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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스주의와 사회화 9 : 노동자 통제 II
  • 조회 수: 1527, 2021-04-19 13:35:11(2021-04-19)
  • 맑스주의와 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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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통제

    II

    

    서구에서 혁명적 정책의 부활 가능성은 처음에는 헛된 것으로 증명되었다. 사회주의 운동 내부에서 수정주의의 첫 번째 대변자인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말로 하면 운동이 전부고 목표는 없는” ‘수정주의자들뿐 아니라, 정통 맑스주의자들도 사회혁명의 바람직함이나 필요성을 더는 믿지 않았다. 그들이 예전의 목표(임금 체계의 폐지)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지만, 이것은 이제 부르주아 사회의 민주적 제도에 의해 제공되는 합법적 수단을 통해 조금씩 유행하게 될 것이었다. 결국, 사회주의 정부를 지지하는 다수의 유권자와 더불어 사회주의는 정부 법령에 의해 제도화될 수 있었다. 한편 노동조합 활동과 사회 입법은 노동자들이 감당할 몫을 줄이고 그들이 사회 전반의 발전에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이었다.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재난은 사회주의 운동을 낳았을 뿐 아니라 비정치적 수단에 의해 그들의 조건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노동자의 다양한 시도도 낳았다. 노동조합주의와는 별개로, 협동조합 운동은 임금노동으로부터 탈출하는 매개로 그리고 지배적인 보편 경쟁 원리에 대한 헛된 반대로서 생성되었다. 이 운동의 선구들은 프랑스, 잉글랜드, 그리고 미국의 초기 코뮤니스트 공동체들이었는데, 그들의 사상을 오웬이나 푸리에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로부터 끌어왔다.

     

    생산자 협동조합은 자체 고용과 자신들의 활동에 관한 자주적 운영을 위한 자발적인 집단이었다. 이러한 협동조합 중에는 어떤 것은 독립적으로 발전했고, 또 어떤 것은 노동계급 운동과 연합하여 발전했다.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의 작업장을 설립하고 자본가들의 간섭 없이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회는 맨 처음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조건과 발전 경향에 제한을 받는바,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에게 그저 주변적인 존재만을 허가할 뿐이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자본의 경쟁적 집적과 집중을 내포한다. 더 큰 자본이 더 작은 자본을 파괴한다. 협동 작업장들은 자본이 거의 필요 없는 특정 소규모 산업에 제한되었다. 얼마 안 있어 자본주의의 확장이 모든 산업에 미치면서 그들의 경쟁력을 파괴하고 사업에서 몰아냈다.

     

    소비자 협동조합은 그보다 더 성공적임이 증명되었으며, 그것 가운데 일부는 공급의 출처로서 생산자 협동조합을 흡수했다. 그러나 소비자 협동조합은, 그것이 노동계급의 열망의 산물인 곳에서조차도, 노동계급의 통제 시도로 보기 어렵다. 노동자들은 2배로(생산할 때와 시장에서) 약탈당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협동조합은 기껏해야 임금 처리에서 통제 조치를 확보할지 모른다. 상품 유통 비용은 자본 생산의 피할 수 없는 가짜 비용으로, 자본가들을 상인과 기업가로 나눈다. 각각은 자신의 사업 영역에서 최대 이윤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동일하지 않다. 기업가는 소비자 협동조합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현재 그들은 단일한 회사에 생산과 마케팅 양쪽 기능을 결합함으로써 생산 자본과 상인 자본의 분할을 해소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협동조합 운동은 자본주의 체제로 쉽게 통합되었으며, 사실상 많은 부분 자본주의의 발전의 구성 요소였다. 부르주아 경제 이론에서조차 협동조합 운동은 사회 하층의 절약 성향을 촉진함으로써, 소비자 신용조합을 통하여 경제 활동을 증진함으로써, 협동 생산과 마케팅 조직을 통해 농업을 개선함으로써, 그리고 생산의 영역에서 소비 영역으로 노동계급의 관심을 이동시킴으로써, 사회적 보수주의의 도구로 간주되었다. 자본주의적 지향성을 지닌 제도로 협동조합 운동은 번성하여 결국 자본주의 기업의 한 형태가 되고,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착취에 몰두하며, 노동자를 더 높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파업하는 적대자로 대한다. 공식적인 노동운동에 의한 소비자 협동조합에 대한 (초기의 의심이나 노골적인 거부와는 명백하게 구별되는) 일반적인 지지는 개량주의적 노동운동의 자본주의화증가를 나타내는 추가적인 징후일 뿐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소비자 협동조합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는 곧 국가의 대행자로 바뀌어 기성품 분배 시스템을 볼셰비키에 마련해주었다.

