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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난 사람 - 윤웅태 동지를 추모하며
  • 조회 수: 2931, 2017-01-11 09:39:21(2016-07-19)
  • 만난 사람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코뮤니스트 운동을 하는 이형로라고 합니다. 지금의 코뮤니스트 조직과 운동은 2000년대 초중반 윤웅태 동지와 함께했던 평의회 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일부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윤웅태 동지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1990년대 말 조합주의와 선거주의 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운동을 모색하던 차에 부산에서 평의회 운동을 전국적으로 제안했습니다. 서울에서도 그 제안과 평의회 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했고, 직접 만나 토론할 필요를 느껴 2001년 저와 동지 한 명이 부산에 내려갔습니다. 그때 처음 윤웅태 동지와 평의회 운동을 제안한 동지들을 만났고, 첫날 윤웅태 동지의 집에 등산하듯이 올라가 새벽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부산 동지들의 활동상을 보았습니다.

    그 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많은 토론과 공동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서울에서도 평의회 운동을 하기로 한 동지들과 함께 서울 노동자민중회의를 결성했습니다. 그때부터 윤웅태 동지와 같은 조직 활동을 하게 됩니다.

    노동자민중회의는 몇 년 후 ‘노동자평의회를 향한 전국회의’가 결성되면서 조직을 해소하고 전국의 여러 동지들과 함께 본격적인 평의회 운동을 펼쳐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윤웅태 동지는 평의회 운동의 이론적 기초 준비, 전국적 조직화 노력, 현장운동의 기반 마련, 연계 운동과의 가교 역할 등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당시에 윤웅태 동지는 자신에 부여된 평의회 운동의 역할 뿐 아니라 부산지역 운동의 역할도 도맡아 과도한 업무와 활동으로 심신이 지쳤고, 저희와 편하게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할 시간조차 얼마 갖지 못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 평의회 운동이 전국적인 확장과 이론적 심화를 이루어갈 무렵, 윤웅태 동지는 이미 지친 심신에 경제적 어려움마저 가중되어 잠시 휴식과 공백기를 갖게 됩니다. 그 상황을 보면서 많은 동지들이 안타까워했지만, 그의 운동에 대한 신념과 헌신을 잘 알았기에 오히려 충분히 쉬고 재충전하여 건강한 모습으로만 돌아오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2006년 이후 다시 연락이 되었고, 2008년 어느 날 서울에 올라왔다는 연락이 왔고, 우리는 반갑게 만나 회포를 풀었습니다. 그다음 만남에서는 반빈곤 운동을 자신의 운동 진로로 결정했다며, 저와 동지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복귀선언과 앞으로 함께할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후 매년 윤웅태 동지와 부산 동지들이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우리가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집회나 행사가 끝나면 늘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친분 뿐 아니라 사상, 운동적 배경이 같았고, 함께 겪은 아픔과 운동의 성과들, 그리고 현실 운동과 앞으로 함께할 일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윤웅태의 모습과 운동을 어떻게 기억하는지요?”

     

    윤웅태 동지는 운동적으로는 이론과 실천, 조직화 능력, 모두를 겸비한 활동가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는 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모습으로 사업을 집행하고 동지들에게 운동을 제안하고 현장을 조직했습니다. 글 잘 쓰고 연설 잘하는 리더가 되기보다는 늘 아래로부터 투쟁을 조직하고 현장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현장 운동가였습니다.

     

    사상. 이론적으로는 평의회운동과 직접 관련된 좌익공산주의, 평의회공산주의, 평의회주의라는 역사적 기반을 가진 각각 다른 혁명운동의 이론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에는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시기라서 부산에서 제안한 평의회 운동은 자생적인 평의회공산주의 사상에 가까웠습니다. 부산에서 운동의 전형으로 제시한 그람시의 공장평의회 운동과 한국의 동학운동은 평의회운동의 사례는 될 수 있으나 혁명적 공산주의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즉 조합주의에서 나타나는 권위주의, 사민주의(의회주의)에서 나타나는 대리주의에 대한 반대와 그에 대한 대안으로 아래로부터의 평의회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를 제시한 것입니다. 또한, 스탈린주의 당 독재로 표현되는 왜곡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맞서 평의회 권력, 평의회 체제를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평의회(계급)와 당(혁명조직)의 관계, 당과 계급의식, 평의회와 국가(권력)의 문제, 노동조합과 평의회의 문제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하지 못한 이론적 한계와 현실에서의 실천 문제가 당시에는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이후 평의회 운동 진영이 코뮤니스트 운동으로 질적인 전환을 하면서 대부분 해소되었습니다.

