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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의 쇠퇴 (The decadence of capitalism) - 5장 1914년 전쟁이라는 전환점
  • 조회 수: 3152, 2019-07-16 15:03:30(2019-07-16)
  • 자본주의의 쇠퇴
        The decadence of capitalism


    5장 
    1914년 전쟁이라는 전환점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확장과 노동자계급의 성장이라는 자본주의 확장의 두 가지 중요한 국면에서 결정적 전환점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확장의 종료

     19세기에 구가하던 의기양양한 발전 뒤, 한 나라 한 나라씩 차례로 정규적이고 돌이킬 수 없게 정복해간 뒤, 자본주의 종주국들의 제국주의적 확장은 20세기 초에 거의 전적으로 정지되었다. 자본주의가 모든 나라로 침투했으며 상이한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세계를 완전히 분할해 서로 나눠 가졌다.

     1차 세계대전은 어떤 열강도 이제는 확장을 보증하기 위해서, 자본주의가 침투하지 않은 지역을 더는 발견할 수 없음을 증명하였다. 그러한 ‘정복’에 비교적 늦게 착수한 독일은 경제적 힘에 걸맞은 자신의 입지를 개척하기 위하여 역사상 최초의 세계전쟁을 촉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전쟁 후 일본과 미국은 오직 유럽의 희생 위에서 확장을 보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쟁은 이제부터는 자본주의 모순의 표현이며, 이러한 모순은 새로운 시장을 추구하기 위해 지구를 정복하려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경향과 새로운 현실, 즉 세계가 이미 강대국 사이에서 분할되어 있었다는 사실 사이의 갈등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1914년 이후 세계는 힘의 균형에 따라 분할되고 재분할되지만, 진정으로 새로운 지리적 확장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본주의 상승기의 경제성장은 세계무역에서 식민지 시장의 점진적 중요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시장의 중요성은 1914~18년 전부터 통계적으로 계속 증대되었다. 그러나 1914년과 1929년 사이에는 좀 더 느리게 단지 둔화되었고, 1929~1938년에는 심지어 약간 회복되었다(아래의 그래프 참조). 오직 2차 세계대전 동안만 이 경향은 통계적으로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은 1914년에 시작된 과정의 결과에 불과했다. 두 세계 대전 사이에 놓인 중간시기에 제3세계 국가의 무역의 상대적 중요성은 선진국 사이의 무역에서의 엄청난 감소에 주로 기인한다.

     1914년 전쟁은 세계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확장 시대의 종말의 신호탄 역할을 하면서 자본주의 체제 외부 시장의 급속한 축소 과정의 시작을 의미했다. 
    쇠퇴1.JPG

    노동자계급의 비율적 성장의 종료

     1850년에 자본주의적 생산에 참여한 세계인구 비율은 10%였다고 추정된다. 이 비율은 1914년에 거의 30%에 달했다. 그러나 20세기가 시작한 이래 이러한 확장은 선진공업국에서 급격히 축소되었다. 독일 노동자의 수는 1882년 8백만에서 1925년 천4백만으로 증가했지만, 1895년 50%에 달하던 노동하는 인구 대비 노동자 비율은 1925년 45%로 떨어졌다. 독일의 경우는 국제적 규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자계급 비율은 50% 정도에서 안정화 되었다. 영국에서는 조금 높았고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조금 낮았다.” 이러한 ‘주요생산력’의 확장에서 두드러진 축소는 지금까지 계속된다. 세계 선진공업국가에서 ‘건설 노동자를 포함한 산업노동자’의 비율은 INSEE에 따르면, 1968년에 독일과 영국에서 47~48%, EEC(유럽경제공동체) 전체에서 45%, 미국, 소련, 일본에서 35%였다. 이러한 수치는 운송,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제외하기 때문에 비교적 높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확장률이 1914년 이후 자본주의 체제 상승기의 종료 이래 대단히 축소되었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하고 있다. 

