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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속버스 짐칸에 구겨넣은 휠체어...고향길은 고생길
  • 장애인차별철폐
    조회 수: 10038, 2014-09-12 23:33:52(2014-09-12)
  • 고속버스 짐칸에 구겨넣은 휠체어...고향길은 고생길

       
    2014 장애인 이동권② - 시외·고속버스, 직접 탄다!
    휠체어 탑승 설비 없는 버스 타고 고향가기의 고단함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장애인들은 거리에서 '이동권 쟁취'를 외쳐왔습니다. 이에 따라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저상버스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장애인 이동권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듯합니다. 몇 시간씩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저상버스와 장애인콜택시. 안전을 위협하는 장애인 리프트와 지하철 승강장의 단차 등은 오늘날 장애인 이동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비마이너는 '2014 장애인 이동권 실태 보고서'를 통해 장애인이 이동할 권리는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봅니다. 또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한지도 함께 짚어봅니다. _ 편집자 주 

     

    명절 연휴에 고향에 오가는 일은 쉽지 않다. 9월 6일부터 10일까지 주요 고속도로는 차로 꽉꽉 막히고,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은 표를 구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추석 연휴에 이동하는 예상인원을 무려 3945만 명으로 추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향 가는 일은 어차피 '전쟁'이지만, 중증장애인에겐 전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다. 시외·고속버스로 방방곡곡 못 가는 곳이 없지만, 정작 이러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의하면 올해 6월 현재 운영되는 고속버스는 1875대, 시외버스는 7643대다. 그러나 정작 저상버스, 휠체어 리프트를 장착한 버스 등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는 없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몇 년째 고향에 가보지 못한 장애인들이 많다.

     

    드물게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이 시외·고속버스를 탈 수도 있다. 그러나 비장애인들이 두세 걸음만 옮기면 버스에 탈 수 있는 것과 달리, 장애인은 온갖 불편하고 복잡한 일들을 겪어야만 한다. 9월 5일 전동휠체어를 탄 귀성객 이라나 씨(지체장애 1급, 33)가 동향 친구와 함께 버스로 귀향하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직원이 이라나 씨의 전동휠체어를 싣고 있다. 화물칸이 낮아 휠체어가 잘 들어가지 않았다.

     

    # 화물칸에 구겨 넣어지는 휠체어...그마저도 안 실리면?

     

    이른 11시 40분께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승객대기실에서 이 씨 일행을 만났다. 이 씨는 마침 터미널 직원에게 버스에 탄다고 알리고 오는 길이었다. 10분 정도 지나 직원 4명이 이 씨한테 왔다.

     

    직원들과 함께 강릉 방면 승차장으로 향했다. 승차장에 있는 버스가 여느 때와는 좀 달랐다. 버스회사에서 명절에 귀향하는 수요를 채우고자 노선버스 대신 관광버스를 투입한 것이다. 노선버스보다 낮은 화물칸을 보고 이 씨가 말했다. “이거 휠체어 태워지려나?”

     

    한 직원이 이 씨를 안아 버스 의자에 태우는 동안, 다른 직원들은 휠체어 등받이를 접고 있었다. 여느 전동휠체어와 달리 이 씨의 휠체어는 등받이를 접을 수 있다. 직원들은 휠체어를 들어 화물칸에 싣기 시작했다. 직원 3명이 휠체어를 들어보려고 했으나 쉽지 않아, 이 씨를 태우고 내려온 직원까지 가세했다.

     

    한참을 낑낑대던 직원들은 앞바퀴를 화물칸에 걸친 뒤 휠체어를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다. 화물칸 높이가 낮아 휠체어 조종간이 걸리고 말았다. 직원들은 휠체어를 싣지도, 빼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한참을 들고 있었다. 조종간 나사를 풀어 해체한 뒤에야 겨우 휠체어를 실을 수 있었다.

     

    휠체어를 싣고 버스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버스가 출발했다. 휠체어를 싣기까지 과정을 설명했더니, 이 씨는 예상한 일이라는 눈치였다. 그래도 “휠체어 망가져서 명절에 시내도 못 돌아다니면 어떡하지?”라고 걱정이다. 이 씨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처음으로 시외버스에 탔을 때도 비슷했다고 말한다.

