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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1부. 소련의 본질 - 경제
  • 조회 수: 17945, 2017-09-07 13:30:49(2017-09-05)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Trotsky, Trotskyism, Trotskyists

       

       

      혁명적 실천에 커다란 공헌을 한 트로츠키는 결국 사회민주주의의 반혁명적 오류로 돌아온 운동에 그의 이름을 부여했다.

       

       

       

      1부.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기원

       

       소련의 본질

     

    경제

     

    터키에서의 망명 시기, 트로츠키는 그의 경험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추적당하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 좌파와 비슷하게, 혁명가들을 망명하게 하거나 파시즘에 의해 감옥에 갇히도록 한 과정의 대차대조표를 그리려 시도했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러시아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쇠퇴 뒤에 있는 과정에 대해 좀 더 깊이 탐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근본적으로 이는 그 과정에 자신이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스탈린을 지지했던 이들까지도 트로츠키를 당의 인물이 아닌 국가의 인물로 보았다. 그가 CPSU에서 분파를 없애려 한 것, 노동규율을 지원하는 그의 역할이, 그의 현재 지지자들이 가정하는 것처럼 그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노동자 통제의 명백한 승리자가 될 수 없도록 했다. 트로츠키가 그의 과거로부터 떨어질 수 있었다면, 그는 러시아의 본질에 대한 혁명적 이해의 기초를 채워주는 데 필요한 러시아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비판점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실패는 궁극적으로 맑스주의 방법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문제는 어느 맥락에서 보더라도 거대했다. 먼저 언급했듯이, 맑스주의 이론은 프롤레타리아 섬(레닌)이 적대적 자본주의 세계에서 어떤 시기 동안이라도 고립된 상황을 미리 대비할 수 없었고, 대비하지 못했다. 고립 이후 4년, 러시아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중심부를 비롯한 8백만의 사람을 잃었다. 문제는 러시아 코뮤니스트들이 오직 자본주의 열강의 군사적 승리로만 패배를 바라봤다는 사실과 착종되어 있다. 1921년까지 그런 위협은 지나갔지만, 유럽과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파도의 진행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환경에서 고립된 프롤레타리아 섬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처럼, CPSU의 모든 당파들이 러시아에서만이라도 사회주의를 건설할 필요에 동의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1926년 트로츠키는 이후 5년의 GOSPLAN(Gosudarstvennyy Planovyy Komitet, 국가계획 위원회)기간의 국가산업 발전을, 경탄할 만한 사회주의 성장의 역사적 음악으로 칭찬했다. 그리고 스탈린 계획자들이 진정한 사회주의의 건설이라고 읊은즉슨, 그것은 1930년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광적인 착취였던 것을 기대했다. 그들이 공유한 일반적 관점은 국가계획과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사회주의의 기본적 토대라는 허구였다. 그러나 이것은 레닌과 부하린이 국가자본주의의 성장은 제국주의 시대에 자본주의의 주요 특징의 하나로 이미 증명해 보였던 것이었다. 「제국주의와 세계경제」(Imperialism, World Economy, 1915)에서 부하린은 자본주의 본질의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상품 교환의 일반적 틀 속에서 생산수단을 자본가의 손에 독점하게 하는 것에 기초한다. 원칙적으로 국가권력이 직접 하던 독점이 사적으로 조직되었든, 별다를 것은 없다. 각각의 사례에서 상품경제(commodity economy)는 남아있고(첫째로 세계시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관계 또한 그러하다는 것에 있다.”

    (앞글, 157쪽)

     

    이 글에서 부하린은 엥겔스의 1880년대의 관찰을 반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노동자들을 대체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제는 그것이 자본가들을 대체했다. ... 잉여인구에게나, 심지어 산업예비군의 첫 번째 단계에 있지 않더라도 ... 합자 주식회사(joint stock company)나 국가 기반으로의 어떤 전환도 그들의 자본으로서의 성격의 생산력을 빼앗지 않는다. ... 근대 국가는,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자본가들의 국가, 즉 모든 자본주의자들의 이상적인 집합적 체제이다. 국가가 더 많은 생산력을 자산으로 차지할수록, 그리하여 자본가들의 실질적 집합적 본체가 되어갈수록, 국가는 더 많은 시민들을 착취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임금노동자- 프롤레타리아로 남아있다. 자본주의적 관계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좀 더 극단화된다.”