     저개발국에서는 이러한 축소가 더욱 두드러진다. 1950~60년 사이에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 인구 100명당 신규 임금노동자의 수는 선진국보다 9배나 낮았다. 1914년까지는 자본주의 경제에 효과적으로 통합된 인구가 세계인구보다 빠르게 증가했다. 그것은 자본주의 상승 기간 이었고 이 경향은 그 뒤 결정적으로 역전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성장

     그래서 1914년 이후, 특히 1929년 이후 자본주의에는 심오한 변화가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변화의 기본 특징은 제국주의 확장의 종료였다. 사실 제국주의는 ‘상승하는’ 자본주의의 주요 출구였다. 이 출구는 자본주의 생산의 비교적 적은 부분, 즉 재투자가 예정된 잉여가치를 흡수했는데, 이러한 잉여가치의 실현은 자본축적에 필수 불가결하다. 우리는 제국주의 확장의 종료를 수반한 급격한 격동, 즉 30년 미만의 기간에 일어난 두 번의 세계대전과 1929~38년의 심각한 위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시작된 시기는 1914년에 존재했던 조건의 틀의 외부에 놓여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식민지, 반식민지 시장은 이 시기에 그 중요성이 대단히 줄어들었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기에 이번의 확장 시기는 30년대 유사 침체기와 상당히 달랐다. 제4 인터내셔널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경제에서의 그러한 변화를 특징짓기 위해서 또 그것에 자신들이 부여한 중요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심지어 ‘신자본주의(Neo-Capitalism)’라는 과장된 용어를 사용했다. 

     몇몇 경우에만 2차 대전 이후의 성장률은 1913년 전 자본주의 상승기 동안의 성장률을 따라잡았거나 능가했는데, 프랑스와 일본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1950년대 초 세계생산의 50%를 차지한 미국은 1850~1880년 사이의 6.9% 성장률에 비교하면 1957~1965년 사이는 4.6%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의 진정한 본질은 1913년까지 완성된 확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2차 대전 이후 경제 확장의 주요 분야는 아래와 같다:

    - 특히 제국주의적 이유로 유럽과 일본의 재건에 대한 마샬플랜의 재정 지원
    - 생산성에서 중요 성과들의 이용
    - 살아남은 자본주의 외적 시장의 효과적 착취
    - 부채 증가의 시작

     이 시기는 1930년대 동안에 있었던 것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국가자본주의 발전 경향이 가속화된 시기이다. “민주주의”에서 국가자본주의는 전쟁으로 피폐화된 경제 재건을 위한 조직적인 틀로서 지속되었다. 그것은 또한 민족국가를 강화하여 세계적인 경제적, 제국주의적 경쟁에 대면할 수 있도록 국가의 경계 내부에서의 경쟁을 축소시키는 수단이었다. 그 몇 가지는 GATT(WTO의 전신)와 같은 기구의 창설을 통해 제국주의 블록의 수준에 적용되었던 국가자본주의적 조치들이, 경제적 모순을 없애지는 못하면서 1929년과 같은 갑작스럽고 파괴적인 위기를 피하도록, 그러한 경제모순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이들 조치를 통해 국민국가와 제국주의 블록 모두의 수준에서, 상이한 생산부문을 “조화시키고”, 가치법칙을 속여 당분간 시장의 제재를 피하게 하는 다양한 기제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과 일본 경제의 재건은 생산력의 강력한 발전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생산 기구에 한정되지 않고, 재건이 전쟁 전 생산수준으로의 회귀에 즉각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전쟁 중 파괴된 하부구조와 생존 수단에도 또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의 재건과 관련하여 불가피한 것은 없었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파괴는 그 자체로 재건에서 지불 능력 있는 시장을 만들지 않는다. 사실 어떤 생산적 투자와 마찬가지로 유럽과 일본의 재건은 재정 지원되어야 한다.

     마샬플랜은 유럽과 일본에서 생산력의 회복을 위한 초기 재정지원을 했지만, 당시 미국 부르주아지는 그것을 미래를 위한 경제적 투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서유럽 국가들과 일본이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노골적인 보조금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현대적 생산기구를 재건하도록 도움으로써 미국은 1960년대 동안 세계시장의 경쟁자가 될 미래의 산업 경쟁자들을 만들었다. 1914~1968년의 첫 번째 쇠퇴단계에서 위기-전쟁-재건의 사이클은 호황과 불황이라는 옛 사이클을 대체했다. 
     
