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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퀴가 닿는 곳, 내 아이의 세상
  • 조회 수: 1155, 2020-12-14 13:33:12(2020-12-14)
  • [비마이너X다이애나랩 기획연재] 차별 없는 가게의 조건

    다음에 올 열차를 기다리며 딸과 지하철 나들이. 전동 휠체어에서 딸을 뒤에서 감싸 안는 형태로 함께 앉아 손하트를 한다. ⓒ이라나
    다음에 올 열차를 기다리며 딸과 지하철 나들이. 전동 휠체어에서 딸을 뒤에서 감싸 안는 형태로 함께 앉아 손하트를 한다. ⓒ이라나

    나에게 ‘차별 없는 가게’라 하면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비장애인, 보행 장애인, 휠체어를 탄 장애인, 반려견, 그리고 아이들이 왁자지껄 모인 풍경. 어떤 문턱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아이와 반려동물도 배제되지 않으며 평화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런 모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바퀴’가 모든 거점에서 큰 장애물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 바퀴가 닿는 곳은 앞으로 내 아이의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길 위에서 수다쟁이가 되는 우리

    휠체어 탄 이들 대부분은 길거리, 식당, 화장실, 커피숍에서 수다쟁이가 될 것이다. 가는 곳곳마다 휠체어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그런 곳을 찾아다니다 결국 길에서 볼일을 다 보고 마는 것이다.

    어렵게 모임 일정이 잡힌다면 가장 먼저 내가 하는 일은 갈 수 있는 식당과 그 공간의 편의성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중 화장실은 과감히 포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입구에 턱이 없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기 때문에. 결국 함께 간 비장애인 일행에게 내가 포기한 부분을 그들 몫으로 지그시 넘긴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조절하고 마시는 무언가도 매우 신경 쓰게 된다. 모임을 한번 치르려면 이 모든 것들이 함께하기 위해 감수하는 기회비용이 된다.

    나는 애견과 가족이 되어 함께 사는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의 모임 ‘개판’의 일원이었다. 우리는 자조모임 형식으로 만나서 애견과의 소소한 일상을,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즐거움을 나누며 ‘장애’를 잠시 뒤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임이 늘 즐겁지만은 않았다. 약속을 정하는 일은 늘 어렵지만, 장소를 선택하는 문제에서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보이지 않게 주눅 드는 감정 소모를 하게 된다. 그렇게 소모된 에너지의 끝자락에서 답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부터인가 ‘그냥 가지 말까… 내가 안 가면 이번 모임은 편하게 진행될 텐데’ 하고 만다. 그렇지만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소외되지 않으려는 모임 취지를 상기하며 마음을 다잡고 가게 된다.

    가장 큰 난관은 휠체어 접근이 되는 애견 펜션 찾기였다. 그런 조건을 갖춘 곳은 비용도 많이 들지만, 좀체 찾기도 쉽지 않았다.

    2019년 어느 봄날의 ‘개판’ 모임. 큰 나무들을 배경 삼아 스무 명 정도 모여 저마다 반려견을 안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늘색 현수막에는 ‘스몰스파크 반딧불이 개애판 반려모임’이라 쓰여 있다. ⓒ이라나
    2019년 어느 봄날의 ‘개판’ 모임. 큰 나무들을 배경 삼아 스무 명 정도 모여 저마다 반려견을 안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늘색 현수막에는 ‘스몰스파크 반딧불이 개애판 반려모임’이라 쓰여 있다. ⓒ이라나

    ‘휠체어 인간’, 사물화되는 우리

    언젠가 한 번은 농담 섞인 말 한마디가 무척이나 불쾌하기도 했다. 사실 친분 있는 관계에서 차별적 언어를 경계하는 일은 웬만큼 일상에서 훈련되지 않는 이상 쉽지 않다. 알면서도 정작 그 언어가 나를 향해 있을 때는 쉽사리 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을 무심코 ‘휠체어 인간’, ‘휠체어 몇 대’ 등으로 일축하여 셈할 때, 한 사람의 존엄함은 소거 당한 채 사물화된다. 나 역시도 평소 가게에 단체 예약을 하러 가거나 가게 공간이 넉넉하지 않을 때 ‘휠체어 몇 대고요’라는 말을 한다. 대개 사장님에게 빨리 자리를 협상하고 쫓겨나지 않으려는 조바심에서 불쑥 그런 말이 나온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툭 튀어나오는 말에도 이내 곧 한 사람의 존엄함에 대해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장애 여성이 아이 그리고 동물과 공존하기

