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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예멘의 여성들과 우리, ‘곁’에 자리하기 위하여
  • #5 예멘의 여성들과 우리, ‘곁’에 자리하기 위하여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살던 동네는 흔히 ‘달동네’라고 부르는 수준의 아주 가난한 동네였다.
    가난한 동네에는 사건사고가 많다.
    우리 골목에는 허구헌날 밤마다 술에 취해 자신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들놈, 할머니와 함께 사는 세 자매, 아이들이 보기만 하면 도망가던 동네를 배회하는 할머니, 재혼한 남편과 함께 수양딸을 데리고 다른 집에 세들어 사는 아주머니, 간질로 자주 쓰러지는 큰 딸과 여덟 남매를 키우며 정기적으로 굿을 하던 내 친구네 집, 할머니랑 둘이 세들어 살던 또 다른 내 친구, 그리고 부부 간에, 시누이와 올케 간에 벌어지는 심각한 폭력으로 연일 싸우고 소리지르고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우리 집이 있었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족’, 그런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좁은 공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난은 사람들을 서로 밀어내게 만든다. 
    나 하나도 버거운 삶에 다른 이들까지 챙겨야 하는 삶은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다.

    돈이 아주 없던 시절엔 한겨울에도 연탄불을 떼지 못했다. 교회에서 쌀을 주어 밥을 먹었다. 집 밖에 있던 재래식 화장실엔 구더기가 들끓었다. 우린 늘 밤 늦게까지 우리끼리 있었고 종종 이상한 놈들이 집 문을 열고 문 틈으로 고추를 내놓고는 도망가기도 했다. 나는 연탄불 갈기, 빨래하기, 밥하기 등을 비롯해 여러가지 가사노동을 해야 했다.

    소위 ‘선진국’의 기준에서 볼 때 이런 스토리는 ‘아동학대’에 가까운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삶의 비참함에 대해 상상하고 눈물을 흘리겠지만 사실 정작 우리는 그 당시의 삶을 그저 비참함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우리 세 자매는 연탄불도 꺼진 차가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코메디언 흉내를 내며 깔깔거리고 놀았고, 어떤 놈이 문틈으로 고추를 내밀고 도망갔을 때는 다같이 골목으로 나가 범인을 찾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많은 것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어려움에 대응하는 나름의 각종 기술도 스스로 터득했다.

    때로 나는 돈이 없을 땐 거리의 어른들에게 돈을 요청했다. 길에서도 구하고, 어느 가게에도 들어갔다. 
    “아저씨, 저 집에 갈 돈이 없는데 500원만 주세요”
    그렇게 돈을 모아 차비로도 쓰고, 남으면 간단한 길거리 음식을 사먹기도 했다. 
    내가 만난 어른들은 대체로 돈을 잘 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 어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나같은 애들은 거리에서 가난을 팔아 어른들 삥뜯는, 어쩌면 위험한 아이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에서는 선배들과 야학이나 노동자, 철거민 투쟁 현장에 갔다. 
    노동자, 철거민 투쟁 현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주민 간 다툼과 배신과 추행과 권모술수를 보면서 꽤 충격을 받았던 날들을 기억한다. ‘노동자, 철거민=약자=피해자=착한 사람’이라는 등식에 균열이 생겼다. 피해자들은 동일한 집단이 아니고, 피해자는 곧 ‘착한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부당한 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그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내 머리속의 피해자 이미지에 넣어 놓고, 그저 ‘약자고 피해자이니까 착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놓고 그 전제가 무너지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더 크게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현실의 당사자였으면서도, 나는 쉽게 또 다른 이들을, 그 현장을 타자화하고 있었다. 내가 그 현장을 ‘도우러’ 간다는 생각부터가 완전히 거만하고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현장들을 마주하며 생생히 깨달았다.