     

    “예전에 춘천에서 강릉까지, 전동(휠체어) 타고나서 처음으로 버스를 타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도 화물칸이 너무 낮아서 전동이 안 들어가는 거야. 직원이 ‘휠체어 못 태우겠다. 내려달라.’ 해서 결국 버스를 못 탔어요. 나름대로 큰맘 먹고 버스를 탄 건데, 트라우마가 생겨서 한동안 버스를 못 탔죠.”

     

    이 씨는 우연히 화물칸이 높은 버스를 발견하면서, 다시 버스를 타게 됐다고 했다. 평소 이 씨가 자주 이용하는 서울-강릉 구간에 배치되는 버스도 화물칸이 높은 편이라 휠체어를 접기만 하면 실을 수 있다.

     

    ▲직원이 이 씨를 들어 버스에 태우고 있다.

     

    # 버스 대 기차, 불편하거나 지루하거나

     

    하지만 화물칸이 높아도 이 씨가 버스에 타려면 번거로운 일을 겪어야 한다. 보통 직원이나 버스 기사에게 자신을 좌석에 앉혀달라고 부탁하는데, 대개 이들이 남성이라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휠체어를 화물칸에 실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눈치 보이는 일이다. 이 씨는 버스 타는 게 부담스럽고 불안해서 1년에 두 번 정도만 이용한다고 했다.

     

    휴게소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다. 이 씨는 버스 기사에게 휴게소에서 전동휠체어를 내려달라, 휠체어에 몸을 올려달라고 부탁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요즘 휴게소에는 수동휠체어가 비치돼 있지만, 누군가에게 수동휠체어를 밀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씨는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어도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참는다고 했다. 하지만 차가 밀려서 버스 안에서 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씨는 “그래서 보통 버스는 밀리지 않을 때를 골라서 탄다. 차가 밀리는 명절에는 보통 기차를 탄다.”라고 말했다.

     

    버스는 막힘없이 달려 늦은 1시 30분께 횡성휴게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날도 이 씨는 휴게소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씨가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시외 교통수단은 기차다. 이동식 경사로 같은 탑승 설비와 탑승 공간, 장애인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그럭저럭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차로는 경부선, 호남선 등 주요 노선이 지나는 도시가 아니면 이동이 어렵다. 직통 열차가 없거나 배차 간격이 긴 문제도 있지만, 선로가 없어서 아예 가지 못하는 곳도 있다.

     

    더군다나 고속열차(KTX)를 제외하면 보통 행선지까지 바로, 혹은 두세 정거장을 거치는 버스보다는 많은 역을 거치는 기차가 더 느린 편이다. 이 씨의 경우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릉터미널까지 버스로 가면 228.7km로, 차가 밀리지 않는다면 2시간 40분 이내에 도착할 수도 있다. 반면 청량리역에서 강릉역까지는 348.4km로, 최소 5시간 12분이 걸린다.

     

    이 씨는 “강릉에 놀러 한두 번 가면 기차 타는 것도 낭만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매번 집에 갈 때마다 5시간, 6시간 기차에 갇혀있어야 하면 낭만은커녕 힘들고 지루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강릉터미널에서 직원들이 이 씨의 휠체어를 내리고 있다.

     

    # 평범한 명절, 평범하지 않은 귀성길

     

    버스는 대관령을 넘어 늦은 3시께 강릉터미널에 도착했다. 승객들이 짐을 한 아름 들고 내리는 동안, 이 씨는 전동휠체어를 다시 빼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릉터미널 직원들도 수 분 동안 씨름한 끝에 겨우 휠체어를 내릴 수 있었다. 직원이 이 씨를 들어 휠체어에 앉혔다.

     

    이 씨가 휠체어를 살펴보다 나사가 하나 빠진 것을 발견했다. 직원들과 함께 나사를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직원이 조종간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듯했다. 이 씨가 우려했던 일이지만 다행히 조종간이 빠지지는 않았다.

     

    터미널 승차장에서 친구와 헤어진 이 씨는 시내로 가기로 했다. 시장에 나온 어머니와 만나기 위해서다. 이 씨가 휴대전화를 꺼내 강릉 장애인콜택시 전화번호를 눌렀다. 상담 직원이 콜택시 6대가 모두 나가 있어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 씨가 휠체어를 몰고 터미널 밖으로 나갔다.

