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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코뮤니스트 김수행을 기리는 열 가지 기억
김수행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한신대에서 해직당한 후 기고하던 학술계간지 <현상과 인식>(1977년 창간) 필자들과의 만나는 자리였다. 우리 둘은 40대 초반이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엇물림을 줄곧 시도한 <현상과 인식>에는 우리나라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필자로 참여했는데, 그가 실은 글은 ‘현대 학문의 새 경향’(1983년 여름호), ‘상업자본과 상업이윤’(1986년 봄호),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동향들’(1983년 봄호) 등이다. 연구 논문과 토론 그리고 뒷풀이에서의 이야기로 30년을 넘는 동지 관계를 시작했다.
한신대에서 해직된 후 시간강사로 지내다 서울대 교수가 된 것은 김수행 개인에게는 행운이었다. 개인의 행운을 넘어 그것은 서울대를 포함한 여러 대학 학생들의 교과과정 개혁 투쟁의 성과였다. 1984년은 전두환 체제 밑에서 억압받아 숨죽여왔던 학생운동이 한꺼번에 분출한 해였다. 학생회장을 스스로 뽑고 군사훈련을 반대하고 학원 자율화를 주장하는 대자보가 곳곳에 나붙고 집회가 열렸다. <자본론>을 가르치는 마르크스 경제학자를 채용하고 그들이 담당할 교과목을 개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2008년 8월 26일 나를 포함한 일곱 명의 동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긴급체포되어 서울 종로구 옥인동 공안분실에 잡혀있을 때 김수행은 ‘참세상’에 가장 먼저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이명박 정권을 규탄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그 글에서 “이명박 정권은 오세철 교수와 동료들의 구속을 빨리 풀고 ‘새로운 한국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데 동참하기 바란다. 이 벌집, 저 벌집을 자꾸 쑤시다가는 벌들의 반격을 받아 자기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재판과정에서는 변호인 측 증인으로 참석해 판사와 검사에게 마르크스주의와 사상·학문의 자유,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해 호통치며 일갈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과 집회에 참석해 힘차게 발언하던 김수행의 모습은 많은 사회주의자들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서슴지 않고 “나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도 잡아가야지”라며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친, 행동하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술 문제에 대하여 김수행은 그야말로 모범생이다. 애주가이며 가끔 대주가이지만 모임 뒷풀이는 밤 10시를 넘기지 않는다. 집이 멀어서가 아니라 그 다음날 일을 위해 절제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2012년 11월 내 고희 출판기념회에서 김수행은 여러 사람 앞에서 나의 술 문제를 비판했다. 내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건강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을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을 호되게 나무라는 진정한 동지요 벗이었다. 그와 함께 한 잔 하면서 나도 밤 10시를 넘기지 않겠다고 약속하려고 했는데 술 동무가 우리 곁에 없다. 이 자리를 빌어 그에게 약속한다. 술에 빠지지 않고 즐기는 진정한 술꾼이 되겠노라고.
김수행은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코뮤니스트임을 여러 동지들 앞에서 밝혔다. 젊었을 때의 관념으로서의 사상이 아니라 70 평생 마르크스주의 연구자와 코뮤니스트로서의 실천을 통한 귀결점이었다.
잠시 중단했던 거리 강연을 금년 6월부터 혜화동 농성장에서 다시 시작했다. 1회는 내가, 2회는 김수행이 맡았다. 2015년 6월 26일 오후 6시, “세계 공황, 어디로 갈 것인가”였다. “좋은 자본주의는 있을 수 없다. 오직 자본주의를 폐절하고 넘어서는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코뮤니즘 만이 우리의 대안입니다”라고 김수행은 생애 마지막 강의를 했다. 이런 말이 있다. 배우는 무대에서 쓰러지고 선생을 실천의 현장에서 쓰러지는 거라고. 김수행은 재능투쟁 농성장의 거리에서 단호하고 힘찬 노동자의 세상을 외친 것이다.
2015년 8월 18일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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