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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1부. 이행기 강령 요구
  • 조회 수: 3553, 2017-09-07 23:54:28(2017-09-05)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Trotsky, Trotskyism, Trotskyists

       

       

      혁명적 실천에 커다란 공헌을 한 트로츠키는 결국 사회민주주의의 반혁명적 오류로 돌아온 운동에 그의 이름을 부여했다.

       

       

       

      1부.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기원

       

       이행기 강령 요구


    「고타강령 비판」(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에서 맑스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본을 파괴하는 것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행기 강령, 자본주의의 죽음의 고뇌와 제4 인터내셔널의 의무 - 권력 쟁취를 위한 준비로써 이행의 요구를 둘러싼 대중의 동원”은 제목이 이야기해 주듯이 맑스의 이행 개념과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다.

     

    트로츠키에게는, 30년대에 아무런 혁명도 없었음에도 자본주의는 “죽음의 고뇌” 속에 있었고, 그 때문에 이미 이행의 시기는 도래했다는 것이 명백했다. 맑스에게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고 나서야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1871년 파리 코뮨의 교훈이다) 소련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근본적 틀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트로츠키는 전반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의 개념과 관계없이 움직였다. 사실 트로츠키는 최소의 요구를 함으로써 제2 인터내셔널의 개혁주의로 되돌아갔고, 이는 그런 최소의 요구조차 부패하는 자본주의 내에서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을 믿었다는 단순한 차이밖에 없었다.

     

    “현재 시대는 혁명 정당이 일상적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혁명의 실질적 과업과 분리될 수 없이 수행되게 되었기 때문에 구분된다.”

     

    요약하면, 이전 사회민주주의의 최소강령은 이제,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는 최대강령이 되었다.

     

    “자본가 계급의 혁명적 타파 없이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조차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9)

     

    이 명백한 난센스는 「이행기 강령」의 요구를 가장 피상적으로 관찰만 해도 없어진다.

     

    트로츠키가 우리에게 준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 쟁취에 선행하는 은행의 국유화, 산업의 노동자 통제, 공공근로, 임금의 물가연동제와 같은 것을 요구함으로써 자본주의를 개혁할 거대한 계획이다. 명확히, 그런 발본적 요구들은 트로츠키의 동시대 인물인 케인즈에 의해 자본주의를 구원할 명백한 계획으로써 이미 주창되었고, 사실 모든 수단들은 자본주의 질서의 보존을 위해 부르주아 국가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동유럽에서 은행의 국유화, 유고슬라비아의 노동자 통제, 이 둘은 근대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것으로 환영받았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스칼라 모바일(scala mobile)같은 임금의 물가연동제 공공노동 등은 실제로는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서 자본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떠받치기 위한 단계이다.

     

    그러므로 트로츠키가 러시아에서 국가 역할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실패한 것은 「이행기 강령」이 가진 당연한 결과였다. 국가를 자본가 집합으로 보지 못했다는 것은, 트로츠키는 여전히 국유화를 사회화와 동일시하며, 사회주의의 주 과업을 임노동의 철폐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타파로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이행기 강령」은 1890년의 에르푸르트 강령(Erfurt Programme of 1890)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심지어 최대의 혁명적 부분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겨우 한 번 언급되었으며, 그것도 우연히 그러했고, 사회주의의 본질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이것이 바로 다음의 「이행기 강령」의 목적에 대한 언급을 어처구니없게 만드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 강령과 대중의 현재 요구 사이의 가교를 찾기 위하여 일상적 혁명적 투쟁의 과정에 있는 그들을 돕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현재의 요구란 잠재적으로 혁명적이라고 이미 지적했다. 부족한 것은 사회주의 혁명 강령에 따라 대중과 함께 투쟁할 당뿐이었다. 트로츠키의 끝없는 실패는 이 강령을 현시대 자본주의에 맞춰 정교화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혁명가들은 요구들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이것들은 추상적 명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진행되는 투쟁의 산물이다. 「이행기 강령」의 요구와 같이, 그 요구들은 쉽사리 자본주의에 의해 복구된다. 1848년 혁명 이후,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공식화된 각 요구들은 존재하는 계급투쟁의 상황에 대한 직접적 대응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

     

