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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령] 코뮤니즘 ABC : 제3장 코뮤니즘과 프롤레타리아독재 (7)
  • 조회 수: 14308, 2022-01-09 21:47:44(2021-06-30)
  • 코뮤니즘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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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코뮤니즘과 프롤레타리아독재



    7. 코뮤니스트당과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한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승리를 얻으려면, 프롤레타리아는 치밀하고 잘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은 꼭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가 코뮤니스트당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코뮤니스트당은 틀림없이 자본주의 발전 경향을 잘 알고 있고 실제 상황과 노동계급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잘 알고 있으며, 상황을 적절하게 해석하고 있고 계급을 정렬시키고 전투를 하는 데 유능하다. 그 어느 곳에서도 그리고 그 어느 시대에서도 그것을 대표하는 계급의 모든 구성원을 참가시킬 수 있는 정당은 없다. 모든 계급이 계급의식에 필요한 수준을 얻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스스로 당으로 조직되는 사람들은 한 계급의 가장 진보적인 구성원이다. 그들은 계급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고, 투쟁에서 가장 대담하고 가장 정력적이며, 가장 완고한 사람들이다. 이런 이유로, 당의 당원 수는 그 당이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계급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숫자보다는 훨씬 적다. 그러나 당은 계급의 올바르게 해석된 이해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에, 당은 일반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당은 전체 계급을 이끌고, 권력을 놓고 벌이는 계급 사이의 투쟁은 권력을 놓고 벌이는 정치적 당들 사이의 투쟁에 나타난다. 당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계급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야만 한다. 명백한 계급의 이해관계는 이들 관계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이미 배워왔듯이, 계급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것은 당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지주. 자본주의 발전의 첫 시기 농업경제는 소작농의 반()노예적 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지주는 땅을 소작농에게 빌려주고 임대료로 화폐나 생산물을 받는다. 생산물을 납부하는 방식은 노동자로서는 그의 시간의 절반을 지주의 토지를 경작하는 데 쓴다는 것을 뜻한다. 계급으로서 지주는 소작농이 도시로 가는 것을 막는 것이 그들의 이해관계라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개혁에 반대했다. 그들은 마을에서 오래된 반()노예적 조건들이 유지되길 바랐고, 제조업이 발전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한 지주는 원시 시대 이래 세습된 영주의 영토를 소유했다. 그들 가운데 소수만이 자신의 토지에서 일했고, 그들 대부분은 소작농에 빌붙어 사는 식객과 같이 생활했다. 이 결과, 지주를 대표하는 당은 늘 그리고 아직도 반동의 주된 지지자이다. 이들은 모든 곳에서 옛 질서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는 당이다. 그들은 지주의 지배로 되돌아가길 바라고, 지주의 황제(군주)를 부활시키기를 바라며, “귀족 상류사회의 지배를 확실히 하길 바라고 소작농과 노동자의 완전한 노예화를 이루길 바란다. 그들은 보수당으로 알려진 것을 조직한다. 그것은 반동 정당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예부터 육군과 해군의 장교들은 지주 상류계급 출신이었기 때문에 지주의 당이 장군과 제독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전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찾아질 수 있다.

     

    보기로서 프로이센의 융커(독일에서는 대토지소유자가 융커로 알려져 있다)의 구성원을 말할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식의 일부를 장교 집단으로 보낸다. 비슷하게 러시아에는 우리는 두마의 위원 몇몇, 즉 마르코프 2, 크루펜스키와 다른 사람들처럼 젠트리, 다른 말로 하면 이른바 좀처럼 두마에 등원하지 않는 촌사람인 들소들을 가지고 있다.

     

    차르의 국가위원회는 대체로 이러한 토지 소유 계급으로 이루어졌다. 대부분 잘사는 지주는 공작과 백작과 같은 작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몇천 명의 농노를 소유한 조상의 진정한 계승자이다. 러시아에서 지주 정당은 러시아국민연합, 크루펜스키가 이끈 국가당, 우파 10월당 등이다.

