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문서
  •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
  •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배신자들의 비난


      photo_2021-01-12_12-54-55.jpg

     

    소개

     

    이 글은 1960-61년에 우리 기관지에 실렸고, 나중에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로 된 소책자로 출간한 당 작업의 영어 번역본이다.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한국에서는 주로 좌익 소아병으로 알려짐 : 역자 주)가 출판된 지 40년 후, 전 세계의 기회주의자들은 자신이 노동계급을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에 감히 레닌과 그의 저작들에 대해 찬양하면서, 그의 빛나는 유산과 프롤레타리아의 일상적인 예속에서의 싸움을 부르주아지의 뜻과 필요에 팔아먹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196011, 모스크바에서 '코뮤니스트와 노동자 정당의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고, '결의안'을 내놓는데, 이에 대해 우리는 이미 '돼지들의 선언'라고 이름붙인 바 있다. 그 결의안은 우리의 글에서 자주 참고하는데,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회주의자들이 처음부터 맑스나 엥겔스, 이후에는 레닌에 이르기까지의 인물들의 뛰어난 비판을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듯이, 기회주의의 새로움이란 그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상황> 에 대한 새로운 설명들(악명 높은 발견물들!)을 찾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잘못을 저지른 배신자들을 정당화하고, 새롭고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을 써서 노동자들이 속고 있다는 것을 알기 힘들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새로운 주장이 거짓임을 밝힐 필요가 있어서도 아니고, 이미 죽은 자들에게 바치는 의례에 참여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도 아니다. 레닌과 그의 저작들은 우리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생생하기 때문이다. 용병들과 변절자들이 우리를 살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헛소문들로부터 당의 원칙과 조직을 보호하는 것이 당의 변함없는 책무인 것처럼, 그러한 주제에 대해 정신을 쏟는 것이 차라리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변절자들이 우리와 혁명적 맑스주의에 가까워질수록,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적()의 편으로 돌아선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신비화 속에서 더욱 초라해질 것이다.

     

    이 돼지들의 테제에서 그들은 자신의 글에서, 그리고 이후에 레닌의 글에서 좌익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주장은 불행히도 여전히 그들의 생각 속에 뿌리내리고 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국제 혁명 운동 속에 간교하게 침투한 일종의 변종, 거짓된 극단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글은 차이가 오직 전술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성격을 갖고 있으며, 유럽의 운동과 비교해 본다면, 그 차이가 러시아에서의 운동을 특징짓는 다른 시각뿐만 아니라 독특한 역사적 경험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국제적인 정당의 결정에 달려있었고, 역사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그 시대에 그것이 정당했다고, 명백하고 최종적인 해답을 내렸다. 그러나 이 글은 1920년과 그 몇 년 전, 우리가 아직 레닌을 알기도 전에, 우리와 볼셰비키 사이에 있었던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공통점도 보여준다. 규율되고 중앙 집중적인 맑스주의 당이 지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 혁명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 뒤이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아나키스트와 개량주의자라는 두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타협 없는 투쟁이 그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진짜 자본주의의 중심 권력을 공격할 수 있게 되기 전에 쓰러뜨려야 할 첫 번째 걸림돌임이 증명된,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실질적 담지자인 '극단주의자들'에 대항한 볼셰비키와 우리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들어가 있는 참호이다. 국제적인 정당을 정화하는 것은 완전히 이뤄질 수 없었고,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바이다.

     

