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문서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1부. 이행기 강령과 제4 인터내셔널
  • 조회 수: 3395, 2017-09-07 23:53:24(2017-09-05)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Trotsky, Trotskyism, Trotskyists

       

       

      혁명적 실천에 커다란 공헌을 한 트로츠키는 결국 사회민주주의의 반혁명적 오류로 돌아온 운동에 그의 이름을 부여했다.

       

       

       

      1부.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기원

       

       이행기 강령과 제4 인터내셔널

       

      순수한 정치혁명 이후의 러시아를 사회주의가 될 수 있는 노동자 국가로 파악하는 트로츠키 개념은 그가 단지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만 아니라, 맑스주의적 시각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1938년, 그의 제4 인터내셔널의 강령인 「자본주의 죽음의 고뇌와 제4 인터내셔널의 임무」(The Death Agony of Capitalism and the Tasks for the Fourth International), 좀 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이행기 강령」(Transtional Programme)에서 명확해진다. 우리는 이 강령을 다루면서 방법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도이처(Deutscher)의 피상적인 이해를 기초로 트로츠키가 레닌의 정치적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레닌과는 달리 트로츠키는 역사적 상황과 자본주의를, 그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범주에서 분석하려 했다. 새로운 사례들이 그의 분석과 모순되자, 그는 맑스주의적 원칙을 토대로 철저히 재분석하고 그에 따라 범주를 수정하는 대신, 그것들을 왜곡하여 이미 내린 결론에 맞춰버렸다. 우린 이미 러시아 경제에 관한 그의 분석에서 이러한 방법을 보았다. 그가 처음에는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쥐고 있으므로 노동자 국가라고 논쟁하다가, 이 주장이 유지하기에 너무 당혹스러운 것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회주의적 소유 관계에 대한 경제적 주장을 뒤섞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제국주의가 동유럽 국가들을 그 지배 아래에 두었을 때, 제4 인터내셔널의 트로츠키의 열등한 후계자들 (파블로(Michel Pablo), 만델(Ernest Mandel), 그란트(Ted Grant), 캐넌(James Cannon))은 그들 교사의 가장 훌륭한 전통에 따라, 이들 국가들은 마찬가지로 노동자 국가가 틀림없다고 결정했다. 비록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쥐고 있지 않았으며, 그 체제가 순수한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의 산물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동적 자본주의 원형의 관료주의도 진보적이며 노동자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므로 러시아가 노동자 국가라는 허구를 유지하기 위해, 맑스주의와 진실은 끊임없이 희화화되고 왜곡되었다. 영구혁명, 즉 후진국 노동자와 농민은 부르주아지가 힘이 없고 의존적이기 때문에 국민 부르주아지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주장 역시 영구위기 이론과 마찬가지로 방어되었다. 이 이론들은 트로츠키의 분석적 틀의 대들보를 형성했으며, 매우 유용하게 여겨졌다. 이 이론들을 자기모순에 의해 붕괴하도록 두는 대신, 트로츠키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영역을 포기하는 희생을 무릅쓰고, 방법론적으로 이 이론을 버팀목으로 버텼다.

       

      대신 트로츠키가 우리에게 준 것은 손쉬운 슬로건, 즉 근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사회관계와 새로운 시기의 정치적 의무를 파악하는 그의 무능력을 감추는 데 실패한 슬로건이 된 영구위기와 영구혁명에 대한 주장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이행기 강령에 있었던 자본주의의 역사적 임무는 이미 완수되었다는 정확한 인식은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사회민주주의 강령으로 퇴보하게 만든 그 전망에 대한 경제적 무지와 정치적 즉시성에 의해 무색하게 되었다. 이 무지의 가장 눈에 띄는 예는 경제적 영역에 있었다. 트로츠키는 인류의 생산력이 정체되었으므로 자본주의는 혁명에 무르익었다고 한다. (「이행기 강령」 11쪽, WRP 팸플릿) 이것은 1930년대에는 옳았을 수도 있었으나 오늘날 단순한 통계치 하나로 진실이 아닐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을 쓴 이후 서구 자본주의 전체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의 GNP가 몇 배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실증적 증거는 그 진술의 유효성을 무효로 하기에도 충분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실제 자본의 운동을 이해하는 그의 방법상의 실패이다. 자본주의는 맑스가 많은 경우에 썼듯이 :

       

      "생산도구의 지속적 혁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코뮤니스트 선언)

       

      제국주의 시대, 자본주의의 쇠퇴 시기도 그 근본요소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축적 사이클은 “상업적 위기”로 잠시 정기적으로 멈칫거렸을 뿐 끝나지도 않는다. 제국주의 시대의 다른 점은 이런 위기들의 부르주아 해결방식이 단순한 새로운 사이클을 시작하게 하는 몇몇 파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부흥은 오직 세계적 토대 위의 자본의 대량 파괴를 거쳐서 오는 제국주의 전쟁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19세기 사이클은 지금 시대에 호경기-불경기-전쟁-재건-호경기로 계속되는 하나의 순환이 되었다. 이것은 맑스주의자들에게는 현재 시스템의 쇠퇴를 설명하는 것이 “생산력의 정체”가 아니라 생산은 증가하지만, 남반구의 영속적 기아, 결핍, 전 지구적 주기적 전쟁의 대가로 인류의 이해에는 어떤 의미로도 봉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산력이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기 전에, 생산 관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속박과 그들의 가치법칙은 분쇄되어야 한다.

       

      제국주의와 국가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주의의 본질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실패한 것은 사실 사회주의 투쟁의 토대로서 「이행기 강령」을 완전히 파기시켰음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를 임노동의 잉여가치 추출을 통해서만 오직 존재할 수 있는 가치법칙에 기초한 체제로서가 아니라 죽음의 고뇌 속의 시스템으로 간단히 정의함으로써 트로츠키의 「이행기 강령」은 자본주의 순환의 단 한 가지 측면(불황기)의 즉각적 틀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러나 1938년 자본주의가 “죽음의 고뇌”에 빠져있다고 판단하면서, 트로츠키는 이를 파괴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의 실패를 설명해야 했으며, 이 실패를 극복할 처방을 내놓아야 했다. 바로 여기서 트로츠키가 사회민주주의로 돌아선 것이다. 


    the_transitional_programme_8.jpg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notice communistleft 387 2022-09-02
notice communistleft 431 2022-09-02
notice communistleft 891 2022-07-16
notice communistleft 3443 2021-04-19
110 communistleft 2694 2019-12-09
109 communistleft 2355 2019-12-05
108 communistleft 4507 2019-11-29
107 communistleft 3584 2019-09-11
106 communistleft 2215 2019-08-03
105 communistleft 2620 2019-07-16
104 communistleft 5061 2019-05-16
103 communistleft 3376 2019-05-06
102 communistleft 3101 2019-04-04
101 communistleft 2428 2019-03-18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