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강령)
  •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강령)

     

    2012년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제정

    2023년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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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긴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인류가 심각하게 경험한 감염병 대유행, 기후 위기, 생태파괴, 일반화된 세계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은 자본주의의 막다른 골목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부르주아지의 온갖 처방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더욱 심화하였고, 그 부담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심화하는 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은 새로운 축적의 순환이지만 50년 넘게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오직 전쟁을 통해 살아있는 자본과 죽은 자본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순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유행에 이어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자본주의 모순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다. 장기간 지속해온 위기 속에서 격렬해지는 제국주의 대립과 이윤추구 경쟁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고,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를 전쟁과 빈곤으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전쟁으로의 질주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이며. 이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 없이는 그 어떤 전망도 열어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따라서 세계 노동계급은 다시 한번 코뮤니스트혁명이냐 아니면 제국주의 전쟁이냐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노동계급은 1917~1921년 세계적인 혁명적 투쟁이 패배한 이후 오랜 기간 암흑기와 반()혁명 시대를 거쳐 1968년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노동계급은 1970년대 초 제국주의적 긴장과 격렬함이 세계전쟁으로 확산하는 것을 멈추게 할 만큼 세계 곳곳을 휩쓸며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전투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코뮤니스트혁명까지 나아갈 수는 없었다.

     

    자본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진보적 생산양식이기를 멈추고, 인류에 두 차례에 걸친 위기와 세계전쟁 그리고 파괴와 재건, 다시 새로운 위기를 반복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1차 대전까지 계속 확장했고, 그 이후 파괴의 시기(1914-1945)를 지나 생산 수준이 더 높아지는 재건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새로운 위기가 발생했고 세계적 축적조건을 재구축하려는 시기를 거쳐 왔다.

     

    2007~2008년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자본의 최대위기는 단순한 주기적’, ‘순환적의미의 경기침체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으로부터 생겨난 피할 수 없는 위기와 파국을 맞이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20년 대유행과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은 방아쇠를 당겨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 부르주아지의 무능과 분열을 보여주는 현재의 위기는,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시작과 더불어 우연히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쇠퇴에 빠진 자본주의 경기침체는 40여 년 전부터 1974, 1981, 1991, 2001년에 차례로 있었다. 수십 년간 실업은 사회에서 지속적 현상의 하나가 되었고, 그동안 노동계급은 생활 수준과 생존 자체에 대한 공격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경험해왔다.

     

    자본주의가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해 수많은 사람이 견딜 수 없는 빈곤과 전쟁의 참상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충분히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판매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은 넘쳐나지만, 세계 인구의 절대다수는 생산된 상품을 살 구매력이 없다. 그동안 자본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인위적 시장의 창출을 통해 잠시 비켜 가곤 했으나, 부채에 의지한 위기의 탈출은 신용의 대대적인 상환의 시기가 오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장기적으로 지속해온 경제 위기는 부르주아지가 대유행에 대처할 때도 부적절하고 무질서하게 대응하도록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고, 봉쇄와 생산 중단은 경제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더욱이 자본은 이러한 위기대응 실패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며 더욱 깊은 공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가 인간사회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과 이윤을 위해 생산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결과는 필연적으로 세계 노동계급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제국주의 쟁탈전으로 이어지고, 결국 전쟁을 일으킨다. 이러한 전쟁은 지난 12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이어졌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로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동안의 위기는 자본주의 법칙이 바로 체제의 재앙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의 위기는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을 지속해서 공격할 뿐 아니라 전쟁과 생태파괴를 통해 지구 생명체의 미래까지 점점 더 위협한다. 이 모든 재앙은 자본주의 체제 존재 자체가 노동계급과 인류의 생존, 그리고 지구상의 생명체 존립과도 양립할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경제적 고통에 짓눌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이에 맞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생산과 분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전체 사회정치적 관계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뿐 아니라 그들과 자본주의 국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이른바 노동/진보/좌파정당과 노동조합 기구를 통해서도 노동계급 내부에 이미 깊숙이 스며든 상태이다. 그들은 자본의 좌파로서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지만, 부르주아지가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는데 실제로 도움을 주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계급투쟁의 미래는 노동계급이 노동조합과 자본의 좌파를 넘어 자신의 투쟁과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조직하는 것에 달려있다.

     

    지금은 비록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 투쟁으로 나타나지만, 투쟁 물결이 지구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 계급영역 내의 기본투쟁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인종주의, 민족주의 외피를 쓰고 대중의 심리와 의식을 왜곡시켜, 노동계급이 부르주아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세계 지배계급은 자본주의 위기와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노동계급에 강요하고 있다. 그들이 강요하는 어떠한 희생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 침략자든 방어자든 모든 자본가 정권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통제하기 위해 경쟁하고 싸우는 지배계급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이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과의 전쟁, 지배계급에 맞선 계급전쟁뿐이다. 인류와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 제국주의 전쟁을 근본적으로 끝장내기 위해서는 국제적 계급전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코뮤니즘, 즉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본주의 세계는 경제, 사회, 환경, 보건 등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온갖 종류의 사회적 반란과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세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위기는 계급 대결의 새롭고 전례 없는 가능성과 경로를 열어주었다. 자본주의 위기 전가와 생활 수준 하락에 맞선 투쟁은 세계 곳곳에서 지금보다 훨씬 자주,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이는 대대적인 계급투쟁의 파고가 갑작스럽게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이며, 혁명세력은 미래의 계급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세계 노동계급이 다시 계급투쟁의 주도권을 쥐고 부르주아지에 맞서 전면전을 시작할 때, 혁명세력은 모든 자본주의 수호 세력에 맞서 정치적, 조직적 전투를 벌일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모순은 코뮤니스트혁명 이전에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 모순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억압받는 계급의 저항과 투쟁의 물결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자본에 맞선 모든 투쟁은 오직 코뮤니스트 강령이 계급 속으로 깊이 뿌리내릴 때만 비로소 혁명을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들이 일상적 투쟁의 과정에서 얻게 된 계급의식은 혁명적 의식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투쟁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 후퇴할 수도 있으므로 노동계급에는 계급의 모든 역사·이론적 성과와 경험을 온전히 담아내는 강령을 가진 혁명당이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계급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미래의 혁명적 투쟁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혁명당의 기본적인 과업이다. 또한, 혁명당은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일반화하는 일에 결정적 역할을 하며, 혁명가들의 개입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혁명적 무장을 준비하는 데 필요하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전 세계 노동계급의 단결과 통일을 위해 반드시 세계혁명당(인터내셔널)을 건설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혁명은 국제적이다. 세계혁명은 세계혁명당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세계혁명당 건설은 세계적 수준에서 계급투쟁에 개입하여 전 세계의 혁명진영을 재규합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역사는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당을 만들려는 시도가 너무 때늦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세계혁명당이 만들어지기 전에 혁명 강령의 세부 내용이 세계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토론과 실천을 통해 명료화해야 한다.


    이에 우리는 모든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들과 전투적 노동자에게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세계혁명당 건설과 코뮤니스트혁명의 길에 함께 할 것을 호소한다.