    장애인이 강아지를 키우는 과정도 마치 장애여성이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활동지원사가 강아지 키우는 것을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선택은 평등하지 않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 활동지원사와 이 과정을 한번 거쳤고, 다행히 애견을 불편해하지 않으셨던지라 강아지와도 무탈히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가지면서 지인에게 보내진 강아지는 그 이후 함께 살기 어려워졌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강아지의 일상적 배변처리와 케어까지 활동지원사에게 맡기는 일은 협상보다 강요에 더 가깝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휠체어 탄 엄마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동선

    요즘은 아이를 데리고 식당을 가는 일이 다시 난관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자유로움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며, 아이가 나의 장애를 이해하고 의자에만 앉아 있어 주길 기대할 수도 없다.

    언젠가 한번은 혼자 더이상 아이를 통제할 수 없을 때 결국 매장 내 노동자분과 손님이 아이를 함께 돌본 적이 있다. 하여 우선 아이가 들어가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 쾌적한 공간, 위험하지 않을 공간 등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이미 선택의 폭이 크게 좁아진다. 특히나 휠체어를 탄 엄마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동선은 대형 종합쇼핑몰이 아니면 찾기 드물다. 그러다 보니 가끔 휠체어를 타고 완전한 독립적 인격체로 살기 위해서는 결국 종합쇼핑몰이 답이라 여긴 적도 있다. 일정 이상의 평수와 층수를 갖춘 건물은 장애인화장실, 엘리베이터를 기본으로 갖추도록 법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하남의 한 대형 쇼핑몰은 심지어 반려견 동반이 가능해 매우 감탄하며 찾아간 적이 있다. 차별 없는 가게가 갖춰지는 것은 결국 자본의 힘에 달린 문제일까? 속상한 마음을 접을 수 없다.

    대형 쇼핑몰 푸드코트. 원하는 메뉴를 쟁반 위에 받아 와 테이블에 놓았다. 나는 전동휠체어에, 딸은 어린이 의자에 각각 앉아 식사하기 전 웃으며 찍은 기념사진. ⓒ이라나
    대형 쇼핑몰 푸드코트. 원하는 메뉴를 쟁반 위에 받아 와 테이블에 놓았다. 나는 전동휠체어에, 딸은 어린이 의자에 각각 앉아 식사하기 전 웃으며 찍은 기념사진. ⓒ이라나

    바퀴가 닿는 곳에서 아이와 연결된 세상을 바라며

    내 아이는 나의 장애를 이어받아 뼈가 잘 부러진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뼈 주사를 맞아 백일 이후 골절은 없다. 다만 또래보다 15cm가량 키가 작을 뿐이다. 장애가 있지만 또래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 내 아이는 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다. 아이가 탐색하고 경험해야 할 공간은 생각 이상일 텐데, 나는 휠체어 접근성을 고려하는 한편으로 노 키즈 존, 동물 출입 금지 등 수많은 문턱을 피하느라 아이와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많은 것을 포기할 것이다. 일상에서 그렇게 아이와 공존할 수 없는 기억을 하나둘 만들어갈 생각이 조금은 암울하다.

    그래서 차별 없는 가게가 필요하다. 차별이 없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과 결정에 더없는 자유가 보장되고, 장애를 전면에 내세운 관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위축과 배제가 없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 그런 공간이 바로 차별이 없는 가게이리라. 그렇게 나는 바퀴가 닿는 곳에서 아이와 연결된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싶다.

    필자 소개

    이라나. 중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매우 진지하고 느닷없이 장난기 넘치는 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어쩌다 아이 엄마가 되어 성실히 살고자 합니다.


    <출처>  비마이너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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