     

    시내까지는 다소 먼 거리지만, 이 씨는 1시간에 한 대꼴로 오는 저상버스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굴러’ 가는 게 낫다고 했다. 앞장서서 가는 이 씨를 따라 20여 분을 걸어갔다.

     

    시내에 들어서 큰길을 따라가니 철교에 강릉역 임시폐쇄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2017년까지 원주에서 강릉까지 복선철도를 건설하면서 오는 15일부터 공사에 들어가게 됐다. 15일 이후에는 열차는 정동진역까지만 운행하며, 강릉역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는 내용이었다.

     

    2017년 이후 서울에서 강릉까지 2시간 이내로 이동할 수 있는 고속열차가 다닐 예정이다. 하지만 완공 전까지는 이 씨가 기차를 이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정동진역에서 강릉역까지는 16.2km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기에는 다소 버거운 거리다. 이 씨가 “설마 대안 없이 공사하진 않겠지……. 그럼 계속 버스 타고 다녀야 하나?”라고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이 씨는 “그나마 내 휠체어는 접히는 거라서 화물칸이 높으면 탈 수는 있는데, 그래도 타기 어려운 건 변하지 않는다. 정부에서 저상버스를 도입한다고 하는데, 강릉 가는 저상버스가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소망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이 씨 어머니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명절에 어떻게 보낼지 물었더니, 강릉 집에서 평범하게 보낼 계획이라고 답했다. 남들처럼 평범한 명절을 보내기 위해 이 씨는 평범하지 않은 귀성길을 겪어야 했다.

     

    ▲철교 옆에 붙은 현수막. 강릉역은 오는 15일부터 임시 폐쇄된다. 2017년까지 이 씨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강릉역에서 16.2km 떨어진 정동진역을 이용해야 한다.

     

    #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한 시외·고속버스는 ‘그림의 떡’일까?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올해 초부터 수차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 타기를 시도하는 등 시외이동권 보장을 촉구해왔다. 이 씨가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향한 날에도 80여 명의 장애인이 고향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승차장에 모였다. 하지만 버스에 탈 수 없었던 이들은 “가족과 고향으로 가는 명절 버스는 장애인에겐 그림의 떡”이라며 ‘그림의 송편’을 두고 그 자리에서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지난 7월 국회에 노선버스 운송사업자가 노선별 1대 이상의 저상버스를 운행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아래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또한 국토교통부는 도로교통연구원에 장애인 고속버스 수요를 예측하는 연구 용역을 맡겼다. 도로교통연구원은 지난 8월 중순 일부 장애인단체와 관계 부처가 참여한 최종보고회에서 48시간 사전예약제 기준으로 고속버스 노선에 저상버스 40대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근거로 국토교통부는 내년도 약 16억 원 규모의 시범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외·고속버스 운송사업자들은 비용 등을 이유로 저상버스 도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계획도 시외버스 노선이 포함되지 않는 등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동편의증진법에도 정부나 운송사업자에 의무적으로 저상버스 도입을 강제하는 조항은 없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현수 정책국장은 “도로교통연구원의 연구용역은 소수의 장애인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기초적인 실태조사와 보수적인 방식의 수요 예측에 그쳤다.”라며 “지금까지 이야기된 것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조 정책국장은 “여전히 시외·고속버스 운송사업자들은 저상버스를 도입하려는 의지가 없다. 정부가 적극적인 계획과 실질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은 요원하다”라고 지적했다.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가 단 한 대도 없기에 억지로 버스에 탄 이 씨도, 버스에 타지 못한 장애인들도 평범한 추석을 보낼 수 없었다. 정부나 운송사업자의 미지근한 대응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설에 장애인들이 버스를 거리낌없이 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언제쯤 이 씨가 편하게 버스에 오를 수 있을까. 또 언제쯤 장애인들이 고향에 가서 ‘그림의 송편’이 아닌 진짜 송편을 빚게 될까.  2014년 오늘에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5일 귀성길에 오르는 시민들 앞에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버스터미널에서 차례상을 올렸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갈홍식 기자 redspirits@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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