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문서
  • 맑스주의와 사회화 15 :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몇 가지 요소 IV
  • 조회 수: 1246, 2021-05-11 12:24:10(2021-05-07)

  • 맑스주의와 사회화


    KakaoTalk_20210502_132005010.jpg


    프롤레타리아 행정의 몇 가지 요소 IV



    우리 견해에 따르면 당과 대중과의 관계를 조건 지우는 경제 행정의 몇 가지 규범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강화하는 기초를 검토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어떠한 생산체제도 확대 재생산 기초, , 부의 축적 위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유형은 외부적 형식과 표명으로보다는 그 사회적 내용, 생산의 동기, , 계급 관계로 표현된다. 역사의 진화 속에서 내부적이고 외부적 두 가지 과정은 항시적 모순 속에 있다. 자본주의 발전은 생산력의 진보가 그 반대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물질적 조건의 퇴행을 발생시키고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사이, 그리고 생산과 소비 사이의 모순으로 표현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 체제가 본질적으로 진보적이지 않고, 필연적으로 축적과 경쟁으로 박차가 가해진다는 것을 보았다. 맑스는 이러한 대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계급의 잉여노동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그러나 물질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감소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일한 중요성을 지닌다.”(자본, 10)

     

    잉여노동이 불가피하다는, 모든 사회 유형에서 검증된 관찰로부터 시작하여, 문제는 잉여노동의 소유와 파괴 양식, 총잉여노동과 그 기간, 이 총잉여노동과 총노동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축적의 리듬에 집중되어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우리는 맑스의 다른 언급을 제시할 수 있다. “사회의 진정한 부와 재생산과정의 지속적 확대의 가능성은 잉여노동의 기간에 담겨 있지 않고 생산성과 이 생산성이 작동하도록 하는 유리한 조건에 달려있다”(자본, 14). 그리고 맑스는 자유의 영역의 출현을 위한 기본조건은 노동일의 감소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고려사항들은 프롤레타리아 경제의 진화에서 각인되어야 하는 경향을 이해하게 한다. 이는 또한 생산력의 성장을 사회주의의 절대적 증거로 보는 개념을 거부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개념은 중도주의뿐만 아니라 트로츠키도 방어한 개념이다. “자유주의는 소비에트 체제의 엄청난 진보, 즉 사회주의의 헤아릴 수 없는 이점의 구체적 증거들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주의에 의해 쫓겨난 계급들의 경제학자들은 세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산업 발전의 리듬에 대해 완전한 침묵으로 넘기고 있다”(계급투쟁, 1930, 6). (Lutte de classes, June 1930)

     

    우리는 이 장의 서두에서 리듬의 문제가 트로츠키와 그의 반대파의 선입견 중심에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빈곤에 덧붙여 그 리듬을 가속화하지 않고 생산의 동기를 수정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사명에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제적 규모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리듬의 요인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현재 소련에서 일어나는 생산의 리듬은 가장 선진 된 자본주의 기술이 세계 사회주의 경제에 가져올 공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소비를 향한 생산의 재()지향

     

    최초의 경제 과업으로서 소비의 필요에 맞추기 위한 생산 동기의 변화 필요성을 우리가 제기할 때 우리는 분명히 혁명의 즉각적 결과가 아닌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보인 바와 같이 이행기의 경제는 어떠한 경제적 자동주의도 발생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권리의 생존은 착취의 사회적 관계의 존재를 의미하고 노동력은 아직도 어느 정도 상품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조직을 통한 당면한 요구를 위한 노동자 투쟁으로 고무된 당 정치는 구체적으로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발전시킨 노동과 노동력 사이의 모순을 구체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다른 말로 자본축적을 위한 노동력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경제적 강화를 촉진시키는, 순수하게 사회적 목적을 위한 노동력의 프롤레타리아적사용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생산의 조직에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문제가 되는 경제를 지배하는 구체적 물질적 조건에 대해, 그들의 요구에 상응하는 생산의 세부 조직을 발전시키면서 무엇보다 대중의 요구에 의해 고무되어야 한다.