     

    자본주의 부르주아지. 이 계급의 이해관계는 발전하는 국영 공업에서, 다시 말해서 노동자계급에서 뽑아낸 잉여가치로부터 최대한의 가능한 이윤을 보장하는 것이다. 명백히 이런 이해관계는 지주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자본이 농촌에 영향을 미치게 될 때, 옛 조건은 혼란에 빠진다. 자본은 소작농을 도시로 끌어들여 방대한 프롤레타리아를 만들어낸다. 자본은 농촌에서 새로운 필요를 불러일으킨다. 지금까지 유순하고 조용했던 소작농은 무법적이 된다. 지주와 농촌 출신 의원은 이러한 현실이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부르주아지는 그러한 개혁을 아주 희망적인 것으로 여긴다. 더욱더 많은 노동자가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들수록, 더욱더 많은 임금노동이 자본가의 일을 위해 이용 가능해질수록, 자본가는 더욱더 싸게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다. 농촌이 더욱 철저하게 황폐화되고 소규모 생산자가 여러 가지 생산물 생산을 포기하는 정도가 늘어날수록, 대규모 제조업자에게서 생산물을 구매하는 것은 더욱더 꼭 필요해진다. 농촌이 스스로 모든 것을 생산했던 옛 관습이 더욱 빠르게 소멸하면 할수록, 공산품의 판매를 위한 시장이 더욱더 넓어지고 자본가 계급의 이윤도 더욱 더 커질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자본가 계급은 지주를 매도한다. (게다가 자본주의적 지주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임금노동자와 기계 장치의 도움을 받아 운영한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부르주아의 이해관계와 비슷하다. 그들은 더 잘사는 자본가의 정당을 지지한다.) 그러나 물론 자본가의 주요한 투쟁은 노동계급과의 투쟁이다.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계급보다 지주에 맞서 주로 투쟁할 때, 부르주아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만족스럽게 지켜본다. 1904년에서 190510월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가 그들의 코뮤니스트적 이해관계를 알아내고 부르주아에 맞서 나아가기 시작할 때, 부르주아는 노동자에 맞서 지주와 힘을 합친다. 지금 모든 곳에서 자본가 부르주아 당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에 대항하는 거센 투쟁을 하고 있다. 그들은 반혁명의 정치적 총참모본부를 형성한다.

     

    러시아에서 그러한 정당 가운데, 두 개를 언급할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입헌민주당으로 알려진 시민자유당(the Party of Popular Freedom)을 가지고 있다. 그 당의 당원들은 일반적으로 그 당의 머리글자(C. D.)에 따라 사관생도라고 한다. 둘째로 10월당이 있다. 이들은 지금 거의 사라졌다. 산업 부르주아, 자본가 지주, 은행가,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지식인들, 즉 대학교수, 성공한 변호사와 작가, 공장 경영자 등)은 이들 정당의 핵심을 이룬다. 1905년 카데트 당원들은 전제정치에 대해 불평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노동자와 농민을 두려워했다. 19173월 혁명이 일어나고 난 뒤, 그들은 노동계급의 당, 코뮤니스트 볼셰비키에 맞서 정렬한 모든 세력의 지도자가 되었다. 1918년과 1919년 카데트 당원들은 소비에트 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계획을 만들어냈고, 데니킨 장군과 콜차크 제독의 행정부에 참여했다. 한마디로 그들의 피의 반동을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지주의 당과 연합했다. 노동자계급 운동의 압력을 받아 모든 잘 사는 소유자 집단은 그들 가운데 가장 힘 있는 집단의 지도를 받아 하나의 반동분자의 진영으로 통합된다.

     

    도시 쁘띠부르주아지. 독립수공업자와 소매상인, 봉급생활자를 포함하는 이류 전문가 집단, 그리고 하급 공무원이 이 집단에 속한다. 실제로 그들은 계급을 이루지 않고 하나의 뒤섞인 군중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모든 구성원은 얼마간 자본가에 의해 착취당한다. 그들은 때때로 과잉 노동을 하기도 한다. 그들 가운데 많은 수는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파멸한다. 그러나 쁘띠부르주아지의 노동조건은 대체로 자본주의에서 그들의 상황이 얼마나 희망이 없는가를 깨달을 수 없을 만큼 나쁘다. 보기를 들어, 독립 수공업자를 고려해보자. 그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다. 자본은 그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착취한다. 고리대금업자가 그를 착취한다. 그가 일하는 상점이 그를 착취한다. 기타 등등. 수공업자는 자신을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공구를 가지고 일한다. 그리고 비록 실제로는 자본가라는 거미의 거미줄에 철저하게 얽혀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는 독립적이다. 그는 언제나 곧 내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나 자신을 구매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는 노동자와 섞이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그리고 그는 젠트리의 매너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자를 흉내 내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가 신사가 되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교회의 쥐만큼 가난할지라도, 그는 언제나 노동자보다는 자신을 착취하는 사람들에게 더 친밀함을 느낀다. 쁘띠부르주아 당은 공통으로 급진주의자또는 공화주의자의 기준으로 모이지만, 때로는 사회주의자라는 기준에서도 모인다. 자신들이 불행한 이유가 자신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고 잘못 믿고 있는 그들을 흔들어 움직이게 하는 것은 몹시 어렵다.