     

     

    계급투쟁 역사와 노동계급의 길

     

    현재 자본주의와 노동계급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있어 맑스주의 방법의 본질은 계급투쟁의 관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계급의 관점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당면한 정세를 계급투쟁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고, 새로운 세계의 주인으로서 착취사회 전복을 위해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자본주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매번 성공하지는 못했다. 1 인터내셔널은 상승하는 자본주의 능력 때문에, 2 인터내셔널은 혁명주의 포기와 민족주의 때문에, 그리고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3 인터내셔널)은 국제주의와 코뮤니스트혁명을 포기한 스탈린주의 반()혁명 때문에 실패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의 반()혁명 세력은 사회주의를 참칭했고, 양 진영의 대립을 위장하면서 세계의 노동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결국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1차 제국주의 세계전쟁의 결과는 러시아와 유럽에서 혁명 물결을 넓혀 나가게 했고, 세계 노동계급에 자본주의의 전복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최초로 시도하게 했다. 이는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191710월혁명으로 입증되었다. 또한, 이 시기 경험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기 국가(조국)를 지지해서 노동계급이 서로 살육하는 것을 묵인, 방조한 사회민주주의 본질을 명확히 폭로하였다. 이로써 제2 인터내셔널 다수당들은 파산을 맞이하였고, 새로운 유형의 혁명정당, 코뮤니스트당의 시기가 열렸다.

     

    하지만 러시아혁명의 고립과 유럽혁명 실패, 관료주의 반()혁명 공세와 이에 맞선 코뮤니스트좌파의 패배, 1927년의 마지막 혁명 물결(1926년 베를린 총파업, 1927년 상하이봉기)의 비극적 패배는, 노동계급이 세계 곳곳에서 펼친 장기간의 혁명 투쟁 시대를 마감했다. 1930년대에는 이미 혁명 물결의 마지막 파고가 소멸하고 말았다. 반혁명 과정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소속 당에 세계혁명이 아닌 러시아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을 부과했고, 또한 노동계급을 배신한 사회민주주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하게 했다.

     

    코뮤니스트당은 민족수호 정당이 되어 버렸고, 파시즘과 스탈린주의 테러는 혁명운동이 최고점에 도달했었던 나라에서 가장 극심했으며, 자본주의 세계 전체가 또 다른 제국주의 대학살(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혁명적 소수는 추방과 탄압과 옥죄는 고립에 처해야만 했다. 계급 전체가 사기 저하와 부르주아 전쟁이데올로기에 잠식되어 있었기 때문에, 혁명가들은 계급투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러한 반()혁명 경험으로 인해 혁명가들은 국가··계급 사이의 관계를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었다.


    1920년대 중반 국제적 혁명의 물결이 패배한 이래 노동계급에 이른바 사회주의’, ‘코뮤니즘’, ‘맑스주의라는 용어보다 더 왜곡되고 남용된 것은 없다. 이전 동구권 스탈린주의 체제와 현재의 중국, 쿠바, 북한과 같은 국가들이 사회주의나 맑스주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주장은 양 진영의 지배계급이 영구화한 가장 큰 거짓이다.

     

    1935년에서 45년까지 2차 제국주의 세계대전 동안에는 ()파시즘민주주의의 수호와 함께 사회주의 조국의 수호라는 거짓이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살육하는 데 노동자를 동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되었다. 그것은 미국과 소련의 주도 아래 두 개의 거대한 제국주의 블록 사이 경쟁이 지배적이었던 1945~89년 사이에 훨씬 더 많이 이용되었다. 동구 블록에서는 러시아 자본의 제국주의 야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서구블록에서는 제국주의 충돌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로 이용되었다. 특히 서구블록에서는 소련 전체주의에 맞선 (자유)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거짓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면서 노동계급 의식을 왜곡했다. 이것은 결국 동구 블록이 붕괴하자 사회주의의 패배’, ‘맑스주의의 파산’, 그리고 노동계급의 종말이라는 가장 큰 악선전으로 이어졌고, 혁명운동의 침체로 이어졌다. 이러한 부르주아의 선전에 자발적으로 가담한 세력은 청산주의 세력이고, 스탈린주의 체제를 방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르주아에 봉사한 세력은 이른바 좌파을 자임하는 세력이었다.

     

    그동안 노동계급의 의식에 큰 상처를 내며 맑스주의와 적대하고 있는 대표적인 반()혁명 세력은 스탈린주의’, ‘파시즘’, 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이들은 서로 적대하고 경쟁하지만, (국가)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고 노동계급과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세력을 공격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공범이다. 이러한 거대한 이데올로기 왜곡은 100년 넘게 맑스주의 연속성과 발전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 혁명가들의 기대와 달리 맑스주의를 왜곡하는 옹호자들은 여전히 운동 사회 내부에서 주류이거나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맑스주의를 혁명적으로 계승하는 세력은 더욱 억압받거나 소수로 남게 되었다.

     

    노동계급에 암흑기였던 1930~40년대에는 맑스주의와 국제주의적 입장을 지키고 있던 혁명적 소수가 급격히 감소한다. 종전(終戰)은 새로운 혁명을 불러오지 않았고, 오히려 러시아혁명의 교훈을 노동계급보다 먼저 학습한 부르주아지가 공격에 나서게 했다. 부르주아지는 독일 도시에 융단 폭격을 했고, 1943년 북부 이탈리아의 대대적 파업을 진압했다. 결국, 종전은 노동계급의 패배를 심화시켰다. 게다가 전후 경제는 더 심각한 불황에 빠지지 않았고, 미국의 지도력 아래 자본주의는 실제로 부흥기를 맞이했다.

     

    전후 재건 시기는 부르주아지 내부에 경제 문제를 확실히 극복했다는 환상을 갖게 했지만, 1960년대 말 경제 위기 재발의 첫 징후들이 나타나 자본주의 세계를 흔들면서 환상은 사라져갔다. 그리고 새로운 전쟁의 위험이 나타났다. 1939년의 독일처럼 1960년대 말의 소련은 자신의 주요한 제국주의 경쟁자에 의해 군사적으로 포위당하고 전쟁 무기에 대한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세계적으로 강력한 두 개의 제국주의 세력의 군대와 그 대리자들이 민족해방이라는 수많은 충돌 속에서 서로 싸웠고, 독일에서는 핵전쟁이라는 세기말적인 위협을 안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군사력을 축적한 철의 장막양쪽에서 대치했다.

     

    하지만 제국주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1968년 프랑스 노동자 투쟁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물결 때문이다. 1968년 프랑스는 9백만 이상의 노동자 파업으로 나라 전체가 완전히 마비되었고, 역사상 가장 큰 파업이었다. 프랑스에 이어 1969년의 이탈리아, 1970년과 1976년의 폴란드 노동자폭동, 1973년 영국 광산노동자 파업, 그리고 코르도바 산업 지역의 통제권을 사실상 노동자들이 행사했던 19695월 아르헨티나까지, 계급투쟁의 물결은 선진국과 제3 세계 국가 모두에서, 그리고 미소 제국주의 블록을 나누는 철의 장막 양측에서 세계의 산업 지역을 휩쓸었다.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19685월 프랑스 총파업과 전 세계에서 터져 나온 노동자 투쟁 분출과 함께 역사의 무대 위에 다시 등장했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각성과 더불어, 소수로 전락한 기존 혁명그룹의 발전과 새로운 그룹의 출현 속에서 정치의식이 고양되었다. 새로운 정치 운동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세대 간의 괴리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혁명가들이 과거 계급투쟁과 연결을 시도하면서 코뮤니스트좌파의 입장을 재발견하게 된다. 판네쿡, 호르터, KAPD(독일 코뮤니스트노동자당), 로자 룩셈부르크, 보르디가가 재출간되었다. 그들은 또한 반혁명에 의해 단절된 국제적 유대관계를 복원한다. 그들은 극소수였고 계급투쟁에 대해 어떠한 중대하고 직접적인 영향력도 갖지 못했지만, 노동계급 내부에서, 특히 반혁명과 세계대전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의 노동자들이 진행하는 한 과정의 징후를 보여주었다. 새로운 세대는 전후 붐과 경제 위기 시작과 맞닥뜨려 미래를 위한 커다란 희망을 품은 투쟁 물결에 참여했다. 이러한 부활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원칙의 명료성을 추구하는 정치적 인자의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켰다. 이는 기존의 혁명그룹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코뮤니스트 유산의 쇄신을 모색하는 새로운 조직을 출현시켰다.