     

    정련화된 경제 강령이 세계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는 틀 안에 있고 국제 계급투쟁과 연결되어 있다면,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소비를 발전시키는 과업에 한정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 강령이 직간접으로 민족 사회주의의 형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동적성격을 취한다면, 잉여노동의 증가하는 부분은 미래에 국제 분업에서 정당화될 수 없는 기업의 건설에 흡수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기업들은 불가피하게 건설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방어하는 수단을 생산하는데 복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련에서 벌어졌음을 살펴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물질적 상황의 개선은 첫째로 노동 생산성에 달려 있고, 이는 또한 생산력의 기술적 수준과 축적에 달려 있음은 확실하다. 둘째로, 그것은 노동 과정 내의 조직과 규율에 상응하는 노동의 산출물과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 존재하는 기본 요소는 축적의 구체적 결과가 축적 그 자체를 위해 인간의 목적지로부터 이탈했다는 특성에 있다. 노동 생산성은 소비의 대상으로 전환되지 않고 자본으로 전환된다.

     

    문제가 소비 확대를 목표로 한 정책을 주창하며 해결될 수 없음을 숨기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한 세대, 몇 세대를 희생시키면서 공업화와 성장의 가속화를 밀고 나가는 것에 반대하는 주요 방향타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희생을 중도주의1)는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역사적 이해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목적(러시아의 실재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었지만)이라도 희생된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정한 힘을 구성할 수 없다. 민족국가적 목표의 최면 아래에서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멀어져 갈 뿐이다.

     

    우리가 발전시킨 국제주의적 고려를 기반으로 논의를 계속하자면 우리는 역사적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적 임무가 근본적임을 (우리가 추상으로 빠지길 원하지 않는 한) 증명해야 한다. 계급투쟁의 지구적 영역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역할을 올바르게 보여준 빌랑의 동지들은 그 문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함으로써 유별나게 제한하고 있다.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영역2)은 착취계급에는 본질적이지만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활동에서는 보조적 문제, 세부적 문제일 뿐이다”(빌랑, 612). 우리는 다시 강조한다. 강령이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세계 정치에 의해 결정되고 제한되지만, 이것이 확립되고 나서야 프롤레타리아트는 소비라는 가공할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데 지나친 조심과 에너지를 쏟을 수 없다. 그 소비의 문제는 아직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에서 단순한 요인으로서 그 역할을 조건화시킨다.

     

    우리 견해로는 빌랑의 동지들이 다음과 같이 선언함으로써 사회주의 건설을 향한 관리의 형식과 이행기 경제의 사회주의적 관리 사이의 구별을 하지 못하는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3) “주어진 국가와 국제적 계급투쟁에서 경제의 사회주의적 관리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는 그러한 사회주의적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으로 사회주의적이지는 않지만, 노동자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고 자본주의 생산과정을 구체적으로 전복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정책이다. 이행기에는 계급은 존재하지만, 필요에 기반을 둔 생산을 향한 새로운 경제적 경로를 발전시키는 것이 완벽하게 가능하다.

     

    그러나 생산의 동기유발이 올바른 정책을 채택하는 것에만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제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고 그 요구에 대한 생산기구를 적응시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에 동기유발이 달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아가 생활조건의 개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노동과정의 더 나은 조직을 통한, 총 사회적 노동, 생산량의 증가 결과이든, 또는 강력한 생산수단의 사용 덕으로 노동 생산성의 증가를 통한 결과이든 간에, 생산능력의 발전의 결과이다.

     

    총 사회노동에 관하여, 노동자 수가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노동력 사용의 길이와 강도에 의해 주어진다고 우리는 말했다. 이 두 요인은 더 큰 생산성의 결과로서의 노동력의 저하된 가치에 연관되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부과된 착취율을 결정한다.

