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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1부. 제2차 제국주의 전쟁
  • 조회 수: 2529, 2017-09-09 11:58:41(2017-09-05)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Trotsky, Trotskyism, Trotskyists

       

       

      혁명적 실천에 커다란 공헌을 한 트로츠키는 결국 사회민주주의의 반혁명적 오류로 돌아온 운동에 그의 이름을 부여했다.

       

       

       

      1부.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기원

       

       제2차 제국주의 전쟁

     

    「이행기 강령」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다음 시기에 혁명 정당은 주로 전쟁 문제에 대한 정책의 성공에 달려있다.”(31쪽)

     

    그것은 심지어 코뮤니스트 원칙의 기본인 제국주의 전쟁에서 주요한 적은 그 자신의 국가에 있다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동시에, 트로츠키는 곧 소련의 본질 분석 실패와 구 코민테른의 통일전선 정책에 대한 재검토의 실패가 그가 코뮤니스트 원칙을 포기하도록 했음을 밝힌다. 「이행기 강령」의 같은 페이지에서, 그는 제국주의가 아닌 다른 억압받는 나라뿐만 아니라

     

    “소련이건 다른 노동자 정부이건 간에 그들을 지원하고 방어하는 똑같은 의무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트로츠키의 소련의 생산 관계 분석 실패는 러시아가 제국주의 동맹의 네트워크에 참가하는 것에 직면하여 그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다. 독일에 맞서 영국, 프랑스와 연합하여 이기려 했던 스탈린의 정책이 있었던 1930년대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 스페인과 중국에서의 이 정책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 1939년 폴란드를 공격하기 위해 히틀러와 맺은 스탈린 조약에도 불구하고 : 핀란드에 대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 트로츠키는 그가 죽는 날까지 러시아가 자본주의도 제국주의도 아니라는 허구에 집착했다.

     

    사실, 1939년에 쓰인 그의 글 「소련과 전쟁」에서 트로츠키는 모스크바의 정치 전체를 반동적 성격으로 비판했지만, 노동자 국가가 보나파르트주의 엘리트에 의해 강탈당했다는 사소한 논쟁을 제외하고는, 왜 소련이 반동적 정책을 취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같은 글에서 트로츠키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와는 반대로 소련에서의 사회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스탈린을 탈스탈린화시켰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소비에트 관료주의의 문제 제기가 우리에게 있어서 소련의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를 보존하는 문제에 종속되며 (그리고)...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문제에 종속된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 제임스 (CLR James), 버냄 (Burnham), 샤흐트만(Schachtman) 등 러시아의 본질에 대해 다른 분석을 했던 이들과 제4 인터내셔널을 분열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 논쟁에서의 트로츠키의 글은 「맑스주의 방어」(In Defence of Marxism)라는 제목으로 잘 수집되어 출간되었다. 부적절한 제목이었음에도 그의 글은 지금 그를 패배하게 한 일관성의 위기임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의 그의 논쟁, 즉 만약 전쟁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면 맑스주의는 반박될 것이며 사회주의의 가능성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논쟁은 그가 1939년 쓴 「소련과 사회주의」에서 이미 썼던 것의 좀 더 확고한 변형에 불과하다.

     

    “모든 가능성과 반대로 만일, 10월 혁명 (소련을 의미함 - 편집자)이 지금 전쟁의 과정에서, 혹은 그 직후의 과정에서 어떤 선진국에서 지속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리고 만약, 반대로 프롤레타리아트가 모든 전선으로 되돌려 보내진다면, 우리는 의심 없이 현재 시대와 그 추동력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교정해야 하는 문제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맑스주의의 방어가 아니라 맑스주의의 범주에 기초하지 않은 분석의 논리다. 1920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패배를 이해하지 못하여, 그는 그 약점을 1938년에 맑스주의가 아닌 관념론에 무게를 둔 의지의 노력으로 극복하려 했다. 이것은 트로츠키의 오류의 끝이 아니었다. 「맑스주의의 방어」에서 그는 소련의 방어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늪”의 방어를 요구하며 제국주의를 지원하는 길을 따라 훨씬 더 나아갔다.

     

    이것은 소련, 영국, 미국 사이에서 편의에 따라 결성된 제국주의 동맹을 야기한 1941년 히틀러의 러시아 공격전이었다. 미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러시아 분석으로 분열되었다면,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자들 또한 독일과 제국주의 동맹에 대한 방어문제로 분열되었다! <민족 혁명 운동의 혁명 프랑스(Revolution Francaise of the Mouvement National Revolutionnaire)>가 억압 없이 히틀러와의 협력을 요구하는 동안, 베리떼(Verite)의 제4 인터내셔널 위원회는

     

    “몇 세대의 프랑스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축적한 부의 보호를 요구했다.”10) (1940년 9월)

     

    트로츠키주의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개관은 이 안타까운 이야기와 함께 끝난다. 이 시기의 원칙적이지 못한, 많은 분열의 첫 번째 문제는, 여기서 보았듯이, 현재 시대와 추동력의 개념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트로츠키의 실패에 대한 비판은, 코뮤니스트 강령과 국제 코뮤니스트당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파괴할 만큼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는 어디서든 우리의 시각을 바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주>

      10) 「Le Gauche Communiste d'Italie」에서 인용,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팸플릿,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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