     

    하지만, 1960년대 말 프롤레타리아트의 부활은 험난한 길을 걸었고, 전진과 후퇴의 운동을 거치며 수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특히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코뮤니즘 자체의 죽음에 대한 부르주아의 거대한 선전에 직면했다. 1980년대 말 스탈린 체제의 몰락은, 자본주의의 승리와 계급투쟁의 종말을 선전하는 자본의 선전과 더불어, 노동계급의 계급의식과 전투력의 심각한 후퇴를 가져왔다. 수많은 나라에서 노동계급의 전투가 계속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는 명백하게 계급투쟁과 혁명세력의 운명이 모두 심각한 퇴조기였다. 프롤레타리아혁명과 국제주의의 깃발을 여전히 높이 들고 있는 이들은 최악의 경우에는 스탈린주의 하수인으로 낙인찍히거나 기껏해야 회복할 수 없는 과거에 사로잡힌 몽상가로 간주되었다.

     

    2003년 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대규모 투쟁 분출은 1989년 이후의 계급투쟁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1968년 이래 가장 긴 퇴조기 이후 노동자의 전투력이 회복하는 데 첫 번째 중요한 단계였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2003년 투쟁의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노동자의 연금에 대한 국가의 공격에 대항하는 운동으로 일어난 점이다. 부르주아지는 1970년대 대량실업의 도래에 대해 일련의 국가자본주의적 복지대책으로 대응했는데, 그것은 오늘날 국가부채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된 주요 요소 중의 하나이다. 1930년대는 대량실업과 더불어 어떻게 절대적 빈민화가 폭발적으로 발생하는지를 보여주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직전에 패배하지 않았다면, ‘자본축적의 일반적이고 절대적 법칙은 그 반대편인 혁명의 법칙이 될 만큼 자본주의에 위협적인 요소로 나아갔을 수도 있다. 노동계급의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계급 정체성의 상실에도 심화하는 위기로 인해 이 기억이 서서히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량실업과 사회적 임금의 삭감으로 인해 이제 1930년대의 기억을, 전면화된 불안정과 빈곤화를 겪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나게 했다.

     

    계급투쟁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2003년 이후 노동계급이 1930년대를 다시 강력하게 기억하게 되는 데에는 불과 4~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007~2008년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최대의 자본의 위기는 아프리카 프롤레타리아 투쟁에서 유럽과 남미의 노동자 투쟁, 북미와 아시아의 노동자 투쟁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위기에 빠진 지배계급은 온갖 교묘한 금융적 술책과 함께 위기의 부담을 노동계급에 전가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2008년 이래 임금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과 사회적 복지를 통한 간접적인 공격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쇠퇴하는 자본주의 위기와 파국의 진행은 노동자 투쟁을 고조시키기도 하지만, 노동계급의 정체성과 계급의식을 약화한다. 이는 장기 실업 계층과 불안정(비정규직) 고용 노동자 사이에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났다.

     

    1930년대 대공황이 패배한 노동계급의 사기를 더욱더 떨어뜨렸던 것처럼 2007~2008년의 금융위기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에 엄청나게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그동안의 금융화과정은 금융기관과 기업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수많은 프롤레타리아는 채무자가 되었고, 신용 경제의 전례 없이 세련되고 교활하며 불안정한 발전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을 극단적으로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욱이 복지국가의 해체와 국가부채 증가, 재정 불안은 그것에 의존하는 프롤레타리아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공공부문,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이제 신분처럼 고착화하였고, 수백만의 노동자가 빚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은 그것이 프롤레타리아를 훈육하는 새롭고 강력한 수단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감염병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본주의 위기 전가와 생활수준 하락에 맞선 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2022년 영국의 분노의 여름투쟁을 시작으로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 등에서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벌어졌다. 유럽뿐 아니라 북미, 아시아, 오세아니아에서도 분노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투쟁들은 세계 노동계급의 불만이 높아지고 전투력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은 노동조합의 틀과 부르주아지의 통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불만은 그러한 투쟁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불만이 커지는 만큼 투쟁의 잠재력도 증대하고 있다.

     

    노동계급 다수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지만, 일부는 새롭게 깨어나고 있다. 아직 소수이지만, 생활수준 하락에 맞서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과 기후위기에 대한 반()자본주의 투쟁을 연계하려 하고 있다. 노동계급은 이제 자본주의 체제와 인류의 미래에 대해 훨씬 더 광범위한 성찰을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확산하여 세계의 노동계급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 연대하고,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반대와 생활수준 하락에 맞선 투쟁을 연결한다면, 이것이 자본주의 착취 기반에 대한 타격의 시작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모순과 역사적 쇠퇴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생산 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이 발생한다. 이것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부르주아지와 생산수단에 노동력을 지불하는 노동계급 사이의 모순이다. 노동계급은 생산수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아서 자기 노동력을 부르주아지에 상품으로 팔아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모든 인류를 풍요롭게 할 만큼의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소수의 부르주아지가 모든 이윤을 독점하여 막대한 부를 차지하고 있어서, 절대다수의 노동계급은 어려운 처지에 내몰려 자신이 필요한 상품을 구매할 능력이 없다. 전체사회를 고려하지 않고 부르주아지의 이윤을 위해 생산되는 상품은 자본주의 고유의 경쟁으로 인해 판매할 시장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과잉생산을 불러온다. 과잉생산은 경제 위기와 공황을 심화시키고 넓히면서 사회의 물적, 인적 자원을 낭비하게 만든다.

     

    노동계급은 생산과정에서 사회적 부를 집단으로 생산함으로써 생산의 사회화를 이루었지만, 생산과정에서 결합한 생산수단은 부르주아지가 사적으로 전유하고 있다. 이러한 생산의 사회화는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사적 전유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노동자로부터 더욱더 많은 잉여가치를 전취하기 위한 자본의 시도는 부르주아지와 노동계급 사이의 착취 관계를 나타내며 이것은 계급투쟁을 위한 기반이다. 따라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자신을 방어할 어떠한 특권도 갖지 않는 노동계급은 모든 특권과 사적 소유를 폐지함으로써 자본주의 족쇄로부터 생산력을 해방하고, 전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생산양식인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계급이다.

     

    코뮤니스트 사회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더는 진보적 생산양식이기를 멈춘 채 퇴행하는 사회체제, 즉 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되는 쇠퇴의 시기에 진입해야 한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최고, 최후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시대, 쇠퇴하는 자본주의,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전야라는 역사적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었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은 자본주의의 역사뿐만 아니라 노동자 운동 모두에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볼셰비키 그룹, 스파르타쿠스 그룹, 브레멘 좌익 그룹 등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현시기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해체와 몰락의 시기임과 부르주아 국가기구 파괴와 노동계급에 의한 즉각적인 권력 장악이 필요한 시기임을 강조하며 전쟁과 혁명의 시대임을 천명했다.