     

    자본주의 정책과 달리, 생산력을 증진시키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정책은, 자본주의 형식에서 절대적 잉여가치를 구성하는 사회적 노동의 강도의 길이로부터 나오는 잉여노동에 기반을 둘 수 없다. 반대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존재와 일치하는 노동의 리듬과 기간과 연결되어야 한다. 이 영역에서 사용 가능한 총 노동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급속하게 없어지더라도, 그것은 낭비되는 사회활동의 제거에 대한 합리적 노동의 조직화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프롤레타리아축적은 그 본질적 원천을 높은 기술 수준을 통한 활용 가능한 노동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다음의 대안을 제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일한 총생산물(또는 사용가치)이 소비된 총 노동력의 감소를 결정하거나, 그 총량이 고정되어 있다면(또는 심지어 그것이 기술 발전 수준에 따라 감소하더라도) 분배되는 생산물의 양은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에, 상대적 잉여노동(엄격하게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에 상대적인)은 더 큰 소비에 완벽하게 조응하며 진정한 임금 인상에 조응하지, 자본주의에서처럼 가공적이지 않다.

     

    생산원가에 대한 경쟁보다 자본주의 관리를 넘어선 프롤레타리아 관리의 우월성은 이러한 생산성의 새로운 사용에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어 프롤레타리아트는 우리가 이미 지적한 형태로 불가피하게 패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구적 방식에서(그리고 더는 문화적 위기를 통해서 뿐만이 아닌) 총 사용가치가 총 교환가치에 맞서게 되는 쇠퇴의 위기 속으로 자본주의를 몰아넣는 것은 노동생산성의 발전이다. 부르주아지는 생산의 무한함에 의해 극복되지만 만족되지 않은 엄청난 요구에 의해 자멸하게 된다.

     

    이행기에서 노동생산성은 각각의 필요에 따른공식에 상응하기에는 갈 길이 멀지만, 그것을 인간의 목적을 위해 충분하게 사용할 가능성은 사회적 문제의 모든 것을 뒤집는다. 맑스는 이미 그것이 이론적 최대치에 미치지 못하지만, 노동생산성의 증가는 자본주의의 기본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 정책이 기술 발전을 자본의 이해에 따라 유용하는 자본주의적 방식인,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 발전에 기반을 두어 이러한 가치 이상으로 더욱 상승시킨다는 전제하에, 생산물과 그 가치 사이의 자본주의적 적대를 줄이고 억누르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기술 발전을 동반한 기본적 축적의 필요성을 전제로 하면, 상대적 잉여 노동의 일부는 직접 노동자에게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축적의 리듬과 축적률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측정의 문제로 나타나지만 어떤 자의적인 요소도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적 과업을 규정하는 원칙적 기반 위에서 배제될 것이다.

     

    축적 리듬의 결정

     

    더구나 축적률의 결정은 네덜란드 국제주의자들의 견해(그들의 저작 116)처럼 경제적 집권주의에 근거하지, 그들 기업 생산자의 결정에 근거하지 않음을 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그들은 이러한 해법의 실천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 후 즉각적으로 결론을 내기 때문이다. “축적률은 개별 기업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질 수 없고 의무적 규범에 대한 결정은 기업 평의회 총회의 몫이다.” 이러한 정식화는 일종의 위장된 중앙집권주의처럼 보인다.

     

    만일 우리가 이를 러시아에서 일어난 것에 적용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 착취의 억압이 생산수단의 집산화로부터 직접 나온다고 주장하는 중도주의의 거짓말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소련의 경제적 과정은 아무리 전혀 다른 기반으로부터 시작되더라도,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동일한 출구를 향해 나아가며 끝나는, 자본주의 경제의 경제적 과정과 같다. 두 가지 모두 노동계급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잉여가치의 증가하는 추출에 기반을 두어 펼쳐졌다. 소련에서는 사회적 측면이나 생산관계에서가 아니지만, 노동과정이 내용적으로 자본주의적이다. “스타카노비즘의 형식을 취한 노동의 강화를 통해 획득된, 절대적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추동이 있었다. 노동자의 물질적 조건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술적 개선이나 생산력 발전과 연결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사회의 재산분배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상대적 참여는 증가하지 않고 감소했다. 이는 가장 번영한 시기에도 자본주의 체제가 항상 발생시키는 현상이다. 우리는 노동자에게 가는 절대적 몫의 실질적 성장이 있는 정도를 확립할 요소를 결여하고 있다.