     

    다른 곳보다 러시아에서 쁘띠부르주아 정당은 대체로 사회주의자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인민주의 사회주의자, 사회혁명가들, 멘셰비키 일부가 이렇게 해왔다. 사회혁명가들은 주로 지지를 받으려고 중농과 부농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농민층. 농촌 지역에서 농민층은 도시의 쁘띠부르주아가 차지했던 것과 아주 비슷한 지위를 차지한다. 농민층은 하나의 단일한 계급이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농민층은 계속 여러 계급으로 분화되기 때문이다. 모든 촌락과 부락에서, 일부 농민은 일을 찾아서 도시로 떠나 완전히 프롤레타리아로 탈바꿈한다. 다른 농민은 잘살고 이자를 받는 농민이 된다. ‘농은 불완전한 계층을 이룬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멸한다. 그들은 말 없는 농민이 되고 끝내 농업노동자로 또는 공장 노동자로 일을 찾는다. 또 다른 농민은 더 성공한다. 그는 출세하고 재산을 모으며, “주인이 되어 농업 노동자를 고용하고 기계장치를 사용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자본주의적 기업인이 된다. 이 때문에 농민은 하나의 계급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농민 가운데서 적어도 세 집단을 구별해야만 한다. 첫째 부농이 있다. 이들은 임금노동을 착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농업 부르주아이다. 둘째 중농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작은 토지를 관리하지만 임금 노동을 고용하지는 않는다. 셋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농촌의 반()프롤레타리아와 프롤레타리아를 이루는 빈농이 있다.

     

    이러한 각 집단의 구성원은 지위의 차이 때문에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투쟁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부농은 대개 부르주아지와 동맹하고 이따금 대지주와 동맹한다. 독일에서 대지주라는 사람은 성직자와 지주들과 함께 하나의 조직을 이룬다. 우리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에서도 그와 같은 것을 찾을 수 있다. 러시아에서 1918년 동안 부농은 모든 반혁명계획을 지지했다. ()프롤레타리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속한 농민은 부르주아지와 부농과의 투쟁에서 노동자를 지지한다. 중농은 더욱 복잡하다.

     

    만일 중농이 대부분 자본주의에서 발전할 길이 없고, 그들 가운데 소수만이 부농이 될 수 있는 희망을 지니며,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빈곤하게 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노동자를 무제한으로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불행은 여기에 있다. 도시에서 독립 수공업자와 쁘띠부르주아 계급의 성원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이 중농에게도 생긴다. 그들은 저마다 부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중농은 자본가와 자금 대여자와 부농에게 억압당한다. 대체로 중농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다. 그는 진심으로 노동계급 강령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와 함께 그는 지주도 끔찍이 두려워한다.

     

    러시아에서 이러한 불안정은 훨씬 더 분명히 드러난다. 중농은 지주와 부농에 맞서 노동자를 지지했다. 그들이 코뮨에서 잘 살 수 없을 이라는 늘어나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부농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노동자에게 반대한다. 그러나 특히 토지 소유계급의 위협을 받을 때, 들은 다시 한번 노동자의 대의를 지지한다.

     

    이와 같은 동요는 당 투쟁에서도 발견된다. 어떤 때에는 중농이 노동자당, 즉 코뮤니스트 볼셰비키 당을 지지하다가, 또 다른 때에는 부농의 당, 즉 사회혁명당을 지지한다.

     

    노동계급(프롤레타리아). 이 계급은 그들의 사슬 말고 잃어버릴 것이 없는사람들로 이루어진다. 노동계급은 자본가에 의해 착취당하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함께 일하고 함께 싸우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동질적 권력으로 그들을 단결시킨다. 이런 이유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계급이다. 이런 까닭으로 노동계급의 당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당이다.