    “운동의 초기에는, 노동자들은 어떤 직접적 코뮤니스트적 수단들을 제안할 수 없다. 그러나 ... 만약 소부르주아지가 철도와 공장을 매점매석할 것을 계획한다면, 노동자들은 반드시 그것들이 국가에 의해 무상으로 몰수되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만약 요구가 비례세를 제안하면, 그들은 누진세를 요구해야 한다. ... 그 비율은 매우 가팔라서, 결과적으로 자본은 곧 박살날 ... 만약 민주주의자들이 국가부채의 조정을 요구한다면, 노동자들은 그 지불거부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

    (코뮤니스트 연맹 중앙위원회에 보내는 연설)

     

    이 변증법적 개념은, 변질되고 있던 코민테른, 특히 3차 대회의 해묵은 창고에서 트로츠키가 집어낸 사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코민테른에서는 대중들이 아직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의식적으로 대표하여 투쟁하지 않을 때, 투쟁의 단계를 구성하는 정밀한 요구들이 있다고 언급되었다.”

    (Frank, 앞의 책 61쪽에서 인용)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단지 노동자 대표라고 불리는 이들의 의회 투쟁을 단순히 이곳저곳에서 정치적 시위로 도와줘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요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생각 없는 대중으로밖에 보지 않는 카우츠키주의의 특징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투쟁은, 그 단결을 이뤄내는 요구뿐만 아니라 투쟁의 진정한 목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에 대한 요구를 정의함으로써, 그 속에서 함께 있음으로써 그 투쟁을 더 큰 단결로 이끌고 그럼으로써 더 큰 목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혁명가들의 다른 요구를 만든다. 이것은 「이행기 강령」이 회피해오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작점이 역시 마지막 점인 대중의식의 즉각적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트로츠키는 그러므로 그가 제2, 그리고 제3 인터내셔널의 약점을 극복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약점은 대중과 함께 싸웠던 그들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코뮤니즘과 부르주아 국가 전복의 필수성에 대한 명백한 개념을 가진 리더십을 제공하지 못한 무능력에 있었다. 이러한 약점을 비판하는 대신, 트로츠키는 이를 미덕으로 삼았다. 프롤레타리아 패배 시기의 대중의 획득은 그의 주의주의의 중심이었고,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는 모든 (실패한) 전략은 통일전선에서 최소강령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프로그램은 대중적 기반을 획득하기 위한 헛된 노력을 하는 트로츠키에 의해 계속되었다. 이 논리에 따르면, 그는 자기 프랑스 지지자들에게 SFIO(제2 인터내셔널의 프랑스 섹션)에 가입하여 “그들의 요새에 가서 개량주의에 도전하라” 그리고 “대중에게 혁명적 프로그램을 전하라”고 말했다. 그는 코민테른의 1935년 인민전선 정책의 채택을 비판하는 위치에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고,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사회민주주의 편에 옮아가는 것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은 지속적이지 않았다. 특정한 반혁명 논리 - 코민테른의 정책(프랑스, 영국, 제국주의와 동맹하여 중유럽의 파시스트 정책에 저항한) - 가 있는 동안, 트로츠키의 사회민주주의로의 입당주의는 전혀 의미가 닿지 않았는데, 특히 그가 예견했듯이 혁명이 코앞에 다가왔다면, 더욱 그러했다.

     

    “우리는 선언 한다. 코민테른의 처방은 전적으로 거짓이다. 노동계급 정당의 비혁명적 정책을 인정하더라도 상황은 혁명적인 것만큼 혁명적이다. 이 상황을 극도의 성숙한 혁명으로 몰고 가기 위해, 즉각적이고 정력적이며 쉴 새 없는 대중의 동원이 있어야 하며, 이는 권력 쟁취의 슬로건 아래에 있어야 한다. 이것은 혁명 이전 상황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유일한 방법이다.”

     

    1920년대의 노동자 계급의 패배를 깨닫지 않았기에 1938년 트로츠키는 부르주아지가 수행한 제국주의 전쟁에 무방비로 있었다. 그러므로 「이행기 강령」이 레닌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혁명이론인 혁명적 패배주의의 핵심 지점에 대한 명백한 거부와 함께 끝났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이것이 트로츠키주의가 2차 제국주의 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주의와 서구 제국주의 양 편에 모두 가담하도록 했다. 


    • <주>

      9) C.Slaughter, 「이행기 강령」의 WRP 편집판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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