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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스주의와 사회화 8 : 노동자 통제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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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통제

    

    사회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발전은 소수 자본 소유자와 대규모 임금 노동자로 사회의 양극화를 내포하며, 그와 더불어 독립적인 장인, 농부, 소규모 상인 같은 유산 중간계급은 차츰 소멸한다. 더욱 소수의 손아귀로 생산적 재산과 부 일반의 이러한 집중은 근대 산업 사회의 옷을 걸친 봉건제의 구현으로 나타난다. 소규모 지배계급이 생산적 자원 그리고 그와 더불어 정부를 소유하고 통제함으로써 사회 모든 것의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 그다음에는 비인격적인 시장의 힘과 강박적인 자본 추구에 의해 지배계급의 결정이 통제된다는 점이, 통제할 수 없는 경제적 사건에 대한 이러한 반응도 그들의 배타적인 특권이라는 사실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오늘날 지배적인 사회를 특징짓는 자본-노동관계 안에서, 생산자들은 생산과 그것이 낳은 생산물에 대해 직접적인 통제를 전혀 하지 못한다. 때때로 생산자들은 임금 투쟁을 통해 일종의 간접적인 통제를 행사할 수도 있는데, 임금-이윤 비율을 변경하고 그리하여 자본 확장 과정의 경로나 속도를 변경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생산의 조건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가이다. 노동자는 그들이 지닌 하나뿐인 생계 수단이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살려면 동의해야만 한다. 노동자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착취적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굶어 죽을 자유가 있다는 뜻에서만 자유롭다. 이 사실은 사회주의 운동이 있기 오랜전에 이미 인식되었다. 일찍이 1767년에 시몽 링게(Simon Linguet)는 임금 노동은 노예 노동의 한 형태일 뿐이라고 선언했다. 그가 보기에, 임금 노동은 노예제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이었다.

     

    우리 농장의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먹지 않을 과실을 위해 토지를 경작하도록 강요하며 우리의 석공들에게 그들이 살지 않을 건물을 짓도록 강요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다른 어떤 수단으로도 생계를 꾸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을 구매하는 친절함을 베풀 주인을 기다리는 시장으로 그들을 끌고 가는 것은 바로 결핍이다. 부자를 부자로 만들 허가를 부자에게 얻기 위해 부자에게 무릎을 꿇도록 그들을 강요하는 것은 결핍이다. ······ 노예제의 억압이 부자에게 얼마나 효과적인 소득을 가져다주었는가? ······ 당신은 말한다. 그는 자유롭다고. ! 그것이 그의 불행이다. 노예는 그 주인이 그에게 들인 돈 때문에 주인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수공업자는 그를 고용하는 방탕한 부자에게 아무런 비용도 치르게 하지 않는다. ······ 이 사람들은 주인이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들 가운데 가장 무섭고, 가장 거만한 주인을 지니고 있다. 바로 필요라는 주인. 그들을 가장 잔인한 의존 상태로 이끄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200년 뒤에도 여전히 이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을 자본의 지배에 그리고 자본가들의 책략에 복종하게 만드는 것은 더는 공공연한 비참함이 아니라, 생산수단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 결핍, 즉 임금 노동자로서 그들의 지위가 여전히 그들을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피지배 계급으로 특징짓는다.

     

    사회주의자의 목표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임금 체계의 폐지인데, 이는 자본주의의 종식을 의미한다. 지난 19세기 후반부에 노동계급 운동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서 이러한 전환을 일으키려고 했다. 이윤에 의해 결정되는 생산은 연합한 생산자들의 실질적인 필요와 야망을 만족시키는 생산으로 대체될 것이었다. 시장 경제는 계획경제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었다. 그래서 사회적 존재와 발전은 더는 자본의 통제할 수 없는 물신 숭배적 팽창과 축소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계급 없는 사회에서 생산자들의 집단적인 의식적 결정에 의해 결정될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운동은 부르주아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발전의 부침에 묶여 있다. 사회주의 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하는 운명에 따라 달라지는 특성을 보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의 형성을 촉진시키지 않는 시기와 장소라면, 사회주의 운동은 성장하지 않거나, 아니면 사실상 사라질 것이다. 자본주가 번영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운동은 혁명적 운동에서 개량적 운동으로 변신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위기의 시기에 사회주의 운동은 지배계급에 의해 전적으로 억압받을 것이다.

     

    모든 노동조직은 일반적인 사회 구조의 일부이며, 그래서 순수하게 이데올로기적 의미에서가 아니라면 일관되게 반()자본주의적일 수 없다.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사회적 중요성을 차지하기 위해서, 노동조직들은 기회주의적이어야 한다. , 그들의 자신의 목적이지만 아직까지는 제한된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주어진 사회적 과정을 이용해야 한다. 유리한 순간에 행동할 준비를 갖춘 강력한 조직으로 혁명세력을 서서히 결집시키는 것은 가능해 보지지 않는다. 지배적인 기본 사회관계를 어지럽히지 않는 조직들만이 성장하여 조금이라도 중요성을 얻게 된다. 그 조직들이 혁명적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시작한다면, 조직의 성장은 그 이데올로기와 기능 사이에 불일치를 내포하게 된다. 현재 상태에 반대하지만, 또한 그 안에서 조직된 이러한 조직들은 결국 그들 자신의 조직적 성공 때문에 자본주의의 힘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

     

    지난 19세기말에 전통적인 노동조직들(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은 더는 혁명적인 운동이 아니었다. 이러한 조직 안에서 얼마 안 되는 좌익만이 그 혁명적 이데올로기를 보유했다. 원리 면에서, 레닌과 룩셈부르크는 기존 노동조직의 개량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 진화론과 싸울 필요성을 깨달았고 혁명적 정책으로 복귀할 것을 요구했다. 레닌이 중앙에서 통제하는 조직화된 활동과 지도부를 강조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혁명정당을 창조함으로써 이것을 달성하려고 시도했지만, 로자 룩셈부르크는 관료적 통제의 제거와 일반 조합원의 활동을 통해서 사회주의 조직 안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결정을 증가시키는 것을 선호했다.