     전후 번영의 시기동안 자본주의는 상품의 낮은 가격과 특히 탈식민지화에 의해 초래된 국제외교에서의 수정을 이용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자본주의 생산 관계에 아직은 완전히 종속되지 않았던 국가와의 교역을 강화할 수 있었다. 아직도 내부에 ‘자본주의 외적’ 시장(특히,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처럼 후진적인 농업)을 가진 강대국들은 체계적으로 그것을 통합하려고 했다. 통신수단의 발전과 낮은 운송비는 자본주의 이전의 상업경제에의 침투(정도와 강도에 있어서)와 파괴를 촉진시켰다. 더구나 탈식민화 정책의 전개는 제국주의 세력의 비용부담을 경감시켰고, 이는 그들의 옛 식민지의 판매 이윤성을 높였다. 

     생산성의 대규모 증가는 상품의 원가를 줄임으로써 새로운 자본주의 외적시장을 종속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생산된 상품의 양을 현저하게 증가시켰다. 이것이 재건 시기의 전례 없는 성장률을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건 시기의 이러한 수치는 주요 유럽 국가와 일본의 장기간의 낮은 성장 이후에 온 것임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일종의 “따라잡기” 일 뿐이다.

     비슷하게 우리는 이러한 확장의 시기가 보여준 경제적인 활력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19세기의 확장시기와 질적으로 같은 수준에 놓고 볼 수 없다. 재건 기간 성장의 대부분은 비생산적 지출, 특히 군사비였다. 비생산적 지출의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다룰 쇠퇴의 특징이다.

     일단 한번 생산되면 무기는 새로운 상품생산에 공헌하기 위해 생산 사이클에 다시 투여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기 생산은 자본의 불모화를 가져온다. 이렇게 무기생산은 개별 무기제조업자가 자신이 생산한 무기를 팔 때는 나타나지 않지만, 총체 자본(global capital)에 관한 한 완전한 손실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생산이 특정한 상황에서 경제에 제공할 수 있는 일시적인 증강, 그것은 전반적으로 자본의 빈곤화를 나타낸다.

     지난 수십 년간의 자본주의는 1913년에 끝난 상승기를 새롭게 시작한 것이 결코 아니라 30년간의 쇠퇴의 논리적인 ‘종합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자본주의는 이러한 침체기 동안 재건과 파괴를 위한 생산의 경제적 ‘이득’을 “발견했다.”


    영구적 무기 생산

     "호엔촐레른*(Hohenzollern)의 독일은 명백히 군사주의 나라로 간주하였다. 1차 세계대전 직전의 몇 해 동안 군사예산을 대폭 증가시켰는데 해군 비용을 포함한 1억 파운드는 1913년 평화 시기의 최고점에 달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그것은 25억 파운드였던 총국민 생산의 4% 미만 이었다 (저자 강조)."

     2차 세계대전 후 ‘평화’ 시기에 미국에 의해 최근 도달되고 또 능가된 GNP의 10%에 달하는 군사비나 20%에 달하는 소련의 경우와는 비교가 될 수 없다. 1929년 몰락 이후 1934~35년부터 가시화된 세계 경제에서의 회복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례 없는 특수한 성격을 가진다. 즉 그것은 세계무역의 비례적인 성장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1932~35년 사이에 세계 경제 활동지수(소련 포함)는 69로부터 111로 상승했다(1929=100). 반면 세계 수출지수는 39%에서 37.84%로 가치 하락했다. 