     

    자본주의는 1914년 이후 1945년의 파괴 시기를 거쳐, 1945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더 높은 생산 수준으로 발전하는 재건 시기가 있었다. 1914년 이후 시기는 이전 시기와는 대조적으로, 자본이 팽창하고 사회적 재생산이 수축했다. 전후 붐(1945-1970)과 같은 회복은 그러한 재구성을 수반했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초기 대량 파괴(두 번의 세계대전, 불황의 10, 파시즘 그리고 스탈린주의), 세계체계의 재편성(마셜 플랜, IMF 세계은행, 그리고 신기술-주로 자동차나 가전제품과 같은 내구성 소비재)에 근거한 새로운 가치 기준의 강제 등이었다. 이러한 재구성은 1966년 경기후퇴, 1968년 달러 위기와 브레튼우즈 체계의 재정적 붕괴(1971-73)와 함께 동력을 다 소모해버렸다. 실제로 전후의 상승은 1960년대 중반에 끝났지만, 1970년대의 악성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신용 팽창 때문에 1970년대까지 지속했다. 하지만 전후 붐을 이용한 역동성은 여기서 끝나게 된다. 자본주의 체제는 1970년대 초반 이후에는 세계적 규모로 역동적 균형을 회복하려고 애썼지만, 만성적 위기 상태에 들어갔다.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에서 나타나는 이윤율 하락 경향과 잉여가치 실현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장포화의 한계 법칙이 결합하여 위기를 심화하고 만성화한다. 1970년대 초반 이후의 만성적 위기 상태는 해소되지 못했고 이 위기의 근원인 자본의 과잉축적 모순이 1980년대~2007년까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시기 동안 누적, 가중되면서 마침내 세계공황으로 폭발하였다. 또한,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과정은 국지적, 지역적 갈등, 제국주의 대립의 격화, 기후 위기, 대유행 등으로 인한 기근과 생태파괴로 인류의 생존에 파멸적 위협과 재앙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살아있는 한, 인류는 그 생존을 위협당하면서 이 죽어가는 체제가 부과하는 파국의 증대를 감수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이는 쇠퇴하는 자본주의 파국 속에서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선택이 오로지 노동계급에 달려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코뮤니즘을 실현할 물질적 조건은 이미 자본주의에서 만들어져 있다. 코뮤니즘은 오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전체 노동계급의 투쟁과 혁명의 결과로서 탄생할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역사적 쇠퇴의 새로운 국면이 코뮤니스트혁명의 물질적 조건을 충족시킨 것을 넘어, 혁명의 주체를 공격하고 새로운 사회 기반을 파괴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역사는 코뮤니즘을 절실하게 요구하지만, 단지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코뮤니스트혁명이 모든 순간에 구체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의 반()혁명과 사회주의/코뮤니즘에 대한 왜곡 속에서 노동계급은 수차례 패배했고, 계급의식과 조직화 모든 면에서 부르주아지에 대적하기에는 너무 약해져 버렸다. 수많은 패배와 후퇴, 파괴의 과정을 겪으면서 계급투쟁은 부활이냐, 더 깊은 침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 새로운 국면은 노동자 투쟁을 고조시키기도 하지만, 노동계급의 정체성과 계급의식을 약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와 파국의 상황에서 노동계급이 스스로 무장 없이, 계급의식과 전투력을 발전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조급한 대응으로 준비되지 않은 채 적대 계급과 격전을 벌인다면, 또다시 처참한 패배와 나아가 노동계급이 분쇄되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잃어버린 시간의 압박 속에서 투쟁과 조직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급투쟁의 최종목표인 코뮤니즘을 전망하지 않고서는 운동을 발전시킬 수 없으며, 새로운 주체의 성장과 함께 코뮤니스트혁명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코뮤니스트 사회

     

    노동계급은 혁명계급이면서 낡은 체제에서 피착취계급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경제적 해방을 위해서 의존할 수 있는 특권이나 경제적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부르주아 국가기구나 제도에 의존해서는 해방을 달성할 수 없다. 노동계급은 다수의 집단적 힘과 의지를 관철해낼 수 있는 권력을 새롭게 창출하지 않고서는 노동해방을 이루어낼 수 없다. 부르주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대체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코뮤니즘을 위한 투쟁 앞에는, 낡은 생산관계의 지배가 새로운 것의 이해관계를 위해 파괴되는 과도기, 즉 낡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부터 코뮤니즘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인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불가피하게 선행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전 세계에 걸쳐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데, 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새로운 노동자/프롤레타리아 국가의 계급적 목적을 정치적으로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체제이며, 경제적 변혁을 수행하기 위해 착취계급의 소유권을 몰수하고 사회화 부문을 점진적으로 전체 생산부문으로 넓혀 나가는 사회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식은 역사적으로 노동자평의회와 프롤레타리아 총회의 연합으로 나타났다. 노동자평의회는 노동계급 전체를 망라하여 조직될 것이고, 계급 안에서 선출되고 언제나 소환 가능한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평의회 체제에 의해 중앙(집중)화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간을 포함한 코뮤니스트혁명 과정에서 혁명당은 평의회 내부에서 활동하지만, 노동계급 전체의 조직인 평의회를 대신할 수 없다. 혁명당은 코뮤니즘의 필요성을 깨달은 가장 의식적인 노동계급을 재조직하고 전체 계급의식을 코뮤니스트 강령에 가깝도록 일반화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혁명당은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평의회 안에서 코뮤니스트 강령을 위해 활동하고 투쟁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른바 사회주의 체제로 거짓 선전되었던 국가의 당 독재와 같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혁명당의 명령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직 노동자평의회, 프롤레타리아 총회로 구성된 전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정치권력을 가진다.

     