     

    이 당의 목표는 코뮤니스트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프롤레타리아당은 절대로 비타협적이어야 한다. 당의 기능은 부르주아와 흥정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서 부르주아를 내쫓고 자본가의 저항을 분쇄하는 것이다. 이 당은 착취자와 착취당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음을 폭로해야 한다.” (이 문장은 멘셰비키도 서명했던 옛 강령에 들어있다. 그러나 멘셰비키는 그 사실을 거의 잊어버렸고 지금 부르주아와 공모하고 있다.)

     

    그러나 쁘띠부르주아, 이를테면 도시의 비프롤레타리아 빈민 계층과 중농에 대한 우리 당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은 앞에서 말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명백해진다. 자본주의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 다른 계급에 의한 시기의 결과이고 그들 자신의 기만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키려고, 우리는 그들에게 굳세게 증거를 대고 설명해야 한다. 우리는 쁘띠부르주아와 중농에게 아무런 주저 없이 프롤레타리아 진영에 들어와야 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노동자와 함께 싸워야 한다고 참을성 있고 단호하게 주장해야 한다. 부르주아의 승리를 통해 이익을 얻는 유일한 농민은 새로운 지주계급으로 탈바꿈할 부농이라는 점을 중농에게 알리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모든 사람이 프롤레타리아와 공동의 대의를 갖게 하고, 노동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노동계급의 관점에 따라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쁘띠부르주아에 속하고 중농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조건에서 나오는 선입견에 가득 차 있다. 그들에게 진실을 폭로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독립수공업자와 노동하는 농민의 지위가 희망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환상을 품으면서 즐거워하려고 애쓰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중농에게 자본주의가 지속하는 한 언제나 지주가 그들의 등에 올라타는 지주, 즉 젠트리의 형태이든 또는 옛 지주의 형태이든, 또는 새로운 형태의 지주인 부농이 있을 것임을 말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승리와 강화를 통해서만 새로운 토대 위에 삶을 다시 조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의 승리가 오직 노동자의 조직화를 통해서, 그리고 강하고 건전하고 절대적인 당의 존재를 통해서 보장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하는 모든 사람, 새로운 삶을 살 가치가 있는 사람들, 프롤레타리아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싸우는 것을 배워온 사람들을 우리 계급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강고하고 전투적인 코뮤니스트 당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가는 독일과 러시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가 고도로 발전했던 독일에는 러시아의 코뮤니스트 볼셰비키 당과 같은 그런 전투적인 노동계급 당이 전쟁 이전에는 없었다. 전쟁 기간에 비로소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 그리고 다른 동지는 코뮤니스트 당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1918년과 1919년에 많은 봉기가 일어났지만, 독일 노동자가 부르주아를 전복시킬 수 없었던 이유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우리의 비타협적인 코뮤니스트 당이 있었다. 이 당 덕분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는 잘 이끌어졌다. 갖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 당은 다른 코뮤니스트 당의 모범으로 이바지한다. 당의 견고성과 규율은 널리 인정되었다. 사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가장 전투적인 당이고 그 자체로 당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니콜라이 부하린·프레오브라젠스키 지음

    황동하 옮김

     


    <참고문헌>

     

    Marx and Engels, The Communist Manifesto.

    Lenin, The State and Revolution.

    Plehanoff, The Centenary of the great French Revolution.

    Bogdanoff, A short Course of economic Science.

    Bebel, Woman and Socialism(The State of the Future).

    Bogdanoff, The red Star(utopian).

    Korsak, The legalist Society and the Workers’ Society.

     

    아나키즘에 대해서는 다음의 자료를 볼 것.

    Volsky, The Theory and Practice of Anarchism.

    Prepbrazhensky, Anarchism and Communism.

    Bazaroff, Anarchist Communism and Marxism.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에 대해서는 다음을 볼 것.

    Kautsky, Class Interests.

     

    쁘띠부르주아 당의 특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볼 것.

    Marx, The 18the Brumaire of Louis Napoleon Bonaparte.

    Marx, Revolution and Counter-Revolution in Germany.

    Marx, The Civil War in France.

     

     


    <영문 출처> The ABC of Communism(Ann Arbor Paperback : The Univ. of Michigan Press, 1966) 

    <한국어 출처> 빛나는 전망 출판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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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코뮤니스트는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기에 외부로부터의 이론적 공헌과 열린 토론을 환영합니다.

    코뮤니즘 ABC는 '강령 토론 자료'로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의 입장과 다른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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