     

    더구나 소련은 가장 계급의식적인 양질의 노동자에 대한 자격 없는 노동자(농민의 엄청난 보유로부터 오는)를 대체하는 임금삭감의 정책을 실천한다.

     

    이러한 엄청난 잉여가치의 양이 어떻게 응결되는지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상당 부분이 관료적 계급에 간다는 쉬운 대답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은 집합적 재산으로 남아있는 거대한 생산 기구의 존재에 의해 그릇됨이 입증되었고, 그에 비하면 소고기, 자동차와 관료의 휴양처가 아주 작은 수치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 조사뿐만 아니라 공식 통계는 생산수단의 생산(기구, 건물, 공공사업 등)관료주의와 노동자, 농민 대중을 위한 소비재 사이의 엄청난 불()비례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관료주의가 경제를 결정하고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계급임이 사실이었다면, 잉여가치가 사유재산이 아닌 집합적 부로 상당 부분 전환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모순은 이러한 부가 소련 공동체 내에 남아있지만 분배되는 방식에서 그 반대가 되는지를 발견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비슷한 현상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다. 잉여가치의 주요 부분이 자본가의 호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법적 견해로 오직 사유재산인 상품의 형식으로 축적되고 있음을 주목하자. 그 차이는 소련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엄밀히 말해 자본주의 성격을 취하지 않는 데 있다. 이 두 가지 진화의 과정은 서로 다른 기원으로부터 출발한다. 소련에서는 이것이 경제적 적대로부터 나오지 않지만, 정치적 적대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분열로부터 나온다. 그것도 민족 사회주의방어라는 깃발 아래에서,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의 기제로서 통합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발전했다. 대조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진화는 부르주아 경제의 쇠퇴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두 가지 사회적 발전은 전쟁 경제의 건설이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귀결된다. (소련 지도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전쟁 기계를 만든 것을 자랑한다.) 우리가 볼 때 이는 러시아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이다. 이는 10월혁명의 패배가 왜 러시아 내의 계급 관계의 전복으로부터 오지 않고 국제적 전쟁에서 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 혁명보다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계급투쟁의 진로를 지향한 정책을 검토해 보자.

     

    전쟁 경제를 위해 봉사한 러시아 노동자의 착취

     

    이미 우리가 말한 바와 같이 몇몇 동지들에게는 러시아혁명이 프롤레타리아적이지 않았고, 그 반동적 진화 과정은 문화적으로 후진적인 (계급의식의 수준에서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였지만)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또한 후진국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맑스가 파리 코뮨에 대해 언급한 것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숙명주의적 태도를 반대하는데 우리 자신을 한정하고자 한다. 파리 코뮨이 권력 장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미성숙을 나타냈지만, 맑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엄청난 중요성을 보았고 그것으로부터 1917년 볼셰비키를 고무시킨 구체적 교훈을 끌어냈다. 러시아혁명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만 우리는 미래 혁명이 10월혁명의 복사판일 것이라는 것을 이 혁명으로부터 끌어내지는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레닌이 러시아 혁명의 국제적 가치”(좌익 공산주의)에 대해 말할 때의 의미를 상기하는, 10월혁명의 기본적 특성이 이들 혁명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자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론적 무기를 벼리고, 그 과오를 피하면서 마침내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를 위해 역사를 해석한다. 결정적 승리를 하게 한 위치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놓은 조건들을 찾는 것은 역사유물론의 건설에 새로운 주춧돌을 추가하면서 맑스주의 조사 방법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첫 번째 혁명적 파고의 후퇴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시적 고립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에 소련 진화의 결정적 원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이은 사건들을 만든 해석에서, 그리고 이로부터 도출된 자본주의의 진화에 대한 그릇된 전망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본주의의 안정화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일국 사회주의론을 발생시켰고 이어서 소련의 방어정책을 가져왔다.

     

    구체적 목적으로서의 세계 혁명이 배후로 사라진 반면,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도구, 즉 제국주의 공격에 대항하여 그 국가를 방어하는 세력이 되었다. 부하린이 1925년에 세계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세계 혁명이 개입에 맞서고 새로운 전쟁에 맞서는 유일한 보증이므로 그 중요성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처럼 개입에 맞서는 보증의 이론을 펼쳤는데, 코민테른은 그것을 더는 세계 혁명의 이해가 아닌 소련의 특수한 이해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보증은 더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와 연결되어 추구되지 않았고, 프롤레타리아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 사이 관계의 성격과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 사회주의의 방어를 위한 지지의 지점으로만 남았다.

