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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스 200주년] 맑스의 묘소에서 한 추모연설
  • 조회 수: 2923, 2018-03-16 12:14:54(2018-03-16)
  • 맑스의 묘소에서 한 추모연설

    - 프리드리히 엥엘스


     3월 14일 오후 2시 45분 현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는 사고하기를 멈추었다. 그를 혼자 둔 지 2분도 채 못 되어 우리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안락의자에서 고요히, 그러나 벌써 영원히 잠들었다. 

    유럽과 미국의 전투적인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하여, 역사과학에 대하여 이 사람의 죽음은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다. 얼마 안 가서 곧 거인의 서거로 인한 공허를 느끼게 될 것이다. 

    다윈이 생물계의 발전법칙을 발견한 것과 같이 맑스는 인류역사의 발전법칙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겹겹의 이데올로기들에 가려져 있던 다음과 같은 간단한 사실이다. 즉 사람은 정치, 과학, 예술, 종교 등등에 종사할 수 있기 전에 우선 먹고 마시고 집을 가지고 옷을 입어야 하며, 그러므로 직접적인 물질적 생활 수단의 생산, 따라서 또 어떤 민족 또는 어떤 시대의 매개 경제발전 단계가 토대로 되며 그 토대로부터 그때그때의 사람들의 국가기구, 법률, 사상, 예술 그리고 심지어는 종교관념이 발전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은 그 토대에서 설명되어야 하며 종래와 같이 거꾸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맑스는 또한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그 소산인 부르주아 사회의 특수한 운동법칙도 발견하였다. 잉여가치의 발견과 함께 이 분야의 형편은 단번에 명백해졌는데,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나 사회주의적 평론가들의 종전의 모든 연구는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한평생에 이러한 발견을 둘만 하면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발견을 하나만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맑스는 그가 연구한 어느 분야에서도, 심지어 수학 분야에서도 독자적 발견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분야는 매우 많았으며 또 어느 하나도 그가 피상적으로 연구한 것은 없었다. 

    과학자로서의 맑스는 이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결코 주된 것은 아니었다. 맑스는 과학을 역사의 추동적이며 혁명적인 하나의 힘으로 보았다. 실제에 응용이 될 수 있을지 아직 전혀 예견할 수도 없는, 어떤 이론 과학상의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마다 그는 매우 기뻐했지만, 산업에 대하여, 역사발전 일반에 대하여 즉시 혁명적 영향을 주는 발견이 문제 될 때에 그의 기쁨은 아주 각별하였다. 예컨대 그는 전기분야에서 이루어진 발견의 진전과, 최근에는 또 마르셀 드프레의 발견을 세심하게 연구하였다. 

    그것은 맑스가 무엇보다도 혁명가였던 까닭이다. 자본주의사회와 그 사회에 의하여 만들어진 국가기구의 전복에 이러저러하게 참여하는 것, 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을 위해 일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그의 일평생의 사명이었다. 현대 프롤레타리아트에 처음으로 그들 자신의 처지와 그들의 요구를 자각하게 하고 그들의 해방조건을 자각하게 한 것이 바로 그였다. 투쟁은 그의 본령(本領)이었다. 그리고 그처럼 열정적으로 완강하게 또 성과적으로 투쟁한 사람은 드물다. 1842년의 최초의 ≪신라인신문≫, 1844년의 파리의 ≪전진≫, 1847년의 ≪브뤼셀 독일신문≫, 1848~1849년의 ≪라인신문≫, 1852~1861년의 ≪뉴욕매일연단≫, 그리고 그밖에 수많은 전투적 소책자들, 파리․브뤼셀․런던 단체들에서의 활동, 끝으로 이러한 모든 것의 절정으로서의 위대한 국제노동자협회의 창설 - 실로 이 국제노동자협회의 창설은 창립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바로 그래서 맑스는 누구보다도 더 증오를 받았으며 누구보다도 더 비방을 받은 사람이었다. 전제 정부이건 공화정부이건 간에 정부는 그를 추방하였고 보수적 부르주아건 극단 - 민주주의적 부르주아건 간에 부르주아는 앞을 다투어 그에게 비방과 저주를 퍼부었다. 맑스는 이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쓸어버렸고 무시했으며 대답은 극히 필요한 경우에만 하였다. 그는 시베리아의 광산으로부터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의 전 유럽과 미국에 사는 수백만의 혁명적 전우들의 존경과 사랑과 애도 속에 이 세상을 떠났으니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 그에게는 많은 적이 있을 수 있었으나 개인적 원수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의 이름도 그의 위업도 영구 불멸하리라!

    1883년 3월 17일 하이게이트 묘지에서 엥엘스가 영어로 한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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