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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 코르쉬] 맑스주의와 사회화 2
  • 조회 수: 1405, 2021-04-19 13:05:08(2021-04-01)
  • 맑스주의와 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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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화의 기초

     


    사회화라는 단어는 11월 혁명 이후 일반적 용법에 편입되었다. 그것은 초기에 산발적으로 나타난다. 내가 규정할 수 있는 한, “사회화1875년 무미건조한 보편적철학자 오이겐 뒤링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는데, 뒤링은 그를 산산조각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역사적 중요성을 얻었다.26) 그러나 사회화가 대중의 의식을 사로잡았던 특수한 의미는 뒤링에게도 있지 않고, ()혁명적 시기의 저술들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뒤링에게 (1) “사회화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세계 개선에 근거한다. 다른 이들이 사회화에 관해 말할 때, 그 단어는 (2)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관찰된 자동적으로 자기구성적인 사회화의 역사적 발전과정, 혹은 사회화에 관하여 통용되는 혁명적 개념으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진 다른 어떤 것을 지시한다. , (3) 단지 근대국가가 진보적으로 발전하는 사회개량의 전형으로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과 그 추종자들이 사회주의라고 주장하고 딱지를 붙인 사회정치적 이상이라는 의미에서다.

     

    오늘날 계급으로 조직된 혁명적 분자들의 정신 속에 번창하는 사회화의 개념화는 이러한 세 가지 통념(유토피아적 세계 개선, 역사에 대한 이론적 관찰, 사회 정치적 개량) 모두에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사회화의 개념은 무엇보다도 본질적으로 혁명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그 개념의 개별 실질적 규정들에서가 아니라 그 개념의 형식적 보편성에서 이념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사회화가 사회혁명이라는 말은 육화된 사회주의적 개념이고 실천적인 인간의 감각적 활동을 통해 발전되는 현실이다.

     

    맑스주의 세계관의 개념적 구조의 일부는 최근 그 진면목을 보여주었고, 과학으로부터 행동이자, 혁명이자, “실천적 비판 활동이자, “혁명적 실천인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사회주의의 이행으로 귀결되었다. 지금껏 맑스와 엥겔스의 역사유물론 개념을 실천이 불필요한 역사 인식의 특수한 이론으로 간주해온 이들은 오늘날(마침내!) 그들이 맑스와 엥겔스가 규정한 특별한 의미로 과학적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소를 여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이해해야만 한다. 자연에 관한 유물론적 인식과는 대립적으로, 맑스에게 바로 그 시초부터 사회발전의 물질적인식은 결코 단지 객관 또는 제도의 형식하에서 실재물의 순수 이론적 이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제나 동시에 주관적인, 인간의 감각적인, 실천적이며 비판적인, 따라서 혁명적인 실천에도 있다.27) 물론 계급으로서 혁명적 분자들의 조직화는 일반적으로 구사회의 태내에서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모든 생산력의 성숙한 실존을 전제한다. 그리고 사회혁명의 시기는 오직 이미 획득된 생산력과 현생 사회제도가 더는 공존할 수 없는단계에 도달할 때에만 시작된다. 그러나 이 지점에 오면, 구사회질서의 사슬을 끊어내는 이 모든 생산력의 단계는 도달된 것이고, “가장 강력한 생산력은 혁명적 계급 자체이다.” 그들의 시대가 오면, 확립된 질서의 외적 조건은 그것 자체로부터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로지 인간의 실천을 통해서 바뀐다. 더 나아간 생산력과 전통적 생산관계 및 그 상부구조 사이의 모순은 오로지 혁명적 실천을 통해 해결되고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임무의 해결을 위한 물질적 전제조건만을 만든다.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은 먼저 이론과 실천의 이러한 통일에서 자신을 충족시킨다. 그 속에서 맑스의 불과 같은 영혼은 사회의 구학문들의 행동을 꺼리는(Tatfremde) 인식과, 구유토피아주의의 인식을 꺼리는(Erkenntnisfemden) 행동의지(Tatwillen)객관화시키는 지식 활동 동일성 속으로 함께 용해시켰다. 따라서 단지 그 때문에, 자본주의에 고유한 적대로 인해 파괴되어 구자본주의 질서가 혼란 속에서 붕괴될 때, 정확하게 가장 순수한 맑스주의자들, 가장 과학적인사회주의자들은 그 역사적 계기 속에서 사회화의 실천이념(Tatidee)에 의해 가장 잘 파악되었다는 것이 이해될 수 있다. 오직 이러한 입장에서 왜 -미성숙한 시대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비과학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사회화라는 단어가 혁명적 시기 속에서 그 이데올로기적 함축을 철저히 상실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오직 그럴 때에만 왜 사회혁명을 비인간적인 힘이 초래하고 준자연법이 실행하는 역사적 발전으로 간주하는 견해가, 사회화가 실천적 임무로서만 파악, 이해, 달성될 수 있는 그 계기에 현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이데올로기로서 나타나는지도 이해될 수 있다.