    자본주의로부터 코뮤니즘으로의 이행기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간에도 비()착취계급과 계층은 여전히 존재하며,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내부적인 계급투쟁이 계속 존재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아직, 생산수단은 전체로서 사회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국가체제인 노동자평의회에 속할 수밖에 없다. 계급이 폐지되기 전까지 생산수단은 사회의 절대다수인 노동계급이 독점할 것이다. 따라서 그때까지 전면적인 코뮤니스트 생산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여전히 사회는 계급으로 나누어진 사회이며, 부르주아지를 대신해 지배하는 노동계급이 존재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노동계급의 정치권력을 창출하고 그것을 부르주아 반()혁명세력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자, 코뮤니즘을 향한 경제적 변혁을 위한 수단이다. 소수 부르주아가 독점한 생산수단의 박탈은 고립된 개인들의 집단이 아닌 노동계급의 조직된 힘인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전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며, 이렇게 조직된 힘이 노동자 반()국가의 기초를 형성할 것이다. 이렇듯 이행기 동안 노동계급은 사회의 유일한 혁명계급이기 때문에, 사회계급이 노동계급의 사회화된 부문으로 통합되어 점진적으로 소멸하면서 모든 사회계급이 폐지되고 국가 자체도 소멸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 내부에서의 특정한 부문이나 그룹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는 어떤 종류의 폭력도 배제한다. 혁명의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손에 있는 수단으로서의 폭력은 자본주의와 그 국가를 파괴하기 위해, 그리고 내전 동안의 반혁명적 계급의 저항과 폭력에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승리를 보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과 상관없는 노동계급 내부의 폭력은, 코뮤니즘을 건설하는 데 어떤 건설적인 것도 담당할 수 없다. 이러한 폭력 사용은 노동계급의 활동을 일탈시키고, 다른 노동 계층과의 관계를 왜곡시킨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대체한 사회다. 평의회 체제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최고로 꽃피어 언론, 회합, 집단 의사결정의 자유가 최대로 실현된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참여만이 코뮤니스트 강령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기반과 원동력을 줄 수 있다. 누구도 전체 노동계급의 자주적 활동 없이 코뮤니즘을 만들 수 없고, 누구도 코뮤니즘을 미리 준비해서 노동계급에 넘겨줄 수 없다. 서로에 맞서 분열되지 않는 노동계급의 집단적 실천과 의식만이 수많은 오류를 정정하면서 코뮤니즘을 향한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코뮤니스트 사회는 노동계급의 혁명과 권력 장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생겨난 보다 낮은 단계의 사회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 단계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가 부여되는, 각자의 노동에 따라 각자에게 분배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적 자본가를 소멸시킨 사회이며, 평등한 권리란 이런 사회와 노동자 사이에 적용되는 권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낮은 단계를 거친 다음 단계는 코뮤니즘의 고유한 토대에만 의존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전제로 하여 코뮤니즘으로 지향하는 보다 높은 단계이다. 이 단계는 개인의 분업에 근거한 노예적 종속이 소멸하고, 이와 함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대립이 소멸해야 가능하다. 이 단계는 노동이 단지 생존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로 삶의 욕구가 되는 시기다. 모든 개인의 다면적 발전과 함께 생산력 발전이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하는 시기다. ,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분배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더욱 높은 코뮤니즘으로의 이행기에는 노동자평의회의 의식도 코뮤니스트 강령에 가깝게 발전해야 하며, 동시에 혁명당도 스스로 프롤레타리아트화 되어 국가가 완전한 소멸에 이르도록 준비해야 한다.

     

    원시 공산제를 제외하고 모든 초기 사회는 계급으로 분화된 계급사회였다. 또한, 다른 모든 사회는 재산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기반을 두었다. 하지만 코뮤니즘은 계급 없는 사회이다. 역사에서 코뮤니즘 이전 사회는 인간의 필요에 따른 생산력의 불충분한 발전에 기초해 있었다. 그것은 결핍의 사회였다. 또한, 과거의 모든 사회는 과거의 경제체제, 사회관계, 사상, 편견을 고스란히 유산으로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과거 사회가 사유재산과 다른 사람의 노동 착취에 기반을 두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예제나 봉건사회가 남겨 놓은 사회관계와 사상, 편견들을 고스란히 유산으로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코뮤니즘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코뮤니즘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낡은 유산을 전혀 갖지 않은 사회이다.

     

    사유재산과 착취, 계급분열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산은 가치법칙 및 시장과 화폐를 통한 분배와 소비에 종속됨으로써 경쟁과 무정부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코뮤니즘에서는 가치법칙이 사라지며, 생산은 평의회 체제에 의해 사회화된다. 코뮤니즘은 전 지구적 사회이다. 국가적 경계와 분할은 사라지고 인간의 보편적 정체성과 창조성이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다. 코뮤니즘은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는 종교와 이데올로기, 낡은 전통과 윤리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이다. 계급과 계급 적대가 사라지면 국가는 필요 없게 된다. 코뮤니즘에서 국가는 소멸한다. 코뮤니즘은 국가 없는 사회다. 사회의 행정적 업무는 모든 구성원의 협력, 합의, 집단적 의사결정으로 처리될 것이다. 따라서 코뮤니즘에서 비로소 인간의 자유, 평등의 진정한 이상이 처음으로 실현된다.

     

     

    이른바 사회주의국가들과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

     

    1917년 러시아혁명을 통해 탄생한 노동자국가는 1920년대 후반까지는 노동자 권력 아래 사회주의로 이행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스탈린주의 반()혁명 이후 1930년대부터는 노동계급에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러시아혁명 이후 몇 달 안에 이루어진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의 제도적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1917년 신분제 폐지, 철도노동자 노동시간 18시간 실시, 군대 계급 폐지, 1,886개 전략회사 몰수, 종교의식을 하지 않는 결혼제도 실시, 낙태법 제정, 모자보호 연구소 개소, 1918년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공화국 선포, 사회주의 적군 창설을 위한 법령 선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법적, 제도적인 혁명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노동계급은 생산과 권력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최초의 프롤레타리아혁명인 러시아 10월혁명은 주요 유럽 국가들에서 노동계급 투쟁의 물결이 패배하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고립되면서 사회주의로 이행에 실패했다. 1918년 봄 테일러주의 재도입과 1인 경영 강제 그리고 혁명 성과를 방어하려는 임시조치들, 즉 정치반대 분쇄, 차르 관료 재고용, 자본주의 생산방식과 인센티브 재부과는 러시아 노동계급의 실질적 권력을 깨뜨리고 노동자 정부와 노동자 사이 틈새를 벌려놓고 말았다. 이 과정은 3년간의 내전 동안 혁명적 노동계급의 죽음으로 더욱 굳어졌고, 세계혁명의 연이은 실패는 볼셰비키를 고립시켰다.

     

    당시 러시아는 1차 대전 패배와 내전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세계분업 내 후진적이고 종속적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 자본주의 형식을 들여와 이행을 추구했다. 이러한 상황을 이어받은 스탈린은 5개년 계획 도입과 농업 집산화로 소련이 사회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지만, 오히려 일국사회주의와 반()노동자적 당 독재 강화를 가져왔다. 당이 곧 계급이라는 잘못된 판단 속에 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 당이 노동계급을 대신하는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레닌 죽음과 세계혁명의 명백한 침체에 힘입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선언은 국제주의와의 공개적 단절이었으며, 러시아가 세계 제국주의 권력으로 나아가겠다는 약속이었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승리한 세계혁명 열매임을 주장한 1917년의 볼셰비즘과 완전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러시아 국가와 경제ㆍ경영에서 엉키면 엉킬수록 고립되고 낙후한 상황에서라도 성취할 수 있는 사회주의를 향한 단계를 더욱더 이론화하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인 원시적 사회주의 축적이론은 산업 성장을 노동계급 이해와 사회주의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산업 성장은 노동계급 착취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원시적 사회주의 축적은 본질에서 자본축적을 의미했다.