    원칙에 있어서 그러한 공통점은 코뮤니스트 좌파의 입장과 실질적인 활동에 대해 숨은 동기 없이 연구하는 것이 어려웠던 이들에게는 명백했다. 그리고 이 공통점은 텔레파시나 신비한 국제적 연결 때문이 아니라 두 운동이 맑스주의의 방대한 학설들을 참고, 연구했기 때문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도 볼셰비키도 그런 신비한 연결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레닌 스스로 그 사실을 그의 저작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야 역사에서 우리의 학설의 틀 속에 이미 교훈이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레닌의 글은 스탈린이 레닌이라는 대가의 가르침을 속이고 배신하기 위해 만들어 낸 '레닌주의'의 창시자의 글로서가 아니라 맑스주의의 위대한 학자라는 관점에서 읽고, 그의 위대함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가 혁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평생에 걸친 이론적 작업 덕분이었지, 그 반대가 아니다. 10월 경험으로부터, 몇 십 년 전부터 이론적 무기를 강화하고 날카롭게 하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왔던 진정한 맑스주의 정당이 지도했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고,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 외에 어떤 더 대단한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레닌의 좌익공산주의는 그 경험의 성취를 평가하고, 앞으로 다가올 혁명적 작업의 기반을 그의 방식에 따라 쌓고자 한 것이었다. 단결 이전에,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좌익의 입장은 질서정연했으며, 레닌은 그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오늘날 배신자로 알려진 이들은 최근 노동계급의 구원자인 체하며, '좌익' 공산주의가 그들에 반대하여 작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왜 1960, 모스크바에서 81인의 돼지들에 눈앞에서 던져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1984년 우리가 여전히 그 글이 우리의 것임을 전에 없이 더욱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인지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24년 전의 글을 영어권의 프롤레타리아도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이유다. 국제 노동자 운동의 역사는, 맑스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연구에서 이야기했던, 노동조합주의가 탄생한 영국에서 일찍이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들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뛰어난 정치적 투쟁을 벌이는 동안 영국의 노동계급은 애국주의자, 협력주의자라는 기회주의와 화려한 대영제국에 의한 부패의 덫에 빠져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혁명적 파도로 영국에서도 코뮤니스트당의 창당되었다. 그러나 이들도 처음에는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시작되었으나 제3 인터내셔널의 모든 정당의 운명이 그러했던 것처럼 스탈린주의적 타락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영국 노동계급은 영국 사회를 문제에 빠뜨렸던 경제투쟁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자랑할 수 있지만, 대륙의 대중들이 역사적 전환점이 된 몇몇 사건들 속에서 겪은 혁명적 투쟁의 전통들이 실질적으로 없다. 이러한 과거의 차이는 영국의 노동자 전위와 국제적 혁명당 사이의 역사적 연결에 언제나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은 미래에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제 코뮤니스트당이란 러시아,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코뮤니스트당이라기보다 세계의 코뮤니스트당이며, 그 기원을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계급의 역사 속에서 경험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경험, 승리와 패배, 정복과 후퇴로부터 찾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영국, 미국, 그리고 호주의 노동자들의 정당도 마찬가지이며, 또한 그들 투쟁의 산물이며 그들의 역사적 이해의 성과이다.

     

    맑스주의가 프랑스와 영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성장하여 러시아에서 성공하였으며, 이탈리아에서 지칠 줄 모르고 방어되었으며, 맑스주의로 인해 멀지 않은 미래에 영국과 미국의 노동자 대중들이 자본의 요새를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원문 읽기>  http://www.sinistra.net/lib/upt/comlef/ren/renegadeae.html


    photo_2021-01-12_12-55-00.jpg


    이탈리아의 좌파

     

    역사적인 상황의 영향으로 인해 이탈리아 사회당 좌파는 러시아인의 상황과 넓은 의미에서 유사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레닌이 걱정한 당면주의-유치주의의 영향에 저항하여 방어를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를 텍스트를 주의 깊게 읽었다거나 능률적인 독자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기서 찾는다.

     

    1905년 경 이탈리아는 노동조합 그룹과 어떤 주목할 만한 발자국도 남기지 못한 채 투쟁에서 사라져 간 경향들을 제외하면 사회주의 운동 경향은 명확하게 두 그룹으로 구분되었다. 개량주의 그룹과 혁명적 생디칼리스트이다. 후자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일관적이게도 결국 당에서 떨어져 나와 이탈리아 노동조합(Unione Sindicale Italiana)에서의 그들의 활동에 집중했고, 민족을 넘어선 네트워크 없이, ()선거주의, ()의회주의뿐만 아니라 비()당 기관이 되겠다는 그들의 주장처럼 정치적인 본질을 잡다하게 숨긴 '생디칼리스트 그룹' 안에 조직되었다. 그들이 이러한 불가지론을 펼친다고 해서 특정 영역에서 선거 경험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행정 선거에서 특정 집단과 연대를 맺기까지 했다.

