 같은 기원을 가졌다고 반복함으로써 간단히 결론내릴 수 있다. 즉, 방어적 투쟁의 혁명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 두 가지 정치적 흐름들은, 겉으로 보기에 서로 그렇게 달랐지만, 혼란에는 함께 빠져들었다. 왜냐하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사이의 분리에 기반을 둔 어떤 정치적 입장도,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역사적 목적을 의식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혁명 계급임을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르디가주의와 평의회주의가 향하는 곳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자신의 으로는 엄밀히 방어적인 영역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그 차이를 메우는 것이 당이라고 반복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이 영역을 뛰어넘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모더니스트들은 노동자계급이 경제적 요구를 위해 투쟁하면, 그것이 마치 “자본을 위한 계급(class-for-capital)", 다시 말해 자본주의 지배에 완전히 종속된 경제적 범주의 하나인 것 인양 가장함으로써 더 심하게 못 박아 버린다. 의식에 대한 그러한 관점으로 인해 다수 모더니스트들이 쁘띠부르주아지적 절망에 빠져버린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보르디가주의자들과 평의회주의자들은 투쟁을 발전시키는 객관적 조건들로부터 계급의식을 분리시킨다. 그 둘은 모두 혁명가들을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외부적인 요소로 파악한다. 보르디가주이자들이 보기에 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 자체만으로는 발전할 수 없고, 그러므로 의식을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이 문제이며,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당이다. 평의회주의자들에게 혁명가들의 역할은 철학적인 역할, 단순히 지적인 구경꾼들로서의 역할로 제한되어야만 한다. 이런 관점은 곧 혁명가들이 구체적인 계급투쟁의 바깥에 위치하도록 만든다. 그 둘 중 아무도, 계급의식을 정확하고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는 것과 그 계급의식이 꽃피는 것은, 혁명가들이 계급의 생동하고 적극적인 일부로서 이해하는 것과 나란히 나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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