     

    유럽 혁명운동 패배와 러시아에서 반혁명 과정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구성하는 정당들에 러시아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을 부과하고, 동시에 그 당들이 사회민주주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하도록 하면서 코민테른에 반영되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일국사회주의는 생산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법률상의 소유형식만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의 진정한 성격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 소유의 법률상 측면만을 폐지했다. 노동자는 생산수단 사용에 있어서 어떤 진정한 통제력도 소유하지 못했고, 생산수단은 그들로부터 분리되었다. 결국, 생산수단은 그것을 소유하고 공동으로 담당하는 관료 조직을 위해 집산화되었을 뿐이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일반화된 상품생산 체제이며, 자본주의 생산 목적은 잉여가치 획득과 축적이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단순히 상품생산과 시장의 무정부성에 기반을 둔 이윤추구 체제라는 기본인식을 넘어, 자본주의 핵심은 자본의 사회적 관계 지배이며, 자본은 본질에서 소외된 노동의 자기 확장임을 인식해야 한다. 소련 노동자들은 임금을 위한 교환을 위해 일했으며, 그들은 자신의 노동을 소외시켰고 자본을 생산했다. 소련에서 잉여가치는 사적 자본주의와 같이 새로운 잉여가치를 추출하기 위하여 생산과정에 재투자되었다. 소련은 이러한 자본과 임노동의 사회관계가 생산수단과 생존수단의 국가 소유 제도로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으며, 스탈린주의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국유화)가 전체인구에 의한 소유를 의미한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임이 밝혀졌다. 이것은 단지 소유형태의 법적인 형식이었을 뿐 전혀 노동계급 소유가 아니었다. 결국, 국가와 그 관료 조직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집중화와 계획화는 소유 폐지를 향한 한 걸음 진전이 아니라, 단지 이것을 더 효과적으로 성형하기 위한, 착취강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양립할 수 없지만, 사적 소유의 부재(사회주의 경제 창조를 위해 필요 불가결한 전제조건임에도)는 그것 자체로 사회주의와 동의어가 아니다.

     

    러시아에서 반()혁명은 국가가 주도하고 명령하는 특수한 형식을 취했고, 이것은 10월혁명 이행과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핑계로 민족경제 재조직화로 나타났다. 이 과정은 그 후 중국, 동유럽, 쿠바, 북한 등등에서 추진되었고, 이들 모든 국가는 사회주의적 요소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평의회 권력의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사회주의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를 참칭하면서 자본과 관료 독재가 가장 쇠퇴한 형식으로 지배할 뿐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제국주의 동맹체제 안에서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다르게 프롤레타리아혁명을 한 적이 없다. 따라서 단 한 번도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적이 없는 중국은 과거의 마오주의와 현재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모두 자국 자본 이익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를 희생시키고 탄압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소련 경험은 첫째, 일국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소련에서의 국가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부르주아지가 축출되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일국사회주의 가능성에 대한 스탈린주의 이론 및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나 노동자국가에 대한 환상은 이러한 은폐에 모두 뿌리를 두고 있다. 둘째, 명령경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국유화가 아니라 생산수단과 권력이 노동계급의 지배 아래 존재하는 노동자평의회 체제이어야 한다. 셋째, 러시아혁명의 교훈은 국가기구가 반혁명 도구가 되었고, 이행기에 계급과 국가 사이 관계 문제의 복잡성과 난해함을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프롤레타리아트와 혁명가들은 이 문제를 우회할 수 없으며, 이것을 해결해야만 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노동자국가나 코뮤니스트 사회와 전혀 관련이 없는 중국, 쿠바, 북한과 같은 부르주아 착취체제는 계급투쟁과 세계혁명을 통해 전복하고 진정한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코뮤니즘은 노동계급 자기해방으로, 아래로부터 노동자평의회 권력 창출과 국제적 확장을 통해 가능하다. 코뮤니스트혁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당 역할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당이 노동자평의회를 대신할 수 없으며, 노동계급의 집단적 권력을 당이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은 혁명의 시작과 함께 사회 모든 권력을 노동계급이 집단으로 행사하는 노동자평의회 국제적 권력을 수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동자평의회가 모든 정치, 경제, 산업을 통제하고, 노동계급의 집단적 권력만이 전 사회에 걸쳐 모든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코뮤니즘 생산 관계는 생산수단 국유화와 사적 소유 철폐를 넘어서는 생산수단 사회화이며, 생산수단 사회화는 노동자평의회의 전 사회적 권력이라는 전제가 실현되어야 가능하다.

     

     

    제국주의 전쟁, 민족주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

     

    민족주의는 부르주아지가 발명한 가장 해로운 이데올로기 중 하나이며,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적대관계를 감추고 모든 계급을 민족/국가로 통합한다. 민족, 인종적 증오는 자본주의 사회 체제의 산물이다. 세계 부르주아지는 제국주의 분쟁에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항상 한쪽 편을 선택하라면서 '자국' 지배계급을 위해 같은 노동계급끼리 공격하고 죽이도록 강요한다.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의 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거부하고 양측의 착취자들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현시대에 민족해방을 위한 진보적인 전쟁은 없었다. ()식민지 투쟁 중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이어진 것은 하나도 없으며, 단지 새로운 반동 세력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제국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 그쳤을 뿐이다.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의 결과는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세력으로의 대치로 나타난다. 민족해방투쟁은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한 투쟁은 어떤 경우에도 제국주의를 약화하지 않는데, 제국주의의 뿌리, 즉 자본주의 생산 관계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해방투쟁이 제국주의 블록 하나를 약화하면, 그와 더불어 단지 다른 하나를 강화할 뿐이다.

     

    또한, 민족문제가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는 아직은 열려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족 부르주아지와 동맹하기 위해 자신의 혁명 전략과 전술을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절대 거부해야 한다. 오직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계급이해를 방어하기 위해 단결할 때만 모든 민족적 억압의 기반은 무너질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민족적, 인종적 또는 문화적 분리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계급 연대를 방해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따라서 민족의 독립/해방', '민족자결권이라는 명분으로 민족주의를 방어하는 논리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노동자에게 해롭다. 이러한 논리는 노동자에 부르주아 분파 중 한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자신을 착취하는 세력 사이의 전쟁에서 착취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도록 한다. 모든 자본가는 노동계급의 적()이기 때문에, 자신을 착취하는 계급과 그들 국가의 제국주의적 목적을 위해 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

     