     

    역사유물론의 이론을 정확히 이해한 입장에서(프롤레타리아트의 이론적 표현인 과학적 사회주의의 눈을 통하여), 사회발전의 특수한 시기에 이론 비판적 혁명활동으로부터 실천 비판적 혁명활동으로의 결정적인 전환은 불가피하게 필연적임을 일단 인정하고 나면, 사회주의 이론과 예언은 실천으로 진리, 즉 현실과 힘, 그 사유의 세속적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맑스). 그러나 다음의 것은 여전히 조사되어야 할 것으로 남는다. 어느 정도와 어떤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이것, 즉 그것의 최종적이고 가장 중요한 임무에 정당한 취급을 하였는가? 우리의 물음은, 어느 정도로 행동이 요청된 계급들의 사회주의 이론이, “처음으로 그들을 조건들에 대한 의식과 그들에게 고유한 행동들의 본성으로 이끌면서도” (엥겔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수중에 이 행동을 완성하는 실천적인 방법, 사회주의가 실천과 현실이 될 수 있는 형식들을 시의적절하게 내밀었는가이다.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맑스와 엥겔스의 상속자임을 주장하고 있는 우리는 마음속에 크나큰 수치를 느껴야만 한다. 다가오는 행동의 필연성을 살아있는 현실로 느끼는, 사유에서 진정 혁명적인 소수, 즉 맑스와 엥겔스의 출발 이후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에 서는 이들은, 달달 외운 급진적 관용구의 슬로건들을 여전히 입에 담지만 더는 진심으로 충만한 믿음과 진정 혁명적인 행동의 준비태세로 처신하지 않는 자들의 확장세에 맞서는 전투에서 최상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이 같은 자들은 더는 시대의 비혁명적인 중간시기에 고작 슬로건일 뿐인 립서비스에 경의를 표할 마음이 없는 이들에게 종교재판을 시행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주의가 실천적 현실로 전환되는 것에 관한, 따라서 사회화에 관한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에서 여전히 귀중한 수많은 언급을 발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기 맑스의 전체 문헌이 전쟁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실천적 문제들을 개진하는 데 그 어떤 본질적인 기여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그 대신, 눈에 띄지 않는 초기에 생겨나 오늘날 우리에게 제2 인터내셔널의 시기로 드러난, 점차 눈에 띄는 침체의 전 기간 내내, “혁명적사회주의의 대다수 대변인은 다음의 문제를 모두 해명하고자 시도된 시작을 맑스 이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주의로의 퇴보로 거부함으로써 맑스의 교의의 과학적성격을 보증하는 데 노력했다. 각 경제적, 사회심리적인 발전 단계의 토대 위에서, 어떻게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사회주의적 요구가 실천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 예컨대, 카우츠키의 <에어푸르트 강령의 기초적 구성요소에 대한 논평>의 다음 구절들을 생각해보자. “사회민주주의는 다가오는 사회가 아니라, 오직 오늘날 사회만을 위한 실정적 제안을 할 수 있다. 실정적 제안을 초과하는 제안은 사실 대신에 인위적인 전제를 고려할 수 있을 뿐이고, 따라서 기껏해야 무익한 환상들, 몽상들이다. 설령 그 제안의 작자가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충분히 재능 있고 활동적이라 해도, 그 결과는 오로지 오류와 정력 낭비일 뿐이다.”