     

    맑스주의가 주요 사회주의 정당의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에, 이러한 조직과 그들의 정책에 대한 반대는 맑스 이론의 개량주의적이고 수정주의적인 해석들로, 맑스의 이론에 반대하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조르주 소렐(Georges Sorel)과 생디칼리스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인텔리겐치아의 지도 없이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정치 조직을 통제하는 중간계급적 요소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확신했다. 생디칼리즘은 혁명적 노동조합 활동에 찬성하면서 의회주의를 거부했다. 소렐이 보기에, 사회주의자의 정부는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를 결코 변경할 수 없을 것이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노동자는 자신만의 행동과 무기에 의존해야 할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를 이미 자본주의적 산업 속에 조직했다. 남은 일은 국가와 소유를 억압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을 완수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필요한 것은 필연적인 사회적 흐름에 대한 이른바 과학적 통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혁명과 사회주의가 그들 자신의 계속적인 투쟁의 불가피한 산물이라는 일종의 직관적인 확신이었다. 파업은 노동자의 혁명적 도제 제도로 간주되었다. 파업 수의 증가, 파업의 확대, 지속 기간의 증가는 총파업의 가능성, 즉 임박한 사회 혁명을 가리키고 있었다.

     

    잉글랜드의 길드사회주의자(Guild Socialists)와 미국의 세계산업노동자연맹(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같은 생디칼리즘이나 그와 유사한 국제적 후예는, 어느 정도는, 사회주의 운동의 관료화 증대와 계급 협조주의적 관행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노동조합 역시 중앙집중적 구조 때문에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욕구를 희생하고 특정 직종의 이해관계를 강조하는 것 때문에 공격받았다. 그러나 혁명적이든 개량주의적이든, 중앙집중적이든 연방주의적이든, 모든 조직은 그들 조직의 한결같은 성장과 일상의 활동 속에서 사회 변화를 위한 주요한 요인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었다. 사회민주주의에 관해 말하자면, 증가하는 구성원, 확대되는 당 기구, 선거에서 득표수 증가, 현존 정치 기구에 더욱 대규모 참여를 사회주의 사회로 성장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다른 한편 세계산업노동자연맹에 관해 말하면, 그 조직 자체가 거대 단일노조(One Big Union: 모든 노동자가 하나의 노조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개념 - 옮긴이)로 성장하는 것은, “낡은 껍데기 안에서 새로운 사회의 구조를 형성하는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세기 첫 번째 혁명에서 혁명의 특징을 결정하고,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노동자들의 평의회에서 자신의 새로운 조직 형태를 탄생시킨 것은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이었다. 1905년 혁명의 러시아 평의회, 또는 소비에트는 수많은 파업으로부터 그리고 법률 당국뿐 아니라 관련 산업과 상대할 대표와 행동 위원회의 필요로부터 성장했다. 파업은 정치 조직이나 노동조합에 의해 요구된 것이 아니라, 작업장을 그들의 조직적 노력의 도약판이며 중심으로 보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자연발생적이었다. 그 시기 러시아에서 정치조직은 아직 노동자 대다수와 미숙한 형태의 노동조합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소비에트들은 전통 없이 권위를 지니며 수십만 노동자들을 즉각 포용할 수 있는 조직에 대한 객관적 필요의 실현이었다. 더욱이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모든 혁명적 경향을 통합할 수 있고, 선도력과 자기 관리력을 지니며, 주요하게는 24시간 안에 생겨날 수 있는 조직이었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조직인 반면에, 소비에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이었다.”

     

    물론 본질적으로 1905년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으로 차르의 전제정을 깨뜨리고 제헌의회를 통해 더욱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 존재하는 조건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유주의 중간계급이 지원했다. 정치적 사고 면에서 파업 노동자들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강령을 대체로 공유했다. 그리고 더욱 발전된 상황에서 강력한 노동운동의 형성과 장래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부르주아 혁명의 필요성을 받아들인 기존의 모든 사회주의 조직들로 그러했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의 소비에트 시스템은 혁명이 분쇄되면서 사라졌고 19172월 혁명에야 더 큰 세력으로 복원되었다. 1918년 독일 혁명에서 비슷한 자연발생적 조직의 형성을 고무한 것, 그리고 조금은 정도가 덜하지만 잉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헝가리에서 사회 격변을 고무한 것은 이 소비에트이었다. 평의회 시스템과 더불어 제한된 목적이든 혁명적 목표든 어느 쪽을 위해서도 아주 광범위한 대중의 자기 활동을 지도하고 조절할 수 있으며, 기존 노동조직에 독립적이거나 반대하거나 협력하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조직 형태가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평의회 시스템의 출현은, 자연발생적인 활동이 대중의 형체 없는 분투로 흩어져 없어지지 않아도 되고 일시적이지 않은 조직적 구조로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05년 러시아혁명은 서구 사회주의 정당에서 좌익 반대파에 활력을 주었지만, 이러한 행위가 아직까지는 조직적 형태보다는 대중 파업에서 자연발생성이라는 측면을 띠었다. 그러나 개량주의적 주술은 깨졌다. 혁명이 다시 실질적으로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서구에서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아니라 순수한 노동계급 혁명일 것이었다. 그렇지만 러시아의 경험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그때까지는 제2 인터내셔널의 개량주의 정당의 의회주의적 노선에 대한 거부로 전화되지는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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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폴 매틱(Paul Mattick), 노동자 통제(Workers’ Control),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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