    20세기 이래 국제무대에서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 전쟁은 인류에게 고통과 죽음, 그리고 더 심한 파괴만을 초래했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프롤레타리아혁명은 국제주의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세계의 노동계급이 세계의 모든 지배계급을 적()으로 삼아 연대해야 한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라는 혁명적 원칙은 항상 유효하므로, 노동계급은 자신의 착취자들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오늘날 극단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종교적 저항의 표현으로 테러리즘이 노동계급의 큰 위협이 되고 있는데, 이러한 테러리즘은 결코 노동계급의 투쟁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미래가 없는 사회계층의 표현이다. 테러리즘은 항상 전쟁을 일으키는 수단이 되거나 부르주아지의 조작에 이용당해 노동계급을 곤경에 빠뜨린다. 몇몇 소수의 비밀스러운 행동을 옹호하는 테러리즘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이고 조직화한 집단행동에 기반을 둔 정당한 물리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계급의 무장과 혁명적 투쟁에 걸림돌이다.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주의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 제도는 부르주아 국가의 폭력적 통치를 은폐하여 상대적으로 덜 야만적인 폭력을 사용하고, 주기적으로 선거를 통해 지배계급의 분파 사이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게 한다. 이제 그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합법적인 지배를 보장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선거는 노동계급이 자신을 다스릴 사람을 직접 선출하고 자신이 정치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부르주아지는 국가의 폭력을 통해 전 사회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특권을 가졌기 때문에, 어떤 특권이나 착취도 필요가 없는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의 국가를 그대로 이용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자본의 국가기구나 그 제도, 장치 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서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투쟁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체제 내부에서 개혁을 얻어낼 수 있었던 시기에는, 선거 참여와 의회 진출을 통해 생활개선과 개혁을 위한 압력수단으로써 그것을 이용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19세기 동안, 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독재정권 아래에서의 보통 선거권을 위한 투쟁은, 노동계급이 자신을 조직했던 가장 중요한 요구 중의 하나였다. 선거 캠페인을 하는 것도 노동계급 강령을 위한 선전 및 선동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정치의 실체와 위선의 폭로를 위한 연단을 의회에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코뮤니스트혁명이라는 의제와 혁명의 가능성을 직접 내걸어야 하는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선전 및 선동수단으로서 선거와 의회의 활용이 혁명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의회와 선거 개입에 대한 전술이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적 장치를 유지하고, 노동자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경향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에 대한 개입, 각종의 선거 연합은 그들이 내건 급진적이거나 혁명적 수사와 관계없이 노동계급의 자립성과 자기조직화를 저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노동계급은 노동자의 해방이 의회의 장악이나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노동계급이 의회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뒤 사회주의를 입법화하는 동안 지배계급이 평화적으로 기다려 줄 것이라고 믿는 의회주의의 환상일 뿐이다. 의회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를 위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자본주의 사회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관은 의회 밖의 군대, 사법기관, 국가 관료, 보안 세력, 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사기와 다름없다. 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백 번 넘는 투쟁이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1년에만 수만 번의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고작 몇 년에 한 번 치루는 선거만으로 노동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력을 빼앗기고, 대부분의 일상에 대한 지배를 받는다. 이것이 노동자가 선거를 통해 노예가 되는 이른바 민주적 권리의 실체다. 노동자가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혁명의 과제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기구와 제도(의회/선거제도 포함)를 파괴하는 것이다.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시대를 맞아 세계의 노동계급은 의회주의 보통 선거권의 잔해 위에 노동자평의회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세우고,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다른 잔재 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세워야 하는 역사적으로 중대한 길에 서 있다. 이러한 시대에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어떤 혁명적 의도와 관계없이 단지 죽어가는 자본주의 껍데기인 의회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일일 뿐이다. 코뮤니스트혁명의 직접적 목표를 내걸어야 하는 지금 노동계급의 유일한 과제는 바로 낡은 사회질서인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 소수이지만, 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자신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정치에 맡기지 않고, 투쟁을 통해 스스로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노동계급의 미래이다.

     

    노동계급은 4, 5년마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부르주아 선거 사기극에 맞서 선거 참여 방침이 아닌 계급적 입장에서 선거 거부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는 정치적 무관심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현장과 거리에서 계급투쟁을 재개하고 노동자평의회와 혁명당 건설에 나서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계급의식을 갉아먹는 대의제와 수동성을 강요하는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노동자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노동계급 정치를 실현할 때 가능하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 확산과 계급적 연대를 통한 노동자 자기조직화에 달려있다.

     

    현재와 같이 노동계급이 사회혁명을 주도할 유일한 계급으로 성장한 이상, 이제는 객체로서가 아닌 다른 계급에 대해 독립성을 획득해야 하며, 이것은 노동계급의 자립과 자기조직화로 나타나야 한다. 의회주의를 포함하여 모든 부르주아 정치 형식인 대리주의는 계급의 자립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의 영역인 의회가 아닌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부르주아 정치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노동조합과 노동자평의회

     

    노동조합은 18~19세기에 노동계급이 자신을 방어하고 생활수준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서 성장했다. 자본주의가 최대로 번영하던 시기인 19세기에는 노동계급이 격렬하고 처절한 투쟁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이해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조합조직을 건설했는데 그것이 노동조합이다. 당시의 노동조합은 노동자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개혁을 위한 투쟁에서 근본 임무를 수행해온 조직이었고, 그들 계급에 충성을 다하는 투사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이르러 노동조합의 성격은 변화했다. 노동조합은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했으며, 자본주의가 위협받는 매우 위태로운 순간에도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 해왔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충성을 다할수록, 노동자에게 약간의 부스러기를 주면서 더욱 관료적으로 되었고, 노동자의 진정한 이익을 점점 더 대변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회 전반으로 가치법칙이 확장되면서 노동조합은 이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관리 역할을 한다. 자본의 실질적 지배 아래서 전 사회와 노동조합과 같은 모든 기구는 시장으로 흡수된다. 자본의 지배에 맞서려고 만들어진 조직이 이제 그것의 방어자가 된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전복을 위한 유용한 도구가 아니며, 혁명가가 노동조합을 혁명 기관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늦게 압축적으로 발전한 한국도 마찬가지이며,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급성장한 민주노조운동이 1990년대 말 이후 자본과 시장에 급격히 포섭되는 과정에서 똑같이 나타났다. 이러한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환상은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연대와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대중집회, 노동자평의회를 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노동계급은 20세기 가장 혁명적 투쟁에서 자신의 혁명적 임무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냈다. 소비에트 또는 노동자평의회, 즉 노동자 총회가 통제하는 대표들의 회의가 그것이었다. 또한, 지난 70여 년 동안 진행된 수천 번의 와일드캣(비공인) 파업과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 경험이 그것을 만들어 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투쟁은 자발적으로 일어났으며, 투쟁을 쉽게 할 수 있게 단순한 조직 형태를 띠었다. 그것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선출하고 언제나 소환할 수 있는 대표로 구성된 파업위원회, 대중총회의 형식이었다. 이와 같은 조직이 평의회 형태의 기초가 된다. 투쟁의 형식과 내용은 평의회 조직에서 하나로 결합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을 넘어서려는 투쟁은 계급투쟁에 적합한 조직 형태인 파업위원회와 대중총회로, 더 나아가 노동계급의 자기 권력을 향한 전면적이고 공공연한 투쟁을 벌여나갈 노동자평의회를 향해야 한다.


    자본에 대항하는 투쟁을 확산하고 발전시킬 가능성은, 노동계급 내부에 전투적이고 의식적인 세력이 얼마만큼 활력 있게 존재하는가에 달려있다. 노동자 투쟁에 참여하여 투쟁을 독려하고 투쟁 전망을 제시하는 일은 혁명가의 기본임무이다. 혁명가는 비록 경제 조건의 개선을 위한 것일지라도 노동조합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모든 계급투쟁을 지지한다. 이러한 경제 투쟁조차 노동자를 의식적으로 만들고 세계를 변화시킬 단결과 연대의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투쟁에 대한 잘못된 환상이 퍼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노동자 투쟁에서 노동조합과 그 조직질서가 어떻게 투쟁을 이탈시키고 통제하는가를 지적하고, 단호하게 비판하며, 노동자들이 자신의 집회와 선출된 파업위원회에서 자신만의 투쟁 형태를 만들 때만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동조합 투쟁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계급이 자신감을 얻고 광범위한 대중에게 투쟁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투쟁의 끊임없는 시도와 아래로부터의 독립적인 계급투쟁이 결합해 노동자의 진정한 계급조직인 노동자평의회 건설을 현실에서 앞당길 것이다.

     

     

    자본의 좌파와 공동전선

     

    이른바 사회민주주주의정당들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 "민족(조국)의 수호"를 외치면서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이탈했다. 사회민주주의는 1918년과 1923년 사이에 혁명적인 노동자 봉기를 분쇄하고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포함하여 수천 명의 코뮤니스트를 살해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사회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계급투쟁의 시기에는 노동자당을 표방하면서 자본주의의 방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고, 계급평화의 시기에는 노동자들에게 의회주의, 선거주의 환상을 확산시킨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버팀목으로 현실에서는 개량 없는 개량주의의 옹호자로 행동한다.