     

    카우츠키의 이 구절은 자명하다. 그 자체로 보아 이 구절은 철저히 올바르고, 스스로에게 맑스 정신의 정수를 불어넣은 이라면 누구도 그러한 제안들로부터 어떤 전망도 기대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혁명의 해에 사회 문제의 신속하고 완전한 해결을 지향하는 그처럼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제안과 계획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이 충만함 속에서 곧장 주어졌다. 다시 말해, 경제적, 심리적 총체성(Gesamtlage)과 그것의 지각할 수 있는 발전 경향에 대한 충분한 인식으로부터 제기되는 실현의 개념들(Verwirklichungsgedanken)이 그것이다. 이 개념들을 통하여 과학은 개별적으로 드러나는 사회 현실을 예상한다. 또한 미래에 대한 의식적인 예상을 통하여 이 개념들은, 그로 인해 사회적, 개별적 존재의 옛 형식으로부터 새 형식으로의 창조적인 전환이 달성될 수 있는, 현실들 가운데 하나를 정립한다. 물론 과학적 인식은 이미 이전에 자신의 사유에서 옛 것으로부터 새것으로의 전환을 실행한 혁명가의 창조적 환상에서만 이 특수한 형식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카우츠키와 그에게 들러붙은 자들 모두는 그러한 창조와 신념의 혁명적 환상을 지니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실천적인 미래지향적 사유에 대하여 너무 오래 지속된 그들의 모든 거부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이 혁명적 환상의 결여로부터 우리는, 대중이 그러한 행동의 유용성을 의심함에도 불구하고 11월 혁명의 전후 내내 여러 번에 걸쳐 지금까지 발전시킨, 사회화를 위한 계획과 행동 프로그램의 유령 같은 성격(창백하고 누구에게 진정 충분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분투하는 대중에게 만족스럽지 않은)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요약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쟁과 혁명의 시대에 이를 때까지, 앞선 시기의 사회주의적 사유는 사회주의 건설의 형식들에 대한 모든 조사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계속 증가하는 정도로, 본질적으로 비혁명적인 관점은 마치 사회주의 사회의 토대가 자본주의 발전에 의해 아주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경제적 조직화는 변경 없이도 새로운 목적을 위해 활용될 수 있는 반면에, 오직 변경할 것은 소유관계이기 때문에, 마치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사회주의 사회로의) 전환이 자동적으로 실행되는 것처럼내세워졌다.28) 이 증가하는 수동성의 조건을 위험하고 치명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소수는 주로 현실 사회주의 운동의 외부에 있고, 따라서 그들의 관점은 사회주의에 유익하게 될 수 없었다.29)

     

    그러므로 191811월 이후 거대한 숙명의 몇 달 동안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권력 조직들이 붕괴하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길에 어떤 외부적인 것도 있지 않게 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심리적 전제들이 그 시기의 활용에 있어서 크나큰 결함이었기 때문에 위대한 시간을 붙잡지 못하고 놓쳐버려야만 했다는 것은, 결코 순전히 외적인 우연의 일치로 소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중을 전진시킬 수 있을 만한, 사회주의 경제체제 실현을 위한 직접적인 역량에 대한 결정적 믿음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고, 실행되어야 할 첫걸음의 성격에 대한 명확한 인식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의 원인이 된 것도 프롤레타리아 구성원 내에서 전개된 총체적 혼란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오랜 전쟁 때문에 산업 임금생활자들의 정상적인 생활 조건으로부터 완전히 뜯겨 나갔고, 그리하여 결정적 순간에 혁명적 계급으로서 전혀 인정될 수 없었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외적 요인들과 함께, 오늘날의 혁명적 입장에서 보자면, 실천적 실현의 모든 문제와 관련이 있는 사회주의 이론의 실천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퇴행은 사회화에 대한 호소”(그해 동안 두세 번은 족히 대규모로 떠들썩하게 선언되었고 부르주아계급과 그 군대의 병영에 공포와 전율을 가져다준)가 현실적으로 어떤 실천적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는 사실에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이에 반하여, 1919년은, 전부르주아적 정부 형태의 마지막 유물 이후에, 그리고 전시경제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이후에, 독일 중간계급이 자신을 정치적, 경제적인 지배계급으로 구성하는 동안, 역사가 되어갔다. 이 발전의 획기적 사건들은 새 독일 헌법이 발효되었던 1919811일과, 비셀의 계획경제사상이 마침내 기각되고 수출무역 분야에 대한 바이마르 법령에서 자유경제로의 회귀가 선언되었던 1919818일에 있었다.30)