     

    다른 한 편, 당은 더욱더 우경화되었고 공개적인 개량주의자들은 이전의 프랑스의 보기처럼 부르주아 내각에 참여하는 당시 '현실적 개혁주의자'로 불렸던 이들에게까지 기대었다. 이탈리아의 개량주의자들은 거기까지 가진 않았지만, 그 지도자들은 당의 의회 그룹과 경제적 기관들의 다수로 구성된 총노동연맹(Confederazione Generale del Lavoro)을 압도했고, 최소주의 전략을 선택하고 공개적 투쟁과 파업을 경멸하였다.

     

    명백하게 결정적인 투쟁, 중상모략적이고 난폭한 논쟁에 개입한 위에서 언급한 두 경향이, 반대로 많은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음이 이탈리아의 당내 정통 맑스주의자들에게는 그제야 명백하게 드러났다. 산업과 농업 모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측면이 사악한 민족 부르주아지에 의해 이용되어 온 것이다.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처럼 이탈리아 맑스주의자들은 당과 계급의 협력과 노동조합과 계급투쟁을 대립시키는 것과 같은 잘못된 안티테제를 피했다. 노동조합의 조직적 형식은 할 수 있는 어떤 다른 행위들보다도 계급투쟁과 혁명적 행동으로부터 더한 이탈이었다. 이보다 더한 것은, 의회주의 개량주의자들이 노동조합 네트워크의 기반 위에 생존하고, 노동조합은 대신 부르주아 내각의 관료제적 네트워크 내에서 정치 변호사들을 필요로 했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주의는 계급간의 타협이라는 병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다. 해결방법은 조직적 네트워크에서 어떤 것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량주의에 대한 승리는 소렐주의자, 생리칼리스트 노동조합의 아나키스트적 생디칼리스트의 편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 전의 이탈리아 사람으로 확실히 지성과 문화적 역량이 부족하지 않은 (그리고 이후에도 독재 공식에 대해 공포에 질리지 않았던) 안토니오 그라지아데이(Antonio Graziadei)는 그 당시에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모순을 하나의 용어로 이론화하였다. 개량주의 생디칼리즘.

     

    다른 한 편, 공식은 영국에서 노동조합으로 주로 구성된 노동당의 운동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의회의 활동을 수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정부의 행동을 망설임 없이 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였다.

     

    조직적 형태라는 점에서 모든 순수한 노동 운동 조직은 계급의 합작으로 타락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가장 훌륭한 맑스 경향을 예외로 했을 때 또 다른 한 가지 지점은 구원은 다른 당면주의적 형태 - 공장 평의회 - 를 고안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스스로 레닌주의와 10월 혁명의 꽃인 채 하는 신질서주의(ordinovism)의 관점은 원래 모든 이탈리아의 평의회의 체계를 자본주의 제조업 회사들의 구조에 즉자적으로상응하도록 짜고, 또한 그것을 개량주의 총노동연맹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사회당이 그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비판을 한 것은 옳았지만 이들은 혁명 정당을 건설하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으레 새로운 과정에 대한 새로운 요리법인 것처럼 평의회 운동은 당의 또 다른 하나의 대용물이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그러나 불멸의 환상이여!

     