     

    생산자 협동조합과 소비자 협동조합으로 집산주의의 분할은 어떤 의미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생디칼리스트의 반대를 반영했다. 소비자 협동조합은 모든 계급의 구성원을 편입했으며 모든 시장에 접근을 모색했다. 협동조합들은 국가적 규모 심지어는 국제적 규모로 집중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산자 협동조합의 시장은 조합의 생산만큼 제한적이었고 그들의 존재 이유인 자기 관리를 상실하지 않고는 대규모 단위로 결합할 수 없었다.

     

    생디칼리스트들을 사회주의 운동과 차별화시켜준 것은 생산과 생산물에 대한 노동자 통제의 문제였다. 사회주의 운동에 그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 사회주의 운동은 국유화 개념으로 그 문제를 풀었는데, 이것이 사회주의 국가를 생산과 분배 모두에서 사회의 생산적 자원의 관리자요 경제생활의 조절자로 만들었다. 발전의 나중 단계에서야 이러한 배치가 사회화된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과 국가 사멸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었다. 그러나 생디칼리스트들은 중앙집권화된 통제력을 지닌 국가가 그것을 영속화하고 노동 인구의 자기 결정을 방해할 것을 두려워했다.

     

    생디칼리스트들은 각각의 산업이 그 산업의 노동자에 의해 관리되는 사회를 마음에 그렸다. 모든 신디케이트가 하나가 되어 정부의 특징을 지니지 않고 단지 진정한 집산주의적 생산과 분배 시스템을 실현하기 위한 통계적행정적 기능만 하는 전국 연맹을 형성할 것이었다. 생디칼리즘은 프랑스, 이탈리아, 에스파냐에서 우세했으나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타났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미 언급한 세계산업노동자연맹과 길드 사회주의자에게서처럼 수정된 형태로 나타났다. 최종 목표에서뿐 아니라 일상의 계급투쟁에서도, 생디칼리스트는 직접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더욱 호전적이라는 점에서 의회 사회주의자나 보통 노동조합과는 달랐다.

     

    최종 목표에 대한 관심은 시기상조였지만, 그것은 그 선전자들의 실제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중앙집중화된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조합의 급속한 관료화는 노동자들로부터 그들의 자발성을 상당히 앗아갔으며 그들과 생활이나 노동 조건을 공유하지 않는 지도부의 통제에 그들을 종속시켰다. 노동조합은 사회주의 운동과 초기의 관련성을 상실하고 비즈니스 유니어니즘(business-unionism: 실리적 조합주의)로 타락하여 임금 협정과, 가능한 곳에서는 일자리 독점단체의 형성에만 관심을 가진다. 생디칼리스트 운동은 훨씬 덜 관료화되었는데, 이는 그 운동이 노동운동의 두 주요 흐름의 소수파였을 뿐 아니라 산업 자기 통제의 원칙이 일상의 계급투쟁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안에서 노동자 통제에 대해 말하는 것은 노동자가 속한 조직에 대한 통제만을 의미할 수 있는데,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모든 효과적인 사회적 통제를 빼앗겼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조직의 자본주의화와 더불어, 노동자들이 관료제의 재산이 되고 관료제의 존재와 재생산의 수단이 될 때, 노동자 직접 통제의 유일하게 가능한 형태는 사라지게 된다. 그때도 노동자들은 더 높은 임금, 더 짧은 노동시간,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위해 싸운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은 자기 조직 내에서 그들의 권력 부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활동을 노동자 통제의 형태라고 부르는 것은 어쨌든 잘못된 명칭인데, 이러한 투쟁은 노동계급의 자기 결정과 관련이 없으며 자본주의의 한계 안에서 조건을 개선하는 데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그로 인해 노동자들의 생계 수준이 올라가는 비율보다 더 빨리 노동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것이 가능한 한에서 가능하다.


    노동조건과 잉여 생산물에 대한 기본적인 통제는 언제나 자본가들의 수중에 남아 있다. 노동자들이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데 성공했을 때에도, 그들은 자본가들에 의해 추출되는 잉여 노동의 양을 잘라내는 데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잉여 노동을 추출하는 두 가지 방법노동일을 연장하는 방법과 기술과 조직의 혁신을 통해 임금과 등가의 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일정 비율의 이윤을 산출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이윤율이 위협받을 때 생산하기를 중단할 것이다. 자본을 축적하려는 충동이 자본가를 지배하고 그가 축적 과정이 정점에 달하게 하는 데 필요한 잉여 노동의 양을 얻기 위해 노동자들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자본가는 이윤을 최대화하기 노력할 것인데 그의 통제 밖에 있는 것 때문에 최소치를 얻을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이윤 최대치와 관계있는 착취의 조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계급의 노력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도달할 수 있는 한에서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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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폴 매틱(Paul Mattick), 노동자 통제(Workers’ Control),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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