     

    과학적 사회주의의 탄생에서부터 새로운 혁명적 시기(우리가 그 실현을 바라는)의 시작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 사회화 개념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재검토는 반박의 여지 없이 다음을 증명할 것이다. 사회혁명이 조만간 현시점에서 전진하기 위하여, 사회주의의 최종실현을 향한 행동 개념의 훨씬 의식적인 발전과 해명은, 처음에는 단지 형식적이었던 행동에 대한 요구를 넘어서면서, 나날이 증가하는 중요성을 얻어 실질적으로 사회화슬로건의 이행에 도달한다. 이와 함께, 혁명적 계급으로서 육체노동 및 정신노동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화를 통해서 달성될 수 있는 현재(더 높은 임금, 더 나은 생활조건, 자본주의 사회조직 내에서 증대된 권리들)에 피상적으로 정향된 프롤레타리아 대중운동의 목표들은 여전히 중요한 것으로 남는다. 다른 한편,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사회화 개념의 실질적 이행이 재능있는 사회적 기술자[전문가]의 이데올로기적 의지와 순수 사유에 의해서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로 명백하다. 오히려 이 목적을 위해서는, 맑스가 그의 전저작에서 그 모범을 제시하는(다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론적, 역사적인 활동과 실천적, 비판적인 활동 사이에, 그리고 실천을 형성하는 활동과 사유가 충만한 활동 사이의 결합이 요구된다. 만일 우리가 이 태도로 사회화의 형태 문제에 접근한다면, 덜 중요한 세부사항들을 잠시 무시하면서 우리는, 그로부터 우리가 역사적, 비판적이고 실천적, 과학적인 맑스의관찰에서 그 형식들의 윤곽을 추출할 수 있는, 세 가지 경제적, 역사적 현실의 복합물들을 구별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11월 혁명 이후 혹은 얼마간 전쟁 이후에라도 나타난, 사회화에 관한 광범위한 문헌 내에서, 이 세 가지 현실의 복합물 각각이 그것에 고유하고 특수한 표현을 그 문헌에서 발견했다는 것을 확립할 수도 있다. 사회화 개념이 얻은 이 세 가지 주요한 방향은 나중의 소론에서 계속 자세히 논의될 것이므로, 출현하는 종합에서 전체상은 혁명적 사회주의와 코뮤니즘(오늘날 의식과 현실의 상태에 다소간 일치하는)가 얻으려고 분투하는 지배적 경제질서의 전환으로 묘사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아주 일반적인 방법으로 경제적, 역사적 현실의 세 가지 부류와 그 결과로서 생기는 사회화의 계획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처럼 일반화된 분류에서 개별적으로 지시된 계획들은 실제보다 다소 더 편향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계획의 창작자들은, 그들이 결정적인 자극을 빚지고 있는 하나의 현실 복합물 말고도, 상이한 정도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린 잔존하는 현실을 관찰했다. 그들 각각은 이미 다양한 개별적 진리의 종합으로서 그의 진리를 이해했다. 하지만 물론 이때 중요한 것은 분명히 개별자의 장점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오히려 주체 그 자체이다. 비록 사회화의 상이한 모델의 제작자의 의도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정확히 이 주제에서 우리의 관심과 가능한 한 가장 완전하고 명확한 묘사 때문에, 이러한 설명 및 분류의 방법을 선택한다.