     이 회복은 수출되지 않는 생산, 즉 군무장의 결과이다. 그것은 독일, 일본, 러시아 그리고 일정 정도 영국과 같은 특정 나라들의 맹렬한 재무장의 결과였다. 1937년에 영국공업협회는 무기지출이 영국 자본의 해외투자보다 네 배에서 여섯 배의 경제활동 증진을 가져온다고 선언했다. 독일에서도 1933~1938년 사이 무기지출이 9백억 마르크에 달했다. 1940년에 히틀러가 밝힌 이 숫자는 그때까지 추정된 모든 수치보다 더 컸다. 생산재지수는 1932~1934년에 4배가 되었고, 자동차 생산지수는 군용 자동차 공급 덕분에 6배가 되었다. 실업자 수는 1933년 5,331,000명에서 1938년 11월 172,000명으로 줄었다. 무기생산에 필수적인 원자재에 대한 예외적 수요가 있었다. 보기를 들어, 유럽 강대국들이 획득하려 싸운 철을 소유한 스웨덴의 이윤지수는 1932년과 1936년 사이에 28에서 91.4로 상승했다. 이러한 회복은 고르게 이뤄지지 않았다. 1937년 유럽은 세계 무기지출의 65%를 차지했다. 산업생산지수는 1929년의 수준보다 11포인트 높았다. 반대로 군사 지향적 생산이 취약하던 미국은 산업생산지수가 1929년 수준보다 7포인트나 낮았다. 국가연맹(League of Nations)은 1938년 보고서에서 퉁명스럽게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무기와 관련된 구매는 정확히 1937년 중반과 1938년 사이에, 즉 미국의 경기후퇴와 상품 수요가 1929년에 시작된 공황과 유사한 세계적 공황이 될 위기에 처한 그 시기 동안에 증가되었다.” 

     1929년 위기 이후 경제회복의 본질에 대해 더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파괴수단의 생산 때문이었다. 전쟁이 터졌고 파괴수단을 공급하는 열강들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래서 캐나다는 전쟁 기간 과거 25년간 총생산에 맞먹는 생산의 성장을 보였고, 미국에서도 산업생산이 50%나 성장했다.

     전쟁이 끝나자 인류역사상 최대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세계생산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 전 수준을 상회했고 미국은 역사상 가장 큰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미국은 군사비에 더 이상 경제의 이차적인 부분(1929년에 군사비는 GNP의 1%를 넘지 않음)이 아니라 그 생산역량의 1/3에서 1/2을 할애해야만 했다.  “(…)미국의 군사 부문은 전체 경제 체제의 비교적 작은 부분이 아니라 매우 큰 부분을 차지했고 그 절정기에는 거의 전쟁 발발 이전 시기의 미국의 총생산만큼 큰 비중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모순에 대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론 대 그로스만-매틱의 이론에 대한 깊은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이 시기 사건에 기초한 몇 가지를 언급하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이윤율저하경향은 수축하는 시장의 경향과 분리해서 사고할 수 없다. 즉 이윤율 저하의 위협은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자본을 축적할 수단을 개발하도록 그래서 새로운 시장을 획득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장의 획득으로써만 가능한 생산량 증가는 이윤율 저하를 상쇄시키는 주요 수단이다. 동시에 자본의 기술적 구성요소(즉 유기적 구성)의 항상적 상승은 이윤율저하경향의 배후의 동력이다. 생산성 증진의 이러한 필요성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것은 기존 시장의 통제를 위한 자본의 상이한 분파 사이의 치명적 경쟁이다(시장을 획득함에 있어서 한 자본의 다른 자본에 대한 성공은 더 싸게 파는 능력, 즉 더 높은 기술 수준으로 생산하는 능력에 의해 측정된다).

