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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3부. 결론
  • 조회 수: 3017, 2017-09-27 12:56:32(2017-09-05)
      • 트로츠키,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주의자

        Trotsky, Trotskyism, Trotskyists

         

         

        혁명적 실천에 커다란 공헌을 한 트로츠키는 결국 사회민주주의의 반혁명적 오류로 돌아온 운동에 그의 이름을 부여했다.

         

         

         

        3부. 트로츠키 이후 트로츠키주의


      결론


    이 짧은 팸플릿은 반혁명에 직면한 트로츠키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트로츠키의 190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의 두 번째 의장의 활동을 깊이 고려하지 않는 것은 불공평하게 보일 수 있다. 그리고 1905년의 그의 뛰어난 저작 「러시아 혁명사, 결과, 전망」과 같은 것을 인용하지 않는 것은 그를 부당하게 다루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이전의 몇 년 동안 미래 러시아 혁명 과정에 대해 레닌보다 훨씬 잘 내다보았다고 신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맞추고자 한 초점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기 위해 마지막 혁명적 파도를 분석하려 한다. 트로츠키 유산의 극점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다. 그리고 여기, 트로츠키의 혁명가로서 가장 큰 성공이 전쟁 장관 이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의 무자비함은 적군 창설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그 강점은 동시에 약점이기도 했다. 동시대인들이 이야기하기를, 트로츠키는 국가의 인간이었지, 결코 당의 인간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것은 유효한 언급이다. 이것은 트로츠키가 1918년 이후 노동계급의 자율적 활동의 문제에 신경을 덜 썼고, 국가권력의 형성에 더 많이 관여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이 왜 그가 1920년 노동의 군사화를 주창했는지의 이유다. 레닌이, 스탈린의 제거를 요구했던 똑같은 유언에서, 역시 트로츠키가

     

    “너무 사건의 행정적 측면에 매료되어있는 그의 기질을 비판했던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당이 점점 국가화되어감에 따라, 트로츠키는 내부적 투쟁, 즉 빈약하며 조화롭지도 않은 그런 투쟁에 대한 비판을 유보했다. 그의 젊은 소비에트 공화국을 창건하는 투쟁에서 교육받은 젊은 노동자들을 교란하고 또 방향을 잃게 한 지도부 싸움에 그의 투쟁을 국한했다.

     

    마지막 분석에서 트로츠키는 스스로 트로츠키주의의 설계자였다. 1939-45년의 제국주의 전쟁에서 생존했었기에, 그는 타락한 노동자 국가를 지원하는 것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심지어 소련의 계급 본질을 재평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일어날 것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짜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다. 트로츠키는 반혁명 운동을 생성시킨 방법을 떠났다. 트로츠키가 다른 반대파들, 러시아 내부 혹은 인터내셔널 내부에서라도 그런 세력과 통합하길 거부한 것은 전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라덱, 뛰어난 트로츠키주의자인 그는 1928년 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트로츠키가 왜 민주집중주의자들(V.Smirnov와 T.Sapronov가 이끈 러시아 코뮤니스트 좌파 조직, 민주집중주의자 그룹)과 연합하여 새로운 코뮤니스트당을 만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33)

     

    트로츠키주의 지도자들은 Decists(Democratic Centralism group, 민주집중주의자 그룹)를 극좌, 분파주의자, 그리고 모험주의자로 몰아 해체시켜버렸다. 유사하게, 트로츠키는 다른 반대파들, 즉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의 좌익 분파에서의 우리의 정치적 선구자들과 같은 이들뿐만 아니라 그와 정치적으로 가까웠던 KPO(코뮤니스트당 반대파)와 독일의 SAP(사회주의자 노동자당)와의 유대도 거부했다.

     

    왜 그랬는가? 왜냐하면, 트로츠키는 그가 대중과 접촉하고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들이 패배당하고 반혁명의 통제 아래 있게 되었을 때, 러시아의 스탈린주의적 외견이든 유럽의 나머지의 사회민주주의적 외양이든 트로츠키는 반혁명과 타협을 계속하길 선호했다. 그러므로 그가 그의 추종자들이 사회민주주의로 되돌아가게 한 그의 프랑스 전환(1934년)이 있었다. 그들이 입당주의를 채택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트로츠키주의자들의 풍조는 그 이래로 똑같은 방법론에 감염되었었다. 사회민주주의에 다시 동참함으로써, 그들은 코뮤니스트 강령의 깃발을 묻어버리는 그들의 본분을 다했다. 다시 한번 노동계급 독립의 그 깃발을 휘날려 21세기에는 10월 혁명이 준 자유와 평등의 실패한 약속을 달성시키는 것이야말로 현재 세대 혁명가들의 임무다. 


    <주>


    33) 20년대 말 소련의 「좌익 코뮤니스트 반대파(The Left Communist Opposition)」(by A.V. Gusev (Otechestvennaia Istoriia, 1월/2월 1996년))을 보라


    •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00-10-01/trotskyism-after-trot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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