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문서
  • 맑스주의와 사회화 14 :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몇 가지 요소 III
  • 조회 수: 1414, 2021-05-06 21:08:53(2021-05-03)
  • 맑스주의와 사회화


    KakaoTalk_20210502_132002931.jpg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몇 가지 요소 III


    맑스주의 분석에서 이행기와 국가의 이중성

     

    이행기 국가를 다루는 장에서 우리는 이미 국가가 사회의 계급 분화에 기원하고 있음을 상기시킨 바 있다. 원시 코뮤니즘에서는 국가가 없었다. 국가는 계급 착취를 일으키는 주체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존재하는 한 그 구체적인 특성을 보존하고 기본적 성격을 바꿀 수 없다. 다시 말해 억압적이고 강제적이며 부패하는 유기체로서의 국가이기를 멈출 수 없다. 역사적 과정에서 변화하는 것은 국가의 기능이다. 노예 주인의 도구가 되는 대신 봉건 지주,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도구가 되었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특권을 보존하는 완벽한 도구이다. 이것은 자신의 국가에 의해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착취계급의 부상과 함께 사회에서 발전하는 새로운 특권에 의해 위협받는다. 뒤따르는 정치혁명은 이미 진행된 경제 구조의 변혁의 법적 결과였고 낡은 계급을 지배하는 새로운 착취 형식의 승리였다. 이것은 옛 체제 내에서 세워지고 공고화된 물질적 조건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혁명계급이 그 자신의 생산 양식을 조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국가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불신의 기반 없이 적응하고 완전하게 하려했던 이유이다. 세계적 규모에서 지배하기 위해 역사에서 최초이며, 그 국가가 역사에서 세워진 모든 억압 수단의 가장 압축적 형식인 부르주아계급에게는 더욱 그렇다. 부르주아지와 국가 사이에는 적대가 없고, 밀접하고 파괴 불가능한 연결이 존재한다. 이러한 연대는 국경에 제지되지 않는다. 그 뿌리가 국제 자본주의 체제에 있기 때문에 국경도 넘는다.

     

    대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창설로 지배계급과 국가 사이의 역사적 관계는 수정된다.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 위에 세운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아직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 도구임은 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는 물질적 기반이 부르주아 사회 안에 놓였던 사회적 특권의 보존을 목표로 하지 않고 모든 특권의 파괴를 목표로 한다. 새로운 국가는 소수를 지배하는 다수라는 새로운 지배 관계, 즉 새로운 법적 관계(집합적 소유)를 표현한다. 반면에 새로운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환경의 영향 아래 남아 있기 때문에 (혁명에서의 동시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아직 부르주아 권리의 대표이다. 이는 아직 사회 경제적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수백만의 프롤레타리아 수중에 있다. 여기에 이행기 국가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착취계급에 맞서는 무기로서 그 강력한측면을 드러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착취체제를 공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착취를 폐절하는 유기체로서 약한측면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새로운 국가는 본질적으로, 정의 그대로 자본주의 특권을 끌어내는 축의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와 자본주의 국가 사이에 어떠한 적대도 없지만, 프롤레타리아트와 이행기 국가 사이에는 적대가 생겨나는 이유다.

     

    이러한 역사적 문제는 이행기 국가가 매우 쉽게 국제 계급투쟁에서 반혁명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부정적 효과가 있다. 확립된 사회계급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이행기 국가가 프롤레타리아 성격을 유지할 때라도 그렇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의 활동에 대해 필수불가결한 통제를 행사하고 자신의 구체적 이해를 방어해야하는 당의 계급정치와 대중조직(노동조합, 평의회 등)이라는 경계하는 존재를 통해 잠재적 모순의 발전에 맞서 버틸 수 있다. 이러한 조직들은 그들을 발생시킨 필요성, 다시 말해 오직 계급투쟁이 사라질 때에만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전적으로 맑스주의의 가르침에 따라 고무된다. 왜냐하면 이행기 국가 내의 프롤레타리아 해독제의 의미는 이미 우리가 지적한 대로 맑스와 엥겔스 뿐만 아니라 레닌이 방어했던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조직들의 능동적 존재는 노동자에 봉사하는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유지하고 노동자에 적대로 되돌리는 것을 막는 조건이다.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모순적 이중성을 부정하는 것은 이행기의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다.