     무기 경제는 자본주의 내에서 모순의 이러한 두 가지 수준에 동시에 작용한다. 그것은 생산을 위한 비록 일시적이나마 새로운 출구를 제공함으로써 시장의 축소에 작용한다. 이 출구는 군수품은 거의 모든 생산 영역에 관계되기 때문에 (히틀러의 고속도로 건설 같은 공공사업계획, 뉴딜정책 아래 이루어진 도시계획에 의해 제공된 시장과는 달리) 경제의 훨씬 더 많은 부문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또한 점점 더 강력하고 정교한 무기의 필요성은 자본집중이 최고조에 달한 선진산업을 특히 자극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무기생산은 ‘민간’생산의 시장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엄청난 이점을 갖고 있다. 무기생산은 또한 이윤율저하경향에도 세 가지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첫째, 출구가 확장된다. 둘째, 착취율이 증가되는데, 이는 실질임금이 인플레이션 (전시에는 배급과 인플레이션)에 의해 삭감되고 노동시간은 연장되기 때문이다. 전쟁 기간 초과시간 노동은 의무화되고 작업캠프는 ‘시민의 의무’라는 이름 아래 제도화된다. 이러한 모든 조치들은 1933년 이후 미국에서 일어났는데 오스트리아, 폴란드,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스위스, 체코 그리고 특히 소련과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무기생산은 자본의 집중 과정에, 그리고 이윤성의 과정에 강력한 가속화를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이 시기의 역사는 세계에서 가장 집중화된 자본이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가지고서도 상품의 판매를 위한 출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생산을 발전시킬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1929~34년 대공황 동안 임금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자본의 집중은 (위기가 부과한 선발 운동에 의해) 커다란 후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과 이윤율은 계속해서 정체되거나 하락했다. 무기생산이 자본주의 경제의 짐을 덜어준 것은 그래서 ‘새로운’ 출구로서의 기능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본의 내재적 모순들은 시장 수준(즉, 잉여가치의 실현)에서 집중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1914년에 제국주의 확장 가능성의 빠른 감소는 자본주의의 심장인 시장(판매의 필요성)에 치명적 상처를 입혔다. 이러한 경기침체를 다루어야 하는 국가지도자들은, 미국이 참전하기 전 다음과 같이 언급한 루즈벨트처럼 그들이 선언할 때 침체의 기원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모든 식품을 우리가 모두 다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추출할 수 있는 모든 기름을 모두 다 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제조할 수 있는 모든 상품을 다 사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세계의 대부분의 중요한 지도자에게는 문제가 “우리가 생산할 수 있고...우리가 추출할 수 있고...우리가 제조할 수 있는...”, 즉 생산지점(잉여가치의 창조)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비하지 않고 있고… 우리가 쓰고 있지 않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지 않는...” 시장의 수준에서 나타남은 명백했다. 히틀러가 그의 유명한 전쟁 구호인 “독일은 수출해야 한다. 아니면 망할 것이다!”를 1939년 2월 주창했을 때 그는 결코 멍청하지 않았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의 성장이 사실은 어떻게 해서 이전 쇠퇴의 연속이었는가를, 성장이 재건에 기초한 것이었다는 사실로부터 살펴보았다. 이러한 지속적인 쇠퇴의 두 번째 중요한 징표는 자본주의가 무기생산이 성장의 촉진제로서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거대하게 그것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강대국은 2차 대전 이후 완전한 군비축소를 행하지 않았다. 제국주의 사이의 적대감의 끊임없는 격화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저개발 국가의 인민들이 포탄받이 역할을 했던 국지화된 충돌을 통해서, 어떤 것이든 민족해방운동을 이용함으로써, 강대국들은 자기들끼리 분할하고 재분할해서 나눠 가지려고 지구를 계속해서 조각냈다. 말하자면 세계는 히로시마 이래 총체적 평화 시기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리고 전쟁은, 심지어 지역전쟁이라도 점점 더 많은 양의 무기를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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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2차 세계대전은, 결과적으로 1939년의 9백만 미국 실업자가 자본주의 착취로 재통합되었다. 적대의 종식이 3년 안에 미국 내에서 3백만 실업자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전쟁 후 군수품의 부단한 성장으로 인해 자본주의는 잠재적으로 증가하는 실업을 재흡수할 수 있었다. 1965년 회계연도 동안 거의 6백만 명이 어떤 형태로든지 방위에 종사했고 1968년 회계연도에는 거의 8백만에 달했다. 이러한 엄청난 무기생산의 방대함은 “양차대전을 포함한 20세기의 반세기 동안 보다 지난 10년 [즉, 1962~72]동안 세계는 무기를 더 사용했다” 는 사실을 통해 예시될 수 있다. 만일 군사 목적에 예정된 미국 국가수입의 비율이 1929년에는 1% 이하였고, 1913년 전쟁 전야의 독일에 의해 달성된 4%가 전례 없는 최고치를 나타냈던 점을 기억한다면, 1945년 이후 유지된 그 비율의 중요성을 이해할 것이다. 

     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나타나 1929~38년 위기 동안 발전된 이러한 모든 경제적 징후들은 사라지기는커녕 악화되었다. 즉, 체제의 확장을 위한 여유 공간의 돌이킬 수 없는 수축, 이윤율에 대한 영구적 위협, 세계자본의 상이한 분파 사이의 증대하는 경쟁, 계급 적대의 격화, 자본의 불완전한 이용, 불안정한 교환율 등이 그러하였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작성
    오세철 옮김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pamphlets/decadence/ch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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