     

    독일의 전시경제는, 사회화에 관한 문헌의 가장 중요한 출판물의 일부가 결정적 자극을 받게 되는, 경제적, 역사적 현실의 첫 번째 그룹을 구성한다. 이러한 현실의 가장 중요한 문헌적 성과는 한편에 오토 노이라트(슈만과 크라놀트)31)의 사회화 계획을 포함하고, 다른 한편에 계획경제를 위한 비셀-몰렌도르프의 계획32)을 포함한다. 비록 어느 사회주의자 또는 코뮤니스트도 이제껏 평화와 전쟁 속에서 구체화된 종류의 국가의 경제 관리 혹은 경제 규제의 형태들 가운데 어느 것에서도 그의 노력의 부분적인 이행조차 볼 수 없었지만, 또한 비록 엥겔스가 사회화와 국유화의 동일시를 아주 적절하게 논박하고 비꼬았지만,33) 그리고 비록 이전의 국가자본주의는 국가사회주의가 전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님을 매번 강조하는 것이 오늘날 특히 필수적이라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경제 단위들의 상위에 있는 것은 중앙정부조직이라는 것, 국유화 개념 추종자들이 국가를 말할 때 대개 염두에 두는 것은 모든 진정한 사회주의적인 요구와 공공경제를 위하여 불가결한 것이다.34)

     

    그리고 그 군사적 과제와 함께, 지난 전쟁에서 독일 국가에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수요를 충족하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과제도 있다. 모든 가용 생산력의 가장 극단적인 활용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독일 국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게다가 원료와 노동력이 점차 더 절실해지는 상태에서 증가하는 전쟁물자 수요), 수백만이 아닌, 오직 수천의 생산활동을 하는 시민들만이 굶주림, 극도의 피로와 부수적인 질병 때문에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전시 국가(막대한 금화증권의 증대와 자본주의적으로 불건전한방법으로(영국조차도 가능하다면 피하고자 한!) 연이어 대출을 계속하는 금융 정책에 의해 지탱되는)가 정말 기묘한 방식으로 사적 기업경제의 수익성의 입장을 무시하고자 했으며, 그리하여 모든 자본주의적 사적 경제가 어떻게 좌우되는지의 중심적 입장을 간과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전쟁의 지속을 위한 자연경제 관리 경제학(통화 경제학에 의해 계산, 결정되지 않는)에서와 꼭 마찬가지로 사회적 생산 가능성과 사회적 소비 욕구(사적 경제에서와 같이 이윤이 아닌)에 대한 고찰은 재화의 사회적 생산 여부와 그 방식을 결정하도록 정해진 입장이었다. 즉 완전히 사회화되고 철저히 사회주의적인 경제가 궁극적으로 대표되는 것이다. 따라서 실천적 사회주의자가, 자본주의 이윤경제로부터 사회수요경제로의 이행이 실행될 형태를 찾는 중심화된 경제 규제의 거대한 실험을 부주의하게 간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될 수 있는 한 비맑스주의적일 것이다. 모든 임시변통 방편의 결핍을 부담하는 전시 경제의 관료제적 수단과 제도의 단순한 모방은 결코 없음이 명백하다. 오히려 그것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실패, 실수 및 미봉책의 인식으로부터이다.