    평의회 운동은 현재에도 노동조합(주의)을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직접행동으로, 의회주의/대리주의를 넘어서는 직접 민주주의-노동자 직접 정치로, 대대적 투쟁-계급전쟁의 시기 혁명당과 함께 노동자 대중의 물리력을 실질적으로 조직하고 행사할 노동자 봉기- 권력 기관으로 평의회 운동과 평의회 조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평의회는 노동자평의회만이 아니라 빈민을 포함한 프롤레타리아 총회 조직도 포함됩니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생산과 유통과 소비의 주체인 노동자평의회와 프롤레타리아 총회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윤웅태 동지는 개인적으로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억지 논리를 펴거나 강요하지 않았고, 오래 걸리더라도 토론과 설득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자신이 먼저 행동하면서 진심으로 다가섰습니다.

    하지만 운동적 고민이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자신이 먼저 해결하거나 끌어안고 가려고 해서 본인은 몸과 마음에 깊은 병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때 술은 그가 편하게 의지할 친구이기도 했지만, 오래 반복되다 보니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계승사업회가 나아갈 방향-올바른 계승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현재 저희도 먼저 가신 몇 동지의 계승/추모사업회를 주도하거나 함께하고 있습니다. 계승사업은 무엇보다 남겨진 사람을 위한 특별한 사업이 아니라 말 그대로 먼저 가신 동지의 운동과 정신을 계승하는 일입니다. 동지가 살아생전 이루고자 했던 세상과 운동적 실천을 남아 있는 동지들이 온전히 이어나가고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계승사업의 핵심입니다.

    동지와 동지의 운동이 잊히지 않도록 기억하고 동지를 먼저 보낸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추모 사업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너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진심을 담아 이어나가면 됩니다. 하지만 계승사업은 동지의 운동에 대한 공과 과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계승할 정신과 운동을 제대로 규정하여 현실에서 살아있는 운동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3년 전 윤웅태 동지의 선배이자 운동의 동료였던 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의 장례식에서 3년 후의 자신을 보는 듯이 흔들리며 붉어진 그의 눈을 보았습니다. 저를 위로해준다고 여러 말을 건네며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요. 저한테는 있을 때 잘하세요.” 라고 하더군요. 두 동지를 보내며 그것을 실천하지 못해 많이 후회했습니다.

    먼저 간 동지를 계승하는 일은 바로 남아 있는 동지들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함께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가장 계승해야 할 것은 윤웅태 동지가 평의회 운동 시기 보여주었던 아래로부터의 직접 민주주의와 직접 행동에 기반을 둔 계급 운동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그가 노동운동과 반빈곤 운동을 하면서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현장 운동, 대중 투쟁에 기반을 둔 새로운 계급적 연대 운동의 전형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글을 보는 반빈곤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윤웅태 동지와 동지들이 함께 일구어낸 반빈곤 센터가 윤웅태 동지의 빈자리를 잘 채우면서 더욱 발전할 것을 기원합니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또는 저희가 부족해서 많은 일을 함께해야 함에도 하지 못했고, 소수의 동지와만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윤웅태 동지가 남기고 간 운동의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 동지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겠습니다.

    윤웅태 동지가 보고 싶을 때 동지들을 찾아가겠습니다. 윤웅태 동지가 겪었던 아픔을 누구도 겪지 않게 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윤웅태 동지가 SNS에 올렸던 글을 다시 새겨보려 합니다. 그의 생각을 늘 마음 에 담아두고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나 우리가 누군지 궁금해질 때마다 꺼내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활동가는 인민과 함께하고 계급성이 있으며 이념과 주의주장이 있는 사람이다. 차이를 인정하나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신이 있으며 지혜와 식견이 있고 활동가를 만드는 사람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최고급 봉사자들보다 더 우월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찌 저들을 이기겠는가? 우리는 이 사회에서 버려진 자들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파괴와 창조의 사람들이다."

     

    <정리 : 대표 최고운>

     

    윤웅태 동지를 추모하며, ⌜쇠비름⌟ 23호, 2016.7


    쇠비름23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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