     

    반면에 몇몇 동지들은 이 시기에 노동자 조직과 국가 사이에는 오직 동일시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기를 들어 헤놀트(Hennault)동지의 러시아 국가의 본질과 진화”, 빌랑, 121) 네덜란드의 국제주의자들은 이보다 더 나아가고 있다. “노동시간은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의 척도이고 모든 분배는 모든 정치의 밖에 있다. 노동조합은 코뮤니즘에서 어떤 기능도 없으며 삶의 조건의 개량을 위한 투쟁은 끝이 날 것이다.”(그들의 글, 115)

     

    중도주의 또한 소비에트 국가가 노동자국가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제기한 어떠한 요구도 그들의국가에 대한 적대의 행위가 될 수 있고, 국가기제에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가 전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앞에서의 고려지점에 근거해서 소비에트 국가가 프롤레타리아트에 적대하더라도 프롤레타리아 성격을 유지했다고 우리가 말한다면, 실재와 전혀 공통점도 없고 소련의 방어를 거부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거부하는 미묘한 구별점인가? 아니다. 이러한 명제는 무엇보다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유물론의 견해로부터 정당화되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와 국가 사이의 동일성을 거부하고 국가의 성격과 기능 사이의 어떠한 혼동도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는 사실에 의해 러시아혁명의 진화에 대해 우리가 도출한 결론이 그 전제에서 손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국가가 더는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본주의 국가임을 보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관료국가라고 말하고 러시아 국가가 역사에서 원천적으로 지배계급이고 새로운 생산양식과 착취와 연결된다고 발견한 것이 더 나은 것인가? 사실 그러한 설명은 맑스주의 유물론에 등을 돌리게 된다.

     

    관료제가 어떤 사회체제의 기능에서도 필수불가결한 도구였지만, 그 스스로 착취계급으로 변환된 사회계층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사회 내에 막강한 관료제의 수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개인으로서를 제외하면 생산에 작용하는 계급과 혼합되지는 않았다. 자본에서 맑스는 인도의 식민화를 검토하면서, 관료제가 동인도회사의 외양으로 나타났음을 보였고, 동인도회사는 생산이 아닌 유통과의 경제적 연관을 가졌는데, 실질적으로 정치권력을 도시 자본주의의 편에서 행사했다고 말하고 있다.

    맑스주의는 계급에 대한 과학적 정의를 내리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견지한다면 러시아 관료주의가 계급도 아니고 지배계급보다 못한 것인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바깥의 생산에 대한 어떠한 특수한 권리도 가지지 않고, 러시아에서의 집산화가 그 기본에서 아직 존재한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그렇다. 러시아 관료주의가 사회적 노동의 상당부문을 소비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 기생의 유형이지 계급 착취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러시아에서 사회관계가 노동자에 대한 거대한 착취를 나타내지만, 이는 집단이나 개인의 재산권의 행사로부터 나오지 않고 전체적인 경제·정치적 과정으로부터 나오고, 관료주의가 원인이 아니라 단지 표현이며, 우리 견해로는 이차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진화는 무엇보다 러시아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 적 세력의 추동력을 봉쇄할 수 없음을, 스스로 보여준 중도주의 정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러시아의 사회적 문맥의 독창성은 전례 없는 역사적 상황에서 놓여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세게 내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존재였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는 국가기구에 대한, 그리고 당 기구, 이어서 당 정치에 대한 비()프롤레타리아계급의 압력의 비중에 따라 성장한다.

     

    이러한 착취가 노동자로부터 약탈한 잉여노동으로부터 사는 관료적계급의 존재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그것이 대중 속에서 정치적·교육적 역할을 지속하기 보다는 스스로 국가에 통합되는 당에 대한 적들의 영향력을 통해서임을 설명할 필요는 있다. 트로츠키는 (레닌 이후의 제3 인터내셔널에서) 더욱더 당에 가해지는 압력의 계급적 성격과 부르주아 지식인, 소부르주아지, 쿨락, 그리고 당 관료주의로부터 가해지는 이러한 압력 사이의 연결고리에 주목했으며, 이러한 모든 세력을 통해 작동하는 세계 부르주아지의 압력도 중시하고 있다. 이것이 관료주의의 뿌리와 정치적 타락의 세균이 당과 국가의 상호침투의 사회 현상 뿐만 아니라 유리하지 않은 국제적 상황에서 추구되는 이유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권력을 최고로 끌어올린 전시 코뮤니즘이나, 프롤레타리아 경제를 위한 타협이나 정상적인 체제의 표현이었던 신경제정책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바린(Souvarine)은 그의 책 볼셰비즘에 대한 개관("Apercu sur le bolshevisme")에서 당이 전체 국가기구 위에서 기계같은 철권을 휘둘렀다고 주장하면서 당과 국가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역전시켰다. 그는 러시아혁명을 매우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떠한 미리 계획된 의도와 기획 없이, 보편적 문화 결핍, 지친 대중의 무관심, 그리고 혼란을 극복하려는 볼셰비키의 노력이라는 3중 효과를 통해, 수혜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체제의 변혁”(245)이라고.