    10월 혁명에 대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맑스주의에 대해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고 레닌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은 평의회(소비에트)를 똑같은 특유의 발명품정도로 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레닌의 글을 읽어보면, 또는 아무것도 아닌 단어나 페이지를 읽기보다 10월 혁명의 역사적 사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교훈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탈리아 좌파가 반세기 동안 그 자신의 것이라고 여겨왔던 테제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권력을 쟁취하는 무장봉기 투쟁이 정치적인 만큼, 계급 혁명의 근본적인 형태는 정당이다. 정당의 형태를 거부하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극단적인생디칼리스트의 실패라는 서유럽의 경험이 잘 보여주듯이, 개량주의자들이 이끄는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보이콧은 실수이다. 새로운 형태로써 공장 평의회를 위해 노동조합의 형태를 폐기하는 것 또한 이와 유사한 실수이다. 레닌은 소비에트(공개적인 정치 기관으로써, 당면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생산에 연관된 시스템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형태로 이해한다면)를 정당을 대체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또한 실수라고까지 레닌은 설명한다. 나아가, 볼셰비키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에라는 문구를 매우 조심스럽게 내세웠는데, 소비에트가 멘셰비키와 대충추수주의자들 다수로 구성될 때에는 혁명적인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레닌은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조직적, 헌법적 방식도 그 자체로 혁명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소비에트는 혁명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볼셰비키는 소비에트가 그들의 손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고, 그러고 나서야 그들은 봉기를 일으켰는데, 그들의 선전 선동의 내용이 모든 언어적 관용어와 별개로 실제로 모든 권력을 코뮤니스트당에게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표리부동한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에서 독특한 명확성으로 인식되는 이전 사건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19177, 소비에트는 대부분 기회주의자이었고, 레닌은 혁명을 억제했다. 10월이 되자, 상황이 무르익었고, 소비에트는 좌경화했다. 이때가 되어서야 그들은 기반으로 해서 모든 선출된 제헌 의회를 싹 쓸어버리는 것이 가능했고, 레닌은 당의 중앙 위원회 자체에 반대(모든 형식주의자이자 속물인 이들은 당과 그 합법적 위계에 반대한 것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하여 행동의 시작을 호소하고, 조금이라도 이를 늦추려는 사람은 누구든 거칠게도 배신자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우리는 전쟁 이전 맑스주의 좌파가 개량주의자와 생디칼리스트라는 두 가지 방법이 이론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감지했고, 혁명 정당을 위한 옳은 태도를 보였음을 상기할 것이다. 전쟁 전에 그러한 공식은 선거의 비타협적인 태도로만 불충분하게 표현되었지만, 전쟁 직전에서 전쟁을 하는 동안(1914-18) 이탈리아 당을 서유럽의 거대한 정당들의 비열한 종말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전쟁 전 이탈리아 의회의 좌파는 스스로 의회주의 정치에서 계급 협력을 부정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 문제의 조건을 명시했다. 우리는 개량주의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민주주의적 국가의 평화로운 정복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나키스트-소렐주의자들은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부르주아 국가 조직의 파괴를 원한다는 점에서 옳음에도 그들은 봉기 후의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기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제가 필연성이나 전술 때문에 요구되지 않았음에도 1903년 볼셰비키에게 그러하였던 것처럼 이론적으로는 그러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 이행하는 올바른 기대에 경제적 결정주의를 어떻게 올바르게 적용시킬 것인지, 직접적이고 군사적인 의미에서 즉각적인정치적 측면, 러시아에서 매우 후진적이고 이탈리아에서는 반근대적이며, 이를테면 영국에서는 근대적인, 모든 과정의 기능으로서의, 경제적 변형에 관련된 복잡한 사회적 발전.

     

    이것이 좌익공산주의의 핵심이다.

     

     

    <원문 읽기>

    http://www.sinistra.net/lib/upt/comlef/ren/renegadeee.html#k3u13



    <편집자 주>
    이 글은 보르디가주의 경향의 국제 조직인 국제코뮤니스트당에서 발간한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 중 일부를 번역한 것이다.  <소개>는 '서문'의 일부이며, <이탈리아의 좌파>는 '3장. 볼셰비즘의 토대 : 중앙집중화와 규율'의 일부이다. 전체 목차는 아래와 같으며, 한국어 번역본은 「코뮤니스트」 2, 3 ,6호에 실려있다.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  목차


    서문

    I. 1920년 역사적 드라마의 배경

    II. 러시아, 또는 인류의 역사

    III. 볼셰비즘의 토대 : 중앙집중화와 규율

    IV. 볼셰비즘의 역사적 궤적

    V. 반-볼셰비즘의 두 운동: 개량주의와 아나키즘에 대한 투쟁

    VI. 레닌이 한 것으로 주장되는 '타협안에 대한 승인'의 핵심

    VII. 이탈리아의 문제에 대한 부록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notice communistleft 2156 2021-04-19
communistleft 585 2021-12-23
165 communistleft 1158 2021-07-14
164 communistleft 1149 2021-07-09
163 communistleft 963 2021-07-07
162 communistleft 926 2021-07-05
161 communistleft 13833 2021-07-05
160 communistleft 2193 2021-06-30
159 communistleft 1420 2021-06-28
158 communistleft 745 2021-06-23
157 communistleft 9394 2021-06-21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