    (「반듀링론」(Anti-Duhring), 329~330쪽)

     

    그리고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자본 관계는, 자본과 임노동 사이의 그것이다. 트로츠키는 관료제를 기형적 카스트제로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것이 생산의 새로운 지배계급, 즉 노동자 계급에 의해 만들어진 잉여생산을 집합적으로 처리하는 새로운 지배계급을 대표한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그에게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였다. 왜냐하면

     

    “토지, 산업 생산수단, 교통과 교환의 국유화는 국제무역의 독점과 함께, 소비에트의 사회구조의 근본을 구성한다. 프롤레타리아 국가 혁명에 의해 설립된 이 관계들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국가로서의 소비에트 연방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정의된다.”

    (「배반당한 혁명」, 235쪽)

     

    기형적 카스트제에 의해 운영된 노동자 국가를 바로잡으려는 불가능한 시도는 결국 타락한 노동자 국가의 이론으로 귀결되었다. 도이처(Deutscher)에 의해 고전적 맑스주의적 관점의 생산적 재언급으로서 격찬받은 이 이론은 정치경제학의 비판점으로서 맑스주의의 완벽한 파괴였다. 이 개념의 출발점은 고전 자본주의 - 트로츠키의 마음속에서 얼어붙은 채 있는 - 사회구조의 외부적 특성들이다. 즉 생산수단의 개인 소유, 사유재산의 사법적 양도, 상속의 권리 등. 이것은 부르주아지 경제학자들 즉 리카도부터 멘델에 이르기까지 분배 관계가 생산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 변혁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견해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에게, 생산과 순환 양식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생산 관계이다. 그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자본주의적 분배는 그 분배의 기반을 파괴하지 않는 한 파괴될 수 없다. 그러므로 생산은 분배와 그것이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형태의 본질을 결정한다.

     

    국가계획, 국유화 등등에 집착하는 트로츠키에게 주요한 고려 점은 다음의 불합리를 불러일으키는 생각에 의존하는 것, 즉 생산의 사회주의적 양식과 분배의 부르주아 양식의 공존이었다. 이것은 맑스주의가 딛고 서 있는 관점에서 볼 때 난센스다.

     

    “분배 관계와 양식은 오직 생산 관계의 이면으로서 나타난다. 분배의 구조는 완벽하게 생산의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맑스, 「그룬트리쎄」(Grundirsse), 95쪽)

     

    트로츠키는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근본적인 교의를 무시함으로써, 그는 스탈린주의 상부구조가 프롤레타리아 경제의 하부구조와 모순된다는 자신의 논쟁으로부터 더욱 떨어져 나갔다. 그는 관료주의가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유화와 산업화 조치를 도입한 것이 자본주의 원형의 관료주의였다는 사실은, 러시아의 그 사회주의적 토대가 절대 설명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결론은 오직 타락한 노동자 국가 이론이라고 불리는 모순된 경제적 전제들을 예시할 뿐이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스탈린 치하 러시아의 파멸을 막으려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시도는 단지 맑스주의 방법을 교정하여 그의 과거를 덮으려 했던 것이며, 또한 그가 「이행기 강령」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동계급의 승리가 단순히 부르주아지의 제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했다. 임노동의 폐지 없이 사회주의를 말할 수 없다. 자본은 단순히 그 스스로 기계의 집합 혹은 생산수단이 아니라, 탐욕스럽고 기생충 같은 국가 관료 엘리트들의 정치적 제거 이후 대중의 재산(property of the masses)으로 언명되는 것 덕분에 일어난 기적적인 변화의 본질이다. 자본은 생산수단, 모든 재산으로부터 분리되고 박탈된 노동, 그리하여 노동력을 임금에 대한 교환으로 팔 수밖에 없는 노동에 기초한 특수한 역사적 사회적 관계이다.

     

    이 사회적 관계는 생산자와 실제 경영자 간의 적대(소비에트의 합법적 형태와 상관없는), 생산과 분배수단과 국가를 통제하는 자들(부르주아지)과 대안 없이 임금만을 위해 노동하는 자(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적대로 이끌어지고 사회의 생산력의 총체성에 자본의 성격을 부여한다.

     

    코뮤니즘(공산주의)으로의 길은 국가와 사유재산, 그 가치법칙, 상품과 임노동의 폐지를 위해 자본의 총체성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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