     

    이 고찰 자체는 오늘날 경제조직의 전사회주의적 형태들의 세 가지 주요 그룹들 가운데 두 번째로 우리를 이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부류는 자본주의 사적 경제의 근대적 형식들의 가장 최근의 발전이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발전을 통해 그 자신의 붕괴를 포함하고 내부의 적대를 격화시키는 가운데 사회주의의 도정을 부정적으로 준비할 뿐만 아니라, 개별 경제주체들을 더 이상 감독하고 규제할 수 없는 개인의 이해를 초월한 사회경제적 조직화의 형태에 고유한 태내에서 이미 발전하는 가운데 사회주의의 도정을 긍정적으로 준비한다는 관점은 너무나도 기초적인 맑스주의 이론이어서 이를 더 이상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다만 간단히 언급하자면, 사회화에 관한 현존 문헌의 어떤 중요한 출판물이 이러한 경험 영역들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내게 나타나는가이다. 이것은 그 어떤 형태의 모든 국가사회주의적 중앙집권주의적 경향에 대하여 정확히 반정립인, 자율적인 연합의 경제적 자기통치라는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는 사회화를 위한 모든 다양한 계획을 포함한다. 무엇보다도, 여기에는 자신의 최근 저술에서 더 과감하게 자율적 경제”35)의 개념화를 옹호한 라테나우가 포함된다. 여기에는 우리가 나중에 조사할, 다양한 저자들36)이 구성한 다른 모든 사회화 계획의 노선도 속한다. 우선 모든 포스트(post) 혁명적 사회화에 가장 중요한, 오토 바우어가 쓴 오스트리아 사회민주주의당의 사회화 프로그램이 해당한다.37) 공립 독일사회화위원회의 석탄 보고서는 단일한 경제 지역에서 이 길드[동업조합]의 원리(Gildenprinzips)”의 가장 중요한 적용을 대표한다.38) 사적 자본 경제의 자기통치는 1889년 예나의 사회화된 차이스베르크[Zeisswerk, 칼 차이스39)의 공장회사]에서 에른스트 아베에 의해 실제로 실현되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모범적인 방식으로 실행된 것이다.(물론 그것의 구성은, 정상적인 경제적 자기관리체가 단일한 자율적 사업과 마찬가지로 산업 트러스트[기업합동]의 거대한 연합에서도 흔치 않은 것처럼, 오늘날의 필요조건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40)

     

    일반적인 사회화 개념이 그로부터 더 구체적인 내용과 더 확고한 형식을 얻을 수 있는,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현실의 그룹은, 오늘날 이미 프롤레타리아로부터 순수하게 구성되고 독일과 특히 승리를 거둔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도 전혁명적 계급투쟁과 혁명적 최종투쟁에서 창출한(또한 지금도 여전히 계속 건설 중인) 조직 내에서 충족된다. 말하자면, 그것은 노동자들의 직업단체(노동자동업조합) 내에서이고, 특히 혁명적 평의회조직 내에서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아주 탁월하고 교훈적일 수 있는 하이만(정말 수많은 사회화를 향한 추진력들을 하나의 빈틈없는 종합으로 통합하는)의 연구에서 유감스러운 결여는 그 저자가 진정한 사회주의 경제의 건설을 위한 평의회의 중요성을 결코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이만에 의하면, “공장평의회의 도입은 개념적으로 사회화와 무관하다.” 사회주의에 공장평의회가 필요한 것은,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즉 그것이 모든 인민의 참여를 요구하고 모든 이의 최선을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만에게는 과연 사업과정을 엿보는 것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인민은 단지 모든 노동조건의 문제에만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하이만이 기획한 경제 조직에서 이것 외에 인민을 위한 여지는 전혀 없다”.

     