     

    그러나 만일 혁명가들이 맑스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숙명주의, 즉 물질적 조건의 미성숙과 대중의 문화적 무능력으로부터 도출된 숙명주의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면, 그리고 러시아혁명이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거부한다면,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한 역사적, 객관적 조건이 그 당시 존재했고, 지금도 세계적 규모에서 존재하는데, 이는 맑스주의 관점으로부터 문제를 제기하는 유일한 타당한 기준이다.) 그들은 정치적 요소인 당, 즉 역사적 필요성의 수준에서 필수불가결한 도구인 당이라는 중심적 쟁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들은 또한 혁명에서 당 권위의 유일하게 가능한 형식은 독재적 형식임을 결론내려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당 독재 사이의 되돌릴 수 없는 적대의 유형을 제기함으로써 다시 쓸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혁명 스스로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반복하고자 한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이든 식민지처럼 후진된 나라든 간에 당의 독재는 이행기의 불가피한 표현임을. 맑스주의자의 기본적 임무는 러시아혁명의 거대한 경험에 기초해서 이러한 독재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 속에서 유지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것,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 권력이 어떻게 세계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숙명주의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에 조그만 진전이라도 없다면, 문제의 엄청난 복잡성 속에서 연약한 혁명적 핵심의 고통스런 고립이라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제기된 본질적 문제는 당과 계급투쟁 사이의 관계이며 이러한 맥락 안에서 당의 조직화 양식과 그 내적 삶의 문제가 있다.

     

    빌랑의 동지들이 당의 두 가지 활동에 대한 그들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옳다. 그들은 혁명 준비의 기본으로서 (볼셰비키당 역사가 보여주듯이) 당대의 분파투쟁과 대중조직 내의 투쟁을 강조했다. 문제는 이러한 활동 형식이 혁명 후 사라지는가, 급진적으로 변혁되는가를 아는 것이다. 그 상황은 계급투쟁이 최소한도로 약화되지는 않지만 다른 형식으로 발전하는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어떠한 조직 방법이나 공식이라도 경향과 분파의 성장을 통해 당내에서의 반향으로부터 계급투쟁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중도주의의 단일주의(monolithism)” 같은 러시아의 트로츠키 반대파의 모든 것을 희생한 통일은 역사적 실재에 정면으로 대들었다. 반대로 분파의 인식은 매우 변증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긍정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적절한 맥락에서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빌랑의 동지들은 몇몇 보석같은 문구가 해법이 되지 않는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아직 더 검토해야 할 것은 분파투쟁과 그에 따른 강령 사이의 적대가 어떻게 동질적인 지도력과 혁명 규율과 조화를 이룰 것인가이다. 같은 방식으로 노동조합조직 내의 분파의 자유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단일당과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는가를 우리는 바라보아야 한다. 미래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계속>

     

    미첼, 빌랑37, 193611~12

    재발행 : 국제평론132, 2008년 봄호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notice communistleft 41 2024-03-28
notice communistleft 53 2024-03-25
notice communistleft 64 2024-03-25
notice communistleft 121 2024-03-21
notice communistleft 127 2024-03-13
notice communistleft 83 2023-12-04
notice communistleft 839 2023-03-20
notice communistleft 5434 2021-04-19
157 communistleft 40766 2021-06-21
156 communistleft 2345 2021-06-17
155 communistleft 1970 2021-06-14
154 communistleft 1472 2021-06-12
153 communistleft 2481 2021-06-09
152 communistleft 1246 2021-05-07
communistleft 1414 2021-05-03
150 communistleft 1191 2021-04-28
149 communistleft 1015 2021-04-28
148 communistleft 1016 2021-04-26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