     

    이러한 제2 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와 단절하면서 출발한 코뮤니스트정당들은 코민테른의 타락과 스탈린주의 반혁명으로 국제주의를 포기함으로써 다시 자본주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코뮤니스트당(공산당)일국사회주의이론 수용은 부르주아의 재무장화에 참여, 인민전선에 참여, 그리고 전후 국가재건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결국 민족자본의 진정한 협력자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스탈린주의 공산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현재에도 자본의 정치기구에서 좌익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노동자/민중또는 진보/좌파의 이름으로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해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과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부르주아 선거 서커스에 노동자의 이름을 팔아 참여해 선거 환상을 퍼트리고, 결국 부르주아의 한 분파, 자본의 좌파로 자리 잡은 세력이다. 이외에도 사회주의자또는 코뮤니스트를 자임하며,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자본의 좌파도 있다. 그들은 여전히 사회민주주의를 재창조하려 하거나 스탈린주의를 부활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맑스주의의 이름으로 계급 운동 전반에 악영향과 심각한 혼란을 주고 있다. 이들은 국유화를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면서 '국가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둔갑시켜 스탈린주의 체제를 방어하고 있는데, 이것은 맑스주의와 무관하다.

     

    인민전선과 공동전선은 노동자 정부 수립을 위해 다른 계급에 기반을 둔 정파와 동맹을 맺는 전술이다. 이렇게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부르주아 어느 정파의 이해관계와 혼합하는 시도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통제하고 잠재워 결국 계급의 자립성을 저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전술의 현실은 노동/진보의 가치를 사용하지만, 사실상 부르주아 정파인 자본의 좌파와 기회주의 세력에 이른바 노동자의 벗이라는 환상을 유지해줄 뿐이며, 더욱이 노동자들이 그것으로부터 단절하는 것을 지연시킬 뿐이다.

     

    한편, 노동자 운동 내의 공동전선은 부르주아지에 맞선 특정 사안에 대한 투쟁에서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목표를 위해, 개량주의나 중도주의 조직과 공동으로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과 계급 연대의 표현인 공동행동을 벗어난 정파 간의 상층부 공동전전은 인민전선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의 자립성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계급투쟁에 임하는 혁명가들의 원칙은 아래로부터의 공동행동을 통해 계급투쟁을 확산시키고, 계급의식의 발전을 이루는 것이지, 자기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야합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전선을 통해서 계급적 원칙이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훼손하는 세력을 허용하게 된다.

     

    노동자주의, 조합주의, 민족주의, 사민주의 등의 관점에서 노동계급 자립성은 단지 노동계급으로 자칭하기를 원하는 정파로써 자신의 종파성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에 계급 자립성이란 사회 내부의 모든 다른 계급에 대한 독립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립성은 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하나의 전제조건을 나타내는데, 코뮤니스트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유일한 혁명계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계급적 연대와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공동전선과 노동자정당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공동행동노동자 자기조직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코뮤니스트와 전투적 노동자는 노동계급 독립을 위해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모든 곳에서 부르주아 정치로부터의 단절을 실현하고, 노동자평의회와 혁명당이라는 계급적 무기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노동계급과 세계혁명당

     

    노동계급이 자신을 계급으로 조직하는 것, 계급으로서의 자기 조직화혁명적 계급의식은 서로 연결되어 분리될 수 없으며, 노동계급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노동계급은 사회 전체를 떠맡아야 할 사명이 있지만, 이전 계급들과는 달리, 현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미래 사회를 지배할 권력의 어떠한 경제적 토대도 갖고 있지 않은 유일한 계급이다. 노동계급이 가진 유일한 물질적 힘은 조직화이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조직화는 다른 계급보다 훨씬 더 스스로 투쟁하는 데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조건이다.

     

    노동자가 가진 유일한 사회적 힘은 조직상의 절대 우세이다. 그러나 그 힘은 단결하지 않으면 분쇄 당한다. 노동자들의 분열과 경쟁을 극복하고 자본주의에 대항해 최종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공통된 이해를 위해 조직하여 함께 투쟁하는 길밖에 없다. 노동계급은 생산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인해 단결과 연대에 기반을 두어 계급으로 조직을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자기조직화는 가공할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직화와 연대만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킬 수 없다. 노동계급의 자기조직화는 반드시 전투적 의지와 집단적인 의식으로서의 혁명적 계급의식과 결합해야만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혁명적 투쟁을 벌일 수 있다.

     

    자본주의 아래 노동자들이 일상적 투쟁의 과정에서 얻게 된 계급의식은 혁명 의식으로 진전될 수도 있지만, 투쟁의 시기가 지나면 사라지기 버리기 때문에, 노동계급에는 계급의 모든 역사·이론적 성과를 온전히 담아내는 강령을 가진 혁명조직이 필요하다. 따라서 혁명 강령 없는 혁명조직은 존재할 수 없으며, 혁명조직은 투쟁하는 노동계급과 조직적으로 함께해야만 혁명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코뮤니스트와 혁명당은 항상 적대하는 계급과의 투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 속에서 노동계급의 요구와 자기 조직화를 방어하고, 계급의 민주주의와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항상 계급투쟁에 복무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의 과업이다. 노동계급의 한 부분인 혁명당은 전체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혁명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된 계급의 가장 의식적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혁명조직은 계급을 대신하여 권력을 장악하지 않는다. 모든 권력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장악하고 행사한다.

     

    혁명당은 계급의식의 발전과 조직의 성장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혁명당은 대중이 혁명 강령으로 향할 수 있도록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투쟁에 앞장서서 싸우며,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철폐하는 길에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혁명당은 계급투쟁을 확산시키고 강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자본에 대해 독립적으로 자신을 조직하려는 모든 경향(비공인 파업 투쟁, 직접행동, 파업위원회, 대중총회 등)의 출현과 확산을 촉진해야 한다. 혁명당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토론의 장, 프롤레타리아 정치 광장을 통해 계급의 민주주의와 토론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의 토론능력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실현이 계급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선 계급의 무기가 될 것이다.

     

    혁명당은 노동자 투쟁에 노동조합이 걸림돌이 되었을 때, 그것을 과감히 뛰어넘을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 와일드캣(비공인) 파업투쟁의 형태는 역사적으로 노동계급의 자기조직화를 가장 급진적으로 실현했다. 혁명 시기가 오기 전까지 혁명당은 모든 계급투쟁 속에서, 자본에 맞선 경제적 요구와 정부에 대항하는 낮은 차원의 정치적 요구를 부르주아 국가권력의 전복을 위한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이 전면화되고 정치투쟁으로 상승할 때, 혁명당은 구체적으로 파업위원회와 대중총회, 수평적 프롤레타리아 연대 조직을 정치적으로 집중시키고, 노동자평의회 건설로 나아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건설할 당은 계급의식의 발전과 노동계급 자기조직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당, 선거가 아닌 계급전쟁을 실천하는 당, 부르주아 제도권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당이 아닌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해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철저하게 독립한 계급 정당이다. 자본주의 쇠퇴기,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시기, 세계 노동계급에 반드시 필요한 당은 국제주의 원칙을 방어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국제적으로 개입하면서 코뮤니스트혁명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세계혁명당이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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