    다음을 상기하자. 소련에는 넓은 적용에서 성공적으로 관철되고, 가장 광범위한 자율과 동시에 계획된 총체적 관리 속의 모든 단일한 경제체의 엄격한 절합 사이에서, 완전히 만족스러운 균형잡힌 평형을 성취한 이미 높고 낮은 평의회의 통합된 상호협력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41) 따라서 어떻게 사회주의자인 하이만이 사회주의적 의미의 사회화[“각 개인의 필요뿐만 아니라 전체의 필요에 따라 생산의 계획된 사회적 규제를 통해서 (자유가 없는 노동에 기초한) 자본주의 경제를 총체적으로 대체하는(엥겔스)]가 오늘날 노동자평의회를 통하지 않고서 달성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더 자세히 본다면 이 이상한 입장의 결코 하나가 아닌 두 가지 이유를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 첫째, 하이만은 역사적 발정 과정과 혁명적인 인간 활동의 동일성으로서 맑스의 사회화 개념을 결여하고 있다. 다른 조직화 기술자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하이만에게 사회화는 결국 조직화 수단의 합리적 체계에 불과하다. 둘째로, 그는 국가에 대한 기계론적인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실패한다. 다양하게 분할된 가지각색의 사회적 개인적 이해관계를 인공적인 통일성에 폭력적으로 밀어 넣는 권력조직의 경우에, 하이만은 사회주의 공동체에서 국가는 사멸할것이고, 무한하게 더 열린 체계는 국가없는 사회에서 사태를 일치단결시킬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므로 하이만에게 국가는 여전히 모든 특수한 이해관계들이 진정 평형에 이르는 총체성과 동일하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 때문에 당연하게도 그는 국가가 산출한 평형이 결코 모조리 제거할 수 없는 지속적 갈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심지어 완전히 사회화된 공동체에서도 여전히 개별 생산자들의 특수한 이해관계, 단결된 노동자 집단 중 생산하는 단위 내에서 집단화되는 일반 소비자의 보편적 이해관계 사이에 갈등은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42) 그러나 총체성으로서의 국가가 생산 집단을 소비자인 다른 모든 생산집단과 함께 통일된 민주주의적 조직 전체로 일치단결시키기는 이상, 어떻게 하이만에게 그러한 갈등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나의 결론은 이렇다. 형식민주주의적인 국가 이데올로기의 마지막 잔재를 극복하고 나서야, 계급과 국가가 없는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한 노동자평의회의 필요성은 그 심층적 본질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계속>



    <주>


    26) 뒤링의 철학의 진로”(라이프치히, 1875)7모든 전체활동의 사회화, 엥겔스의 뒤링 씨의 과학변혁”(1877-8)을 비교하라. “사회화라는 단어는 영국 페이비언협회의 비외국 문헌에서 발견되고, 좀 더 이후에는 폰 쥐데쿰이 독일어로 번역한 벨기에의 반더벨데의 저작에서 발견된다.

    27) 이와 함께 의미심장한 간결성 속에서 혁명적 의지의 이론을 처음 정식화하고, 그 이후 곧바로 철학의 빈곤에서 한층 더 발전된 1845년 맑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11가지 테제들을 고려해야 한다.

    28) 에두아르트 하이만의 사회화”(사회과학과 사회정치학을 위한 아카이브 453, 528)와 비교하라.

    29) 아주 오래전에 이 저자[하이만]는 이미 부르주아 월간지 Die Tat에 발표된 공공경제의 조직을 위한 사회주의적 정식이라는 그의 소론에서 이러한 관계로부터 발전하는 사회주의의 실현에 대한 위험을 지적했다. “생산수단의 사회화의 동일한 정식 아래 국가사회주의자, 생디칼리스트, 협동조합주의자(Genossenschaftler) 및 기타 등등과 같이 서로 다른 수많은 노선들이 함께 발견될 수도 있다는 사실로부터 속행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공경제(Volkswirtschaft)의 조직화를 위한 사회주의적 정식의 이러한 무내용성은, 사회주의의 실천적 효용이 현존하는 폐해들과 싸우고 그것들을 제거하는 데 제한된 것으로 머무르는 한, 무해하였다(또한 여전히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일단 사회주의가 어떻게 해서든 그리고 어디에서든 정부에 접근하고 공공경제의 사회주의적 조직의 집행을 요구하는 순간이 되면, 이 무내용성은 유해한 것이 될 것이다. 이 순간이 지금(1912) 일어난다면, 사회주의는 준비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사회주의는 공공경제의 조직을 위한구성의 적합한 정식을 아직 형성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30) “사회주의자” 4(1920.1.24)의 내 논설을 참고하라.

