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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1부. 이행기 강령과 당
  • 조회 수: 3541, 2017-09-07 23:53:55(2017-09-05)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Trotsky, Trotskyism, Trotskyists

       

       

      혁명적 실천에 커다란 공헌을 한 트로츠키는 결국 사회민주주의의 반혁명적 오류로 돌아온 운동에 그의 이름을 부여했다.

       

       

       

      1부.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기원

       

      이행기 강령과 당

       

      자본주의 내부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이행기 강령」은 프롤레타리아적 조직문제에 순수하게 주의주의적 해결책만을 내놓는다. 정확히 「이행기 강령」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경제적 선결 조건은, 자본주의하에서 성취될 수 있는 최고의 성과를 이미 보편적으로 성취하는 것이다”

       

      1938년 이것은 여전히 진실이었으나 왜 객관적 조건이 존재한다면 프롤레타리아는 여전히 멍에를 지고 자본주의에 종속되었었나? 트로츠키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세계의 정치적 상황 전체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력의 역사적 위기에 의해 주로 특징지어지기 때문이다.”

       

      코뮤니스트 지도력이 부족했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사실이지만, 트로츠키는 이런 의미가 아니었다. 지난 4반세기 동안 노동자 계급은 그들의 조직이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원을 받아 왔음을 보아왔다. 먼저 제2 인터내셔널 정당들은 그들의 대중조직(노동조합)과 함께 그들의 정부의 도움을 받아 출범했고, 모든 각각의 제국주의 전쟁을 지원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이 정당들은 그들이 대량 학살을 지원하거나, 독일에서처럼 계급의식 있는 프롤레타리아의 대량 학살을 조직했을 때, 노동자들의 대의로부터 스스로 분리했다. 1914년 제국주의 질서의 가장 확실한 적은 레닌의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이론적으로 무장된 볼셰비키 당이었고, 이들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19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창설했을 때, 이것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전위였다. 그러나 이전에 설명했듯이 쇠퇴의 과정은 시작되었고, 그 과정은 사회민주주의의 갑작스러운 배신보다도 더 음흉한 과정이었다. 1922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통일전선론 채택은 이 쇠퇴의 중요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1926년까지의 반대파의 축출, 1927년 중국에의 재앙스러운 정책들도 이와 같았다. 1938년까지 트로츠키조차도

       

      “부르주아지 편에 선 코민테른의 변질이 일어났음을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트로츠키주의의 보증으로 남아있는 그 별난 논리의 꼬임으로 인해, 그는 제2, 제3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을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의 보수적 관료주의적 기관으로 보았다.”

       

      다른 말로, 대량 학살과 배신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들은 지도력이 바뀔 수만 있었더라면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1935년 그 지도력을 획득하기 위해 통일전선과 사회민주주의로의 개입에 대한 지원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정통 트로츠키주의는 혁명적 조직의 물리적 패배와 함께 일어난 이데올로기적 패배를 아직도 인식하지 못한다. 오늘날 이 사회민주주의적 실체들(사회주의당, 노동자당, 그리고 그들의 노동조합)은 비록 가끔 많은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수백만의 지원으로 선거에 이겨도, 사실은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계급 체제의 일원에 불과하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노동자 투쟁을 선거라는 안전지대로, 혹은 한 산업이나 공장의 고립된 경제투쟁으로 돌림으로써 자본주의를 방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930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약점에 대한 트로츠키 분석의 극단적으로 간단한 본질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력의 위기가 그들이 그들 계급의 독립과 혁명적 열망을 지켜줄 만한 정당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했다. 이를 이해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에 자본주의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제4 인터내셔널은 그 구성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 영역에서 지나치게 작동하여, 스스로 그 창설에서부터 계급정당이 되기에는 부족하게 되었으며, 그뿐만 아니라 진정한 구성에 걸림돌이 되었다. 필요한 것은 구 사회주의 정당과 코뮤니스트 정당의 사회적 보존에 반대하는 가차 없는 투쟁이었다. 오늘날 트로츠키주의는 여전히 이 노동조합과 정당에 의한 배신만을 이야기하며, 그러므로 그들이 노동자 계급 내에서 할 진정한 역할을 드러내지 못한다. 국제 코뮤니스트 좌파(이탈리아 좌파)가 그 당시 문제를 제기 했을 때, 제4 인터내셔널은 1920년대 혁명적 파고의 패배에 따른 정치적 해명이라는 필수적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당이라고 주장 할 수 없었다. 트로츠키가 조심스럽게 피했던 그런 명확화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정당의 부활과 역사적 교훈을 고려한 코뮤니스트 강령의 재구성에 필수적인 단계였다. 독립적 계급 운동이 없어서 1938년에는 계급정당이 없을 수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는 여전히 “그들” 조직의 프롤레타리아적 본질을 믿었다는 사실이었다. 트로츠키는 오직 제4 인터내셔널의 선언만이 그 단순한 의지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계급정당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가 단지 의지의 부족은 아니다. 당의 중앙집권주의자로서, 지도자로서, 행동하는 계급의 안내자로서, 당의 필수불가결한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제4 인터내셔널의 설립은 혁명과 반혁명의 경험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수행했던 트로츠키의 추종자들 없이 이루어졌다.

       

      정당이란 무에서, 시간과 공간의 고려 없이 스스로 창조할 수 없다. 계급정당의 부재는 비록 독일에서 1918~1919년에 있었던 것처럼, “혁명적 지도력의 위기”가 역사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명이 역전되는 객관적 요소였을 지라도, 단순히 그 지도력 위기의 결과는 아니다. 트로츠키의 정당에 대한 개념에 따르면, 정당은 계급투쟁의 필수적 부분이 되는 대신, 그 성원들의 결정에 의해 인류의 역사적 반란을 극복할 수 있고, 극복해야 하는 구원자(deus ex machina)의 관념적 형태를 가정한다.

       

      이것은 강령의 ‘이행 요구들’을 분석할 때 훨씬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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