    사회적 소수자, 경계로 내몰린 자들에 대한 타자화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한쪽 면에는 나의 기준으로 그들의 현실을 단정짓고 고통과 비참함을 상상하면서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있고, 바로 맞닿은 다른 쪽 면에는 그 비참함이 나에 대한 요청으로, 심지어는 피해로 돌아오게 될 수 있다는 경계와 혐오의 표정이 있다.

    가난한 어린 시절에 나와 내 동생들, 친구들은 실제 생활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간 일상의 순간들과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기준에 따라 쉽게 ‘비참하고 불쌍한 아이들’ 혹은 ‘위험 청소년’, ‘위기 청소년’으로 분류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지금 성소수자인 나와 내 친구들도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차별과 혐오에 고통받는 이들’로만 상상되거나 혹은 ‘가정과 나라를 파괴하고 병을 옮기는 위험한 이들’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오랜 세월 여성들은 그렇게 타자화의 대상이 되어왔고, 그래서 때론 성녀이자 미지의 순수한 대상이기를 요구받고 때로는 남자를 죄에 빠뜨리는 위험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노동자, 철거민, 노숙인, 감염인, 장애인, 이주민에 대한 시혜와 혐오의 이중적 태도는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피해자의 모습으로 여겨질 때는 시혜의 태도를 보이다가, 직접 판단하고 맞서 싸우며 움직이는 주체로 등장할 때는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결국 다른 이를 타자화 하는 태도는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의 피해를 경계하기 위한 동기로부터 출발한다. 
    다른 이를 타자화하지 않으려면 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역시 자신이 부딪히고 있는 현실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대응하며, 다양한 전략을 동원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당신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러면 나의 위치는 그의 ‘곁’이 될 것이다. 
    문제를 함께 찾고, 그와 생각과 의견을 나누며 해결방법을 찾아나가는 사람으로서, 당장 도움이 필요한 것들과 함께, 무엇보다 그가 스스로의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고 요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할례와 조혼, 명예살인이 끔찍하다며 그 현실을 이곳의 공포로 가져올 때,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 현실은 왜 지속되고 있나. 왜 그 사회의 수많은 여성들이 그 끔찍한 행위를 자신의 딸에게, 다른 여성들에게 직접 가해자가 되어 이어가고 있을까.
    우리는 할례와 조혼을 단지 특정 종교나 미개한 후진국의 풍습,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성들의 문제로만 단순화할 게 아니라 제국주의와 군사주의, 전쟁과 종교 근본주의, 경제 구조의 영향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분투하며 살아온 예멘 여성들의 삶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할례와 조혼은 처음부터 무슬림만의 풍습도 아니었고, 예멘 사회에도 역사적으로 다양한 변화와 역동이 있었다.
    변화를 추동하던 역동 속에는 누구보다 예멘 여성들이 있었고, 그리고 남성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오랜 노력과 역동은 전쟁으로 인해 다시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분명한 것은, 예멘 난민을 쫓아낸다고 예멘 여성의 인권 현실이 나아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오히려 난민들이 가는 곳마다 쫓겨나 생존의 경계로 내몰리고 전쟁이 지속될수록 예멘 여성들의 현실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편향된 공포와 그에 근거한 혐오가 강화되고 정부의 정책이 난민들을 옥죌 때, 사회적 불안과 위험도 더 커질 것이다.

    예멘 난민 반대 청원 링크와 함께 예멘의 할례와 조혼 관련 글들이 온라인상에 쏟아져 나오던 시간들, 그리고 그것이 인종주의적 혐오로 비판을 받자 예멘 여성을 걱정하는 수사로 뒤바뀌던 일련의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 끝에는 “저런 사회에서 온 이들이 나에게 무슨 피해를 줄 지 모르니 나는 그들을 반대한다”는 결론만이 남겨졌다. 나는 이제 부디 그 시간들이 변화되길 바란다.
    진정 전쟁과 가부장적 폭력에 맞서 치열한 생존 현장을 살아가고 있는 예멘 여성들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이곳에 온 난민 여성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그 ‘곁’이 될 수 있는 자리들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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