    31) 노이라트의 주요 논설: 1. 전시경제를 가로질러 자연경제로, 2. 사회화의 본질과 방법 [이상 뮌헨, Callwey], 3. 작센 주의 사회화, 4. 오늘날 우리는 사회화를 할 수 있는가? [이상 켐니츠와 라이프치히] (슈만과 공저), 이 모두는 1919년에 출판되었다. 5. 전사회화(예나, 1920).

    32) 특히, (모든 공식 자료와 함께) F. 비셀의 실제의 경제정책”(Verlag Gesellschaft und Erziehung, 베를린, 1919)를 보라.

    33) “그렇지 않다면 왕실의 해상무역, 도자기 매뉴팩처, 심지어 군대 영내에 있는 회사 소유의 양복점마저도 사회주의적 기관[제도]들일 것이다”(엥겔스, “반뒤링”, 299).

    34) 하이만은 사회화에 관하여 그가 이전에 언급한 연구에서 이를 적절하게 강조한다. 특히 544, 587.

    35) 라테나우의 관련저술: 다가오는 사건에 관하여(1917), 새로운 경제(1918), 새로운 국가(1919), 자율적 경제(1919). 주목할 만하게도, 사회화를 위한 투쟁 속에서 이 모든 경향은 근대 자본주의 경제 발전에 의해서 구시대로부터 그 선구자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부르주아 국민 경제학자인 셰플레이다. 세플레는 단지 자신의 위대한 주요 저작 사회적 신체의 구성과 생명과 그의 유명한 짧은 소론 사회주의의 정수에서 경제적 자기통치의 개념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거대한 석탄광부 파업 사건에 대하여 잡지 Zeitschrift für die gesamte Staatwissenschaften 45(그가 1880년에 편집)에 수록된 사회와 공공경제의 분리에 관한 특별한 논고를 출판하기도 했다. 비록 사회화 문제를 조사하는 어느 누구도 극도로 명백히 보이며 기본적인 설명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여태껏 모두가 이를 간과했다.

    36) 1919년 초까지 유명한 사회화 계획들은 나의 소론 사회화란 무엇인가?”에서 비판적으로 논의되었다. 이 소론은 1919년 하노버에서 출판되어, 베를린에서 “Gesellschaft und Erziehung" 출판사를 통해 지금도 구할 수 있다. 긍정적인 면에서 이 소론은 사회주의의 중앙집권주의와 생디칼리즘의 연방주의에 대립하여 산업의 자율의 형태로 명시된 사회화의 세부적인 계획을 발전시킨다.

    37) 내가 방금 언급한 사회화에 관한 저작의 부록에 부분적으로, Wilbrandt에서 나온 사회주의”(191쪽 이후, 예나, 1919)의에 온전히 발표되었다.

    38) R. V. 덱커에 의해 출판, 베를린, 1919.

    39) [역주] 칼 차이스(Carl Zeiss, 1816-1888)는 광학기기 제조업자로서,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 1840-1905)와 함께 차이스 광학기기회사를 창업하였다. 차이스의 사망 후, 아베는 자신의 전재산을 칼 차이스 재단에 기증하였다.

    40) 예나의 차이스 공장의 조직에 관한 정보를 위해서, 특히 코르쉬(Wilbrandt 출판)에서 인용된 부분(28쪽과 152쪽 이후)E. 췸머, “독일의 광학기업의 사회화”, Jenaer Volksbuchhandlung 출판, 1919.

    41) 러시아의 발전은 더 자세한 설명은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에 의한 생산 관리에 관한 리포트에 있다(1919코뮤니스트 평의회 통신출판. 빈의 적기” 48호와 많은 독일 신문에 재인쇄됨).

    42) 이 갈등(모든 사회화 물음의 핵심 문제로서 장래에 더 밀접하게 펼쳐질)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위하여, 현재로서는 사회화에 관한 나의 저작 사회화란 무엇인가?”를 참고하라.


    <출처> Douglas kellner, Karl Korsch: Revolutionary Theory, University of Texas Press, Austin & London, 1977, pp 117-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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