     

    신경제정책에 관하여 우리는 그것이 특히 농민 사이에 자본주의적 야망의 상당한 재연을 가져왔지만, 불가피한 퇴행을 위한 특수한 영역을 제공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중도주의아래에서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본 빈농(smychka)과의 동맹은 목표가 되었고 동시에 중농과 쿨락과의 연대가 만들어졌다.

     

    빌랑의 동지들의 견해와 반대로 우리는 러시아의 경제적 진화를 세계 혁명의 경로로부터 분리하는 정책을 레닌이 신경제정책에서 주장했다는 선언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레닌에게 신경제정책은 국제 계급투쟁이 복원될 때까지의 일시적 유예의 정책이었고, “붙들기정책이었다. “우리가 수년간 지속된 정책을 채택할 때, 우리는 국제 혁명, 그 발전의 신속성과 조건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는다.” 그에게 그것은 독재가 무너지지 않고 자본주의 세력에게 양보하는 일종의 경제적 균형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회주의 경제의 기초를 건설하는 목적과 적과의 계급 협력을 요구하는것이 아니었다.

     

    같은 의미로 레닌이 출처가 의심스러운 문서에 기반을 두어 일국 사회주의의 주창자였다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반면에 트로츠키주의러시아 반대파는 핵심 투쟁이 자본주의 국가들과 소비에트 국가 사이의 투쟁이라는 견해를 높이 사고 있다. 1927년에 소련에 대항하는 제국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보았고, 동시에 코민테른은 중국 혁명의 분쇄를 관장하면서, 노동자들을 계급 위치로부터 찢어내고 그들을 소련 방어의 전선에 내몰았다. 이에 기초하여 반대파는 전쟁을 위한 사회주의 기지로 소련을 준비하는 데 관여한다. 이러한 입장은 이론적으로 전쟁 경제(5개년 계획)를 건설하기 위하여 러시아 노동자들의 착취를 인정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것은 경제를 준비하지만예산 등은 전쟁에 대한 입장으로 극대화하면서 소련이 전쟁을 제거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평화를 위한 투쟁에 대한 모호한 입장을 발표한다. 그리고 공업화의 문제는 방어에 필요한 기술적 차원을 보증하는데 결정적이라고 말한다.(반대파 입장)

     

    이어 트로츠키는 그의 영구 혁명에서 대중의 생활 표준을 높이지만 공업화 체제를 가능한 빠른 속도로 진행할 것을 말한다. 우리는 외부 위협이 소련에 맞서는 성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제국주의 전선으로의 통합으로부터 옴을 알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공업화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더 나은 존재를 보증하지 않고 제국주의 전쟁을 준비하는 목적을 가진 가장 두려운 착취임을 알고 있다.

     

    다음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 건설에 그 기초를 두지 않고 국제적 내전의 연장에 기반을 둔다는 전제하에, 문화적 미성숙과 경제적 부족함과 독립적으로 승리할 것이다.  <끝>

     

    미첼, 빌랑38. 193612~19371

    재발행 : 국제평론134, 2008년 가을호

    번역오세철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notice communistleft 41 2024-03-28
notice communistleft 53 2024-03-25
notice communistleft 64 2024-03-25
notice communistleft 122 2024-03-21
notice communistleft 127 2024-03-13
notice communistleft 83 2023-12-04
notice communistleft 845 2023-03-20
notice communistleft 5438 2021-04-19
177 communistleft 11719 2012-12-22
176 communistleft 5971 2013-01-07
175 communistleft 10174 2013-01-09
174 communistleft 9238 2013-01-14
173 communistleft 21720 2013-01-20
172 communistleft 12025 2013-02-05
171 communistleft 5481 2013-02-13
170 communistleft 235851 2013-02-13
169 communistleft 6317 2013-02-22
168 communistleft 11724 2013-02-28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